미국 최대 소매은행인 BOA가 15일 투자은행 메릴린치를 500억 달러에 인수하기로 했다. 케네스 루이스 BOA 최고경영자는 “메릴린치를 인수하면 시너지효과를 통해 그동안 상대적으로 약했던 투자중개부문에서도 성과를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들은 이로써 BOA가 시티그룹과 어깨를 견주며 세계 최대 금융서비스회사 타이틀을 노릴 수 있게 됐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오늘은 월가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날”이라며 미국 금융 지형도에 대변화가 올것이라고 예고했다.
메릴린치는 한 숨 돌리는 분위기다. 그동안 월가에는 “리먼 다음에는 메릴린치의 위기가 올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었다. 하지만 지난해 시가총액 1000억달러였던 메릴린치가 500억 달러에 매각되는 것에는 전문가들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BOA는 메릴린치 주식을 주당 29달러에 사기로 했다. BOA는 지난 12일 메릴린치 종가가 주당 17.05달러였다는 점을 들어 “프리미엄을 충분히 얹어줬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1년 전만 해도 메릴린치 주가는 주당 100달러였다.
월가는 메릴린치 매각을 계기로 시장의 불안정성이 가시길 기대하고 있지만 바램이 이뤄질지는 알 수 없다. BOA는 미국 최대 소매은행이지만 근래 이익이 내려가는 추세다. 특히 1월에 인수한 모기지업체 ‘컨트리와이드 파이낸셜’의 손실을 흡수하는 것만 해도 바쁜 처지다. 메릴린치의 사정이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나쁠 수도 있다고 AP통신 등은 지적했다. 메릴린치는 두 달 전 경제전문 통신사 블룸버그LP 지분을 팔고 부실채권들을 정리한 뒤 85억 달러 규모의 신주를 발행했다. 하지만 모기지 부실을 털어내지 못해 4분기 연속 손실을 입었다.
리먼, 메릴린치에 이어 미국 최대 보험사인 AIG도 위기를 맞고 있다. AIG는 신용자산의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한 신종 파생금융상품인 신용디폴트스와프(CDS)에 대거 투자했다가 250억달러에 이르는 손실을 입었다. 이 회사 주가는 올들어 79%나 떨어졌다. 미국 언론들은 AIG가 미 정부에 400억 달러 규모의 브리지론(긴급 담보대출)을 신청했다면서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며칠 내 리먼과 같은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결국 파산신청을 하기로 결정했다. 리먼은 15일 오전(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오늘 중 뉴욕 파산법원에 파산신청을 낼 계획”이라며 “이미 이사회의 승인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전날 뉴욕 맨해튼에서는 헨리 폴슨 재무장관을 비롯한 금융당국 관료들과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관리들, 주요 금융회사 대표 등이 ‘리먼 살리기’를 위해 숨가쁜 연쇄 회동을 했으나 묘책을 짜내는데 실패했다.
리먼 인수를 검토했던 BOA와 영국계 금융기관 바클레이즈는 미국 정부에 인수자금 지원이나 부실채권 지급보증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앞서 양대 모기지업체 패니메이·프레디맥을 살려줬던 미 재무부는 “기관투자가들을 주로 상대해온 리먼에까지 구제금융을 제공할수는 없다”며 버텼고, 벤 버냉키 FRB 의장도 “민간부문의 실패는 민간부문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에 바클레이즈는 인수계획을 철회했으며 BOA도 메릴린치 인수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158년 전 독일에서 건너온 유대계 이민자 3명이 설립한 리먼은 월가의 숱한 위기를 이기며 최대 투자은행 중 하나로 군림해왔으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에서 출발한 이번 신용위기를 무사히 넘기지 못한 채 파산신청에 이르게 됐다. 리먼은 지난 10일 “올 3·4분기(6∼8월)에 사상 최대인 39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고 발표한 뒤 유동성 위기를 맞았다.
뉴욕 타임스퀘어에 있는 리먼 본사에는 일요일인 14일 밤 직원들이 대거 출근해 서류상자를 나르는 등 ‘파산 대비’에 분주한 모습이었다고 AP는 전했다. 건물 앞에는 리먼의 파산을 보도하려는 미디어 차량들이 줄을 이뤘다. 눈물을 훔치는 직원들과 취재진 사이에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1970년대 리먼의 최고경영자(CEO)를 지냈던 피터 피터슨 전 상무장관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오늘은 내 35년 금융계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날”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BOA와의 합병을 앞둔 메릴린치 직원 6만명과 리먼브러더스 직원 2만5000명의 운명이 불투명한 상황이라면서 “뉴욕 경제 전체가 휘청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15일 아놀드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와의 예정된 만남도 취소하고 대책회의에 들어갔다.
15일 파산 신청계획을 발표한 리먼 브라더스는 158년의 역사를 가진 미국 투자은행이다. 파산신청을 앞두고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에 있는 리먼브라더스 본사에서는 직원들이 서류상자를 나르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고 AP통신 등이 전했다. 건물 앞에는 보도 차량이 줄을 이뤘고, 눈물을 훔치는 직원들과 취재진 간 설전이 빚어지기도 했다.
리먼브라더스는 독일에서 건너온 유대계 이민자 헨리 리먼이 두 동생과 함께 1850년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창업했다. 1984년 한 차례 아메리칸익스프레스에 인수되는 파고를 겪었으나 10년만에 독립했고, 1990년대를 거치며 미국 4대 투자은행 중 하나로 성장했다. 지난해 기준 총 자산규모는 6900억 달러, 매출액이 600억 달러였다.
그러나 오랜 역사를 통해 월가의 숱한 위기를 이겨왔던 리먼브라더스는 서브프라임모기지 손실이 예상보다 훨씬 큰 것으로 드러나면서 위기를 맞기 시작했다. 지난 10일 이 회사는 3분기(6~8월) 적자가 당초 예상액인 22억달러보다 훨씬 큰 39억 달러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이후 유동성 위기가 심화되자 리처드 풀드 최고경영자(CEO)가 회사를 매각하려 발벗고 나섰으나 결국 새 주인을 찾지 못한 채 파산을 맞는 처지가 됐다. 직원은 약 2만5000명. 시가총액은 12일 기준 25억달러로 떨어졌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이름과는 달리 BOA는 미국 국책은행도, 미국계가 설립한 은행도 아니다. 미국 최대 산매은행인 BOA는 1904년 샌프란시스코 노스비치에서 이탈리아계 이민자 아마데오 지아니니에 의해 설립됐다.
초창기 이름은 ‘뱅크오브이탈리아’였다. 처음엔 노동자들과 중소기업을 상대로 한 소액 금융으로 시작, 캘리포니아에서 사업을 확대했고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미국 최대 은행으로 성장했다. 올해는 1958년 이 회사가 세계 최초로 신용카드를 발급한지 50주년 되는 해이기도 하다. 1998년에는 네이션스뱅크(NCNB), 뱅크아메리카와 합병해 오늘날의 BOA가 됐다. 현재 본사는 NCNB의 근거지인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로트에 있다.
BOA는 세계 31개국에 지사를 두고 있으며, 전체 직원이 17만명에 이른다. 서브프라임사태로 도산 위기에 빠진 모기지회사 컨트리와이드 파이낸셜을 지난 1월 인수해 모기지사업에도 손대기 시작했다. 메릴린치를 인수하면 투자주액부문까지 사업을 확장, 세계최대 금융그룹인 시티그룹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메릴린치 인수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경우 총 자산규모 2조7800억 달러의 최대 은행그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메릴린치
15일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의 매각이 결정됨으로써 리먼브라더스처럼 아예 파산하는 사태는 모면했지만, 94년 역사를 가진 메릴린치가 ‘헐값’에 넘어가자 월가 투자전문가들은 경악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시가총액 1000억달러에 이르렀던 메릴린치가 반값인 500억달러에 팔려가게 된 것. BOA는 메릴린치 주식을 주당 29달러에 사기로 했다. BOA는 지난 12일 메릴린치 종가가 주당 17.05달러였다는 점을 들어 “프리미엄을 충분히 얹어줬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1년 전만 해도 메릴린치 주가는 주당 100달러였다.
메릴린치는 1914년 찰스 메릴에 의해 설립됐다. 1959년 주식회사로 변신한 뒤 업계 1위의 투자은행이 됐고, 1969년부터는 신탁 등 투자중개 전부문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현재 세계 40여개국에 진출해 1조6000억달러의 자산을 운영하고 있다. 직원은 6만명에 이른다. 승승장구하던 이 회사는 서브프라임 부실에 물려 4분기 연속 손실을 입었다. 지난해 CEO를 스탠리 오닐에서 존 테인으로 교체했고, 두 달 전에는 부실채권들을 정리한 뒤 85억 달러 규모 신주를 발행하는 등 자구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시장의 신뢰를 얻는데에는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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