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디부아르 23

아프리카의 내일을 가다/ (12) 최영진 유엔특별대표 인터뷰

지난 4월 초 코트디부아르 수도 아비장의 유엔평화유지사령부(ONUCI)를 찾았다. 이 나라에서는 2002년 남북 간 분쟁이 일어나 유엔 평화유지군 1만명이 파병돼 있다. 반군의 무장해제와 차기 정부를 뽑는 선거가 무사히 치러질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것을 비롯해, 정부가 하지 못하는 구호·재건사업을 관리하는 것이 모두 ONUCI의 일이다. ONUCI를 이끄는 최고 책임자는 한국인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명에 따라 ONUCI를 맡고 있는 최영진 유엔사무총장 특별대표를 만났다. 오랜 외교관 경험과 아프리카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진 최대표는 단기적인 경제적 이득에 매몰되지 않고 장기적으로,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서 글로벌 이슈들을 마주해야 한다며 한국에 ‘계몽된 국익(enlightened nation..

아프리카의 내일을 가다/ (9) 세계와 접속하는 대륙

나이지리아의 ‘경제수도’ 라고스는 살아있었다. 지난달 초 바닷가 마리나 로드에서 바라본 아파파 항구. 거대한 선박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사이 항구를 에워싼 거대한 석유탱크엔 프랑스 석유회사 토탈(TOTAL)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나이지리아에서 가장 큰 회사 중 하나인 하니웰 제분공장의 밀가루 사일로들도 보였다. 울타리 너머로 어마어마한 양의 컨테이너들이 쌓여 있고, 입구에는 컨테이너 차량과 레미콘과 탱크로리들이 줄을 이어 정체가 극심했다. 서아프리카의 경제 동맥이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더반과 함께 아프리카 최대 물동량을 자랑하는 아파파의 모습이었다. 짐을 내린 뒤 대기하고 있는 컨테이너 차량들 밑에선 하역노동자들이 차체를 그늘삼아 쉬고 있었다. 또 다른 항구인 틴캔 아일랜드로 이어지는 길에는 세븐업 ..

아프리카의 내일을 가다/ (7) 민주화로의 갈림길

아프리카 대부분 국가들은 1960년대 건국 이후 군부 쿠데타와 군사독재를 경험했다. 가장 최근인 1980년 독립한 짐바브웨는 30년간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 독재에 시달리고 있다. 기니와 모리타니에서는 군사쿠데타가 이어지고 있다. 이디 아민의 폭정을 끝낸 우간다의 요웨리 무세베니 대통령은 국제사회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지만 몇해 전부터 ‘종신집권 개헌’을 하며 시대를 거꾸로 되돌리고 있다. 토고에서는 40년 철권통치를 했던 에야데마 냐싱베의 아들 포레 냐싱베가 세습 집권했다. 아프리카의 민주주의 성적표는 경제만큼이나 형편없어 보인다. 그러나 뉴스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독재체제를 끝내고 민주화로 나아가는 나라들이 더 많다. 문제는 이런 나라에서도 지역 갈등과 종족 갈등, 종교간 충돌, 부패와 경제 퇴행 등 심..

아프리카의 내일을 가다/ (6) 검은 대륙을 떠도는 사람들

“여기서도 나가라 하면 또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입니다. 별 수 없이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닌가 고민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지난달 22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남부 해안도시 케이프타운에서 자동차로 2시간 거리인 농촌 마을 드두어런스에서 만난 짐바브웨 출신의 이민자 머시는 앞날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머시가 머물고 있는 곳은 유엔난민기구(UNHCR)에서 제공한 텐트가 모여있는 난민촌. 그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곳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인 흑인거주지구 슬럼에 살았다. 열악한 환경이기는 해도 ‘집’이 있었고 남아공 주류 부족 중 하나인 코사족 이웃들도 있었다. 짐바브웨 출신 이민자들이 작년 11월 남아공 주류 부족 코사족에게 밀려나기 전까지 살았던 드두어런스의 슬럼. 이들이 살던 집에는 현재 ..

아프리카의 내일을 가다/ (5) 아프리카는 거대한 슬럼

고층건물이 솟아오르고 있는 나이지리아의 경제수도 라고스. 바닷가를 따라 난 허버트 매컬레이 고가도로 위로 일본제, 유럽제 자동차들이 달린다. 그 아래에는 라고스 주민들이 아데콜리 빌리지라 부르는 수상촌(水上村)이 있다. 세상 어디에서나, 뭍에서 몸 누일 곳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밀리고 밀려 정착하는 곳이 물 위다. 지나가는 이들에게는 신기한 구경거리일지 모르지만 거기 사는 이들에겐 열악한 생존의 현장이다. 더 이상 갈 곳 없는 ‘밑바닥 10억’… 도시의 그늘서 사투 말이 좋아 ‘마을’이지 아데콜리는 ‘주거지’라고 하기 힘든 곳이었다. 얕은 바다에 띄운 나룻배에선 여성들과 아이들이 고기잡이를 하고 있고, 사이사이 좁은 부지에는 온통 목재 가공공장들이 늘어서 있었다. 습기와 열기와 톱밥이 뒤섞여 숨이 막혀..

아프리카의 내일을 가다/ (4) 석유와 카카오

코트디부아르는 세계 최대 카카오 생산·수출국이다. 아비장에서 서쪽으로 바닷가를 끼고 달리다 보면 보이는 것은 모두 플랜테이션 농장들이어서, 대체 이 나라 사람들 먹을 것은 어디서 키우나 의문이 들 정도였다. 시속 80km로 3시간을 달리는 사이 도로 양옆에는 팜(야자), 코코넛, 고무, 카카오 농장들이 계속 스쳐지나갔다. 그 중 한 카카오 농장에 들렀다. 수확철이 아니어서 일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다국적 기업들의 하청업체나 현지 대지주들이 운영하는 팜 농장과 달리 카카오 농장은 대개 가족농 형태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농사철에 일을 시키는 경우가 많아 ‘아동노동’이라는 악명을 얻었고, 이 때문에 한동안 카카오 수출에 지장을 받기도 했다. 7~9월 한 차례 수확을 한 뒤 11월부터 1월까지 본..

아프리카의 내일을 가다/ (3) 독립 50년, '성찰의 시기'

코트디부아르 수도 아비장 교외 코코디에 있는 아비장 국립대학교를 지난달 찾았다. 서아프리카의 중심 대학 중의 하나로 주변국들에서도 많은 학생들이 유학을 오는 이 대학은 유럽의 대학도시들처럼 넓은 부지에 소도시같이 꾸며져 있었다. 고풍스런 건물들 사이에선 뙤약볕을 피해 그늘로 모여든 학생들이 삼삼오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올해는 1960년 ‘아프리카 독립의 봄’ 이후 50년이 되는 해다. 아비장 대학 학생들을 만나 ‘독립 50주년’의 의미와 아프리카의 장래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젊은이들은 “진정한 독립을 이루었는가”라는 질문에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통계학과 학생 레옹은 “우리가 쓰는 물건 대부분이 프랑스 것이고, 몇 안 되는 기업들도 프랑스 기술에 의존한다”며 “정치적으로 자유로워졌다고는 하지..

아프리카의 내일을 가다/ (2) 성장과 혼란의 도시들

나이지리아 경제중심도시인 라고스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다. 인구 1000만명이 넘는 이 거대도시는 세계 어느 도시와 비교해도 손색 없을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상업중심지인 빅토리아 아일랜드의 레키 지구에는 정부가 택지를 개발, 고급 주택가를 짓고 있었다. 정원에 수영장이 있는 2층, 3층짜리 고급 주택들이 즐비하고, 대문 앞에는 사설 경비원들이나 집주인의 돈을 받은 현지 경찰관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뛰는 물가, 막히는 거리 레키 지구 한쪽에 위치한 샵라이트. 서울의 대형 쇼핑몰들처럼 크진 않지만 멀티플렉스 영화관과 서점, 상점들을 갖춘 쇼핑몰이다. 그 안의 대형마트에서는 값비싼 수입 식료품들을 팔고 있다. 이달 초 가봤을 때 망고주스 1000ml 하나가 1300나이라(약 ..

아프리카의 내일을 가다/ (1) 희망에 들뜬 아프리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리는 월드컵 대회가 한달 여 앞으로 다가왔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월드컵이다. 지난 15일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샌턴 신시가지의 월드컵 입장권 판매소 앞에는 티켓을 구하기 위해 밤을 꼬박 새운 사람들이 이른 아침부터 줄을 이었다. 전날 아침 9시에 와 24시간 동안 줄서서 기다린 끝에 결국 표를 쥐고 기뻐하던 타보(22)는 “역대 최고의 월드컵이 될 것”이라며 “남아공에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남의 나라에서 열리는 잔치만 구경했던 가나인 이민자 딘 달라스는 “우리 팀이 곧 온다”며 들뜬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월드컵 기간에는 여러 경기장에서 아프리카 출전국들의 문화를 보여주는 박람회가 열린다”며 “이번 월드컵은 아프리카 전체의 행사”라고 강조..

[코트디부아르]시골 진료소에서

망고나무 밑 작은 테이블에 항생제와 붕대를 올려 놓은 간이 진료소. 통나무 의자에 걸터앉은 코피 셀레스텐(11)이 흰 가운을 입은 남성에게 왼쪽 팔을 내민다. 상처에 엉겨붙은 붕대를 물에 축여 떼어내니 피부조직이 사라져 벌건 근육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피 냄새를 맡은 파리떼가 코피의 상처로 순식간에 몰려든다. 피가 줄줄 흐르는 팔뚝을 항생제로 닦아내고 다시 붕대를 감는 동안, 소년은 끔찍한 고통을 참아낸다. 울지도 않고 소리도 내지 않는다. 꽈꾸꽈꾸 미카엘(15)은 발바닥 쪽에 비슷한 상처가 나있다. 이미 피부와 근육이 손상돼 걸을 수 없는 발을 절룩거리며 끌고 다닌다. 다시 파리떼가 날아든다. 상처가 아물더라도 저대로 둘 수는 없고, 수술을 해서 발목을 절단한 뒤 의족을 달아야 한다. 서아프리카의 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