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 저런 얘기

우렁이를 잡으러 오라던 어떤 선배.

딸기21 2002. 9. 13.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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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목반에서는 제초제를 쓰는 대신 풀을 좋아하는 우렁이를 논에 넣어
모포기 사이를 돌아다니며 잡초를 먹게 했다. 아주 잘 먹었다.
겨울이면 이놈들이 일을 끝내고 죽는다.
국산 토종 우렁이는 안 죽는데 제초용 우렁이는 원산지가 아마존 열대지역이라서
겨울나기를 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환경파괴(황소개구리처럼)의 우려가 없는 왕우렁이를
제초용으로 쓰게 된거다.
논의 나락(벼)을 베려면 물을 빼서 논을 말려야 하는데
논이 마르면 우렁이는 살지 못한다. 어차피 죽을 팔자인 것이다. 불쌍한 놈들!
우리는 논바닥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떨며 죽어갈 우렁이가 불쌍했다.
그래서 논의 물을 빼기 전에 우렁이를 잡아내서 식량으로 쓸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만 먹기가 미안해서 여러분을 초청해서 같이 먹어 볼라고 하는 것이다.
돼지도 두어마리 잡을 거다.
물론 나와 우리 조직의 동생들이 여러분도 언젠가 본 적있는 연장으로 잡을 거다.
그래서 더 맛이 있을 거다..."

전북 부안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유재흠이라는 선배가 모임 사이트에 올린 글이다.
글을 읽으면서 조용히 혼자 웃었다. 사실 우스운 글은 아닌데.
<추위와 굶주림에 떨며 죽어갈 우렁이가 불쌍해서> 먹어버리기로 했다는 말에,
뭉툭한 손으로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을
재흠형의 우락부락 순박한 얼굴이 머리 속에 그려져서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나보다 4년 위의 학과 선배인 이 농사꾼은 대학시절 나의 <영웅> 중의 한 분이었다.
웃을땐 박장대소, 먹을 땐 우적우적, 농활가면 마을 분들이 제일 좋아했던 게
밥 잘먹고 일 잘하는 이 선배였단다. 항상 활기차고 웃는 얼굴이라
잘 모르는 어린 후배들도 그 인상을 참 좋아했었다.
형이 결혼하고 부안으로 내려가서 농사를 짓는데
4학년 때였나, 5학년 때였나
옆의 과 후배 하나와 함께 형 집에 내려갔었다. 이것저것 물어보고
갔다와서 <글>을 쓰기 위해, 말하자면 취재차 간 셈이다.
형이 직접 만든다는 야채 효소 얘기도 들어보고, 가을이면 노가다 뛰어서
제법 돈도 번다는 자랑(!)도 들었다.
무려 네명(형, 형수, 나, 후배)이 오토바이 한대에 같이 타고 부안의 바닷가에 가서
맛조개도 구워먹었다. 형이 맛조개를 잡아오면 번개탄에 살살 구워서 먹었다. 꿀맛.

우연의 일치이지만, 재흠형을 생각하면 내게는 세 명의 얼굴이 저절로 떠오른다.
학교 다닐 때 <무섭다>(카리스마)고 생각했던 어떤 선배.
재흠형의 가장 친한 친구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졸업하고 세상에 나가면 대단한 일 할 것이다 라고 생각했던,
<짐승>이라는 무지막지한 별명의 그 선배가
3년 전에 죽었다. 재흠형이 얼마나 슬퍼했을까. 그 순박한 눈으로
눈물을 얼마나 퍼올렸을까.

재흠형이 아꼈던 또다른 선배. 농사꾼 선배가 아꼈던 또다른 선배가 있다. 나와도 제법 친했던 사람인데
역시나 재작년에 교통사고로 죽었다. 고향도 아닌 전라도 남원 땅에서
농민운동 한다고 열심히 다니다가 그만.
남원의 어느 병원 빈소를 찾아갔는데 밤중에 재흠형이 왔다.
오빠, 짐승 형 죽은 것도 안됐는데 또 이렇게 됐네. 난 짐승 형이
뭔가 대단한 일 할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 대단한 일 할 놈이었는데. 아깝다.

그렇게 재흠형은 두 사람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누구나 갖고 있는 마음속 <추억의 앨범> 한 페이지에
온전히 기록해놨던 부안에서의 <맛조개 잡기>.
그건 재흠형과 상관 없이, 나의 소중한 추억이었는데.
그때 부안에 같이 갔던 후배가 지난해 영국 유학 도중 뇌출혈로 죽었다.

<우렁이 잡으러 오라>는 재흠형의 글을 보고 혼자 웃음짓다가
갑자기 떠나버린 사람들 생각이 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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