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당신을 위해 있는 존재이다.
타인에게는 열어주지 않는 문을 당신에게만 열어주는 사람이다.
# 어린 왕자
"내려와서 나랑 같이 놀자"
어린 왕자가 여우에게 말했다.
"난 지금 너무 슬퍼......"
"난 너와 같이 놀 수 없어."
여우가 말했다.
"아직 길들여지지 않았거든."
"아, 미안해."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렇지만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어린 왕자가 다시 물었다.
"길들여지는 것이 어떤 건데?"
"너는 여기 아이가 아니구나."
여우가 말했다.
"무엇을 찾고 있지?"
"난 사람들을 찾고 있어."
어린 왕자가 말했다.
"길들여진다는 게 뭘까?"
"그건 이미 새카맣게 잊혀진 말 중의 하나야."
여우가 말했다.
"그 말은 '서로 익숙해진다' 라는 뜻이지."
"익숙해진다고?"
"음, 아직까지 너는 나에게 수만 명의 어린 소년들과 아무 차이도 없는 그냥 어린 소년에 불과해. 난 너를 필요로 하지 않고 너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아. 나도 너에게는 수만 마리의 여우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한 마리의 여우일 뿐이지. 그렇지만 네가 나를 길들이면 우리는 서로 필요로 하게 될 거야. 너는 나한테, 나는 너한테 세상에서 유일한 친구가 되는 거지."
# 생텍쥐페리, 바람과 모래와 별들
우리는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야간근무를 나갔다. 먼저 밤을 보낼 준비부터 했다. 선창에서 궤짝을 대여섯 개 들고 와 속을 비운 다음 그것으로 간신히 바람을 막아 그 안에 막사 안처럼 가느다란 촛불을 하나씩 피웠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의 공터 한복판에 천지 창조의 순간처럼 외로움 속에 인간의 마을을 만들었다.
우리는 궤짝에서 나오는 흔들리는 불빛을 보며 사막 한 귀퉁이에서 막연히 구원의 손길을 던져 주는 이른 새벽의 붉은 노을이나 무어인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아직까지도 난 그날 우리가 왜 성탄절 분위기를 느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한 사람씩 옛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말장난을 하거나 노래를 불렀다.
분위기는 마치 치밀하게 잘 준비된 축제가 한창 무르익어 가는 것처럼 달아올랐다. 사실 우리는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가난했다. 우리에게 있는 것은 바람과 모래와 별 뿐이었다. 그것은 트라피스트회의 수도사들에게조차 너무 가혹한 현실이었다. 그렇지만 흐린 불빛 속에서 가진 것이라고는 추억 뿐인 일곱 명의 사내가 눈에 보이지 않는 보물을 나누듯이 마음의 정을 나누었다.
그 순간 우리는 진실로 우리 자신과 만났다.
오랫동안 우리는 각자 근심에 짓눌려 있거나 아무 의미도 없는 말들만 주고 받으며 지내 왔다. 그러다가 위험의 순간을 맞았고, 서로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되었으며 모두 같은 운명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상대를 잘 이해하게 되었다는 기쁨은 한 사람씩 다른 사람에게 전해졌다. 우리는 서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른 사람을 이해했다. 마치 감옥에서 갓 나온 죄수가 바다가 무한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으며 놀라는 기분이었다.
# 어린 왕자
여우는 말을 멈칫하며 어린 왕자를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제발 나를 길들여줘!"
하고 여우가 말했다.
"그러나 나는 시간이 별로 없어. 친구들을 만나고 많은 것들을 사귀어야 하거든."
"사람은 자기가 길들이는 것만 알게 되는 거야."
여우가 말했다.
"인간들은 뭔가를 사귈 시간이 없어. 그들은 이미 다 만들어져 있는 것들을 가게에서 사거든. 그러나 친구를 파는 가게는 없기 때문에 사람들에게는 친구가 없어. 네가 만약 친구를 원한다면 나를 길들여줘!"
"어떻게 해야 하는데?"
어린 왕자가 물었다.
"참을성이 많아야 해."
여우가 말했다.
"일단 내게서 조금 떨어진 풀밭으로 가서 앉아. 나는 너를 곁눈질로 몰래 조금씩 훔쳐볼 거야. 넌 아무 말도 하지 마. 말이란 오해의 원인이 되거든. 그런 다음 넌 날마다 내게로 조금씩 다가오는 거야."
# 내 추억.
그 노래를 함께 불렀던, 아주 친했던 친구들의 얼굴이 생각난다. 꽃과 어린왕자. 좀 유치하달 수 있는 그 노래를 정말 여러번 불렀다. 친구의 기타 반주에 맞춰서. 꽃들에게 희망을, My Peace, Yesterday once more 를. 소월길과 남산도서관, 창경궁, 비원, 대학로, 청운동 청와대 뒷편 넘어가는 길, 어떤 때에는 올림픽공원까지, 아주 긴 거리를 함께 걸었던 친구들.
# 생텍쥐페리, 전쟁터에서 친구에게 보낸 편지.
머릿속에 다시 분명히 떠오르는 말이 있다. 그것은 이렇게 홀로 앉아 있는 이곳에서 맛보는 가장 달콤한 말이다. 그 말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 밖의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가득 채워 주리라. 늘 똑같은 말이다. 누구나 위험이 닥치면 다른 모든 사람들에 대해 책임을 느끼는 것 같다.
"평화가 당신의 마음 속에 깃들이기를."
이 말은 우리가 가장 즐겨 하는 말이다.
# 내 마음.
살람 알레이쿰, 하면 그곳 사람들은 알레이쿰 살람, 이라고 대답한다.
예루살렘에서는 샬롬이라 하고, 아랍에서는 살람이라 하고.
그렇지만 다들 알고 있잖아, 평화는 아무 곳에도 없다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평화에 대해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는 걸.
이라크에서 돌아온 뒤로 나는 줄곧 괴로와하고 있다.
사람이 생각하기를 포기하면, 더이상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거야.
그러나 과연 사람들 사이의 소통이라는 것이 제대로 존재하기나 하는 걸까.
# 생텍쥐페리, 바람과 모래와 별들
나는 나를 소중하게 여겼을 다른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수많은 눈빛들이 내 침묵을 비난한다. 나는 애써 대답한다. 있는 힘을 다해 큰 소리로 대답한다. 그러나 난 이 암흑 같은 현실에서 지금보다 더 밝은 빛을 내보낼 능력이 없다. 뭔가 애타게 기다리는 눈빛을 볼 때마다 난 가슴이 아프다. 그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곧장 달아나고 싶은 충동을 가누기 어렵다. 저쪽에서 그들은 내게 구원을 요청한다. 저기 저쪽에서 배가 난파되어 괴로워하고 있다.
난 마치 수백년을 잘 사람처럼 깊은 잠에 빠지기로 한다. 그러나 저쪽에서 나는 비명소리, 절망을 불사르며 타오르는 횃불 같은 그것 때문에 잠을 이루기 어렵다. 그런 불행한 상황에서 난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내가 애써 고집을 피우며 가만히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게는 죽음의 순간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에게 가야 한다. 그래서 그들을 구해 주어야 한다.
# 나 또한.
나도 나를 소중히 여겨주는 다른 이들을 생각해본다. 내가, 그들의 침묵을, 나의 침묵을 비난한다. 나는 스스로 대답한다. 그러나 내 목소리는 입 밖으로 크게 나가지 않는다. 나야말로, 암흑 같은 현실에서 작은 빛이나마 낼 능력이 없다. 그리고는, 가슴이 아프다.
"선배, 나도 선배 말투를 흉내내야겠어요. 선배 말투는 차분해서 설득력이 있어요."
며칠전 만난 후배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그 아이의 말투는 명랑하고 힘이 있다. 나의 말투는 차분하다. 나는 갈수록 차분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있으니까.
# 어린 왕자
아저씨는 밤에 별들을 바라볼 거야. 내 별은 너무 작아서 어디에 있는지 아저씨에게 가르쳐줄 수가 없어. 그게 더 나아. 내 별은 아저씨에게는 많은 별들 중의 하나가 될 테니까 말이야. 그래서 아저씨는 그 모든 별들을 다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게 될 거야. 별들은 모두 아저씨의 친구가 되겠지.
아저씨가 밤에 하늘을 쳐다보면, 내가 그 별 중의 하나에서 살고 잇고, 내가 그 별 중의 한 별에서 웃고 있으니까 아저씨에게는 모든 별이 다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일 거야. 아저씨는 말이야, 웃을 줄 아는 별들을 갖게 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