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유럽이라는 곳

코펜하겐의 시위대

딸기21 2007. 3. 6.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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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주말 내내 격렬한 시위가 벌어져 600여명이 체포되고 수십명이 다쳤다. 이번 시위는 무정부주의자들이 무단으로 들어가 살던 빈 건물을 정부가 매각해버린 것에서 촉발됐지만, 한때 자유주의의 보루처럼 인식됐던 북유럽 사회가 계속 보수화되고 있는데 대한 항의의 표시로 받아들여지면서 `동조시위'들이 잇따랐다. 시위를 보는 시각은 `자유 정신의 발현'이라는 쪽과 `시대에 뒤떨어진 철부지들의 난동일 뿐'이라는 쪽으로 갈려 있다.

아수라장 된 시가지

코펜하겐 시내 중심가 노레브로 지역에서 지난 1일부터 시위가 시작돼 4일까지 이어졌다. 2일과 3일에는 청소년들이 화염병을 들고 밤새 시위를 벌였으며 차량 4대가 불에 타고 시가지 곳곳에서 불길과 연기가 치솟았다. 경찰은 최루탄을 쏘며 진압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25명이 다쳤으며 643명이 경찰에 체포됐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경찰이 강경대응에 나서자 4일 오후부터는 시위가 잦아들었지만 좌파 청년단체들이 인터넷을 통해 시위를 계속할 것을 촉구하고 있어 다시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시위대는 유럽 곳곳에서 모여든 다국적 무정부주의자, 좌파 젊은이들이 주를 이뤘다. 체포된 이들 중 140여명은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독일, 미국 등에서 온 `원정 시위대'로 알려졌다. 몇몇 언론들은 "유럽의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들이 코펜하겐에 집결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비주류에게도 공간을 달라"

젊은이들이 거리에 나선 것은, 1982년 이래 무료로 사용해왔던 노레브로의 청소년회관에서 쫓겨나게 됐기 때문. 시 당국은 이 건물을 20년 가까이 방치해놓았다가 지난 2001년 기독교 보수주의 단체에 매각해버렸다. 이 단체 쪽에서는 5년여 동안 건물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법원에서 무단 점유자 퇴거 명령을 받아냈다. 청소년단체들과 무정부주의자들은 지난해부터 산발적인 퇴거 반대 운동을 벌였는데, 경찰이 이달 들어 강제집행에 들어가자 급기야 과격 시위로 나아간 것이다.

시위가 일어난 노레브로는 코펜하겐의 문화 중심가이면서, 이민자들이 많은 거리로도 유명하다. 격렬 시위가 벌어진 또다른 지역인 크리스챠니아 거리도 히피 문화의 온상으로 알려져 있다. 문화단체들과 좌파, 청소년단체들은 문제의 건물이 그동안 예술공연장 등으로 사용되면서 덴마크 문화를 다채롭게 만드는 기능을 해왔다며 당국과 기독교단체측 조치는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보수파들은 펑크족 청소년들과 노숙자들에 무단점유됐던 건물에 대해 합법적으로 재산권을 행사한 것이라며 찬성하고 있다. 덴마크 정부는 무정부주의자들과 일부 좌익 극단주의자들이 폭력시위를 선동하고 있다면서 강력 대응하겠다고 거듭 밝혔다.

유럽 보수화에 대한 반격

2일과 3일 코펜하겐에서는 청소년들의 과격 시위와 별도로 시내에서 수천명의 시민들이 참석한 평화시위가 열렸다. 이들은 문화적 다양성과 포용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당국의 일방적 조치는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웨덴 말뫼와 독일 함부르크 등에서는 `동조 시위'까지 벌어졌다.

이 사건이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보수파와 자유주의자들의 대결을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덴마크에서는 무슬림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 문제로 사회적 논란이 계속돼왔다. 지난해초 유럽을 뒤흔든 `무하마드 모독 만평' 파문도 덴마크의 한 일간지에서 시작됐었다. 보수 우파들은 무슬림 시설을 파괴하고 이민자들을 공격할 뿐 아니라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총체적인 반감을 드러낸다. 2001년11월 우파 정권이 집권한 이래 사회 전반의 보수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번 싸움은 그에 대한 비주류의 반발심에서 터져나온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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