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 저런 얘기

Being Digital?

딸기21 2001. 1. 14.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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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일요당직을 섰다. 어제도 일토였는데 일요일까지 회사에 가서 사무실을 지켰다. 귓속에서 아직도 히터 돌아가는 소리가 웅웅거린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하루 종일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소음에 시달리다 돌아오니 이번엔 환청이 나를 괴롭힌다. 집에 혼자 앉아있는 순간에도 '조용히 있을' 수는 없다. 집에 들어와 눈치를 살펴보니 남편이 빨래를 해놓고 나갔다.
국을 데워 저녁을 먹을까 하고 있는 참에, 관리실에서 스피커로 내 머리를 때린다. 베란다로 이어져내려가는 하수구가 얼어붙으니까 세탁기 돌리지들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였다. 아뿔싸, 아랫층 베란다 하수구 다 얼었겠네...

방송 담당을 그만두고 나니 집에 와 앉아있는 것이 이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다. 내 귓전에서 웅웅거리는 가장 큰 소음 중의 하나인 텔레비전을 켜놓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워낙에 드라마를 좋아해서 광고까지 다 외우는 내가, 방송담당 기자를 하고 있는 동안에 알게모르게 압박을 받았었나보다.
관리실 아저씨의 스피커 소리가 꺼지고 난 뒤, 국을 끓여서 밥을 먹고난 뒤 마루 탁자 모퉁이에 이쁘게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데, 의무감을 갖고 텔레비전을 켜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아주 추상적이고, 바보같이 들리고 하나마나한 얘기라고 지탄받을 수도 있는 소리인데, 왜 인간이 자꾸 모든 것을 디지털화하고 있느냐는 얘기다.
나는 디지털로 구성될 수 없다. 나 뿐만 아니라 인간은, 인간을 둘러싼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0과 1로 환산될 수 없다. 예전에 누구한테
'어떻게 디지털화하면 용량을 쪼끄맣게 만들 수 있는 건지'를 물어봤었다.
그 똑똑한 사람의 설명은 이랬다. 이삿짐을 싸는데 책상, 의자, 침대, 이런 것들을 그냥 트럭에 실으면 자리를 많이 차지하지만 아주 쪼끄만 주사위 모양의 육면체로 쪼개어서 실으면 공간을 훨씬 덜 먹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벌써 오래된 얘기다. 내가 '디지털'이라는 말 자체에 익숙해있지 않았을 때였으니까.

책상, 의자, 침대같은 것들은 손톱만한 주사위로 잘라서 번호를 붙여서 차곡차곡 쌓아놨다가 새 집으로 옮겨가서 번호대로 다시 조립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텔레비전 보는 것 하나를 가지고도 스트레스를 받네 안 받네 하는 인간인데, 어떻게 디지털화할 수가 있단 말인가.
'나무도 풀도 모두 혼자'(헤르만 헤세)가 아니고, '나무도 풀도 모두 아날로그'다. 그런데 인간들이 보이는 모든 것을 다 디지털로 만들고 있으니 이를 어쩌나 걱정이 되는 것이다.
원래 아날로그인 것을 이렇게 억지로 디지털로 만들면, 나중에 뭔가 심각한 부작용이 있지 않을까. 난 그게 걱정이다.

프리드먼의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를 읽는데, '세계화' 이후에 인간은 이전에는 도저히 사고파는 것이 불가능할 것처럼 여겨졌던 온갖 것들을 채권화하고 있다고 했다. 디지틀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사고 팔 수 있다'는 것은 일견 사고 팔 수 없는 것보다는 더 편할 것 같기도 하다. 하긴, 무형의 재능을 사고 팔 수 없다면 대체 이 세상의 많은 지적 노동자들은 뭘 먹고 살 것이며, 숱한 예술가들은 또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
그러나 사고판다는 것 자체가 곧 '좋은 것'일수는 없는데, 그 점은 누구나 안다. 그런데 요새는 '아날로그'란 말이 욕처럼 쓰이니까 참 희한하다. '아날로그'에 '세대'란 말을 붙여서 '구세대, 쉰세대'를 가리키는 말로 섞어 쓰기도 하고, 머리 나쁜 사람한테 '아날로그'라고 부르니, 참.

-디지털화에 한계를 느낀 딸기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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