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정부가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왕정을 폐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아직 국민투표와 제헌의회 구성 등의 절차가 남아있긴 하지만, 이대로라면 네팔은 내년 중으로 갸넨드라 국왕이 이끄는 왕실을 없애고 공화국으로 재출발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BBC방송은 네팔 정부가 240여년의 역사를 지닌 왕실을 없애기로 결정했다고 23일 보도했습니다. 앞서 정부와 의회에서는 석 달 가까이 왕정 폐지냐 유지냐를 놓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었습니다. 유서 깊은 왕실을 유지한 채 입헌군주국으로서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이 옳다는 의견도 많았으나, 북부 중국 접경지대를 중심으로 한 농촌에서 40년 넘게 게릴라전을 벌여왔던 마오(毛)주의 세력이 공화국으로의 이행을 요구하며 정부를 압박해 결국 왕정 폐지 결정을 이끌어냈다고 합니다.
마오주의 정치조직들은 오랜 내전 끝에 지난해 정부와 평화협정을 체결, 정부에 참여하기로 하고 군사행동을 중단했었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왕정 폐지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자 올해 85세의 쇠약한 기리자 프라사드 코이랄라 총리에게 “다시 게릴라로 돌아가 앞으로 40년을 더 싸울 수 있다”며 결단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앞서 네팔 정부는 지난 7월엔 갸넨드라 국왕을 비롯한 왕실 일가가 쓰는 비용을 국가가 내주는 국비 지원을 끊은 바 있습니다. 네팔은 1인당 실질국내총생산(GDP)이 연간 1500달러 밖에 안 되는 빈국이지만 국왕을 비롯한 왕실 최고위층은 연간 50만달러씩 세금을 받아쓰며 호화생활을 해 지탄을 받았었지요.
이 사람이 갸넨드라 국왕인데, 국민들에게 웃는 모습을 보여주지를 않는대요.
네팔 왕실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그나마 국민들의 신뢰를 받고 있었으나 2001년 왕실에서 희대의 살인극이 벌어진 뒤 위상이 추락했습니다. 왕세자가 친부모인 비렌드라 당시 국왕 부처를 포함한 가족 9명을 총기로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겁니다. 국민들에겐 정말 충격적인 사건이었겠지요.
숨진 비넨드라 국왕은 개혁파로서 그래도 네팔의 발전을 이끌기 위해 애를 썼었다고 합니다. 현 갸넨드라 국왕은 비렌드라의 동생으로서 왕위를 물려받았으나, 형의 개혁 노선은 싸그리 무시했대요. 거기다가, 왕실 살인극의 숨은 배후라는 의혹이 가시지 않았었지요.
갸넨드라 국왕은 국민들을 억누르고 전제정을 강화했다가 작년 4월 반(反) 왕조 민중봉기에 부딪쳤습니다. 이후 네팔은 입헌군주정으로 이행했으며, 왕실은 국가 공식 행사에도 얼굴을 내밀지 못하는 처지가 됐는데... 기어이 사라질 운명에 처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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