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밤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서부를 대대적으로 공습했다.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부 중심도시 르비우 도심도 공격을 받았다. 17세기에 지어진 정교회 건물인 안드레아교회도 타격을 입었다. 교회 옆에는 국립 역사기록보관소가 있고, 12세기 자작나무 껍질에 쓰인 필사본을 비롯해 우크라이나 역사가 담긴 고문서들이 보관돼 있다. 친러시아 언론들은 “외국 용병”들이 기록보관소에 숨어 있었다며 공격을 정당화했다.
1954년 헤이그협약, 1973년 세계유산협약 등은 문화유산이나 문화 기반시설을 공격하는 것을 금하고 있지만 이미 우크라이나 문화재 1700여 개와 문화시설 2500곳 이상이 피해를 입었다. 유네스코는 전문가들을 보내 파괴 상황을 조사하고 보호 조치를 고민 중이다.

인구 72만 명의 르비우는 13세기부터 여러 공국과 왕국들이 터를 잡았던 곳이다. 조약돌이 깔린 중심가에는 르네상스, 바로크, 신고전주의와 아르누보로 이어지는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들이 늘어서 있다. 지난 세기에 유제프 피우수트스키 같은 폴란드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했던 곳, 우크라이나인들이 핍박 속에서도 문화의 꽃을 피웠던 곳. 여러 민족이 섞여 살던 곳이니 복잡한 사정만큼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100년 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쇠락을 면해보고자 이곳을 침략했고, 다시 폴란드가 탈환하는 등 전쟁이 이어졌다.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나치 치하가 됐고 1944년에는 소련군이 들어와 점령했다. 얄타 회담의 지도자들은 리비우를 소련에 병합시켰다. 수십년이 지나 소련은 갈라졌고 1991년 독립 우크라이나 영토가 됐다. 긴 세월 도시의 이름은 레오폴리스, 르보프, 렘베르크, 르비우 등으로 바뀌어가며 불렸다. 독일이 점령하자 유대인들이 떠났고, 소련에 병합되자 폴란드인들이 떠나고 러시아인들이 밀려들었다.
소련 시절 르비우는 TV와 버스를 생산하는 제조업 중심지였다. 우크라이나인들의 반소련 정서와 민족주의, 이를 억누르려는 연방당국의 ‘러시아화’가 맞부딪친 곳이기도 했다. 1989년 9월 르비우에는 10만 명이 모여 독립을 요구했다. 독립한 뒤에는 문화 중심지이자 국가 엘리트들을 많이 배출한 정치 중심지였다. 러시아 침공 후에는 난민들이 폴란드로 가는 중간 기착지이자, 무기와 인도적 지원물자가 우크라이나로 공급되는 통로가 됐다.
3월 공격으로 19세기에 지어진 르비우의 옛 교도소 건물도 일부 부서졌다. 소련이 반체제 인사들을 가뒀던 곳인데 독립 뒤 ‘점령정권 희생자 추모관’으로 쓰이고 있었다. 우크라이나의 한 정치인은 페이스북에 “지난 세기 모스크바가 저지른 범죄의 증인인 창문들은 산산조각이 됐지만 기억은 조각날 수 없다. 우리는 그 시대의 모든 범죄를 기억하며, 지금 자행되고 있는 범죄 또한 잊지 않을 것”이라고 썼다.

위협받고 있는 것은 여기만이 아니다. 지난해 6월 러시아의 야간공격으로 키이우 구시가지 성소피아 대성당 외벽 일부가 무너졌다. 흰 성당과 녹색 지붕, 황금 돔을 가진 성당은 우크라이나를 상징하는 곳이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우리 정체성의 핵심을 공격한 것”이라고 했다. 2023년 7월에는 흑해의 항구도시 오데사도 공격을 받아 정교회 성당과 역사적인 건물들 수십채가 피해를 입었다.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오데사 공격을 규탄하며 하루 두 차례 성명을 냈고 전문가 그룹을 급파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은 군사적 전쟁, 그리고 역사와 기억의 전쟁이다. 작년 10월 우크라이나언론 수스필네는 구글 위성사진을 이용해, 러시아에 점령된 동부 도시 마리우폴이 어떻게 ‘러시아화’되고 있는지 분석했다. 2022년 3월 주민들은 도시를 대표하는 문화시설인 드라마극장에 대피했다가 러시아군 공습을 받았고, 수백 명이 떼죽음을 당했다. 러시아는 전쟁범죄 증거를 지우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복구 전문가를 보내 극장을 새로 꾸몄다. 마리우폴의 또 다른 역사적인 건물 ‘타루타의 집’은 러시아 점령당국이 쓰고 있고, 19세기 말 건축된 콘티넨탈 호텔은 플라스틱 창문이 달린 낯선 모습으로 바뀌었다.
민속생활박물관은 마리우폴 태생의 초창기 소련 지도자 안드레이 즈다노프의 이름을 딴 박물관이 됐다. 즈다노프 사무실을 재현해놓고 러시아군 장비와 로켓 잔해들을 전시하며 이번 침공을 1943년 ‘나치로부터의 해방’과 연결지었다.
독일 학자 토마스 페처와 이반 니콜로프스키는 지난해 10월 러-우 전쟁이 국제 정치에서 ‘집단기억(collective memory)’의 역할을 새롭게 부각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기억의 서사는 모든 전쟁에 존재하며, 시대의 흐름과 늘 연결돼 있다. 두 차례 세계대전과 제국주의의 시대가 끝난 뒤 특히 유럽국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집단기억들은 ‘후회의 정치’ ‘사과의 시대’ ‘미안해하는 국가들’ 같은 형태로 표현됐다. 국가와 사회가 대량학살과 인권침해에 결부된 어두운 과거를 인정하고 극복하면서, 피해자를 기리고 악행의 재발을 막자는 것이 핵심이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와 ‘도덕적 기억’을 수정하는 움직임이 강해졌다. 일본의 우경화, 독일의 네오나치, 미국 ‘남부 인종주의자’들의 반격이 그런 예다.

학자들은 미국이 주도한 대테러전쟁, 특히 이라크 전쟁이 전 지구적인 인권 의제를 실추시킨 것이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은 집단기억에서 도덕적인 평가를 지우고 자국 중심적인 ‘기억의 정치’로 재구성하는 것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제국주의적인 ‘문명권 구상’과 유라시아주의를 추구하는 러시아가 전쟁을 개시하면서 ‘우크라이나의 탈나치화’를 내세운 것은 바로 그런 ‘기억적 반동(mnemonic backlash)’의 대표적인 사례다.
우크라이나 학자 올렉시 리온추크는 지난해 초 ‘역사와 기억’ 잡지 기고에서 러시아가 집단기억을 변형시키는 방식을 설명했다. ‘하나의 민족’과 ‘공동의 유산’을 강조하는 러시아의 주장은 특히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집권 이후 크게 강화됐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선 러시아가 역사적 성취를 빼앗아가고 기억을 왜곡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러시아는 제국의 기원을 중세 키이우의 통치자들과 연결시키지만 그것이 우크라이나라는 민족의 존재와 국가 주권을 부인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으며 심지어 역사적 사실조차 논란거리다. 이번 전쟁을 계기로 우크라이나의 반러 감정을 설명하기 위해 종종 이야기되는 1930년대의 대기근(홀로도모르)에 대해, 러시아는 여전히 소련의 잘못을 부인한다. 러시아군은 이번 침공 뒤 점령지 곡물을 가져가 빈국들에게 팔고 있는데 우크라이나인들은 그걸 보면서 집집마다 전해져오는 트라우마로 남은 대기근을 떠올린다.
또한 러시아의 ‘기억 정책’은 연방 내 여러 민족의 진정한 역사를 위한 연구를 돕는 게 아니라, 소련의 범죄나 러시아 국가의 정치노선과 맞지 않는 역사적 사실들을 지우는 작업이었다고 리온추크는 주장한다. 이를 테면 러시아는 1940년대 ‘대조국전쟁’의 승리를 강조하지만 실상 그것은 스탈린 체제의 실패가 결합된 비극이기도 했다. 그런데 푸틴이 집권한 뒤 스탈린의 이미지가 복권됐고, 유능한 통치자로 묘사된다. 2010년 푸틴은 “붉은 군대는 우크라이나가 없었어도 나치를 물리쳤을 것”이라면서 마치 러시아 민족만의 승리인 양 묘사했고, 우크라이나를 ‘나치 협력자’로 비난했다.
러시아의 집단기억은 잃어버린 강대국 지위에 대한 향수, 자신들을 곤란하게 만든 서구에 대한 보복 심리와 겹쳐지며 전쟁의 한 부분이 됐다. 우크라이나에서는 그에 대응해, 러시아를 나치 독일에 비유하는 ‘라시즘(rashism)’, ‘러치아(Ruzzia)’ 등의 신조어와 ‘푸틀러(Putler)’ 같은 밈들이 퍼졌다. 이미 2014년 동부 지역이 러시아 영향권에 들어간 이후로 우크라이나에서는 러시아식 지명을 고치고 러시아 유산과 거리를 두는 조치들이 줄을 이었다. 소련에 속해 있던 기억은 탈공산화, 탈러시아화를 넘어 반제국주의와 결합된 ‘탈식민화’ 담론과 합쳐지고 있다.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리투아니아 등 소련에서 독립한 발트3국에서는 스탈린주의 피해자들을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기억을 둘러싼 전쟁이 진행 중이다. 반면에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에서는 서구 식민주의에 대한 역사적 불만과 냉전 시기 소련의 지원이라는 기억이 결합되면서 오히려 러시아에 공명하는 흐름도 적지 않다. 러-우 전쟁이 세계 전체에서 역사적 기억을 둘러싼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나라마다 다르게 진행되는 복잡한 기억 정치의 공통점이 있다면, 윤리적 잣대가 공히 약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집단기억은 도덕성이 제거된 채로 전쟁의 도구가 된다. 기억의 무기화에 맞선 기억이라는 방패의 싸움을 말하는 이들도 있다. 러시아에 점령됐다가 우크라이나군이 탈환한 소도시 이지움의 박물관 풍경을 영국 가디언이 얼마전 보도했다. 공습으로 유령 건물이 돼버린 박물관에서, 남아 있는 직원들은 러시아군 군복과 군용식량, 집속탄 조각 등등 이번 전쟁의 흔적들을 모으고 있다. 박물관 측은 “우리는 기억을 보존하고 고정하려 한다. 전쟁 전 도시의 모습과 현재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고 밝힌다. 향토사박물관이던 건물은 이렇게 ‘점령박물관’으로 바뀌고 있다. 이 기억의 전쟁 속에서, 승자는 누구일까.
참고문헌
https://amp.dw.com/en/russian-attack-on-world-heritage-sites-in-ukrainian-city-of-lviv-causes-uproar/a-76568784
https://www.unesco.org/en/articles/endangered-heritage-ukraine-unesco-reinforces-protective-measures
https://www.atlanticcouncil.org/blogs/ukrainealert/russia-bombs-unesco-site-as-putin-escalates-attacks-on-ukrainian-civilians/
https://en.wikipedia.org/wiki/Lviv
https://www.reuters.com/world/europe/russian-attack-damages-kyivs-world-heritage-cathedral-says-culture-minister-2025-06-10/
https://www.unesco.org/en/culture-emergencies/heritage-emergency-fund/unesco-international-expert-mission-assess-damage-cultural-and-religious-sites-odesa
https://suspilne.media/1150546-google-updated-satellite-images-mariupol-russia-changing-citys-civilian-infrastructure/
https://doi.org/10.1093/isagsq/ksaf109
https://neweasterneurope.eu/2025/02/28/memory-politics-in-ukraine-and-russia-as-a-component-of-modern-warfare/
'딸기가 보는 세상 >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창비주간논평] 나치가 되어가는 이스라엘,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할까 (1) | 2025.09.23 |
|---|---|
| 키세스 시위대와 남성 청년들의 극우화 (2) | 2025.02.03 |
| [관훈저널] 전쟁의 시대, 기자의 역할 (5) | 2024.09.25 |
| [바람과 물] 니켈과 기후협약, 2024년 세계 선거와 기후 정치 (2) | 2024.04.26 |
| [기자협회보] 2024년, 미국과 아시아의 선택은 (0) | 2023.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