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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암만으로 '탈출'

딸기21 2003. 3. 17.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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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도 못 챙겨먹고 짐을 싸들고 호텔에서 나왔다. 

미국의 공습이 임박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바그다드의 긴장도가 하루하루 높아지고 있다. 주유소에 기름을 잔뜩 넣어두려는 차량들이 줄을 이었다. 풍요로운 것이라고는 석유 밖에 없는 이라크에서 시민들이 석유를 사기 위해 늘어서 있다니. 중산층 주민들은 전쟁과 함께 빈민들의 폭동이 일어날 경우에 대비해 재산을 타지로 옮기고 있고 상점들도 상품을 창고에 집어넣기 시작했다고 한다.

특히 16일 미국, 영국, 스페인 3국 정상회담 소식이 전해진 뒤부터 시민들의 동요가 눈에 띄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라크 정부는 시내 곳곳에 모래주머니를 쌓으며 참호를 만들고 있다. 대사관의 박웅철 서기관 말에 따르면 시내에 참호를 구축하는 것은 미군에 맞서 저항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폭동을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대사관의 현지인 직원 까말도 다른 도시에 피신하기로 했다. 박서기관은 "폭격은 피해도 폭도는 못 피하니까"라면서 "두고 가려니 마음이 그렇네..."했다.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면서 외국인들의 탈출 러시도 계속되고 있다. 미국이 유엔 무기사찰단원들의 철수를 요구한데 이어 국제원자력기구(IAEA) 요원들에게도 철수를 지시했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탈출 행렬이 이어졌다. 반전운동가들과 취재진들이 몰려있던 팔레스타인 호텔, 만수르 호텔 등에서도 다들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국경택시 운임은 일주일전보다 5-7배 급등했다. KBS 김동렬 PD가 저녁때 같이 나가자고 했는데 혹시 몰라서 아침에 현지 교민 박상화씨한테 전화를 해봤다. 박사장 얘기가, 박서기관 차를 얻어타고 나갈 수 있으면 빨리 나가란다. 교민인 자기도 차 구하기 힘들다면서 버스 타고 나갈 거라고 했다(버스 타면 암만까지 16시간 걸린다). 그래서 부랴부랴 가방을 싸들고 대사관으로 갔다. 프레스센터에 가서 돈을 내고(날강도들) 바그다드를 나왔다.

바그다드 외곽에서는 곳곳에서 전쟁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라크군이 바그다드를 지키기 위한 1차 방어선으로 설정해놓고 있는 라마디, 팔루쟈 지역에서는 군인들이 진지를 구축해놓고 있는 모습이 도처에서 눈에 띄었다. 낡은 소형 트럭에 기관총을 장착한 임시 군용차량들도 보였다. 저런 무기를 가지고 전쟁을 하겠다는 것인가. 박서기관은 "다 쓸데없는 짓"이라면서 계속 혀를 찼다.

라마디 인근은 요르단과 바그다드를 잇는 사막 횡단도로가 통과하는 지역이다. 이라크군은 미군이 이 일대를 관통하는 유프라테스강 교량을 폭파할 것에 대비해서 교량 근처 사막 곳곳에 참호를 만들어놓고 있었다. 미군 공습에는 완전 무용지물일텐데. 다 목숨값이다.

미군은 터키를 거쳐 들어오는 진격로가 터키측의 반대로 막히게 되면 이라크 서부 사막과 접경해 있는 요르단 쪽의 통로를 이용해서 들어올 생각인 것 같았다. 정확한 병력 규모는 모르겠지만 요르단 내에 이미 미군 수천명이 주둔 중이라고 한다. 요르단 수도 암만 남쪽에 있는 알 아즈라크 공군기지의 미군 숫자가 최근 급격히 늘어났다고 했다. 실제로 요르단으로 넘어오니 미군 C130 수송기가 하늘을 날아다녔다. 국경 부근 루웨이셰드에는 서방 취재진들이 미군의 이라크 진입과 이라크 난민 행렬을 취재하기 위해 진을 치고 있고, 유엔의 요청에 따라 대규모 난민촌이 건설되고 있었다.

암만에 들어와 라디순 사스 호텔에 짐을 풀었다. 하루에 70디나르(100달러). 고급 호텔이다. 인터넷을 24시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이리로 정했다. 혼자 레스토랑에 앉아 펜네 아라비아타를 시켜먹었다. 이름에는 아라비아가 들어가 있지만 실제로는 떡볶이를 연상케하는 스파게티다. 서울에서도 먹어봤지만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여기서 먹으니까 더 맛이 없었다. 꾸역꾸역 밀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