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인샤알라, 중동이슬람

다시 재연된 '카나의 비극'

딸기21 2006. 7. 31.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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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알라딘 서재에 니자르 카바니의 시 '카나의 얼굴'을 소개하면서 '역사는 반복된다'라고 썼었는데, 본의 아니게 내 포스팅이 우울한 예언이 되고 말았다. 이스라엘이 10년만에 다시 카나를 폭격해 어린아이들을 포함해 60명 가까운 사람들을 죽였다고 한다. 


불교 신자는 아닙니다만... 그렇게 업을 쌓아서 어떻게 하려고 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세상 사람들 목숨값이 다 똑같은 것은 아니다 라는 생각도 든다. 이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을 비록 외신을 통해서나마 계속 지켜보고 있자면 아주 우울해지다 못해 분노로 부들부들 떨리는데 이스라엘 놈들을 정말 어케 쳐죽여야 하나.

오늘 뉴욕타임스에서 본 기사를 얼기설기나마 옮겨놓는다.
 

Airstrike Brings Fresh Pain to Town With Old Wound

QANA, Lebanon, July 30 — 낯선 모습들로 나자빠진 시체들. 몇몇은 입안에 흙이 가득 들어있고 얼굴은 부풀어올라 있다. 남자의 팔 하나가 몸통에서 삐죽 나와 있다. 손가락은 펴진 상태다. 불쌍한 어린아이 두 명, 남자애와 여자애 시신이 앰뷸런스 뒤에 머리와 발을 겹친채 놓여있다. 피부는 왁스처럼 번들거린다.


이것이 모두 한 집에서 하루만에 나온 시신들이다. 굴착기가 가지각색 시신들을 파낸다. 주민들은 60명 가량이 죽었다고 말하고, 통신사들은 어린이 34명을 포함해 56명이 숨진 것으로 집계했다. 현장 수습과 구조활동을 벌이고 있는 레바논 적십자는 시신 27구를 파냈다. 17구는 어린이들 것이었다. 희생자들 중 가장 어린아이는 10살, 가장 나이많은 이는 95살이었다. 노인은 휠체어에 탄 채로 숨졌다.

갑작스레 일어난 이번 전쟁 와중에 벌어진, 단일 공격으로는 최악의 참사였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 날을 '아이를 잃은 날'로 기억할 것이다. 이번 공습은 10년 전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100여명의 주민을 잃은 이 마을 사람들에게 또다른 상처를 덧씌웠다. 10년 전에도 희생자들 중 많은 수가 어린이였다.

이스라엘 정부는 일요일에 공습을 사과하면서 주민들에게 미리 마을을 떠나도록 경고를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남부레바논에서 집을 떠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었다. 대가족 2가구가 집안에 있다가 이스라엘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 샬후브, 하심 가문이었는데 그들은 지난 2주 동안 마을을 떠나 피난할지를 놓고 가족들간에 토론을 벌였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담배 농사와 건설노동으로 생계를 잇는 가난한 사람들이었고, 95살 노인을 비롯해 휠체어 신세를 지는 식구가 둘이나 있는데다가 아이들이 열명이 넘었다. 북쪽으로 가는 택시는 1000달러나 되기 때문에 타고갈 엄두를 못 냈다. 길에 나선다는 것 자체가 위험한 상황이었다.

지난 15일에 난민 21명을 실은 트럭을 포함해, 픽업트럭 10여대가 피난민을 태우고 가다가 이스라엘 공습을 받아서 모두 몰살당했다. 이스라엘 미사일들은 지난주에 적십자 앰뷸런스를 두번이나 폭격했다. 적십자사 사무실에 미사일이 쏟아져 구멍을 냈고 6명이 다쳤다. 일요일에도 카나 주변에서 호송차량과 함께 가던 앰뷸런스가 로켓 공격을 받았다.


"적십자사를 공격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폭격에서 살아남은 22살 여성 자이네브 샬후브는 지금 티레의 병원에 누워 있다.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게 없었어요. 빠져나갈 길이 없었다고요." 


샬후브네 집 식구들은 폭격음이 잘 들리는 산등성이가 더 안전할 것 같아 거기로 옮겨갔었다. 산기슭에서 지내는 동안 물이 모자라 고생을 했다. 마을에 있는 집들은 그렇게 대부분 버려진 상태였고, 전기도 물도 없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었다. 한 이웃이 펌프를 가지고와 물을 퍼올렸다. 샬후브네와 하심네는 집에서 파이프를 끌어왔다. 버티기가 힘들었다. 집 주변 기어다닐수 있을 정도의 지하공간에서 매트리스 다섯장을 깔아놓고 지냈다. 거기서 코란을 읽으며 기도를 드렸고, 교과서를 베개 삼아 잠을 잤다. 아침마다 여자들은 아이들을 위해 식사를 만들었더랬다.

구조될 희망을 안고 집으로 돌아온 샬후브네가 첫번째 미사일 공격을 받은 것은 새벽 1시. 38세 모하메드 샬후브가 집안으로 뛰어들어왔다. 12살에서 2살까지, 다섯이나 되는 아이들이 집안에 있었다. 아내와 모친, 10살 조카도 있었다. 가족들을 피신시키려고 하는데 두번째 미사일이 들이닥쳤다. 구조요원들이 도착했을 때에는 모하메드만 남고 나머지 가족 8명은 숨져 있었다.

"내 몸이 빙 도는 것 같았어요. 땅이 일어서고 내 몸이 땅으로 꺼지는가 싶었어요."
티레의 병상에 누워 허공을 응시하며 모하메드는 말했다.

이스라엘군 관리들은 다음날 아침이 될 때까지 집이 무너지진 않았다면서 "그 집에 숨겨져 있던 '군수품'들 때문에 나중에 집이 무너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 그 집은 상공에서 폭격을 당했고, 첫번째 미사일 공격을 받자마자 무너졌다.  
"입안에 모래가 가득 들어찼어요." 자이네브 샬후브는 의사들을 통해 자기 가족들이 숨 막혀 죽었다고 들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모래와 벽돌 때문에 식구들이 죽었다는군요"


집안에 있던 이들 중 8명은 살아남아 기나긴 공포의 밤을 떠올리고 있다. 몇몇은 아침까지 매몰된 채로 있었고, 몇몇은 간신히 폐허에서 기어나왔다. 자이네브는 모하메드와 함께 나무 밑에 있었다. 모하메드는 휠체어가 없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들은 다른 세 식구와 함께 어둠속에서 머리 위로 비행기들이 날아다니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눈 앞에 있는 자기 손가락조차 보이지 않았어요." 이웃인 가지 아이디비의 증언이다.


자이네브는 폐허에 깔린 여자가 아이를 구해달라고 하는 소리를 듣고 도와주려고 했지만 아이를 찾을 수 없었다. 이웃인 하이다르 타플레는 폐허 속에서 비명소리를 들었다고 했지만 폭격때문에 구하러 갈 수가 없었다고 했다. "사람들을 도우려고 했는데 폭격 때문에 근처로 갈 수가 없었어요."


그 집 주변은 몇 차례 더 폭격을 받았다. 샬후브네 이웃집도 무너졌다. 거대한 분화구같은 구멍이 생겼다. 주민들은 2주 새 마을 집 여덟채가 부숴졌다고 했다.
무너진 빌딩들은 남부 레바논에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구조요원들은 계속 집더미 속에서 시신들을 찾고 있다. 티레 시장인 아베드 알 후세이니는 생존자들로부터 이스라엘 접경에 있는 슬리파라는 작은 마을에서만 75명이 묻혀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잡화상 주인 하산 파라지는 1996년 학살을 지켜본 사람이다. 그는 헤즈볼라 전사들은 카나에 없었지만 카나 사람들은 헤즈볼라를 지지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이번 일요일에 카나 주변에서 전투 같은 것은 없었고, 헤즈볼라 깃발과 시아파 지도자들 포스터가 거리에 붙어있어서 헤즈볼라가 여기서 투쟁을 하는 듯한 오해를 받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가게 앞에 서있지 말라고 경고했다. 자기 가게 앞이 바로 앰뷸런스가 그날 아침 공격받은 곳이라는 것이다.

티레의 하쿠미 병원에는 모하메드 샬후브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누워 있다. 친척들이 옆에서 커피를 따라주고 있다 .생존자들은 위안 삼아 아이들이 천국에 가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번 공격으로 1살과 5살 두 딸을 잃은 24살 할라 샬후브는 병상에 누워 통곡하고 있다.
"아이들을 보고싶어요. 아이들을 붙잡고 싶어요."
친척들은 "울게 놔두라"고 했다.
자이네 샬후브는 그 옆 병상에 앉아 조용히 말한다. "우리 마을엔 사람 하나 돌 하나도 안 남았어요"



다음은 BBC 기사.


Analysis: A second Qana Massacre?

By Martin Asser
BBC News, Beirut


레바논 남부 카나는 역사에서 두 가지 이벤트로 알려져 있다. 이제 세번째가 덧붙여지려고 한다.


성경에서 갈릴리의 카나는 예수가 첫번째 기적을 행한 포도밭 결혼식장이 있던 곳. 현대사에서는 아랍-이스라엘 분쟁 역사상 가장 큰 참사 중의 하나가 발생했던 곳. 이스라엘이 10년전 카나에 있는 유엔 팔레스타인난민캠프를 폭격했었다. 당시 100명 넘게 숨지고 100명 넘게 다쳤었는데 국제사회는 큰 충격을 받아서 휴전 압력을 넣었고 이스라엘은 '분노의 포도'라고 이름붙였던 헤즈볼라에 대한 군사작전을 중단했었다.


레바논사람들이 '카나 대학살'이라고 부르는 그 사건은 레바논 사람들에게는 헤즈볼라 로켓 공격에 대한 이스라엘의 무차별적이고 불균형적인 보복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인식돼왔다.


'사고가 아니다'


이스라엘은 아직도 1996년 폭격이 군사시설을 정당하게 공격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고'였다고 주장한다. 헤즈볼라가 카나에 있는 난민촌 부근 기지에서 박격포와 로켓으로 자기들을 공격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스라엘은 역시나 헤즈볼라가 민간인들을 '인간방패'로 이용해 자기네를 공격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1996년 카나 사건을 조사한 유엔 감시단은 카나 기지에서 일어난 민간인들의 떼죽음이 이스라엘측 주장과 달리 '사고'가 아니었다는 결론을 냈었다. 유엔 보고서는 유엔 시설에 반복적으로 폭격이 가해졌고 비무장 민간인들에게 유산탄이 급류처럼 쏟아져 비무장 민간인들이 끔찍한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유엔은 또 이스라엘 헬기들이 카나 상공을 돌고 있었기 때문에 피바다가 된 현장을 분명 목격했을 것이라고 지적했었다. 


전략적 요충지


이번 이스라엘군의 폭격 과정에서 카나는 다시 뉴스의 중심에 들어왔다. 이스라엘군은 적십자 앰뷸런스를 두 차례 폭격했고, 레바논의 젊은 여성 사진기자 라얄 네지브가 승용차를 몰고 가다가 폭격을 맞고 숨졌다.

지도를 보면, 카나가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에서 어째서 빠지지 않고 목표물이 되는지를 알 수 있다. 카나는 레바논 남부 고원, 이스라엘과 접경한 지역에 위치해있다. 레바논 남부 중심지 티레의 남동쪽에 있는 후배지에 해당되는 전략상 중요한 도로 5개가 이 곳에서 합쳐진다.

카나와 주변 마을들은 헤즈볼라 세력이 강한 지역이다. 이스라엘은 이곳에 근거지를 둔 헤즈볼라가 남쪽 10km 아래에 있는 국경 너머로 로켓을 쏜다고 주장해왔다. 이스라엘 관리들은 공습 전에 민간인들에게 헤즈볼라 공격작전을 벌일 것이라고 알리는 전단을 배포, 집을 떠나라고 미리 경고했다고 주장한다. 이스라엘측이 미리 카나 주민들에게 경고를 한 것은 확실하지만, 호송차량들의 보호를 받고 있던 민간인 차량이 티레로 피신하는 길에 다수 폭격을 받은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카나 주민들 대다수는 이스라엘 경고가 있었지만 집을 떠나지 않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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