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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일이냐, 내가, 대박 터진 영화를 '제 때에' 보다니. 너무 무서울 것 같아서 머뭇거리다가 어제 씨네큐브에서 영화 '살인의 추억'을 봤다. 우선 재미있었고, 영화가 참 깔끔했다. 우리나라 감독들이 이렇게 영화를 테크니컬하게 잘 만들어버리면 대체 남의 나라 감독들은 어쩌라는 거야... 송강호 연기, 진짜 리얼하더라. 경찰서에서 봤던 형사들 모습이랑 거의 똑같애. 그런데 영화평 쓰는 기자들이 "범인은 1980년대였다!" 쿵짝쿵짝 한 건 솔직히 오버 내지는 영화사의 판촉작전에 놀아난 것이라는 생각이 짙게 들던걸. 여기저기 언론에 나온 걸 보니까 아마 감독이랑 제작사에서 그 쪽에 포인트를 맞춰서 홍보를 했던 것 같은데. 요새는 '386'이 광고 키워드니깐, 특히 영화에 있어서는 상당히 구매력 강한 그들의 '도덕적 자부심'을 또 자극하고 싶었는지 알 수 없지. 그런데 내 눈에는 80년대가 아니라, 형사 두 놈만 보이는 거야. 80년대라는 시대적인 특성은 그냥 '존재의 조건'으로만 보였고, 이 영화에서 '보편성'에 해당되는 부분이 더 크게 와닿았거든. (참고로 말하자면 학교에서 죽은 여학생-- 우리 중학교 때에, 그렇게 긴 머리 날리면서 다니면 선생이 즉시 달려들어 귀밑 3센티로 자르라고 발광했었는데) 영화에서 중요한 건 시대가 아니라 "미친 놈 잡으려다 미쳐간 사나이들"인 것 같은데. 이 영화의 주인공은 박두만 서태윤 두 형사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송강호 김상경이 영화를 끌어간다. '미친 놈 쫓다보니 몽땅 미쳐가는'. 그런데 사실은 사회 전체가 좀 미쳐있는. 깜이냐, 논리냐 그것이 문제로다-- 그런데 알고보니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도다. 김상경이 지금 몇 살이지? 이 '배우'를 처음 본 건 MBC 미니시리즈 '마지막 전쟁'에서였다. 강남길이랑 심혜진이 죽도록 부부싸움하는 드라마. 심혜진의 후배이자, 김현주의 애인으로 나왔는데. 번듯하게 생긴 얼굴이, '잘 나가는 법대 졸업생'으로는 딱이었다. 물론 그때만 해도--이 탤런트에게서 '연기'를 기대하는 건 무리였으니. 그리고 또 뭐였더라--나는 잘 안 봐서 모르겠는데 표민수-노희경 듀오의 시청률 바닥 드라마에 출연한 걸 보고 의외네, 싶었는데. 이제보니 저렇게 '배우'가 되려고 그랬나보지. '살인의 추억'의 히어로는 단연 김상경이다. 송강호의 연기력은 이미 다 아는 것이고 (이번 영화에서 보니 정말 물이 오를대로 오른--). 나는 김상경이 미친듯이 띠발띠발 거릴 때, 송재호가 옆에서 "니가 미친 놈 같다"고 할 때. 그 장면이 아주 우스웠다. 마지막에 김상경이 울 때는 약간의 감동--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서 풍겨나오는 그 땀내 나는 감동같은 것이 전해오더라 이 말이지. "그래, 삽질을 저렇게 열심히 하면 금덩이가 반드시 나올겨!" 어쨌든 김상경이라는 '배우'를 발견하니깐 좋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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