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유럽이라는 곳

러시아, "추운데 가스 끊어볼까"

딸기21 2006. 12. 29.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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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초 유럽을 떨게 만들었던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중단 악몽이 한해가 가도록 가시기는커녕 더욱 커져만 가고 있다. 러시아가 아르메니아, 우크라이나, 그루지야 등 옛소련권 국가들을 상대로 한 `길들이기'에 이어 우호관계를 유지해왔던 벨로루시에게까지 가스 값을 올리라며 압력을 넣기 시작했다.
유럽은 동구권 국가들에 대한 러시아의 압박이 결국 서유럽을 향한 것이라 경계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고, 한쪽에서는 러시아 대형 에너지회사 가즈프롬이 자국 내 가스값을 올리지 못하는 대신 주변국들에서 돈을 거둬내려는 속셈이라 비난하고 있다.

겨울철 맞아 "돈 더 내라"

러시아는 최근 옛소련에서 독립한 벨로루시에 천연가스 가격을 올리겠다고 통보했다. 벨로루시는 지금까지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를 1000㎥당 46달러(약 5만원)에 공급받아왔다. 러시아가 요구한 것은 이를 내년부터 1㎥ 당 200달러로 올려달라는 것. 가즈프롬은 다음달초까지 협상이 타결되지 않을 경우 공급을 끊겠다고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러시아와 우호관계를 유지해왔던 벨로루시측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러시아는 앞서 지난달에는 그루지야를 상대로 가스값을 올리겠다고 위협했었다. 지난 1월에는 옛 소련권 국가들 중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우크라이나와 가스가격 협상이 결렬되자 파이프라인을 잠가버렸다. 이 일로 독일 등 유럽으로 가는 가스공급량이 크게 줄어들어 유럽이 추위에 떨기도 했다. 러시아는 아르메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등 옛소련권 여러 나라들과 에너지 문제로 마찰을 빚었다. 가스값을 적게는 14∼5%에서 많게는 4배까지 한번에 올려버리겠다며 주변국들을 압박하는 러시아의 에너지 압력은 이젠 유럽에선 상시적인 불안요인이 되고 있다.

천연가스는 사실상 `러시아 손에'

러시아가 가스파이프를 쥐고 유럽을 위협할 수 있는 것은, 러시아가 사실상 세계 천연가스 시장을 쥐고 있는 절대적인 공급자이기 때문이다. 특히 유럽으로 가는 천연가스는 러시아 천연가스 생산의 90%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는 가즈프롬이 독점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러시아가 천연가스로 `배짱'을 부릴 수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러시아의 천연가스 매장량은 약 47조㎥로, 독보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두번째 매장량을 자랑하는 이란은 약 27조㎥의 천연가스를 갖고 있으나, 정치적인 문제로 시장에 적극 참여를 못하고 있다. 카타르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이 러시아와 이란의 뒤를 잇고 있지만 이들 걸프국가들은 아직까지 불안정한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대신 석유 수출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러시아는 이미 석유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지난 7월 최대 산유국으로 부상했다.
막대한 자원을 가진 러시아는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가지고 줄타기를 하는가 하면, 카스피해 가스관 배분을 놓고 주변국들을 지렛대 삼아 이란과 밀고당기기를 벌이고 있다. 사할린 천연가스전 개발에서는 네덜란드계 로열더치셸, 영국계 BP 등 거대 에너지기업들과 마찰을 빚다 결국 최근 항복선언을 받아냈다. 서방 기업들이 러시아 컨소시엄에 무릎꿇고 독점개발권을 양보한 것.





결국은 `돈'


문제는 러시아의 `의도'다.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에는 근래 친서방계 정부가 들어서 러시아와 사이가 틀어졌다. 이 때문에 러시아가 천연가스를 무기삼아 옛 소련권 국가들을 길들이려 한다는 정치적인 해석이 분분했다. 그러나 벨로루시는 지난해까지도 유일하게 러시아로부터 아무런 압력을 받지 않았던 나라다. 지난 3월 대선에서 재선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은 크렘린에 충성을 바쳐왔다.
그런데도 벨로루시에까지 압력을 가한 것은, 결국 `돈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다. 이코노미스트는 18일자 인터넷판 기사에서 "모스크바와 가즈프롬에겐 더이상 루카셴코의 친러 노선도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 논평했다. 루카셴코 대통령이 재선됨으로써, 벨로루시 내 친러시아계 정치인들의 입지를 더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러시아가 오히려 마음놓고 가격 인상을 요구했다는 분석도 덧붙였다. 더이상 옛소련권 국가들의 보호자가 되기보다는 돈을 챙기겠다는 것.
러시아는 막대한 천연가스를 보유하고 있으나 실제 가즈프롬이 판매하는 가스 중 일부는 중앙아시아에서 사온 것들이다. 가즈프롬은 전체 수출량 중 60%를 유럽에, 40%를 옛소련권 국가들에 내다팔았다. 옛소련권 국가들은 유럽국들의 3분의1 가격에 러시아산 가스를 들여다 썼다. 가즈프롬은 향후 5년간 러시아 내 가스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에 비해 매우 낮게 책정돼 있는 국내 공급가격을 인상하는 것은 국내정치적 이유 때문에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만큼의 가격 손실을 수출에서 보전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코노미스트는 러시아가 아르메니아 에너지산업 대부분을 장악해버린 것을 들면서 "옛소련권 국가들에 내주는 천연가스 가격을 서유럽 국가들 수준으로 올린 뒤 시장 전체를 가즈프롬 독점체제로 만들려 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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