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내전이 한창일 때, 지금은 쫓겨난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수도 다마스쿠스 외곽의 한 지역을 봉쇄했다. 전쟁 중에 정부군이 구호차량 드나드는 것조차 막으니, 고립된 마을에서 사람들이 굶주림에 시달렸다. 아직 돌도 안 지난 것으로 보이는 아기의 사진이 용케 외신을 타고 전송됐다. 바짝 말라 죽어가는 아이의 모습은 너무 충격적이었다. 소말리아나 수단, 사하라 사막지대 중부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영양실조나 식량 부족이 계속되고 있지만 시리아 상황은 극단적이었다. 지구상에 먹을 게 없어서가 아니라, 먹을 것을 내주려는 사람들이 없어서가 아니라, 무력을 내세운 집단이 막고 있어서 굶는 사람들. 21세기의 굶주림은 대체로 그런 것이다. 예외가 있다면, 2021년 유엔이 ‘세계 최초의 기후변화 기근’이라 했던 마다가스카르 남부의 굶주림 정도다.
시리아 아기 사진을 보면서 몸서리를 쳤는데, 지금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경악스럽다. 뼈만 남은 아이, “힘이 없어 더 이상 소식을 전할 수 없다, 나는 죽어가고 있다”고 호소한 언론인, 먹을 것을 구하려다 이스라엘군과 미국 보안업체 직원들 총에 맞아 목숨을 잃는 사람들. 세계 식량 수급상황을 취합하는 ‘통합 식량안보 단계 분류(IPC)’는 8월 22일 가자지구의 5개 행정구역 중 한 곳, 가자시티를 포함한 지역에서 기근이 발생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이미 “인구의 100%가 높은 수준의 급성 식량 불안”을 겪고 있는데 9월 중에는 거의 모든 지역이 ‘5단계’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IPC 분류를 보면 1단계 ‘정상’, 2단계 ‘경고’, 3단계 ‘위기’, 4단계 ‘비상’, 그리고 5단계가 ‘기근(Famine)’이다. 210만명에 이르는 가자지구 주민 모두가 3단계 상황이고 64만명은 이미 기근 상태다.

숫자로만 보면 굶주림이 어떤 것인지 잘 와닿지 않는다. 국제앰네스티가 가자 사람들의 증언을 모아 공개했다. “4월 말부터 젖이 줄었다. 가족들이 매일 먹는 음식은 렌즈콩이나 가지, 물 한 접시이고 아이들은 배고파 울며 잠든다.” “굶어서 약해진 아들은 걷다가 넘어지곤 한다. 엄마로서 실패한 것 같다. 아이들이 굶으니 내가 나쁜 엄마인 것처럼 느껴진다.”(여성 S) “당뇨병, 혈압, 심장질환 약이 필요한데 유통기한 지난 약밖에 없다. 살아야 할 자격이 있는 건 아이들, 내 손주들이다. 가족에게 짐이 된 것 같다.”(75세 아지자)
66세 나헤드는 “구호품 수송로에서 벌어지는 식량 쟁탈전은 사람들의 인간성을 빼앗고 있다”고 말한다. “피로 얼룩진 밀가루 자루를 나르는 사람들을 봤다. 제가 알던 사람들조차 못알아볼 정도로 변했다.” 이스라엘은 가자를 봉쇄한 뒤 ‘가자 인도주의 재단(GHF)’이라는 기구를 군 산하에 만들었다. 5월 말부터 국제기구 접근을 막으면서 이 재단에 식량 배급을 전담하게 했다. 식량을 받겠다고 몰려든 사람들을 향해, 이스라엘군은 질서유지를 핑계로 총을 쏜다. 그렇게 학살당한 사람이 이미 7월까지 1000명이 넘었다. 이스라엘군이 2023년 10월 시작된 이 전쟁에서 살해한 팔레스타인 사람은 9월 초 기준으로 6만5000명에 이른다.
이태 전 동유럽을 여행하면서 폴란드의 아우슈비츠에 갔다. 여권을 보여주고 공식 가이드의 안내 속에 단체로 움직여야만 하는 견학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지금은 폴란드식 지명인 오슈비엥침으로 바뀌었고, 아우슈비츠라는 이름은 홀로코스트 기념관의 명칭으로만 남아 있다.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글귀가 방문객들을 맞았다. 강제노동을 위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을 ‘절멸’시키기 위해 특별히 만든 수용소에 ‘자유’를 내건 학살자들. 이미 홀로코스트에 대해선 숱하게 글로 봐왔기에 알만큼 안다고 생각했건만, 역사의 무게를 미처 깨닫지 못했던 나의 오만이었다. 망자들의 인권을 생각해 외부에 이미지를 공개하지 않고 방문객들도 사진을 찍지 못하게 된 방들이 있다. 그 중 한 곳에서 나는 공황장애를 겪었다. 숨을 쉴 수 없었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폭력은 대체 어디까지인가. 그 공간에서 느낀 공포와 충격을 나는 지금도 스스로에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인류가 영원히 풀 수 없는 난제인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비춰볼 거울은 없었지만 우리의 모습은 우리 앞에 서 있는 100여 개의 창백한 얼굴들 속에, 초라하고 지저분한 100여명의 꼭두각시들 속에 반사되어 있다. 이제 우리는 어젯밤에 얼핏 본 그 유령들로 변해 있었다. 우리는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밑으로는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었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작가 프리모 레비는 <이것이 인간인가>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탈리아 학자 조르조 아감벤의 책 <아우슈비츠의 남은 자들>에는 또 다른 증언이 나온다. 수용소에 갇힌 이들은 기력을 잃고 영혼까지 빠져나간 듯 무기력해진 이들을 ‘무젤만’, 즉 ‘이슬람교도’라 불렀다 한다. 무슬림들이 기도 때 고개를 숙이듯 몸을 수그리고 다니는 유령같은 이들에게 그런 별명이 붙었다. 지금 이스라엘인들은 가자의 무슬림들을 ‘무젤만’들로 만들고 있다. 아감벤은 아우슈비츠의 무젤만을 가리켜 “증언할 수 없는 것, 증언되지 않은 것”이라 표현했다. 아감벤이 지적한 철학적 측면과는 좀 다르겠지만, 가자의 기자들은 사살당하고 있으며 가자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봉쇄 속에 목소리를 빼앗겼다.
이스라엘은 가자 사람들을 가자지구 안에서도 좁다란 곳에 모두 몰아넣고 나머지 땅을 점령하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8월부터 중심도시인 가자시티 점령 작업에 들어갔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가자지구 점령을 계속 유지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무장조직 하마스를 무력화한 뒤 “아랍세력에게 넘길” 계획임을 시사했다. 동시에 네타냐후 정권은 팔레스타인의 또다른 영토인 요르단강 서안지구 땅을 빼앗아 유대인 점령촌들을 계속 짓고 있다.
네타냐후는 자국 언론 인터뷰에서 “대(大)이스라엘 구상”을 지지한다고 했다. 이스라엘 극우파가 주장해온 ‘대이스라엘 구상’은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 레바논 일부, 시리아와 이집트와 요르단의 일부 지역까지 자신들 땅으로 삼아야 한다는 팽창주의 비전을 가리킨다. 이슬람협력기구와 아랍연맹 등은 공동성명을 내고 “국제법과 안정적인 국제관계의 기반을 무시하고 노골적으로 위반하는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아랍권에서는 나치가 중동부 유럽을 게르만 생활권으로 삼겠다며 전쟁을 벌였던 것을 연상케 한다는, 이스라엘판 ‘레벤스라움(생활권) 구상’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이미 지난해 1월 세계식량계획(WFP) 수석경제학자 아리프 후사인은 “세계에서 IPC 5단계에 처한 사람의 80%가 가자지구 사람들”이라고 했다. 기아를 무기화하는 것은 전쟁범죄다. 작년 11월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 와 전 국방장관 요아브 갈란트에 대해 "전쟁 수단으로서의 기아라는 전쟁 범죄"에 대한 형사 책임을 져야 한다며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국제기구들과 학자들은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이 인종, 민족, 언어, 문화 등의 정체성을 기준으로 한 집단을 제거하는 ‘제노사이드’라고 규정했다. 저것이 제노사이드가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
[UN] A genocide is unfolding before our eyes
가자지구를 기근으로 몰아넣는 것은 이스라엘의 의도된 공격행위다. ‘철저히 계획된 빈곤화’는 실상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장기간에 걸친 정책이었다. 1967년 점령 이후 반세기 넘도록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서안지구와 떨어진 고립된 지역으로, 자립할 수 없는 지역으로 만들어 빈곤을 강요했다. 점령군은 2005년 철수했지만 이스라엘의 봉쇄로 인해 가자지구는 상투적인 표현을 빌면 ‘세상에서 가장 큰 감옥’이 됐고 주민들은 구호기구 도움 없이는 살아가지 못하는 상태가 돼버렸다. 의도적으로 가자 사람들을 굶주리게 만들고 도망쳐 나가게 해서 인구를 줄이는 이스라엘의 행위들은 2023년 시작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 이뤄져온 행위다. 건국 직후인 1950년대에 이스라엘은 ‘기본 필수품에 대한 접근’을 체계적으로 무기화하고, 이를 이용해 인구이동을 유발하는 작전을 세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랍인들은 아랍국으로 가라, 가자지구에는 유대인이 살아야 한다”는 유대 민족주의자들의 노골적인 주장은 더 이상 극소수의 미친 소리가 아닌 것으로 되어가고 있다.

“우리 주위에서 조금 조금씩 자라나던 그 끔찍한 것들에 관해서 생각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무의식 중에 감사해 하고 있었습니다. 굳이 생각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미국 학자 밀턴 마이어는 2차 대전이 끝나고 오래 지나지 않은 1950년대 독일을 방문해 ‘나치였던’ 사람들을 찾아간다. 그들에게 히틀러에 대해, 홀로코스트에 대해 묻는다. 그들을 만난 뒤 마이어가 펴낸 책의 제목은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다. 네타냐후는 “이스라엘의 목표는 가자지구를 갖는 게 아니라 하마스로부터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아우슈비츠 정문에 적힌 자유, 마이어가 만난 독일인들의 자유, 네타냐후가 말하는 자유. 전쟁과 학살과 굶주림과 점령을 자유라는 거짓 이름이 뒤덮고 있다.
우리는 과연 무죄일까. 이미 ‘파이브 아이즈’ 국가들도 팔레스타인을 독립국으로 인정했다. 한국은? 이스라엘 ‘아이언돔’을 구매해야 한다며 판을 깔던 언론들이 떠오른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팔며 학살자들을 편든다. 이스라엘과의 협력을 논하는 것 자체가 반인도범죄에 동참하는 행위가 되어가고 있다.
Do Israelis Think They Are Free?
In 2014, during the height of the Syrian civil war, the now-deposed regime of Bashar al-Assad blockaded an area on the outskirts of Damascus. People in the isolated village starved. Images of emaciated infants, shriveled before their first birthday, shocked the world. They did not starve because there was no food on Earth, or because no one was willing to share, but because armed groups enforced the blockade. Hunger in the 21st century is, for the most part, similar to that. The only real exception might be the famine in southern Madagascar in 2021, which the United Nations called “the world’s first climate-change-induced famine.”
What is happening now in the Gaza Strip is horrifying. Children reduced to skin and bones, journalists saying, “I can no longer report because I have no strength left—I am dying,” people shot dead by Israeli soldiers and American private security contractors as they tried to fetch food. On August 22, the IPC (Integrated Food Security Phase Classification), which monitors global food supply situations, declared that famine had already broken out in parts of Gaza. “One hundred percent of the 2.1 million population is experiencing high levels of acute food insecurity,” it reported, and nearly all areas will reach Phase 5 by September.
According to IPC classification, Phase 1 is “Normal,” Phase 2 is “Stressed,” Phase 3 is “Crisis,” Phase 4 is “Emergency,” and Phase 5 is “Famine.” Already in January of last year, Arif Husain, Chief Economist at the World Food Programme (WFP), said, “80% of all people worldwide in IPC Phase 5 are Gazans.”
Numbers alone can feel abstract. Amnesty International has published testimonies from Gazans:
“From late April, my breastmilk decreased. Every day, my family’s meals are a dish of lentils or eggplant and some water. The children cry themselves to sleep hungry. My son, weakened by hunger, stumbles and falls when he walks. I feel like I’ve failed as a mother. Because my children are starving, I feel like a bad mother.” (S, female)
“I need medicine for diabetes, blood pressure, and heart disease, but only expired pills are available. My children, my grandchildren, must live. I feel like a burden to my family.” (Aziza, 75)
Nahed, age 66, said: “The food fights along the aid routes are stripping people of their humanity. I saw people carrying sacks of flour stained with blood. Even people I used to know have changed beyond recognition.”
After blockading Gaza, Israel established the “Gaza Humanitarian Foundation” (GHF) under military control, assigning it to distribute food. Then, under the pretext of “maintaining order,” they opened fire on the crowds seeking aid. By July, over a thousand people had already been massacred this way. Since the war began in October 2023, Israeli forces have killed 65,000 Palestinians as of early September.
Two years ago, while traveling in Eastern Europe, I visited Auschwitz in Poland. The town has returned to its Polish name, Oświęcim; “Auschwitz” remains only as the memorial’s title. The infamous sign, “Arbeit macht frei” (“Work will set you free”), greeted visitors. Though I thought I had read enough about the Holocaust, in one room where photography was forbidden, I felt as if I were having a panic attack—I could not breathe. How far can human violence against other humans go?
“Our faces reflected in a hundred other gaunt, pale faces, in a hundred pitiful marionettes. We had become the ghosts glimpsed the night before. We were at the bottom; there was nowhere further down to fall.”
So wrote Primo Levi, a survivor of Auschwitz, in If This Is a Man.
Italian scholar Giorgio Agamben’s Remnants of Auschwitz contains another testimony: the utterly weakened prisoners, drained of life, were called Muselmann (“Muslim”), because they shuffled about with bowed heads, like Muslims in prayer. Today, Israelis are turning Gaza’s Muslims into Muselmann.
Since August, Israel has been advancing on Gaza City, the enclave’s central hub. Prime Minister Netanyahu has hinted at plans to “hand Gaza over to Arab powers” after neutralizing Hamas. At the same time, his government continues seizing land in the West Bank and building Jewish settlements.
In an interview with Israeli media, Netanyahu openly endorsed the vision of “Greater Israel.” Advocated by Israel’s far-right, this expansionist plan envisions annexing the West Bank, Gaza, parts of Lebanon, and areas of Syria, Egypt, and Jordan.
The Organization of Islamic Cooperation and the Arab League jointly condemned these statements as “a blatant violation of international law and the foundations of stable international relations.” Some critics liken this to Israel’s version of Lebensraum, Nazi Germany’s doctrine of “living space” that justified conquest in Eastern Europe.
Weaponizing starvation is a war crime. In November last year, the International Criminal Court (ICC) issued arrest warrants for Netanyahu and former Defense Minister Yoav Gallant, charging them with the war crime of using starvation as a method of warfare. International organizations and scholars have classified Israel’s actions in Gaza as “genocide”—the destruction of a group based on identity markers such as race, ethnicity, language, or culture.
Even before famine, Israel’s long-standing policy toward Gaza was one of “deliberately engineered impoverishment.” Since occupying the territory in 1967, Israel has spent more than half a century isolating Gaza, ensuring it could never be self-sufficient. Even after the 2005 withdrawal, Israel’s blockade left residents dependent on aid to survive.
Israel’s deliberate acts—starving Gazans, forcing them to flee, reducing their population—did not begin in 2023, but have unfolded over many decades.
“We had no time to think about the monstrous things that grew around us, little by little. We were unconsciously grateful. Who in the world would want to think about such things?”
So wrote American scholar Milton Mayer after visiting Germany in the 1950s. He interviewed former Nazis, asking their views of Hitler and the Holocaust. His book was titled They Thought They Were Free.
Netanyahu has said, “Israel’s goal is not to seize Gaza, but to free it from Hamas.” The “freedom” inscribed at Auschwitz’s gates, the “freedom” spoken of by Mayer’s Germans, the “freedom” Netanyahu claims today—war, massacre, starvation, and occupation are cloaked under the false name of free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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