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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주둔군 철수 일정을 밝힐 수 없다던 미국의 입장이 달라졌다.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선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의 철군 주장에 대해 이라크 측이 이례적으로 지지 의사를 밝히고 나서면서,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극력 거부해온 '철군일정 제시' 문제가 다시 물 위로 떠오른 것. 대선을 앞두고 벌어진 치열한 공방 속에 철군론 쪽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오바마의 이라크 방문을 앞두고 때마침 영국의 고든 브라운 총리도 이라크를 전격 방문, 영국군 철수 입장을 재확인했다.
중동·유럽 순방에 나선 오바마는 이라크 방문에 앞서 19일 아프가니스탄을 찾아 '이라크 주둔군 축소-아프간 증파' 주장을 되풀이했다. 오바마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16개월 안에 이라크에서 철군할 것이라 주장해왔고, 미국을 떠나기 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도 "이라크는 미국의 대테러전에서 중심 전선이 아니며, 지금까지도 중심 전선이었던 적은 없었다"고 재차 강조했다.
오바마와의 회담을 앞두고 있는 누리 알 말리키 이라크 총리는 19일 독일 잡지 슈피겔 인터뷰에서 "16개월이라는 기한은 달라질 수 있겠지만 미군 철수 계획에는 찬성한다"며 오바마의 철군론에 대한 지지 입장을 공식 표명했다.
Afghan President Hamid Karzai (left) walks with Barack Obama in Kabul. (AFP/HO/Ho)
말리키 총리는 전날 백악관과의 화상 회의에서도 철군 일정을 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했으며 부시 대통령과도 합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시 대통령은 그동안 "철수 일정을 제시하는 것은 테러범들을 이롭게 할 수 있다"며 거부해왔으나, 근래 이라크 치안상황이 나아지면서 생각을 바꾼 것으로 전해졌다. 모호한 입장을 보여왔던 이라크 정부도 최근 들어서는 미국에 철군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라크 유혈충돌이 줄어든 대신 아프간 전황이 나빠져 이라크 주둔군을 이동시킬 필요가 생긴 것도 백악관의 입장변화를 불러온 요인으로 풀이된다.
오바마 측은 백악관도 자신들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며 더욱 적극적인 '이라크 공세'에 나설 태세를 보이고 있다. 백악관은 아직 철군 일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으나, 오는 9월말 의회에 제출될 예정인 이라크 상황보고서가 나오면 구체적인 시한을 밝히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이라크에는 미군 15만4000명이 주둔하고 있다. 2003년3월 개전 당시 미군은 25만 병력을 투입했었다. 미군 숫자는 한때 11만명 규모로 줄어들었다가 지난해초 '서지(Surge)'라는 이름의 대규모 저항세력 분쇄작전이 시작되면서 다시 늘었다. 이후 1년반 동안 이라크 치안상황은 사망자 수치나 자폭테러 발생건수 등으로 볼 때 눈에 띄게 나아진 것이 사실이다. 미군은 이라크 외에 주변 걸프국가들에도 지원 병력 3만명을 두고 있고, 아프간에는 3만6000명을 주둔시키고 있다.
미국은 명목상 이라크 주둔군을 '다국적군(MNF-I)'이라 부르지만 실제로는 지금까지 투입된 다국적군의 93%가 미군이었다.
전쟁 초반 4만5000명의 전투병력을 보냈던 영국은 파병 규모를 계속 줄였으며 지난해 12월 남부 바스라 일대 치안관할권을 이라크측에 이양했다.
현재 영국은 4000여명의 병력만 남겨놓고 있다. 영국은 지난 4월 2000명 규모로 파병부대를 줄일 예정이다가 일시 보류했으나 곧 철군을 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브라운 총리는 19일 바그다드를 전격 방문, 말리키 총리와 회담을 가졌으며 미뤄뒀던 철군 조치를 곧 실행에 옮길 것임을 재확인했다.
친미 정권이 들어선 뒤 유일하게 이라크에 병력을 증파해 2000여명을 주둔시키고 있는 그루지야와 933명을 파병 중인 한국을 빼면, 다국적군에 소속된 대부분 국가들은 철군 움직임을 가시화하고 있다. 900명을 파병한 폴란드는 도날드 터스크 새 총리 취임 뒤 철군 시기를 엿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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