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

국제형사재판소 10년의 공과 실

딸기21 2008. 7. 18.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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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족말살(제노사이드) 같은 반인도 범죄를 처벌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국제형사재판소(ICC)가 10주년을 맞았다. ICC는 대량학살 등 반인도 범죄를 단죄하는데 대한 국제적인 준거틀로서 기능해왔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의 거부로 인해 반쪽짜리 성과를 내놓는데 그치고 있으며, 반인도범죄의 예방보다는 이미 축출된 제3세계 독재정권들에 대한 뒷처리 재판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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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ICC 본부


'수단 파문'에 가려진 10주년

ICC의 설립을 결정지은 '로마조약'이 탄생한지 10년이 된 17일 ICC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국제앰네스티 등 인권단체들의 축하가 이어졌다. 반 총장은 이날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열린 기념식에 부친 축하메시지에서 "ICC의 설립은 국제법의 새로운 틀을 세운 거대한 이정표 중의 하나였다"고 치하했다. 국제앰네스티(AI)도 ICC가 "인권을 옹호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야심찬 노력을 보여줬다"고 평가한 성명을 냈다.
그러나 이날 로마조약과 ICC의 10돌 생일은 아프리카 수단 다르푸르 사태 재판 파문에 가려져 성대한 축하잔치가 되지는 못했다. 다르푸르 학살 책임을 물어 하산 알 바시르 수단 대통령을 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했던 ICC 결정을 놓고 논란이 계속된 것. 바시르 대통령 체포령을 내렸던 루이스 모레노-오캄포 ICC 수석검사는 이날 자신의 결정은 옳은 것이었다며 재차 옹호했다고 AFP통신 등이 보도했다. 하지만 검사실이 체포령을 내린 12명 중 실제 법정에 불려나오게 된 사람은 4명에 불과해, ICC의 취약성을 그대로 보여줬다.
앞서 중국 정부는 바시르 대통령 체포령을 철회해야 한다며 ICC를 비난하기도 했다. 정작 중국은 로마조약에 가입하지도 않은 나라다.


강대국들 빠진 반쪽 재판소

ICC의 출발점은 2차대전 뒤 열렸던 도쿄(東京)·뉘른베르크 국제전범재판. 이후 냉전을 거치며 반인도 범죄에 대한 단죄는 인권단체들의 주장으로만 남아있다가, 1989년 중미의 소국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총리였던 A N R 로빈슨이 유엔에서 국제법정 설치방안을 제기하면서 공식 논의가 시작됐다. 1990년대 옛 유고연방과 아프리카 르완다 등지의 내전 참상을 지켜본 국제사회의 각성 속에 1998년 로마조약이 채택됐으며 2002년에는 네덜란드 헤이그에 법정이 설치됐다. 현재 로마조약 가입국은 106개국이고, 오는 10월 중미 수리남이 107번째 가입국이 될 전망이다.
회원국 숫자는 늘었지만 ICC는 원대한 이상과 달리 주요 국가들의 거부로 인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해외 주둔 미군들의 행위에 대해 면죄부를 줄 것을 요구하며 로마조약 가입을 거부하고 있다. 미 의회는 2002년 '미국종사자보호법(ASPA)'을 통과시켜 미군들이 국제법정에 서지 않도록 정부가 총력을 기울일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수단, 짐바브웨 등 인권 '문제국가'들과 밀착관계에 있는 중국, 인도 같은 신흥 대국들도 가입을 회피하고 있다. 이 때문에 ICC 예산의 4분의3을 유럽연합(EU)과 일본이 내고 있는 실정이다.

패배자들에게만 칼 들이대는 '하이에나 재판' 비판도

지금까지 ICC는 139개국으로부터 각종 범죄에 대한 조사요청을 받았으나 기소로 이어진 것은 4건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국제사회의 관심이 쏠렸던 사안들은 다루지조차 못했다.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 재판은 국제법정이 아닌 이라크 내 법정에서 속전속결로 처리됐다. 

옛 유고내전과 캄보디아 '킬링필드' 재판, 그리고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시에라리온 내전은 각기 별도의 국제법정이 세워져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이 때문에 국제앰네스티 등은 ICC가 내전·분쟁의 패배자들만을 법정에 세우는 하이에나식 재판이 되고 있다며 강대국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원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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