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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의 인공지능 책

딸기21 2026. 10. 28. 16:10

계산하는 기계는 생각하는 기계가 될 수 있을까?
잭 코플랜드. 박영대 옮김. 메디토리얼. 10/28


책 자체는 그렇게 흥미롭지는 않았는데, 1993년에 쓰여졌다는 점에서 지금의 인공지능과 비교감에 있는 재미가 있었다.

프랑켄슈타인 박사처럼 와이젠바움은 곧 자신이 만든 것이 끼치는 공포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가 만든 기계가 마치 인간인 듯 반응하고 있었다. 인터뷰를 한 사람들은 때때로 일라이자와 강한 정서적 유대를 형성했다. 이 유대감은 불쾌할 정도로 와이젠바움의 예상을 벗어 나는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적었다. "매우 정상적인 사람들조차 비교적 단순한 컴퓨터 프로그램에 매우 단시간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강력한 망상에 사로잡혀버렸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51

‘그야말로 인간을 모델로 삼는 기계. 즉 유년기가 있으며, 아이들처럼 언어를 배우고, 자신의 기관으로 세계를 감각하면서 세계에 대한 지식을 얻고, 그래서 궁극적으로 인간 사유의 전 영역을 고려하는 로봇'. 와이젠바움이 제기한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 가능한지 여부가 아니다. 그렇게 해야만 하는지의 여부다. 그는 인공지능이 본성상 인간의 조건을 완벽하게 이해하거나 공감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일라이자에 대한 반응이 입증하듯이, 우리는 인간 문제들을 전혀 다른 지성에게 너무 쉽게 맡기려는 건지도 모른다.
-53

전문가 시스템은 인공지능의 ‘노다지’이며… 심지어 지식 공학(knowledge engineering)이라는 새로운 직종을 출현시켰다. 지식 엔지니어들은 목표 영역의 전문가들을 관찰하고 인터뷰하는 데 수개월을 보낸다. 전문가들이 판단하고 결정하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사실과 규칙들을 끈기 있게 분류한다. 일단 이 대량의 지식이 체계화되고 형식이 생기면, 이것이 프로그램의 '지식베이스'에 놓인다.
-82

제대로 된 인공물에 생각하다라는 용어를 온전히, 문 자적 의미 그대로 적용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이는 결코 기술적인 쟁점이 아니라 오로지 철학적인 쟁점이다.
어쩌면 기술 전문가들은 생각하는 기계를 실제로 만들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인공물이 글자 그대로 생각할 수 있다는 말이 개념적 오류인지 아닌지 하는 의문은 우리가 해결할 수 있다.
인공물이 의식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은 전혀 당연하지 않다. 사고와 의식이 항상 함께 가는 것은 아니다. 이를 깨달으면, 컴퓨터가 생각할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할 때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89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컴퓨터를 ‘생각하는 존재'라고 부르는 것을 보류한다면, 이는 그저 '생각한다'라는 단어를 인간과 우리의 생물학적 친척만 독점하는 것과 마찬가지이지 않겠는가? 이는 탄소로 구성된 존재보다 실리콘으로 구성된 존재에게 더 많이 붙는 노골적인 편견에 불과하다.
-98

이제 우리는 제기된 문제를 이해하고, 계획을 세우고, 문제를 해결하고, 결정을 내리는 등 광범위한 정신활동을 포괄하는 그런 행위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면에서 인간과 거의 구별할 수 없는 인공 물의 가능성을 최초로 마주하고 있다. 우리는 이 새로운 사례에 생각하는 존재라는 표현(더불어 결과적으로 이 표현이 초래하는 모든 정신적 용어들) 을 적용해야 할까, 아니면 보류해야 할까?
-129

허버트 사이먼이 말했듯이 "아마도 컴퓨터의 가장 중대한 의미는 인간이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에 끼친 충격에 있다. 컴퓨터는 인간이 처음으로 고대의 권고, '너 자신을 알라'에 순응하도록 도와주었다.“ 기계에 존재하는 자유와 의식의 가능성을 철학적으로 조사하는 일은, 실제로는 우리의 고유한 본성을 이해하는 탐구의 일부다. 우리는 기계의 일종인가?


저자의 논지를 요약하면
1) 기계도 생각할 수 있다. 기계를 왕따시키려고 인간들이 ‘생각’의 기준을 이것저것 들이대는 대신에 엄밀하게 정의한다면.
2) (이 당시까지의) 생각하는 기계 연구는 기호체계 가설을 전제로 함. 이는 인간 뇌 자체를 기호체계 처리장치 즉 컴퓨터로 보는 것과 맥락이 이어짐.
3) 그러나 뇌는 기호체계 처리장치가 아닐 수 있음.
4) 그래서 신경망을 모델로한 병렬처리장치로 인공지능을 만드는 연구가 진행중인데 앞으로 성과는 거기에서 나올 지도 모름.

대규모의 신경세포 덩어리는 확실히 생각할 수 있다. 인공신경세포들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조사하는 일… 인공지능을 달성하기 위한 접근법(흔히 이를 '신경 시뮬레이션'이라 부른다)이 지닌 잠재성이 다트머스 회의에서 논의되었지만, 신경 시뮬레이션이 시간 낭비라는 것이 전통적 인공지능의 규범이었다. 1960년대와 70년대에 인공지능에 참여한 연구원들은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기계, 즉 밝혀진 바는 거의 없고 소름끼치도록 복잡한 인간의 두뇌를 기반으로 한 기계를 구성하려는 시도의 의미를 거의 알지 못했다. 그들에겐 이미 수중에 폰 노이만 컴퓨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신경 시뮬레이션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프랭크 로젠블랫(Frank Rosenblatt)의 연구는 1969년에 마빈 민스키와 시모어 패퍼트(Seymour Papert)에게 지독하리만치 비판받았다.
돌연 이제 이러한 전통적인 인식이 내부에서 엄청난 공격을 받고 있다. 인공지능에 대한 기존의 접근 방식에 환멸을 느낀 연구자 그룹이 로젠블랫의 아이디어를 되살려 인공신경세포의 작은 네트워크로 실험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결과는 고무적이다.
… 우리는 다음 세기가 되어서야, 인공지능을 향한 이 흥미진진하고 새로운 발전의 진정한 의미를 판단할 수 있게 될 것이다.
-432-434


그리고 한 세대가 지나 ’다음 세기’가 되었다. 책은 4)를 마지막의 짧은 챕터 하나로만 다루고 있지만 뇌를 흉내낸 기계가 ‘폰 노이만 기계‘를 압도했다. 현재까지는 암튼 그렇다.

과헉기술 책이라기보다 논리학, 철학책에 가깝다. 곳곳에 튜링의 말들이 나온다. 에니그마만 흔히들 얘기하는데 튜링은 진정 생각하는 기계의 조상님 혹은 선지자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