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0위 산유국 나이지리아에서 송유관이 폭발, 수백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번 사건은 지역주민들이 파이프에 구멍을 뚫고 기름을 빼내는 과정에서 일어난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는 기름을 서방에 팔아 돈을 버는데 유전지대 주민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연료를 훔쳐내야 하는 현실은 에너지전쟁의 또다른 단면이다. 산유국들 뿐 아니라 석유와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이 지나가는 모든 곳에서 이런 기름도둑, 가스도둑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각국 정부는 사형 위협까지 해가며 막으려 하지만 전지구적인 에너지 수급 불균형이 해소되지 않는 한 이런 현상은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산유국 빈민들의 연료 도둑질
나이지리아 최대도시 라고스에서 26일 송유관이 폭발해 최소 269명이 숨졌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보도했다. 현지 적십자사는 사고 현장이 아직 완전히 수습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망자 수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사고는 25일 자정 직후 절도범들이 라고스 시내 아불레 에그바 지역 땅속에 묻힌 송유관에서 석유를 빼내 유조차에 싣고 달아나면서 일어났다. 지역주민 수백명이 뚫린 송유관에 달려들어 앞다퉈 석유를 빼냈고, 이 과정에서 폭발이 일어났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현장은 대폭발과 화재로 곳곳에 불탄 시신들이 널려있는 등 아수라장이라고 로이터는 전했다.
나이지리아에서는 지난 5월에도 석유도둑질 때문에 송유관이 폭발해 200여명이 숨진바 있다. 나이지리아는 세계10위 산유국이고, 수출로만 따지면 세계 8위다 그러나 정작 유전지대 주민들에게 석유수출 혜택이 고르게 돌아가지 않고 땔감조차 부족해 갈등이 고조돼왔다. 기름도둑질 뿐 아니라 석유회사를 상대로 한 납치, 방화도 번번이 일어나고 있다.
`글로벌 에너지전쟁' 패자들의 반란?
고유가 시대를 맞아, 파이프라인에 구멍을 뚫고 석유나 천연가스를 빼가는 좀도둑들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세계 2위의 석유매장량을 갖고 있는 이라크에서는 전쟁 뒤 에너지 부족이 심해지자 북부 키르쿠크 등의 유전지대를 중심으로 기름도둑이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세계 `에너지 블랙홀'로 불리는 중국에서는 지방 도시와 교외에서 송유관에 구멍을 뚫는 도둑들이 들끓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 3월 법령을 바꿔 기름도둑들에게 사형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했다. 당국은 지난해의 경우 10억 위안(약 1200억원) 어치의 석유가 도둑질로 새나간 것으로 보고 있으며, 체포된 사람만 2877명에 달했다.
러시아와 주변국들에선 천연가스를 훔치는 가스도둑질이 일상화되다시피 했다. 올초 유럽을 한파에 떨게 했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천연가스 대란' 때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파이프라인 도둑질이 많아 가스가 모자랐던 것 뿐"이라고 주장했었다. 우크라이나는 이에 반발했지만, 실제 파이프에 구멍을 뚫고 불법으로 가스를 빼다 쓰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들어 러시아와 가스값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는 아제르바이잔에서도 가스 훔치기가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에너지 안보' 키워드는 `정의'
석유, 가스 도둑질이 많아진 데에는 구조적인 요인들이 있다. 모두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데, 에너지는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는다. 미국은 전세계 에너지 4분의1을 소비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 나라 안에서도 부유층과 빈민층 사이에 에너지 갈등이 생겨나고 있다. 분배 문제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석유나 천연가스가 유한한 자원이라는 점이다. 석유는 모자라고, 산유국들의 생산능력은 2005년을 기점으로 대개 한계에 달했다.
유한한 자원을 놓고 싸우다 보니 배제되는 이들 사이에선 `수탈'에 대한 반발이 생겨난다. 천연자원은 `모두의 것'인데 강대국과 다국적기업들만 이권을 챙긴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아체 유전지대의 소요, 나이지리아 니제르델타 지역 분리독립운동 세력의 무장투쟁, 이라크 저항세력들의 산유시설 파괴와 사보타주 같은 것들이 모두 이런 반발에 해당된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앞으로는 에너지 수급 불균형을 평화적,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미 석유전문가 폴 로버츠는 저서 `석유의 종말'에서 "석유는 특히 생산지가 제한돼 있어 지정학적 불안정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며 파이프라인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것이 테러와의 전쟁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핵, 방사능 물질은 ‘밀거래’ 극성
냉전이 끝난 뒤 옛소련권 국가들과 이른바 `불량국가'들의 핵물질 밀매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미 국토안보부가 2000년대 들어 핵물질 밀매 사건 수가 급증했다고 경고하고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국토안보부 내 핵문제 전문가인 베일 옥스퍼드 핵탐지국장은 26일 "1990년대 전세계적으로 연간 100건 정도에 그쳤던 핵물질 밀매 건수가 2000년대 들어서는 200∼250건으로 두배 이상 뛰었다"고 말했다고 USA투데이가 보도했다. 옥스퍼드 국장은 "핵 물질이 상품으로 변질되면서 밀매가 크게 늘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9·11 테러 이후 신설된 미 국토안보부는 핵·방사능 물질이 북한처럼 미국에 `불량국가'로 낙인찍힌 나라들로 들어가거나 알카에다 같은 테러조직들에 넘겨질 가능성이 높다면서 줄곧 우려를 제기해왔다. 이날 옥스퍼드 국장이 밝힌 밀매건수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공식 집계한 수치의 2배에 이르는 것이다. IAEA는 세계 핵물질 밀매 현황을 감시하기 위한 핵 밀매 데이터베이스(ITDB)를 가동하고 있으나 이 시스템의 정보 수집은 각국 정부의 `자발적 보고'에 그치고 있다.
이 때문에 각국 핵시설들에서 일어나는 핵물질 유출 등 중요한 `취급 오류'들 상당수가 누락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ITDB에 따르면 핵 밀거래는 2004년 121건, 2005년 103건이었다. 이는 적발된 사건들만을 집계한 것일 뿐 실제 밀거래가 이뤄진 경우에 대해서는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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