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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토끼와 반얀트리, 세계의 추석 명절

딸기21 2026. 9. 24. 09:18

추석이다.

가을걷이에 감사하는 전통은 어느 한 나라만의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여러 문화권에 존재한다.

 

중국의 중추절은 음력 8월 15일로 한국의 추석과 날짜가 같다. 가족이 모여 보름달을 보고 월병(月饼)을 나눠 먹는다. 오늘날에는 전통적인 제사보다 가족 모임과 월병 선물, 달 감상, 등불 축제 등이 일반적이다.

대만을 비롯한 중화권도 대체로 비슷하며, 가족과 친구들이 모여 월병을 먹고 보름달을 보는 것이 공통적이다. 유자(柚子)를 먹는 것도 중요한 풍습인데, 유자를 뜻하는 'you'가 '보호하다·축복하다'라는 말과 음이 비슷해서 가족의 보호와 행복을 기원하는 의미라고 한다. 대만에서는 특히 '추석 바비큐'가 유명한데, 가족이나 친구들이 야외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풍습이 현대에 확산된 것이다. 전통적인 달맞이 명절에 현대적인 가족·친구 모임과 야외 바비큐 문화가 결합한 사례라 할 수 있다.

 

홍콩의 중추절은 화려한 등불과 행진이 유명하다. 대표적인 것이 타이항(Tai Hang)의 '불 용춤'으로, 길이 약 67m의 용 모형에 1만2000개의 향을 꽂고 북소리에 맞춰 행진한다. 19세기부터 시작된 행사이며 홍콩의 국가급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즉 한국 같은 가족 행사가 아니라 공공 축제 성격이 강하다.

 

홍콩 타이항 용 행진. www.littlestepsasia.com

 

싱가포르도 비슷해서 월병 축제, 등불 축제가 열린다. 말레이시아에서도 중국계 공동체가 중추절을 기념하는데 'Tanglung Festival', 즉 등불 축제라고도 불린다. 음력 8월 15일에 등불 행렬을 벌이고 월병을 먹으며, 중국 전통의 후예(后羿)와 창어(嫦娥)의 전설을 담은 공연도 열린다.

 

후예와 창어의 전설은 중국 중추절의 유래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신화다.

(어릴 적 계몽사 전집 중국편에서 아주 잼나게 읽은 기억이...)

 

아주 먼 옛날 하늘에는 태양이 여러 개 있었고, 농작물이 말라 죽으며 사람들이 큰 고통을 겪었다. 활을 잘 쏘는 영웅 후예가 나서서 태양을 하나만 남기고 쏘아 떨어뜨려 세상을 구했다. 그 뒤 후예는 서왕모(西王母)에게서 불로장생 약을 얻었다고 한다. 후예는 사랑하는 아내 창어와 함께 살고 싶어서 약을 먹지 않았는데, 어느 날 후예가 집을 비운 사이 창어가 그걸 먹었다. 그러자 몸이 가벼워지면서 하늘로 떠올라 달까지 가버렸다. 그 후 사람들은 보름달을 보며 월궁에 사는 창어를 생각하고 달에 제물을 바쳤다고 한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창어가 약을 훔쳐 달로 갔고, 토끼가 달에서 불로장생약을 빻는다고 돼 있다.

 

태양을 쏘는 후예. WIKIPEDIA

 

한국에서 말하는 달토끼도 중국에서 온 것이라 할 수 있지만, 아시아 여러 곳의 달 숭배 모티프가 합쳐지고 변형된 것으로 봐야 한다.

중국의 설화에서는 창어가 달궁에 살고 옥토끼(玉兔)가 함께 살면서 불로장생 약을 빻는 존재로 그려진다. 한국에서는 '달토끼'가 약을 만드는 토끼가 아니라 '떡방아를 찧는 토끼'다.

 

이 모티프의 더 오래된 뿌리를 보면 불교 설화와도 연결되는데, '사사 자타카(Sasa Jātaka, 토끼 본생담)'라는 인도의 설화가 그것이다. 자타카는 고대 인도 불교에서 전해지는 '부처의 전생 이야기'를 말한다.

 

옛날 어느 숲에 토끼, 원숭이, 자칼, 수달이 친구로 살고 있었다. 네 동물은 보름날이 되면 먹을 것을 다른 사람에게 베풀기로 약속했다. 어느 날 네 동물 앞에 굶주린 수행자가 나타났다. 그에게 주려고 원숭이는 과일을, 수달은 물고기를, 자칼도 먹을 것을 찾아 가져왔다.

그런데 토끼에게는 줄 음식이 없었다. 토끼가 가진 것은 자신의 몸뿐이었다. 자기 몸을 음식으로 주겠다면서 불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그 걸인은 사실 제석천(Indra 또는 Śakra)이었다. 이들의 마음이 정말 선한지 시험하기 위해 걸인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 것이었다. 제석천은 토끼의 희생에 감동해서, 토끼의 선행을 모든 존재가 볼 수 있도록 달에 새겨 넣었다. 여기서 달의 토끼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부처의 전생이다.

즉 불교가 중앙아시아와 중국, 티베트, 한국, 일본 등으로 전파되면서 달 토끼 이야기도 함께 전파됐고, 나라마다 변형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인도 불교의 자기를 희생하는 토끼가 중국에서는 도교 신앙과 결합해 달에서 불로장생 약을 만드는 옥토끼가 됐고, 한국에서는 농경사회 문화와 합쳐져 달에서 떡방아를 찧는 토끼가 됐다.

 

사사 자타카를 묘사한 부조. www.worldhistory.org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도 중추절과 비슷한 명절이 있다. 베트남의 뗏 쭝 투(Tết Trung Thu)는 역시 추석과 같이 매년 음력 8월 보름에 열린다. 조상들에게 감사를 올리기는 하지만 '어린이 축제'라고 불릴 정도로 아이들 중심의 명절이다. 아이들이 별 모양 등불을 들고 행진하고 사자춤을 구경하며 월병을 먹는다.

 

베트남의 추석을 설명할 때는 '꾸오이 이야기'라는 전설을 빼놓을 수 없다.

옛날에 꾸오이라는 나무꾼이 어느 날 숲에서 신비한 반얀나무를 발견했다. 이 나무의 잎이나 가지를 이용하면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 있었다. 꾸오이는 이 나무를 소중하게 돌보며 나무를 이용해 사람들을 살렸다. 그런데 어느 날 반얀나무가 땅에서 뽑혀 하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꾸오이가 나무를 떠오르지 않게 뿌리를 붙잡았다가, 결국 나무와 함께 달까지 올라가 버렸다. 그래서 베트남 사람들은 보름달에 반얀나무 아래 앉아 있는 꾸오이가 보인다고 말한다. 중추절 밤에 아이들이 별 모양의 등불을 들고 다니는 것은 달에 갇힌 꾸오이가 돌아올 수 있도록 길을 밝혀주려는 것이라고 한다.

 

Families pick up lanterns, toys and treats in the alleyways of Ho Chi Minh City's Cholon District. ❘ vietnam.travel

 

일본에는 추석이 따로 없지만, 음력 8월 15일 '주고야(十五夜)'에 달을 감상하는 츠키미(月見) 전통이 있다. 1000년도 더 전에 중국에서 전해진 것으로 여겨지는데, 다만 일본에서는 가족 명절이나 성묘보다는 '계절의 변화와 달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문화'로 발전했다.

한국에 추석 송편이 있다면 일본의 츠키미에는 '츠키미 당고(月見団子)'가 있다. 둥근 흰색 떡을 보름달처럼 쌓아 올려 달에 바친다. 풍요로운 수확을 상징하는 스스키(すすき, 억새)와 함께 호박, 밤, 에다마메 등 가을에 수확되는 농산물도 함께 놓는다. 추석 같은 명절은 아니지만 비슷한 성격을 지닌다. 

 

토끼가 몸을 바쳐 희생한 인도는 어떨까.

사계절이 뚜렷한 온대 기후인 한국 같은 곳에서는 가을걷이를 기념하며 조상에게 감사하는 것이 달맞이 풍습과 결합돼 있지만, 인도에서는 그렇지 않고 다만 가을 보름달을 특별하게 기념하는 전통이 있다. 샤라드 푸르니마(Sharad Purnima) 또는 코자기리(Kojagiri) 축제로, 보름달 아래에서 기도하며 우유나 키르(쌀 푸딩)를 먹는 풍습이다.

 

네팔의 다샤인(Dashain)은 추석과 설날이 합쳐진 듯한 거대한 명절로, 힌두교 최대 명절 가운데 하나다. 고향에 가서 가족과 친척을 만나고 어른에게 축복을 받으며 선물을 나눈다. 특히 중요한 풍습이 '티카(tika)'로, 아이들 이마에 붉은 색소·요구르트·쌀을 섞은 티카를 찍어주며 축복한다. 다샤인의 마지막 날은 보름날에 맞춰지는데 이를 '코자그라트 푸르니마(Kojagrat Purnima)'라고 한다. 연날리기와 마을의 그네 타기도 이 명절의 풍습이다.

올해는 홍수 재난이 커서 네팔 사람들이 명절도 힘들게 보낼 것 같다.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서도 잘 알려진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11월 넷째 목요일에 칠면조를 구워 먹고 퍼레이드를 하는 것이 특징이다. 라이베리아는 해방된 미국 노예 출신들이 세운 나라라는 독특한 역사적 배경으로 미국 추수감사절 전통을 그대로 가져와 매년 11월 첫째 목요일에 기념한다.

캐나다도 비슷한 명절이 있지만 날짜가 다른데, 10월 둘째 월요일이다. 16세기 영국 출신 탐험가 마틴 프로비셔가 캐나다에 도착해 함대의 안전에 감사하며 올린 의식이 북미 최초의 추수감사절이라고 캐나다에서는 말한다.

 

www.barbadosbarbados.com

 

중남미로 가면 바베이도스의 설탕수수 수확제(Crop Over)가 유명하다. 1688년부터 이어진 전통으로, 가장 많이 수확한 남녀에게 왕관을 씌워주고 힘겨루기와 먹기·마시기 대회, 화려한 퍼레이드로 마무리된다. 다만 제국주의 식민지 시절의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역사가 그 안에 새겨져 있다.

유럽에는 독일·스위스·오스트리아 등에 에른테단크페스트(Erntedankfest)라는, 10월 첫째 일요일에 열리는 종교 축제(공휴일은 아님)가 있다. 기독교와 농촌 전통이 결합된 행사로, 교회에서 설교와 찬송으로 시작해 행진을 하고 그해 '수확의 여왕'에게 수확의 왕관을 씌우는 의식을 치른 뒤 음악·춤·불꽃놀이로 마무리된다.

 

중동에서는 이란의 메흐레간(Mehregan)이 10월 초에 열린다. 고대 조로아스터교 전통에 뿌리를 둔 수확 축제로, 현대 달력으로 환산하면 대략 10월 초가 된다. 이 날은 페르시아 서사시 <샤나메>의 영웅 페리둔이 폭군 자하크를 물리치고 왕이 된 날이기도 하다. 그래서 메흐레간은 수확뿐 아니라 '선이 악을 물리친 것'을 기념하는 축제이며, 사과와 석류, 말린 허브, 은화, 유향을 올린 화려한 상차림을 한다.

 

유대교에는 수코트(Sukkot)가 있다. 나뭇가지 따위로 '수카(sukkah)'라는 초막을 짓고 거기서 밥을 먹는다고 해서 '초막절'이라 한다. 그런데 2023년 10월 7일 초막절 기간에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했고, 그 보복으로 3년 동안 가자지구에서 7만명 이상이 살해됐다.

 

종교와 희생과 감사의 의미가 어디로 갔는지 되묻게 되는 추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