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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줄루의 반란'?

딸기21 2007. 12. 19.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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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정치ㆍ경제의 중심인 남아프리카공화국 흑인정권에 `격변'이 일어나고 있다. 넬슨 만델라의 반(反) 아파르트헤이트 투쟁으로 널리 알려진 집권 여당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전당대회에서 현직 대통령 타보 음베키(65)가 전직 부통령 제이콥 주마(65)에게 밀려 당권을 빼앗기는 사건이 벌어진 것. 2010년 월드컵을 앞두고 경제ㆍ사회적 과제가 쌓여있는 상황에서, 레임덕을 피할수 없게 된 음베키와 차기 대통령으로 사실상 내정된 주마가 정국을 어떻게 끌어갈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8일 총재 경선이 끝난 뒤 악수를 나누고 있는 음베키(왼쪽)와 주마(오른쪽)


폴로콰네의 이변

북동부 림포포주(州)의 폴로콰네에서 18일 실시된 ANC 총재 경선에서 주마는 전체 대의원 투표 수의 60%가 넘는 2329표를 얻어 1505표를 획득한 음베키를 누르고 당권을 잡았다. ANC는 그동안 지도부 내 합의를 거쳐 당 총재를 선출해왔으나, 지난 16일 시작된 이번 전당대회에서는 주마와 음베키 세력 간 대립이 심각해 58년만에 처음으로 경선이 치러졌다.
1912년 만들어진 ANC는 남아공 흑인 정치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정치적 중요성을 띠고 있다. 남아공은 의회 간접선거로 대통령을 뽑기 때문에, 의회 의석 3분의2를 장악한 ANC의 총재가 된 주마는 사실상 차기 대통령으로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전당대회장 밖에서는 ANC 지지자들과 일반 당원들이 텐트를 치고 총재 선거 결과를 기다렸다가 주마 당선 사실이 전해지자 환호성을 질렀다고 현지 신문인 `데일리 메일 & 가디언'이 보도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전사의 후예'

유명한 흑인 정치인 고반 음베키의 아들이라는 후광을 안고 ANC를 장악했던 음베키가 `셰익스피어를 읽는 지식인'인 것과 달리, 주마는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다. 하지만 ANC의 무장 분과에서 투쟁해온 역전의 용사로서 만델라가 복역했던 로벤섬 감옥에서도 복역한 바 있고 카리스마 넘치는 정치인이라는 평을 듣는다.
ANC는 그동안 만델라와 음베키가 속해 있는 코사족 중심으로 운영돼 왔다. 반면 주마는 남아공 최대 부족인 줄루족 출신. 지금은 물밑에 가라앉아 있지만 남아공 흑인들 내에서 줄루와 코사의 대립은 심각하다. 줄루는 예로부터 `전사의 부족'으로 각인돼 있는데다, 1991년 아파르트헤이트가 철폐된 뒤 줄루 정당인 잉카타 자유당 지지자들이 다른 흑인들을 상대로 극심한 폭력을 자행한 전례가 있다. 이번 ANC 전당대회에선 이례적으로 대립과 분열이 심각했다. 이 때문에 만델라가 개막 때 발표된 동영상 연설에서 각별히 단합을 당부했을 정도였다.
어찌됐든 투표가 끝난 뒤 단상에 오른 음베키가 주마를 얼싸안으며 축하해주긴 했지만, 양측의 갈등이 쉽게 가라앉을지는 미지수다.

17일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보이던 주마의 모습


산적한 과제 어떻게 해결할까

주마가 예상 밖으로 큰 승리를 거둔 데에는, 1999년부터 계속돼온 음베키 체제에 대한 반발이 자리잡고 있다. 만델라에게서 정권을 물려받은 음베키는 흑인 정치체제를 정착시키고 경제발전을 추진하는 한편 월드컵 유치와 같은 외교적 성과들을 거뒀다. 그러나 수백만의 흑인 빈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빈민가 소요를 불러온데다 치안은 극도로 불안한 상태이고, 에이즈 문제를 방치해버렸다는 비난이 따라다닌다. 흑인 경제, 이른바 `블랙 이코노미' 우선주의와 ANC의 독주가 계속되면서 부패와 관료주의가 심해졌다는 비판도 많다.
2009년 대선 뒤 3연임 금지를 규정한 헌법 때문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하는 음베키는 이번 전당대회 뒤 극심한 레임덕을 맞을 것이 분명하다. 일각에선 내년 조기총선을 거쳐 음베키가 조기 퇴임할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차기 주자인 주마의 주요 지지층은 노동조합들. 야당인 공산당도 주마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대파들은 주마가 재작년 측근 부패ㆍ성폭행 혐의로 기소돼 부통령직에서 축출되는 등 스캔들에 휩싸여 있다며 도덕성 논란을 제기하고 있다.(지난해 성폭행 재판 과정에서 주마는 "성관계 뒤 에이즈에 안 걸리려고 샤워를 했다"고 말해, 에이즈에 대한 극도의 무지를 드러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주마의 `좌파 포퓰리즘'을 걱정하는 시각도 많다. 남아공 교민에게서 "미국이 주마를 싫어한다"는 얘기도 들은 적 있다.
주마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집권해도 거시경제 정책에선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며 치안과 에이즈 문제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우선 자신의 부패ㆍ성폭행 혐의부터 완전히 벗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외신들은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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