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 저런 얘기

불량감자 다 나와!

딸기21 2003. 2. 22.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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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프렌치 프라이(French fries) 대신 '프리덤 프라이(freedom fries)'로 불러 주세요"

이라크 공격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둘러싼 미국과 프랑스의 대립이 몇달째 계속되고 있죠. 기어이 감정 싸움으로까지 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국가간에 벌어지는 일들이, 어린애들 싸우는 것처럼 유치하게 보일 때도 많습니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이 지난달 프랑스를 가리켜서 '늙은 유럽'이라고 지칭해서 프랑스의 반발을 샀는가 하면 20일에는 미국 편에 서 있는 영국의 언론이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을 벌레로 묘사한 기사를 실어 말썽을 빚었습니다.

며칠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 외무장관 회의에서는 '늙은 유럽'이 유행어가 되기도 했답니다. 프랑스 외무장관이 ″늙은 유럽에서 온 사람이 한 마디 하겠소이다″ 그러자 독일 외무장관이 맞장구. 이에 콜린 파월 미국 국무장관은 ″젊은 나라인 우리의 입장을 얘기하자면...″ 이번엔 영국 외무장관이 ″프랑스가 1000년 전에 우리를 점령했었죠″라고 1066년의 역사적 사건까지 들먹였다고 하는데요. 물론 다들 긴장된 회의분위기 풀기 위해 농담삼아 한 얘기들이지만, 프랑스와 독일 외무장관의 말에서는 어쩐지 '뼈'가 느껴지네요.

불똥은 자꾸만 이상한 곳으로 튀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프렌치 프라이(프랑스식 감자튀김)가 논란의 대상. 미국의 한 식당이 '프렌치 프라이'를 몰아내자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어 고객들의 큰 '지지'를 얻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영국의 BBC방송은 21일 미국과 프랑스 사이의 감정싸움이 미국 식당가에서 '프렌치 프라이'를 몰아내고 있다면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보퍼트에 있는 한 패스트푸드점을 소개했습니다. '큐비스 다이너'라는 이름의 이 식당에서는 '프렌치'라는 말이 들어간 메뉴가 기분 나쁘다면서 감자튀김의 이름을 '프리덤 프라이'로 바꿨다는군요. 미국이 늘상 주장하는 '자유 세계의 보호'를 대변하는 감자인 셈인데, 이름을 바꾸면서 고객들 사이에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겁니다.
미국이 하는 일에 번번이 딴죽을 거는 프랑스인들에 대한 '미움'이 반영된 모양입니다. 아예 식당 창문에 ″더 이상 프렌치 프라이는 없습니다. 그 대신 프리덤 프라이가 있습니다″라는 광고 글을 내걸면서, ″우리 군대를 지지하기 위해서″라는 문구를 덧붙였다고 합니다. 식당 주인 닐 롤런드의 말로는 ″모든 고객이 지지를 보내고 있다″나요.

롤런드 스스로 ″1차 세계대전 당시 식당 주인들이 독일에 항의하기 위해 사워크라프트(독일식 양배추절임)을 '리버티 캐비지'로 바꾸고 '프랑크푸르트 소시지'를 '핫도그'로 고친 데에서 아이디어를 따왔다″고 설명했듯, 사실 이런 음식 개명(改名) 사건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닙니다. '프렌치 프라이' 사건이 한 식당주인의 장삿속과 맞물린 해프닝으로 끝날지, 아니면 '핫도그'라는 말이 확산된 것처럼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갈지는 두고 볼 일이죠. 이대로라면 미국에서는 '불량국가(rogue state)'를 응징하기 위한 '불량감자'가 등장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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