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유럽이라는 곳

간다 했으면 가야지... 영 안 떠나는 토니 블레어

딸기21 2006. 9. 7. 22:54
728x90

"간다 간다 하고 왜 안 가나...가는 날짜라도 알려달라."

집권 9년째를 맞고 있는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총리가 `퇴임 일정을 빨리 밝히라'는 당 내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5일 노동당 의원 17명이 블레어 총리에게 퇴임 일정을 밝힐 것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낸데 이어 6일에는 노동당 출신 관료 7명이 블레어 총리를 압박하기 위해 사임했다고 뉴욕타임스와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블레어 총리는 과거에도 수차례 당 내에서 퇴임 일정을 밝히라는 요구를 받았으나 흔들리지 않아 `테플론 토니'라는 별명을 얻은 바 있다. 화학섬유 테플론처럼 질기다는 뜻. 최근 당내에서 그를 보는 시선은 더욱 차가워지고 있다. 특히 눈쌀을 찌푸리는 측은 블레어 총리와 당내 지지를 나눠갖고 있는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 쪽. 블레어 총리는 1994년 브라운 장관과 런던 그래니타 식당에서 만나 차기 총리 자리를 놓고 담판을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른바 `그래니타 밀약'의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세간에서는 `먼저 블레어가 총리가 되고 브라운에 다음 기회를 넘겨준다'는 내용이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브라운 장관은 총리관저인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바로 옆 11번지에 8년째 살면서 만년 2인자 자리를 넘어 총리가 되는 날만을 꿈꾸고 있다. 노동당은 TB(토니 블레어)파와 GB(고든 브라운)파로 나뉘어 당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이라크전 이래 블레어총리 인기가 급락하면서 GB파가 득세하는 분위기다.
블레어총리는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테플론같은 면모를 보이며, 퇴임 압력에 아랑곳 않고 있다. 그는 얼마전 측근인 톰 왓슨에게 보낸 편지에서 "노동당 100여년 역사상 지금처럼 당론이 통일돼 있던 시기는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노동당 역사상 처음으로 2기 연속 집권을 넘어 3기 연속 집권을 꿈꾸는 시기"라고 썼다.



TB와 GB의 싸움을 풍자한 만평

오는 24일부터 닷새 동안 맨체스터에서 열릴 전당대회를 앞두고 노동당 의원들은 블레어 총리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라크전 파병 등 친미 행각과 레바논 사태 때 보여준 친이스라엘 편향 등으로 영국은 유럽에서 고립된 상태이고, 국제적으로 이미지가 크게 악화됐다.
노동당 지지율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야당인 보수당보다 9% 포인트 떨어지는 31%로 하락, 19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블레어 총리는 "총선은 3년이나 남았다"고 강조하지만 이른 시일 내 브라운 장관에게 권력을 넘기지 않으면 다음번 총선 승리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블레어 총리는 적어도 내년 7월 이전에는 물러날 뜻이 없음을 시사하고 있으나 당내 반대파들은 총리가 내년 초에는 퇴임해야 하며 이른 시일 내 퇴임 일정을 스스로 밝혀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블레어의 요즘 형편은 오랜 집권으로 독선이 심해지면서 당료들에게 버림받던 마거릿 대처 전총리 임기말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꼬집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