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인권변호사·여성운동가인 시린 에바디가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이슬람권 여성이 노벨평화상을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10일 에바디가 민주주의와 인권, 특히 여성과 어린이의 권리를 위해 투쟁한 공로를 인정해 평화상 수상자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평화상 선정은 9·11 테러 이후 2년여에 걸친 이른바 `문명의 충돌' 논란 가운데에 기독교권이 아닌 이슬람권에서 수상자를 뽑았다는 의미도 있지만, 이슬람권 여성 실태에 대한 서방의 간접적인 비판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에바디의 수상은 여성·인권분야의 개혁을 도외시해왔던 이슬람권에 커다란 정치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슬람 신정(神政) 국가인 이란에서는 에바디의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보수-개혁파 간 갈등이 더욱 첨예해질 전망이다.
개혁파는 `환영'
이란 정부는 10일 "이슬람공화국 정부의 이름으로 에바디 여사의 노벨 평화상 수상을 환영한다"는 공식 논평을 냈다.
정부 대변인 압둘라 라메잔자데는 "인권문제, 특히 어린이와 여성의 권익 보호 측면에서 에바디의 노력이 세계 평화주의자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은 이란 여성사회의 명예"라고 평했으며 문화부도 장관 명의로 환영 성명을 냈다. 야당 여성인사 40여명은 "인권, 평화, 정의, 자유를 위한 우리의 투쟁이 계속되길 바란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고, 여성운동가들과 인권단체들도 `역사적 사건'이라고 환영했다.
무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이 이끄는 개혁파 정권과 여성·인권운동가들은 이번 일이 내부 개혁의 촉매로 작용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무하마드 알리 압타히 부통령은 "에바디의 수상은 정치적인 동기와는 전혀 상관 없다"고 강조하면서도 "법조인이 이 상을 타게됨으로써 (이슬람식) 사법체계의 변화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고 말했다. 에바디 자신도 수상소감을 밝히면서 감옥에 수감중인 이란 정부에 반체제·인권운동가 석방을 가장 먼저 요구했다.
보수파는 `비난'
그러나 에바디의 수상이 이란 인권 상황을 개선하는데에 자극제가 될 수도 있지만, 골 깊은 보·혁 갈등이 더욱 심화될 가능성도 커졌다. 보수파들에 장악된 국영방송은 국가적 경사라 할만한 에바디의 수상 소식을 노벨위원회 발표 4시간 만에야 짤막하게 보도했을 뿐이다. 보수언론인 라살라트지(紙)는 "유럽이 이란 인권문제에 더 강한 압력을 가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에 불과하다"고 깎아내렸다.
보수파 정치인 앗사돌라 바담시안은 이집트의 안와르 사다트 전 대통령이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은 뒤 노벨평화상을 받았던 사실을 언급하면서 "서방을 위해 봉사한 대가로 평화상을 받은 것은 불명예스런 일"이라고 주장했다. 영국 BBC방송은 이란 보수파들이 에바디의 수상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린 에바디의 노벨 평화상 수상을 계기로 이란을 비롯한 이슬람권 국가들의 여성권익 실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란은 중동에서도 특히 여성 탄압이 극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90년대 중반 개혁파 정권이 들어선 뒤로는 여성운동이 주변 국가들에서보다 훨씬 더 활기를 띠면서 정부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이란 여성들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무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의 전임자였던 하셰미 라프산자니 전대통령 시절부터. 라프산자니의 딸인 파에제 하셰미는 저명한 여성운동가로, 지난 1998년 높은 지지율로 마즐리스(의회)에 진출하기도 했다.
여성들의 개혁 요구가 정치적 힘으로 나타난 것은 지난 1997년 대선이었다. 정치신인이었던 하타미 대통령은 여성과 청소년 유권자(이란은 14세 이상 투표권 소지) 층에서 70%를 웃도는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선출됐다. 하타미 대통령은 당선 뒤 80년 테헤란 주재 미국대사관 점거사건 지도부의 홍일점 여대생이었던 마수메 에브테카르를 부통령으로 임명, 지지에 보답했다.
현재는 마즐리스 의원 12%가 여성이다. 차도르도 약식 스카프 형태의 `히자브'로 바뀌었고, 여성이 기도를 주관하는 것도 허용됐다. 그러나 사회·문화적으로 아직 보수파의 입김이 거센 것 또한 사실이다. 에바디는 보수파의 극심한 탄압을 받았던 대표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에바디의 노벨상 수상은 이란 뿐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변 국가들에게도 자극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역설적이지만 미국이 `인권탄압 국가'로 꼽고 있는 이란의 경우 다방면에서 자유화가 진행되고 있는 반면, 친미국가인 사우디의 인권상황은 세계 최악의 수준이다. 여성의 사회활동은 물론 운전조차 금지돼 있다.
쿠웨이트와 카타르는 아직 여성 참정권을 인정치 않거나 제한하고 있으며, 요르단과 이집트에서는 부족문화의 잔재인 `명예살인'(부정한 혐의를 받는 여성을 가족들이 살해하는 것)이 되풀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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