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 저런 얘기

빚받기 운동을 펼쳐 나라를 살리자?

딸기21 2002. 11. 26.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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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한 선배와, 아지님과 맥주를 한잔 했습니다. 이라크 갔다온 얘기를 하던 중에 빚 얘기가 나왔습니다.

개요부터 말하자면, 우리가 이라크로부터 받지 못하고 있는 돈이 13억달러 정도 됩니다. 러시아 다음으로 우리한테 많은 빚을 지고 있는 나라가 이라크 아닐까 싶은데요.
이라크는 1970년대 오일붐 때 인프라를 건설하기 위해 외국 기업들을 많이 불러들였죠. 여행기에서 썼던 훌륭한 인프라, 예술적인 대형 건물들이 다 외국 기업들에 맡겨 지은 것들입니다.
그러다가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이 일어난 거죠. 우리나라 기업들을 비롯해 많은 기업들이 돈 못받고 불량채권만 안게 된 겁니다. 러시아가 약 90억달러, 프랑스가 약 50억달러의 이라크 채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이 이라크를 또 때릴 태세를 보이니까 러시아와 프랑스가 나서서 반대를 한 배경에는 바로 이런 채권-채무관계가 숨어 있는 겁니다.
러시아와 프랑스는 사담 후세인 정권과 적대하지 않으면서, 이라크로부터 빚 대신에 상당한 이권을 챙기고 있습니다. 이권의 내용은 물론 석유겠죠. 얼마전 러시아 최대의 석유회사인 루크오일 사장이 영국의 경제전문지 파이낸셜타임스와 인터뷰를 했는데요, 이 자리에서 루크오일 사장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 이라크 내 석유채굴권을 보장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겉으로는 민주주의니 국제법이니 등등을 들먹이지만 실제로는 각국이 다 자기 나라의 이권에 따라 전쟁을 치르고 말고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실례이겠죠. 이라크의 석유에 대한 권리를 러시아 대통령이 어떻게 <보장>해줄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후세인 정권으로부터 러시아와 프랑스가 상당한 이익을 뽑아내고 있기 때문에 이들 입장에서는 이라크의 정권 붕괴 문제가 남의 일은 아닌 겁니다.
반면 미국 석유회사들은 이라크 원유를 직접 챙겨가고 싶어도 여의치 않으니 물밑으로만 접촉을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라크에서 나오는 석유의 79%가 미국으로 흘러가는데, 미국 기업들이 직접 수입하지는 못하고 러시아 석유회사들을 통해통해 들여가고 있습니다. 이걸 제 손으로 따먹으려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리는 수밖에 없죠.

그럼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리나라가 갖고 있는 채권 13억달러 중 9억달러가 현대건설 것입니다. 현대건설이 이거 못 받아서 부실기업 된 겁니다. 1조원, 어마어마한 돈을 떼어먹히게 된 겁니다. 20년 넘게 그 돈을 못 받고 있으니, 참.
우리나라는 70년대에 이라크에 많이 진출해서 관계가 좋았는데, 걸프전 때 파병하면서 관계가 망가졌습니다. 이라크는 이후 우리나라를 <적성국>으로 분류해서 기피해왔고요. 이라크 정부는 매달 적성국과 우호국 리스트를 공개하는데, 지난달 제가 방문했을 당시 발표된 최신판에서는 우리나라의 이름은 없었습니다. 적성국도 우호국도 아닌 회색 단계에 들어간 겁니다.

이라크는 경제제재를 받고 있지만 지금도 석유를 수출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매년 100억달러 어치 이상의 석유를 유엔의 <석유-식량교환계획>이라는 프로그램에 따라 판매를 하는데, 이렇게 얻은 수입은 이라크로 가는 것이 아니라 유엔으로 갑니다. 유엔이 이 돈의 쓰임새를 승인하면 이라크 정부는 외국 기업들과 각종 수출입계약을 체결하고, 그러면 유엔이 자금을 집행합니다.
그런데 유엔이 걸프전 뒤에 전쟁배상금으로 현대건설에게 3000만달러를 줬대요. 이거 받았다고, 현대건설이 이라크 정부에 <찍혔다>는 얘기가 있더군요. 3000만달러 때문에 9억달러 못 받게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자칫 소탐대실 될 우려가 큰 거지요. 물론 이건 그냥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하고, 돈을 받아내고 못 받아내고는 결국 이라크 정권의 운명에 달린 것이겠지만요.

제가 일하는 회사의 보스가 과거 현대건설에서 일하면서 중동 근무를 하셨던 분인데, 제가 이라크에서 돌아와 인사드리러 갔더니 그 빚 얘기를 꺼내셨습니다.
그런 불량채권을 반토막 이하의 가격으로 후려쳐 팔 수도 있었는데, 사실 이란-이라크 전쟁이 시작될 때만 해도 그 전쟁이 8년씩이나 계속될지, 그리고 또 걸프전이 일어나고 11년씩 제재가 계속될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수억달러나 되는 채권을 헐값에라도 팔아치워 현금을 확보하는 것이 나을지, 아니면 정국을 관망하며 빚받을 궁리를 하는 것이 나을지 결정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겠죠. 결국 그건 최고경영자(그러니까 죽은 왕회장) 급의 결단이 아니고서야, 실무자들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요.

어제의 술자리에서, 회사 선배는 "맨해튼의 로펌을 하나 중간에 끼고서 현대 빚받아내기 작전을 펼치면 어떨까"하는 궁리를 내놓았습니다. 9억달러 중에 3분의1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그 중 몇%라도 커미션을 받으면 큰 돈 아니겠습니까.
아이디어는 좋은데...방법이 뭐 없을까요? 달러로 안 받고 원유로 받으면 될텐데.

이상, 딸기의 나라걱정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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