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란 무엇인가?
린 마굴리스, 도리언 세이건. 김영 옮김. 리수. 6/7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말을 들으면 자연히 슈뢰딩거의 그 유명한 강연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언젠가 슈뢰딩거 트리니티 강연 50년을 맞아 펜로즈, 굴드, 다이아몬드 등등 쟁쟁한 이들의 글을 모은 <생명이란 무엇인가- 그후 50년>을 읽으면서 번역;; 문제로 골치아팠던 기억이.
이 책은 아주아주 재미있다. 이것도 <플루리버스>를 통해 알게 됐는데, 근래 읽은 최고 재미난 책이다. 슈뢰딩거의 질문 이후, 50년 플러스 알파의 시간이 흐르면서 생명을 보는 우리의 시각이 얼마나 많이 확장됐는지를 생각해봄. 기후위기라는 달갑잖은 액셀러레이터가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1944년에 출간된 명저 <생명이란 무엇인가〉에서 슈뢰딩거는 생명을 정의할 수 없음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생명을 물리화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슈뢰딩거가 생각한 생물은 결정(신비한 “비주기성 결정")처럼 자라면서 자신의 구조를 반복하는 물질이다. 그러나 생물은 어떤 광물 결정보다 매혹적이며 예측 불가능하다.
슈뢰딩거는 생명이 지닌 놀라운 복잡성을 숭배했다. 파동 방정식을 만들어 양자역학에 확고한 수학적 기반을 부여한 과학자였지만 생명을 단순히 기계적 현상이라고는 결코 생각지 않았다.
-15쪽
요하네스 케플러(1571-1630)는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들의 타원 궤도를 계산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플러(그는 최초의 과학소설을 썼으며 그의 어머니는 마녀로 체포되었다)는 별들이 태양계 저편 너머 두께 3킬로미터의 껍질 속에서 살고 있다고 믿었다. 그는 지구를 숨 쉬고 기억하고 여러 습관을 지니는 괴물로 여졌다.
지구가 살아 있다고 믿은 케플러의 생각이 오늘날 우스꽝스러워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는 우리에게 과학이 점근적이라는 사실을, 궁극적인 지식이라는 최종 목적지에 결코 도달하는 법 없이 단지 근접해갈 뿐임을 일깨워준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점 성술은 천문학에 자리를 내주었고 연금술은 화학으로 발전했다. 한 시대의 과학이 다음 시대에는 신화가 된다. 미래의 사상가들은 우리 시대의 생각을 어떻게 평가할까?
-17쪽
대기 중에 두 번째로 많은 산소가 메탄과 즉시 반응해버리기 때문에 메탄은 검출되지 않는 수준이어야 마땅했다. 지구 대기 중의 메탄과 산소의 혼합 비율은 그만큼이나 이례적이다.
산소와의 반응성을 생각하면 지구 대기의 구성 요소 중 메탄, 암모니아, 황산 가스, 염화메틸, 요오드화메틸은 화학적 평형과는 거리가 멀다. 일산화탄소, 질소, 일산화질소는 화학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보다 각각10배, 100억 배, 10조 배나 많은 양이 존재한다. 생물학이 답을 제시한다. 예를 들면, 러브록은 메탄을 생성하는 세균이 온 지구에 상당한 양의 메탄을 방출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소들도 트림할 때 메탄을 내놓는다.
생명은 열과 무질서를 우주 공간으로 배출함으로써 우리의 대기를 화학 반응성이 높으면서도 질서 있게 만들었다. 러브록의 분석은 생명이 우리가 생물이라고 부르는 것은 한정된 것이 아님을 일깨워줬다. 생명은 이전의 자기 완결적인 개체에서 벗어나 보다 큰 실체의 유기적인 일부가 된다. 이러한 단계에서 가장 큰 것이 지층, 즉 생물권이다. 생명은 자신을 고치고 유지하고 다시 만들며 자신을 능가한다.
-31쪽
태양의 광도는 지구에 생물이 등장한 이후 30% 가량 증가했다. 태양 광도의 증가는 지표면의 온도를 초창기보다 급격히 증가시켰어야 했다. 그러나 급격한 증가는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실제로는 오히려 온도가 내려가는 경향이 있었다) 전체 생물권이 온도를 스스로 유지한 것으로 여겨진다. 대개는 열을 붙들어 온실 효과를 유발하는 이산화탄소와 메탄 같은 기체를 제거함으로써, 또는 수분을 머금거나 점액을 내어 표면의 색과 형태를 변화시킴으로써 생물은 생존 기간을 늘여나갔을 것이다.
해양학은 또 다른 일례를 들어 전체가 생명체임을 보여준다. 화학적 계산에 따르면 바다의 염분은 점점 축적되어 세균이 아닌 생물은 살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농도가 되었어야 한다. 염화나트륨, 황산마그네슘과 같은 염류는 대륙에서 끊임없이 강물에 실려 바다로 운반된다. 그러나 세계의 바다는 적어도 지난 20억 년 동안 염분에 민감한 생물이 살아가기에 적당한 환경으로 남아 있었다. 아마도 바다에 떠다니는 미생물들이 전 지구적 규모로 해양의 산도와 염도를 감지하여 안정시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체온과 혈액의 화학 작용과 조절이 인체를 구성하는 세포들 사이의 관계에서 비롯되듯이, 지구의 조절도 지구에 거주하는 생물들 사이의 수십억 년에 걸친 상호작용에서 진화한 것이다. 생물이 지구 표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 표면이 곧 생물이다. 생명은 기초적인 지구의 형태를 만들었다. 진정한 의미에서 지구는 살아 있다. 이것은 모호한 철학적 주장이 아니라 우리의 생명에 관한 생리학적 진실이다.
-40~41쪽
동양 철학을 널리 소개한 영국계 미국인 앨런 와츠는 "살아 있는 몸은 고정된 물제가 아니라 하나의 흐르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형상만 있을 때는 안정적이다. 실체는 한쪽 끝에서 나와 다른 쪽 끝으로 들어가는 에너지의 흐름이다. 자신을 영구히 존속시키려는 생명의 목적은 열역학이라는 과학이 밝혀낸 물리화학적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우리는 빛, 열, 공기, 물, 우유 등의 형태로 우리에게 들어오는 일련의 흐름에서 일시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요동이다. 이렇게 우리 몸 안으로 들어온 것은 기체와 배설물로, 그리고 정액, 아기, 이야기, 정치, 전쟁, 시와 음악으로 빠져나간다."
-65쪽
러시아 과학자 블라디미르 베르나드스키의 관점에서 볼 때 자라면서 지표면을 바꾸고 조직을 이루고 생각도 하는 특별한 층은 인류와 기술과 연관이 있다. 이 층을 설명하기 위해 그는 정신을 뜻하는 그리스어 'noos’에서 ‘인지권 (noosphere)’이라는 용어를 채용했다. 이 용어는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의 후계자인 에두아르 르 로이가 만들어낸 것이다.
베르나드스키에게 인지권은 지구 상 생물권의 지적 부분으로서 인류와 기술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가 생명을 "살아 있는 물질"이라고 한 것은 단순한 수사적 기교가 아니었다. 그는 생명을 다른 물리적 작용의 일부로 보고자 온갖 노력을 기울였고, "살아 있는"이라는 표현을 붙임으로써 생명이 사물이라기보다 사건이나 과정임을 강조했다.
"생물권은 지구에서 일어나는 과정의 결과물이기보다 오히려 태양의 창조물이다. 인간이 ‘태양의 아들'이라는 고대 종교의 직관은, 지구의 존재들이 물질과 힘의 우연한 작용으로 태어나 덧없는 삶을 살다 간다는 견해보다 훨씬 더 진실에 가까웠다. 전체가 살아 있는 물질인 생물권은 ... 태양빛을 전환해서 화학에너지로 축적하는 독특한 계다."
-73~74쪽
미국의 생물리학자 헤럴드 모로비츠는 막이 세포 전구체를 둘러싸고 난 다음에야 물질대사의 거의 모든 양상과 형태, 단백질과 핵산의 합성이 비로소 진화했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단백질이나 핵산 중 어느 것이 생명 기원에서 먼저 나왔든 분명히 막이 그보다 훨씬 앞서 나타났을 것이다. 그리하여 생명은 진정한 세포 현상이 되었을 것이다.
"환경과 구별되는 하나의 실체가 되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확산을 막는 장벽이 필요하다. 물과 기름 둘 다에 친화성이 있는 막이 닫히면서 액포를 만드는 순간, 무생물에서 생물로 불연속적인 이행이 일어난 것이다."
개체성은 언제나 막으로 둘러싸인 단위인 세포에 기초를 두며, 오랜 세월 진화를 거치는 동안 어느 때보다 큰 통합의 수준에 이르렀다. 생물은 단순히 진화하는 존재가 아니라 진화를 통해 스스로를 구현한다. 막은 세포의 물질대사를 위한 전제조건이다. 생명은 세상과 물질의 한가운데 있다가 반투명한 반투성 막에 의해 세상과 분리된 것이다.
-114쪽
막이 생기고 세포가 된 순간, 생명의 '개체성'이 시작됐다...
환경이 제공하는 양분 공급이 제한되고 기아에 직면하자 일부 운 좋은 발효 세균이 스스로 양분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진화시켰다. 이렇게 해서 녹색세균과 자색세균이라는 위대한 혈통이 시작되었다. 지구 역사상 가장 중요한 물질대사 혁신인 광합성을 통해 생물은 에너지 결핍에서 해방되었다. 햇빛에서 에너지를 채굴하는 최초의 양분 제조자(아마도 오늘날의 클로로비움 같은 녹색황세균)는 최초의 독립 영양생물이었다.
광합성에서는 태양의 가시광선에서 나오는 광자 에너지가 엽록소 분자의 전자를 흥분시키고 여분의 에너지를 ATP 분자로 전달한다. ATP가 생물에게 크게 기여한 것은 에너지 이용이 가능한 순간이 아니라 생물에게 필요할 때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다.
-134쪽
성공적인 세균 중에는 헤엄치는 능력을 진화시킨 종속 영양생물도 있었다. 이들 가운데 일부가 적색세균인데, 이들의 붉은색은 빛에 민감한 색소인 로돕신 때문이었다. 로돕신은 엽록소처럼 에너지를 붙잡아 ATP에 저장하지만 다른 파장의 빛을 이용한다. 오늘날 (소금기를 좋아하는) 여러 호염성 고세균에서 발견되는 로돕신은 바다 어류의 망막 간상세포에서도 발견되며 사람의 시각 작용에서도, 특히 빛이 희미할 때 이용된다.
시간 여행의 눈을 녹색황세균과 적색 호열성 세균이 등장한 시기에서 앞으로 옮기면 마침내 새로운 광합성 형태, 자색황세균을 발견하게 된다. 이들이 이루어낸 혁신은 산소를 견디는 능력에 있었다.
-136쪽
오늘날에도 생물을 동물 대 식물로 나누려는 경향이 남아 있다. 이 방식에 따라 균류와 세균, 일부 원핵생물이 종종 식 물로 분류되어 식물학자들의 관할권에 들어간다. 이렇게 불합리한 식물-동물 분류법은 진화를 반영하지 않는다. 식물과 동물의 선조는 그 중 어느 한쪽이 아니라 통합을 통해 새로운 종류의 세포를 형성한 세균 군집이었다.
허버트 코펠랜드(1902-1963)는 모네라(세균), 식물, 동물, 원생생물이라는 네 계를 주장했다. 그는 모든 균류 (곰팡이, 버섯, 말불버섯 등)를 원생생물 아문으로 분류했다. 코넬 대학의 생태학자 로버트 휘터커는 코펠랜드의 원핵생물에서 균류를 떼어내어 “다섯 번째 계"로 인정했다. 휘터커의 5계 분류 체계는 진화상의 유연관계를 가장 훌륭히 반영하고 있다.
-154쪽
책이 나온 것은 1995년인데, 지금은 '모네라 계'는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얘기도.
산소를 이용하는 세균이 헤엄치는 혐기성 원생생물을 감염시키고 연합체를 이루기 전에, 그리고 이 연합체가 남세균을 삼키기 전에, 훨씬 빠른 세균이 결합했던 것으로 보인다. 탄수화물을 발효하며, 나선형으로 맹렬히 회전 운동을 하는 양성자 엔진을 단 세균이다. 빠르게 헤엄치는 스피로헤타는 자유 생활을 하던 세균에서 더 큰 세포의 일부로 바뀌면서 선조 세포가 될 희생물의 외부에, 그 다음에는 내부에 상당한 운동력을 부여했을 것이다.
-158쪽
유사분열에 의한 세포 증식은 일부 원생생물과 모든 동물, 식물, 균류의 세포에서 놀랍도록 유사하다. 식물, 동물, 균류의 선조인 원생생물은 핵을 지닌 세포의 증식에 필요한 운동 장치를 가진 최초의 생물이었다.
살아 있는 세포는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파동모로 장식되어 있다. 여기에는 모든 섬모와 대다수 정자의 꼬리가 포함된다. 이를테면 황소 정액 속에 있는 꼬리가 하나 달린 정자와 수고사리에서 방출된 수백 개의 꼬리가 달린 정자는 둘 다 9(2)+2 구조를 가진다. 공생으로 파동모가 된 스피로헤타는 파트너와 너무 깊이 통합되어 단순한 흔적과 유전자 그림자만 남기고 자신의 옛 모습은 잃어버렸다.
-163쪽
우리의 미토콘드리아 선조가 호기성 자색 세균이었다는 사실은 DNA 염기 서열 분석으로 의문의 여지없이 밝혀졌다. 야만인들이 마을을 약탈하지만 그 마을에서 문명화되듯이 호기성 세균은 자신이 공격했던 발효 생물 안에서 미토콘드리아라는 일꾼으로 일하게 되었다.
최초의 숙주는 아마 열과 산에 잘 견디지만 산소에는 견디지 못하는 서모플라스마 비슷한 고세균(이미 스피로헤타 공생자를 얻어 운동성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이 연합체가 최초의 원생 생물로 진화했고, 그들의 스피로헤타는 파동모가 되었다. 서모플라스마 계통은 오늘날 살아 있는 대표 종들이 진핵세포의 핵질 부분과 비슷하기 때문에 이 주요한 진화 사건에 연루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167쪽
조류와 식물의 경우에는 이 이야기에 새로운 챕터가 하나 추가된다.
이미 자색세균(이제는 미토콘드리아)과 완전히 합쳐진 헤엄치는 원생 생물이 뒤이어 일어난 공생을 통해 색소체를 지니게 되었다. 어떻게? 바로 소화불량 때문이었다. 소화되지 않은 녹색세균(먹이)이 채식주의자인 투명한 원생생물의 몸 안에서 살아남은 것이다. 그 결과 광합성 산물(포획된 광합성 세균이 만든 양분)이 원생생물에게 지속적으로 공급되었고, 원생생물은 햇빛이 비치는 물을 찾는 취미를 재빨리 개발했다. 잡아먹힌 광합성 세균은 양분을 제공하는 대가로 살아갈 곳이 생겼 고 빛으로 향하는 특급열차를 얻어 탄 셈이었다.
-170쪽
죽음의 진화, 짝짓기의 진화.
종의 경계는 원생생물에서 처음 나타났다. 감수분열이 동반되는 유성생식도 마찬가지였다. 숙명적으로 원생생물에서 성별 구분(유성생식)은 죽음과 결부될 수밖에 없었다.
세균은 자연적으로는 죽지 않는다. 일부 원생생물, 특히 섬모충류와 점균류는 세균과 달리 외부 환경이 최적일 때도 노화한다. 살아있는 세포가 예측가능한 시기에 쇠퇴하는 노화와 죽음은 유성생식을 하는 원생생물에서 처음 진화했다. 물질대사가 최종적으로 멈추는 ‘예정된' 죽음은 생명이 탄생했을 당시, 그리고 이후로도 장구한 시간 동안 존재하지 않았다. 노화와 죽음은 기술적 전문 용어로 '아폽토시스'라고 부르는 내적 작용인데, 성 구분이 있는 개체가 진화하는 동안 어느 시기에 우리 미생물 선조에서 나타났다. 이상한 이야기지만, 죽음 자체가 진화했다.
-175쪽
감수분열은 유사분열로 이미 둘로 나뉜 세포에서 진화했을 가능성이 크다. 최초의 수정 사건은 아마도 합병이 아니라 잡아먹으려는 강한 충동에 응한 결과였을 것이다. 생물학자들은 배고픈 세포가 주변의 세포를 집어 삼키는 싸움을 현미경으로 종종목격한다. 그러나 삼킨 세포를 언제나 소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버드 대학의 생물학자 르뮤엘 로스코 클리블랜드(1898-1971)는 잡아먹히는 원생생물이 반쯤 먹힌 채로 살아가는 것을 목격했다. 염색체 한 벌만을 지니는 보통의 하이퍼마스티고트는 나무껍질을 먹는 흰개미와 바퀴벌레의 창자 뒷부분이 부풀어 오른 곳에서 산다. 클리블랜드는 하이퍼마스티고트가 서로 잡아먹는 것을 보았다. 그는 한 개체가 다른 개체를 일단 삼키고 나면 둘의 막이 합쳐져 이중 세포가 되는 데 주목했다. 대부분의 이중 세포는 죽었다. 그러나 그들 중 일부가 번식하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어설프기는 하지만, 2배가 된 기형 미생물은 세포분열을 거쳐 또 다른 2배의 기형 미생물을 만들어냈다. 인간의 성적 욕구의 기원이 미생물의 소화불량이었다니 낭만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들릴지 모르겠다.
궁핍한 시절에 우리의 단세포 원시 부모는 필사적으로 서로 잡아먹으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때로는 그들의 세포막이 합쳐지기도 했을 것이다. 2배가 되거나 일부만 2배가 된 채로 단단한 세포벽으로 둘러싸인 포자 속에서 좋은 시절을 기다렸다. 불완전한 염색체 세트를 지니게 된 비정상적인 것들은 대다수가 죽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살아남은 것들은 종종 먹이가 부족한 계절이나 건조한 시기를 견딜 수 있었다. 곤궁한 상태에서 서로 잡아먹다가 염색체가 2배가 된 원생생물이 우리의 조상일 것이다.
-178쪽
코콜리토포리드나 다른 광합성 원생생물을 통해 막대한 양의 물질이 이동한다. 식물이 아니라 원생생물이 해양 먹이사슬 전체의 기초다.
백악, 유리, 유기섬유, 심지어는 황산스트론튬이나 황산바륨 같은 희귀한 염까지 골격을 만드는 데 동원함으로써 일부 원생생물은 바다에서 미량 원소를 채굴한다. 이들이 몸의 단단한 부분을 만든 후 떼지어 죽을 때 바다 경치가 바뀐다. 규조(돌말)는 세계적인 규모로 해양에서 이산화규소를 고갈시키면서 정교한 집을 짓는다. 방산충은 유백색 골격을 형성하며 나중에 바다 밑에서 굳어 방산충 판암이라고 불리는 부싯돌 비슷한 퇴적암이 된다. 유공충은 이집트의 거대한 피라미드를 이루고 있는 석회암의 일부를 구성한다.
원생생물은 유성생식을 하는 종을 형성한 최초의 생물이다. 원생생물 단계에서 일어난 변화 때문에 그 뒤를 이은 모든 생물계에서는 죽음이 생리학적으로 필요하게 되었다.
-182쪽
이제 동물과 식물이 나오기 시작.
화석을 보면 동물이 식물이나 균류보다 먼저 진화했음을 알 수 있다.
해양 동물은 고생대 초기부터 풍부한 화석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껍질을 지닌 동물이 나타나고 1억 년이 넘게 지난 뒤에도 식물이 나 균류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오늘날까지도 동물은 육상보다는 수중에 더 많은데, 이는 생물이 물에서 진화했으므로 당연하다. 식물과 균류만이 전형적인 육상 생물이다. 새로운 계가 육상에서 진화하기에 앞서 미생물들은 과감히 뭍으로 진출해야 했다.
-211쪽
동물의 분화에서 주요한 특징은 뚜렷이 구분되는 개체가 발달한 것인데 그 과정에서 세포 증식은 줄었고 대신 기능의 분화가 생겼다. 세포에서 세포 군체를 거쳐 동물 유기체로 이행하는 것은 진화에서 흔한 모습이다. 개체가 군체로 모이고 이들이 다시 통합된 개체가 된다. 극심한 선택 압력 아래서 운동성이 있는 원생생물은 군체를 이루는 원생생물이 되었다. 그 다음으로 원생대 말기에 트리코플랙스 비슷한 동물체가 등장했다.
-222쪽
약간 끔찍한(?) 이야기도 나온다.
“노란색 해면과 오렌지색 해면(할리시오나)을 무명천으로 짜서 으깨고 물속에 함께 섞어 놓으면, 세포들은 완전히 재구성되어 각기 노란색과 오렌지색의 해면이 된다. 해파리의 사촌인 민물 폴립 역시 낱낱의 세포로 분리될 수 있다. 그러나 해면과 달리, 폴립은 그 과정을 완료하지 못한다. 그 결과, 머리 부분과 소화관, 발(기본 줄기)이 제멋대로 배열된 기괴한 모양을 형성한다.“
이제 캄브리아기로. 진기한 생물들 이야기가 줄줄이...
버지스 셰일이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요호 국립공원의 높은 산에서 모습을 드러낸 캄브리아기의 화석들을 말한다. 더없이 훌륭하며 수도 엄청나게 많은 버지스 세일은 고생물학자들에게 평생 일거리를 안겨주었다. 몸이 연한 동물까지 보존되어 있는 이 세일층은 그야말로 보배다. 얕은 바다에 살던 생물들이 버지스 세일을 형성한 물속 진휴더미에 보존되어 있다.
아름다운 이들 동물 중에 오파비니아도 있다. 바다 밑바닥을 기어 다니는 눈이 다섯 개인 생물로, 구부리진 꼬리지느러미와 관절로 된 불잡는 기관이 있어 몸길이가 10센티미터에 불과해도 무시무시한 포식자였음을 암시한다.
이름에 걸맞게 할루시노게니아는 고생물학자들을 당혹스럽게 했는데, 최근까지 어느 쪽이 위인지(가시가 갑옷인지 다리인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버지스 세일에 보존된 많은 캄브리아 절지동물 중에서 오직 한 종류만이 육상생물로 진화한 계통을 낳았다. 그리고 한참 뒤에 그들로부터 오늘날 다리가 여섯인 곤충들이 다양하게 진화했다.
버지스 표본 가운데 가장 감동적인 것은 척삭동물문(사람과 등뼈를 가진 다른 모든 동물을 포함하는 문)의 최초 구성원으로 알려진 피카이아다.
-228쪽
눈 다섯 달린 생물 궁금해서 찾아봄. 귀여운 오파비니아의 상상도.
찾다 보니 이런 게 있었다.
캄브리아기 화석 봉제인형 전문업체가 있다니 놀랍다. 시리즈 상품들 모두 고퀄로 보임. 생물학 관심 많은 친구가 있다면 선물로 괜찮을 수도. 다만 크기가 40~50cm인 인형들이 그리 귀여울 것 같지는 않음.
(저 업체는 멸종 생물들뿐 아니라 앵무조개 같은 여러 생물종을 ‘아주 리얼하게’ 만든 봉제인형 특화업체;;)
할루시노게니아(라고 책에는 적혀 있지만 Hallucigenia가 맞는 표기인 듯)라는 녀석은 이렇다.
나우시카네 동네에 많았을 것 같은;; 모습이네.
위의 업체가 만든 할루시제니아의 아래와 같음.
책에는 캄브리아기 이전인 7억년 전, 에디아카라 생물들 얘기도 나옴.
에디아카라 생물은 모래 해변의 옅은 바다를 다니며 살았던 젤라틴 모양의 생물체였을 것이다. 어떤 것은 편평하고, 어떤 것은 누비 모양이고 또 일부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생김새였다. 그들은 잎사귀처럼 생긴 프테리디니움에서 팔이 세 개인 트리브라키디움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이었다. 그러나 에디아카라 생물은 단단한 부분이나 알, 정자, 포배를 형성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들은 대형 원생생물이거나 동물, 아니면 둘 다였을지도 모른다.
개중에 일부 큰 생물은 아마도 근해의 연안에서 광합성을 했을 것이다. 다른 것들은 세균을 먹고 살았다. 그들에게 방호 기관이 없다는 것은 아직 포식자가 진화하지 않았음을 말해 준다. 참으로 그곳은 "에디아카라의 낙원”이었다.
초기 해양생물은 조류를 비롯한 원생생물을 먹고 살았을 것이다. 크기도 작았고 적절한 운동성도 있어서 심한 경쟁 없이 먹고 살 만했을 것이다. 동물이 서로 잡아먹기 시작하고서야, 그래서 방어 수단으로 더 크고 단단한 몸체로 진화하고서야 화석상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을 것이다.
-230쪽
'캄브리아기 대폭발'은 뭘 잘 몰랐던 이전 세대 학자들의 감탄사였을 뿐이고. "캄브리아기 화석은 동물 진화를 보여주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그들은 결코 '최초의 동물'이 아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포식자가 없어서 말캉말캉했던 에디아카라의 낙원을 보면
아예 작품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다.
이쁜 말랑이들이 안에는 뼈, 바깥에는 껍질을 만들게 된 이야기.
너무 많은 칼슘이 세포 안으로 들어가면 인산칼슘은 세포 내에서 암석 형태로 침전되어 치명적이 된다. 그리고 돌아다니는 칼슘 원자가 인(인산 형태)과 결합함으로써 DNA와 RNA, 세포막 형성에 필수적인 성분을 세포로부터 빼앗게 된다. 반대로, 잘 조절만 되면 적은 양의 칼슘 이온은 세포의 자원이 될 수도 있다. 동물이 연한 몸이었을 때는 칼슘을 바다로 배출했다. 그러나 캄브리아기가 시작될 무렵 일부 동물이 칼슘 배출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진화를 거치면서 초기 동물은 잠재적으로 위협적인 장애물을 생체 구조물로 바꿔나갔다. 우리의 뼈와 머리뼈는 우리보다 앞선 양서류의 뼈처럼 인산칼슘염으로 구성되어 있다. 산호와 같은 일부 동물은 칼슘과 인산염, 탄산염으로 외부 구조를 만들었다. 다른 생물은 치아 형태로 내부에 칼슘을 축적했다. 유기물 연골 대신, 단단한 인산칼슘이 단백질에 침투하여 근육에 붙어 있는 골격(껍질과 뼈)을 만들어냈다. 일부 캄브리아 생물에서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한 방호기관이 생겨나는 동안, 그 방호기관을 뚫고 들어가기 위해 이빨과 돌출한 부속기관이 진화했다.
-231쪽
그랬구나…
다윈도 경탄했다는 ‘눈’ 역시 갑툭튀가 아님.
다윈은 눈이 "완전함의 극치“라고 했다. 눈은 어떻게 진화했을까? 첫눈에 이 문제는 엄청나게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미생물을 떠올린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시력은 빛에 민감한 세균에서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포유동물의 망막에 있는 ‘시홍’(로돕신)은 색소를 지닌 단백질 복합체이고, 분홍색의 호염성 고세균인 할로박터에도 풍부하게 존재하는데, 둘 다 빛에 민감하다. 시홍의 색소 부분인 레티날은 당근의 카로틴과 비슷한 물질로, 비타민A가 산화되어 만들어진다. 이렇듯 포유동물의 망막에서 빛을 흡수하는 레티날은 35억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쌍편모충류 에리트로디니움은 남세균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색소체를 이용하여 일종의 단세포 눈으로 기능한다. 모조 렌즈와 모조 망막을 가지고 이 원생생물은 작은 몸체의 대부분을 빛에 민감한 초점 장치로 진화시켰다. 초보적인 감각인 빛 민감성은 생명 자체보다 훨씬 앞선다. 이를테면 색을 띤 화합물은 태양의 가시광선에 아주 특이 한 반응을 보인다.
-234쪽
데본기 말에 절지동물, 환형동물, 척삭동물은 혹독한 육상 생활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대표주자들을 진화시켰다. 육상 종의 진화는 단순히 개체와 종 차원의 승리가 아니라 생물권 전체의 승리였다. 운동성과 지능이 있었기에 육상 동물은 매개자와 전달자 역할을 하게 되어 한때 외진 곳이던 지역까지 퍼져나갔다. 신생대 제3기 초기에는 새들이 한정된 자원인 인을 북쪽 호수와 높은 산꼭대기로 옮기기 시작했다.
최근 6,500만 년 동안에는 빠른 반응 시간, 대륙 간 이동, 동물 사회의 복잡한 상호작용으로 인해 생물권 내의 활동이 속도를 더했다. 그러나 신생대 훨씬 이전에도 생명은 지질학적 힘으로 작용했다. 광합성을 하는 남세균은 토양과 모래 속에 수분을 머금었고 엽록소로 지구 표면을 푸르게 만들었다.
-235~236쪽
균류와 지의류(얘네도 대단히 특이하다)를 지나 식물로.
알려져 있는 식물계의 9개 문 가운데에서 꽃을 피우는 문은 하나 뿐이다. 그러나 그 하나의 문이 어찌나 다양한지, 전체 식물 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식물은 육상 최초의 '녹색 불꽃' 생물이 아니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서남쪽 80킬로미터 부근의 암석에는 8억 년 된 화석 토양이 보존되어 있다. 탄소 내용물로 보아 태곳적 광합성 생물의 일종인 것 같다. 애리조나 주 피닉스 북동쪽 130킬로미터 근방에서는 훨씬 더 오래된 화석 토양이 채집되었다. 그 표본은 육상에서 광합성이 12억 년 전 또는 그 전에 남세균에 의해 시작됐다고 보는 가설을 뒷받침한다.
-270쪽
물에서 자유로워지자 육상식물은 자신을 지탱할 내부 수단을 진화시켜, 세균과 조류에서도 발견되는 셀룰로오스 분자로 수압을 이용하는 구조물을 만들었다. 나중에 식물은, 셀룰로오스와 결합하여 건조한 환경에서도 유연하고 튼튼하게 지탱할 수 있는 더욱 강한 물질을 진화시켰다. 리그닌이라는 이 물질은 화학적으로 복잡한 폴리페놀로 나무의 목질을 이룬다. 리그닌 덕분에 수직으로 자라기 시작한 생물권은 생명의 영역을 지면에서 삼차원 공간으로 확대했다. 생물학자 제니퍼 로빈슨은 식물이 리그닌을 진화시킨 후 균류가 리그닌 분해 방법을 진화시키기까지 시간 차가 있었기 때문에 지각에 거대한 석탄층이 남아 있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272쪽
생명을 생물권/인지권이라는 전체적 범주로 보는 시각은 현재와 미래로 확장된다.
그날그날 살아가며 조정하고 배움으로써, 장기간에 걸친 작용과 진화로, 상호작용과 공진화로 원래의 자기 모습을 넘어선다는 의미에서 생명체는 자신을 초월한다. 생명이 우주의 더 큰 영역을 자신의 보금자리로 만들어 간다면 그 과정에서 자신을 어떤 생명으로 만들지 누가 추측이라도 할 수 있을까?
어쩌면 호모 사피엔스도 오늘날 침팬지와 사람만큼 서로 다른 자손 종 둘로 나뉠지도 모른다. 종의 분리가 기술에 의해 더욱 가속화될 수도 있다. 내구력 있는 영구적인 로봇 껍질 속으로 신경계가 통합된 인간의 후손은 행성을 오가는 우주선에 달라붙어 망원경 눈으로 별에서 방출되는 엑스선을 관찰할지도 모른다. 인간에서 진화하는 종들 중 일부는 (유전자 조작으로) 병 인자에서 자유로워지고 정상 지능을 훨씬 능가할 수도 있다. 또 다른 종은 지구보다 중력이 강하거나 약한 행성에 거주하면서 뼈의 질량과 호흡계가 변하고 내장 기관이 재배치되어 몸무게가 극적으로 늘거나 줄 수도 있다.
여러가지 시나리오를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변하든 우리의 계승자들은 과거의 혼적, 즉 우리의 현재를 간직할 것이다.
-296쪽
"인류는 사회를 새로운 차원의 유기체로 바꾸고 있다. 우리 개체군(인류)은 마치 지구 생명체의 뇌나 신경조직인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더 많은 인구가 정착해 살면서 기술로 증대된 우리 인간의 지능은 지구의 일부가 된다. 그리고 지구 전체가 하나의 생명체다."
이거슨… 아서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이 아닌가!
"초인류의 행동 방식은 부분적으로는 점차 팽창하는 지구 자본주의라는 맥락에서 인간이 개인 또는 집단으로 내리는 무수한 경제적 결정의 결과다. 초인류의 경향성이 우리를 초월하는 의식에 의한 것이든 아니든 간에, 지구 인류의 집합체가 예기치 않게 창발적이며 목적이 있는 것 같은 행동을 한다 해도 놀라서는 안 된다. 뇌가 없는 세균이 융합하여 원생생물이 되고, 원생생물이 진화의 시간을 거치면서 복제되고 변화하여 문명을 이루어냈다면, 범지구적으로 통합된 인류로부터는 과연 얼마나 대단한 것이 창발할 것인가?" (318쪽)
아,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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