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섭, 안영근, 김성호, 송영길의원 등 의원 네 명이 이라크전 반대서명을 한 34명의 의원들을 대표해 이라크 의회 초청으로 11일부터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 체류하고 있다. 의원들은 사둔 함마디 이라크 국회의장과 쿠베이 사이 외교위원장 등을 면담하고 걸프전 오폭지점인 아미리야 방공호 전쟁기념관과 후세인아동병원 등을 둘러봤다.
12일 바그다드의 알 라시드 호텔에서 만난 송영길 의원은 "이라크를 둘러보면서 첫 번째로 느낀 것은 '제발 이들을 이대로 내버려뒀으면' 하는 것이었다"면서 말을 꺼냈다. 순박하고 평화로운 이라크인들을 보니 미국이 과연 누구를 위해 전쟁을 하려 하는지 의심스러워질 수 밖에 없었고, 전쟁에 반대하는 신념이 더 굳어졌다는 것. 송의원은 "구식 칼리시니코프 소총을 들고 있는 이라크인들을 보니 애처로울 정도였다"면서 "대량살상무기를 없앤다는 명분으로 대량살상을 저지른다는 것은, 의원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들을 살게 내버려두어라"
송의원을 비롯한 네 명의 의원들은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몬수르 거리의 노천카페에서 바그다드대학 학생들과 자리를 함께 할 기회가 있었다. 영문학을 전공한 한 학생은 "미국은 절대로 대량살상무기를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 가슴 속에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는데, 그 말이 너무나 깊게 와 박혔다고 했다. "증오가 증오를 낳는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일방적인 살육전이 될 이번 전쟁은 무슨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송의원은 '반미(反美) 의원' 운운한 국내 일부 언론의 비판에 대해 "우리 대통령도 마음대로 비판하는데, 미국 대통령을 비판하면 안 된다는 것은 사대주의적 발상"이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분쟁 등 국제문제에 적극 개입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이는 길이고, 또 국익을 위해서는 참여 채널을 다각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 "이라크 측도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이라크 재건에 적극 참여해줄 것을 요청해왔다"면서 의원외교 또한 정부·민간차원의 다양한 외교채널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이 다음 타겟은 북한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는데 우리 국민들이 그런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찬성한다면, 다음에 북한 문제에서 뭐라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 송의원은 "이라크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국인 반전운동가들의 헌신성과 희생정신에 감동했다"면서 "'자유의 수호자'로서 미국의 도덕적 우위는 힘의 논리가 아닌 평화를 사랑하는 미국인들의 노력을 통해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바그다드에 걸개그림 내건 최병수씨
16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중심가의 알 타흐리르 스퀘어(자유광장)에서는 한국에서 온 한국-이라크 반전평화 지원연대 반전운동가들의 반전 퍼포먼스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누구보다 눈에 띄었던 것은 대형 걸개그림을 내건 최병수씨(44).
지난 1987년 연세대생 이한열군 사망 뒤 '한열이를 살려내라'라는 대형 걸개그림을 그려 유명해진 최씨는 일본 히로시마에서 가진 반핵 퍼포먼스(1988년)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지구정상회의 전시회(1992), 일본 교토 정상회담장 앞에서 전시했던 '펭귄이 녹고 있다'(1997), 그리고 지난해 8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리우+10년' 전시회 등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 국내에서는 2000년부터 전북 부안에서 새만금 간척사업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군복에 아랍식 케피야(두건)를 쓴 최씨는 이날 낮 자유광장에서 한국에서 함께 온 반전평화팀 멤버들과 함께 반전메시지에 반대하는 걸개그림을 설치하고 있었다. 그를 포함한 반전평화팀 5명은 지난 13일 요르단의 암만을 거쳐 이라크에 입국했다. 가로 8.4m, 세로 6m의 걸개그림은 이라크 공격 전선에 서 있는 미국, 영국 등 서방 국가들의 국기를 단 포탄이 어린이들을 향하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 이라크전에 반대하는 내용인 동시에, 최씨가 지난 95년부터 만들고 있는 '성장한 야만' 기획제작물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번 작품의 제목은 '야만의 둥지'. 최씨는 "지구의 미래인 어린이들을 죽이지 말라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로 환경문제를 부각시키는데 열중해왔던 최씨가 전쟁을 앞두고 있는 이라크를 방문한 것은, '땅'의 문제와 '어린이'의 문제는 한 가지라는 생각에서였다. "세상 공부를 해보니까 (이 세상이) 종합병원이더군요. 빙하를 녹이고 펭귄을 죽이는 사람들이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동의 어린이들을 죽이는 그 사람들 아닙니까."
걸개그림은 서울에서 6일 걸려 만들어온 것인데 바그다드 시에 기증하고 갈 생각이다. "바스라를 방문해서 걸프전 피해 어린이들을 봤습니다. 미군은 멀리서 펑펑 쏘면 끝이겠지만, 평생 손등에 주사바늘을 꽂고 살아야 하는 아이들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광장을 둘러싼 이라크인들은 멀리 한국에서 온 평화운동가들의 북소리에 신이 났는지 무대로 뛰어나와 꽹과리를 쳐보고 함께 춤을 추었지만 최씨의 얼굴은 어두워 보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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