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56

석유와 이라크 전쟁

이라크 하면 석유가 떠오르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일 거다. 이라크전쟁 때문에 세상이 시끄러운데, 내 주변에 계신 분들 중에 이라크전과 석유의 관계를 쓰라는 분들이 있으시다. 그 분들이 내게 요구하는 것은 "미국은 이라크의 석유를 노리고 있다, 러시아와 프랑스도 노리고 있다, 그래서 싸운다"라는 식의 아주 단순한 구도인데,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한 국가의 이익이라는 것은 보통 장기적 전략적인 것이고, 당장의 전쟁에서 미국이 이라크 석유를 무진장 퍼가려 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단순논리로는 국가라는 행위자의 모든 행동을 일관되게 표현하기가 힘들다는 말이다. 이라크 전쟁의 본질은 석유전쟁이다. 조지 W 부시와 콜린 파월이 수차례 "이라크 공격 목적은 석유가 아니다"라고 강조했지만 이라크전쟁이 석유전쟁이라는 데..

프리드먼, '경도와 태도'

경도와 태도 Longitudes and Attitudes (2002) 토머스 L. 프리드먼. 김성한 옮김. 21세기북스(북이십일) 짱나지만 중동 얘기이기 때문에 돈 주고 사서 읽었음. 명색이 국내 일간지 기자라는 사람들 중에도 프리드먼 신도들이 있다. 나? 난 프리드먼 미워한다. 왜냐고? 유태인이기 때문이다. 반유태주의냐고? 반유태주의라는 말 자체에 반대한다. 그건 유태인들이 자기네 잘못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넌 나치야!" 하고 몰아세우기 위해 만들어낸, 극도로 이데올로기적인 말이기 때문이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나는 유태인들 모두를 미워했지만(이스라엘, 너네는 존재 자체가 죄악인 나라야) 적어도 2명은 용서해줄 수 있다. 아인슈타인과 노엄 촘스키. 그럼 프리드먼은? 몹시 싫어하지만 그의 책을 읽어야..

딸기네 책방 2003.01.09

카타르식 '민주주의'

아랍권에서 가장 민주화된 나라, 석유와 천연가스에 이어 방송이 최대의 수출품인 나라, 무혈쿠데타로 아버지 제끼고 집권한 젊은 왕이 절차적 민주주의의 확립을 외치며 개혁을 추구하고 있는 나라. 서방의 예찬을 받았던 그 지표는 결국, 미국의 이라크전 전초기지가 되는 것이었구나. 예상은 했지만, 참. 미군 중부사령부가 지난해 가을에 카타르로 옮겨갔다. 미군의 각 사령부들은 중부 남부 동부 식으로 이름이 붙여져 있는데 를 얘기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전세계의 중부와 동부를 가리키는 용어다. 말 그대로 . 그 중에서 중동 지역 작전을 담당하는 것이 중부사령부다. 토미 프랭크스 미군 중부사령관은 이 될 것으로 꼽히고 있다. 언론들의 예측이 아니더라도, 프랭크스는 진작부터 힘없는 콜린 파월을 대신해 중동 외교를 아예..

빚받기 운동을 펼쳐 나라를 살리자?

어제 한 선배와, 아지님과 맥주를 한잔 했습니다. 이라크 갔다온 얘기를 하던 중에 빚 얘기가 나왔습니다. 개요부터 말하자면, 우리가 이라크로부터 받지 못하고 있는 돈이 13억달러 정도 됩니다. 러시아 다음으로 우리한테 많은 빚을 지고 있는 나라가 이라크 아닐까 싶은데요. 이라크는 1970년대 오일붐 때 인프라를 건설하기 위해 외국 기업들을 많이 불러들였죠. 여행기에서 썼던 훌륭한 인프라, 예술적인 대형 건물들이 다 외국 기업들에 맡겨 지은 것들입니다. 그러다가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이 일어난 거죠. 우리나라 기업들을 비롯해 많은 기업들이 돈 못받고 불량채권만 안게 된 겁니다. 러시아가 약 90억달러, 프랑스가 약 50억달러의 이라크 채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이 이라크를 또 때릴..

인터뷰/ KOTRA 바그다드 무역관 정종래 관장

나라 전체가 가난했던 1970년대, 한국 노동자들은 '열사의 사막'에서 길을 닦고 건물을 올리며 부국의 기반을 만들었다. '중동'이라는 말을 들을 때 한국인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석유와 함께 흑백사진 속에 남아있는 노동자들의 땀에 젖은 얼굴일 것이다. 70년대 '오일붐'을 거쳐 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90년대 걸프전으로 이어지면서 중동의 정세는 계속 변화해갔고 한국의 경제력도 비교될 수 없게 커졌지만, 여전히 중동은 우리에게는 석유라는 천혜의 축복을 받은 부러운 땅이다. 언제고 다시 다가올 엄청난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전운이 감돌고 있는 이라크에서 국내 기업들을 위해 홀로 '수출전선'을 지키는 사람이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바그다드무역관의 정종래(鄭宗來·40) 관장. 티그리..

부자는 망해도 3년을 간다더니.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 이라크 경제가 딱 그렇다. 바그다드 중심의 사둔 거리에는 상점들이 밤늦도록 불을 밝히고 있다. 바그다드의 시장들은 보통 오후 5시면 문을 닫지만 전자제품과 의류, 시계 따위를 파는 사둔의 상점가는 예외였다. 가게에서 파는 상품들은 볼품 없었고 물건을 사가는 손님이 많은 것도 아니었지만 고화질TV와 LCD 전화기, 보석류 같은 '사치품'들도 종종 눈에 띄었고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데에는 불편이 없어 보였다. 잇단 전쟁과 오랜 금수조치 속에서도 이 정도의 경제를 유지하는 바탕은 물론 석유다. 한때 식량과 약품이 모자라 아이들이 죽어갔던 것은 사실이지만 96년부터 유엔의 '석유-식량 교환계획'이 실시된 뒤로 해마다 100억 달러 어치가 넘는 원유를 수출하면서 '굶어죽는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