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54

38. 1912-1913년의 발칸 전쟁

벌써 올해도 반이나 지나갔어요. 에효... 올봄은 세월호 이후 슬프디 슬프게 흘러가고 어느새 초여름이네요. 이대로라면 이 연재를 대체 올해 안에 끝낼 수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암튼 다시 정신 가다듬고 정리해 올립니다. 38. 1912-1913년의 발칸 전쟁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유럽 열강에 갈갈이 찢겨나가고, 힘겹게 '근대'로의 변모를 이루며 '터키 공화국'을 향해가던 20세기 초반. 그 주축에 선 것은 케말 파샤가 이끄는 청년투르크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내세운 '투르크 민족주의'는 제국의 폭넓은 틀 속에서 용인되던 '다민족 문화'를 뿌리부터 부정한 것이었습니다. 관용적인 제국이 협소한 투르크 민족주의로 향해간 것일 수도 있고, 열강에 맞선 투르크 엘리트들의 어쩔 수 없는 방어본능이라고도 할 수 ..

36. 1908년의 발칸

36. 1908년의 발칸 1860년대 서유럽의 영향을 받은 오스만 투르크 내 개혁파들이 전통적인 제국 운영방식과 술탄의 허울뿐인 개혁을 비판하며 민족주의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술탄의 탄압을 받아 곧 해외로 추방됐습니다. 1902년 이들은 프랑스 파리에서 ‘청년투르크 Jön Türkler’라는 이름의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청년투르크 조직은 이내 두 파벌로 갈렸습니다. 한 쪽은 투르크족 중심으로 오스만 제국을 다시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다른 한쪽은 제국 내 모든 신민(臣民)들이 민족에 따라 자치를 할 수 있어야 한다며 분권화를 주장했습니다. 파리에서 청년투르크가 정치토론을 하고 있을 동안 마케도니아에서는 투르크 장교들이 행동에 들어갔습니다. 제국 전역에 흩어져 있던 장교들은 테살로..

31. 1830년, 발칸 반도의 '검은 조르제'

31. 1830년 세르비아·그리스 혁명 뒤의 발칸 반도 어느새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몰락의 길을 걷고 있고... 제국의 갈라진 틈을 거대한 균열로 만드는 것은 '봉기', 수탈당하던 사람들의 저항이겠지요. 1804년 베오그라드에서 투르크 주지사의 혹정에 시달리던 세르비아인들이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1차 세르비아 봉기라고 불리는 봉기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오스만 중앙정부의 대응이 참 희한합니다. 주지사 측과 민중들이 싸우는데, 일단 베오그라드의 혼란을 무마해야 하니 반란군에게 오히려 무기를 줘서 이기게 만듭니다. 주지사는 내팽개치더라도 일단 질서회복부터.... 라는 걸까요. 힘 빠진 제국은 변경의 소란에 이렇게 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겠지요. 세르비아 반란군을 이끈 것은 돼지를 사고파는 일을 하던 조르제 페트..

27. 주정뱅이 술탄과 오스만 제국의 몰락

27. 17-18세기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쇠퇴 오스만 투르크 제국을 정점에 올려놓은 술레이만 대제가 1566년 죽고 그의 아들 셀림2세가 즉위했습니다. 그런데 셀림2세의 별명은 '주정뱅이'였습니다. 영어로는 Selim the Sot 혹은 Selim the Drunkard... 아버지의 영어식 호칭이 Suleiman the Magnificent 인 것과 비교하면 참 얼굴 팔리는 별명입니다. 덕망 있는 군주의 치세가 끝나면 꼭 이렇게 쇠퇴를 재촉하는 인물들이 등장하지요. 그것이 어디 개인의 문제이겠습니까마는. 술레이만 대제가 사망한 뒤, 오스만 제국은 점차 안팎에서 쇠락의 길로 빠져들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안으로부터의 쇠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창 융성하던 시기의 오스만 정부가 갖고 있던 독특한 구..

에르도안과 호세프, 시위에 대처하는 그들의 자세

“그들은 약탈자일 뿐이다. 시위를 진압하는 게 내 의무다.” (에르도안)“더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이 거리로 나섰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힘을 보여주는 증거다.” (호세프)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와 브라질의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이 몇주째 대규모 군중시위에 시달리고 있네요. 에르도안 총리는 그동안 많이 보도됐다시피 이스탄불의 유서깊은 공원 철거계획 때문에, 호세프 대통령은 버스요금 인상계획 때문에 시위대에 에워싸였습니다. 하지만 두 지도자의 반응은 사뭇 다르군요. 이 사람이 에르도안. 에르도안은 18일 집권 정의개발당(AK) 집회에서 연설하며 이스탄불 탁심광장에서 시작된 전국적인 반정부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경찰력을 더 투입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는 강경진압에 대한 비판을 일축하며 “경..

터키 열기구 사고로 한국 관광객 30명 다칠 뻔…‘아찔’

한국인들에게도 인기 있는 관광지인 터키 카파도키아에서 열기구끼리 충돌해 관광객 3명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20일 카파도키아에서 열기구끼리 충돌, 브라질 관광객 3명이 숨지고 20여명이 다쳤다. 아나톨리아통신에 따르면 열기구끼리 공중에서 부딪치면서 한 열기구의 풍선이 찢어졌고, 바람이 빠져나가면서 풍선에 매달린 바구니가 떨어졌다. 안에 있던 사람들은 땅으로 추락해 숨졌다. 사망자들은 65세, 71세, 76세의 고령 관광객들이었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탄 열기구의 바구니에 부딪쳐 파손된 열기구. 이 열기구가 추락하면서 여기 타고 있던 브라질 관광객 3명이 숨졌다. 사진 제공 백남하 구멍 뚫린 열기구가 아래로 추락하고 있다. 사진 제공 백남하 터키 중부 아나톨리아 고원지대에 위치한 카파도키아는 수도 앙카라..

23. 적들에게 죽음을 알리지 않았던 오스만의 지배자, 술레이만 대제

드디어 가까운 시대??로 접어듭니다! 23. 16세기 중반 유럽에서 정점에 오른 오스만 투르크 제국 드디어 이 사람의 시대가 됐습니다. '술레이만 대제'로 알려진 술탄 술레이만1세 Süleyman the Magnificent (1520-66년 재위)... 술레이만은 '솔로몬'의 터키식 명칭이죠. 술레이만 치하에서 오스만 제국은 유럽으로의 팽창을 계속합니다. ‘노예 군단’으로도 불렸던 잘 훈련된 예니체리 보병부대와 기병부대를 필두로 한 술레이만의 군대는 유럽의 적들과 만나 연전연승을 거뒀습니다. 군사적 성공을 거듭하며 그의 제국은 다뉴브 분지 깊숙한 곳으로 영토를 늘렸습니다. 술레이만은 유럽의 지배자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인물이었습니. 오스만 제국에서는 그의 통치 기간 건축, 예술, 법학, 문학, 외교..

21. 오스만 투르크 제국, 동유럽을 삼키다

21. 13-15세기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흥기 (우왕... 이 연재를 시작한지 벌써 1년이 되었어요... 50회 분량인데, 아직도 1년은 더 해야겠군요 ㅋㅋ) 구미에서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을 ‘오토만(Ottoman) 제국’이라 부릅니다. 오토만이라는 말은 투르크족의 지도자인 오스만1세 Osman I(1258-1326. 1281-1326년 재위)의 이름을 서양인들이 잘못 발음한 데에서 나온 거라고 합니다. 오스만1세는 아나톨리아의 북서쪽 모퉁이, 유럽과 비잔틴 가까이 있던 셀주크 투르크족 나라의 지도자 중 하나였는데, 훗날 대제국이 되는 나라를 일으키면서 기독교 세계의 숙적으로 떠오릅니다. 오스만이 셀주크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것은 1299년. 몽골(원나라) 군대가 서진하면서 쳐들어온 것이, 오스만이 투..

10. '모든 도시의 여왕', 콘스탄티노플

10. 10-12세기의 콘스탄티노플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 로마 제국을 기독교에 맡긴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330년 새 수도를 지어 신에게 바쳤습니다(으윽 갑자기 서울을 봉헌한다던 어떤 사람의 얼굴의 생각나는... ;;). 고대 그리스의 식민 항구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새로운 로마’는 콘스탄티누스의 도시라는 뜻에서 콘스탄티노플(동로마의 언어인 그리스어로는 콘스탄티노폴리스라 하는 게 맞지만 우리 귀에 익은 것은 영어식으로 읽은 콘스탄티노플...)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도시는 보스포루스 해협의 유럽 쪽 해안에 있었는데, 세모꼴 땅 끝에 자리 잡아 방어하기가 쉬웠습니다. 이스탄불 여행을 해본 분들이라면 다 아시겠지만, 바로 위 북쪽으로는 작은 강이 초승달 모양으로 흐르며 보스포루스와 만나는 하구가 있었습니다..

다르다넬스의 승리와 무스타파 케말

오늘은 제가 엄청 좋아하는 터키 이야기... 2004년에 무려 20일 동안 터키를 여행한 적 있었답니다 ^^ 터키, 하면 떠오르는 인물, 일본에서 '토루코의 황태자'라 불렸던 꽃미남 축구선수 일한 만시즈...가 아니고, 터키의 국부(國父)인 무스타파 케말(Mustafa Kemal 1881-1938)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오스만 투르크라는 노쇠한 이슬람 제국을 현대 터키공화국으로 변신시킨 건국 영웅으로, 국민들에게서 ‘터키의 아버지’를 뜻하는 ‘아타튀르크(Atatürk)’라는 영예로운 호칭을 선사받았습니다. 그래서 케말의 공식 호칭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입니다. 케말은 오늘날의 그리스 테살로니키(Thessaloniki) 지역인 옛 오스만 령 살로니카(Salonica)에서 태어났습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