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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비너스' 앨리슨 래퍼 인터뷰

딸기21 2006. 4. 12.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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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비너스'.

영국의 구족(口足) 화가 겸 사진작가 앨리슨 래퍼(41)는 스스로를 `현대의 비너스'라 부른다. 래퍼의 사진 작품이나 영국 런던 시내 중심가에 세워졌다는 그의 동상을 본 이들은 모두 래퍼를 `밀로의 비너스'에 비유하는 데에 동의할 것 같다. 래퍼는 팔이 없고 다리도 일부분 밖에 남지 않은 장애인이다. 날 때부터 치명적일 수 있었던 장애를 안고 태어난 그는 그러나 지금 세계가 주목하는 예술가가 되어 있다.

장애인의 달인 4월을 맞아 래퍼가 한국에 온다. `혼혈 스타' 하인스 워드의 방한이 한국인들에게 혼혈 문제를 다시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면, 팔다리 없는 예술가 래퍼의 방문은 장애인들의 현실을 돌아보고 장애인-비장애인의 장벽을 허물 계기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오는 28일 경기 파주 영어마을에서 열릴 `영 챌린저 포럼' 강연을 위해 방한할 예정인 래퍼는 11일 딸기와의 단독 이메일 인터뷰에서 "고구려 벽화에서 현대미술까지 한국 예술에 매력을 느낀다"며 "다이내믹 코리아의 젊은이들과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2005년11월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휠체어를 타고 월드어워드 시상식장에 들어서는 래퍼(사진: 월드어워드 홈페이지)

[다음은 래퍼와의 인터뷰 내용]

-한국을 방문하게 된 소감은.

"아시아 국가를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아시아가 문화적, 경제적으로  극적이고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한국에서 가능한 많은 것을 경험하고, 느끼고 싶다. 어릴 때부터 나는 낯선 곳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이번 한국 방문도 흥미진진한 모험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장애를 딛고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일궈내기까지,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인가.

"장애인에 대한 전반적 편견 때문에 내 작품이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였다. 사람들은 장애인들이 아무 일도 잘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장애인은 세상에서 중요한 어떤 목소리를 가졌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예술가로서 나는 점점 유명세를 얻어가고 있는데도 여전히 예술계 언저리에 있다고 느끼게 된다. 그런 현실이 힘들게 느껴지곤 했다."

-홈페이지를 통해 작품들을 봤다. 주로 당신의 몸을 이용해 작업을 했는데, 사진 촬영은 어떤 방식으로 하고 있나. 작업에서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는 부분이 있는지.

"내 스튜디오에서 사진작가와 함께 일을 한다. 사진작가는 내가 내 생각과 비전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사진작가가 나를 모델로 찍도록 하는 작업이 아닐 때에는 특수 제작된 컴퓨터로 혼자 일한다."

-혼자 아들을 키우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이 있다면.

"나는 항상 아들을 내 집에서, 다른 엄마들과 똑같이 키워야 한다고 다짐하곤 한다. 하지만 어려움도 많다. 내 주변에는 날 도와주는 의료진을 비롯해 전문가들이 있지만 사람들은 내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한다. 지방정부는 내가 아이를 제대로 키우는지 관찰하고 보호한다. 내가 아이를 잘 키우지 못하면 언제라도 아이는 정부 보육시설로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점을 나도 잘 알고 있다. 혹시라도 그런 일이 생길까 항상 두렵지만, 한 아이의 엄마가 되려는 내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 결혼에서 남편의 폭력 때문에 이혼을 했다고 들었다. 가정폭력을 막기 위한 국제앰네스티 전시회에도 출품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가정 폭력이 장애인이고 여성인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

"결혼 생활 동안 항상 육체적으로 폭력에 시달렸고, 너무나 공포에 질리고 두려웠다. 어느 사회에서나 여성과 아이들에 대한 폭력이 존재하지만 가정폭력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균형 잡히고 조화로운 사회를 가꾸기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임신한 당신을 묘사한 조각상이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까지 세워졌는데, 당신이 살고 있는 영국 사회에서 당신의 존재가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나.

"런던의 조각상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장벽이 많이 깨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그 조각상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말한다. 아마 실제 조각상을 보기 전에는 장애인을 묘사한 그 조각이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치 못했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조각상의 모습을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예상보다 훨씬 적었다. 그 조각상이 여성과 같은 소수자의 사회적 수용과 평등을 상징하는 21세기의 한 아이콘이 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내가 세상을 위해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기쁘고 자랑스럽다."

-이번 한국 방문에서 한국 젊은이들을 상대로 연설할 내용을 간단히 소개해 달라.

"나는 한국의 대학생들과 젊은이들이 매우 진취적이고 다이내믹 코리아를 창조해가는 주인공들이라고 알고 있다. 이들 젊은이들에게 용기와 격려가 되고 싶다. 나처럼 극한상황에 처한 사람도 무엇인가를 열심히 갈구하고 최선의 노력으로 나름의 세계를 구축하는데, 대학생들과 젊은이들이 못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따지고 보면 인간은 누구나 한군데 이상의 장애를 갖고 있다. 육체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사람은 모두가 불완전한 존재로서 약간씩은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육체적인 장애인은 물론이고, 정신적·지적·현실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좌절감을 느끼는 한국의 모든 젊은이들에게 `나를 보라'고 말하고 싶다. 이번 영 챌린저 포럼에서 젊은이들에게 도전정신을 고취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헤이리 예술마을에서 전시회를 한다고 들었는데, 전시하게 될 작품들도 소개해 달라.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이래 내 예술세계는 내 몸을 탐험하고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른 무언가를 발견해내는 것에 집중돼 있었다.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을 바라보는 방식을 알아보고 싶었고, 타인의 시선 때문에 생기는 두려움과 편견을 해소하고 싶었다. 그것이 힘든 과정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심각하게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보통 사람들과 다르게 보이는 (장애인의) 신체들을 밝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 작업이다. 사람들이 내 작품을 보고 스스로의 느낌과 기분을 생각해볼 기회를 주고 싶고, 좀더 편하고 평화롭게 장애인을 바라볼 수 있게 됐으면 한다. 나는 잘 웃는다. 유머감각이 내게 주어진 큰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내 작품도 그런 감정들을 표현하고 있다. 관객들도 함께 즐길 수 있길 바란다.

한국과 한국 예술의 매력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현대미술가 김범과 최정화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한국 예술에서는 오랜 전통과 현대성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영국 이외의 국가에서 본격적인 작품전을 여는 것은 처음인데 한국에서 그 기회를 갖게 돼 매우 흥분된다."


-작년 11월 `월드어워드 여성 성취상' 수상을 통해 한국에서도 당신을 아는 이들이 늘었다. 한국 팬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한국을 방문하게 된 것은 큰 영광이다. 동서양 문화와 역사의 상호교류는 지난 세기의 가장 큰 성과 중의 하나였다. 나 자신이 지금도 진행 중인 그런 상호교류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은 큰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내 미술 작업과 나의 일상생활에도 한국 방문 경험이 소중한 자산이 될 것으로 믿는다. 아직 한국에 가지는 안지만 벌써부터 나를 환영하는 한국인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나를 초청해준 경기 영어마을에 감사를 드린다."


[래퍼의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사진작품 몇 점]










■ 래퍼는 누구인가

앨리슨 래퍼는 입으로 그림을 그리고 스스로의 나신(裸身)을 찍는 화가 겸 사진작가다. 1965년 팔·다리가 없거나 일부분 밖에 없는 단지증(短枝症)을 안고 태어났다. 바다표범처럼 사지가 짧다고 해서 해표지증(Phocomelia)이라고도 불리는 이 질병은 임신부가 수면제 등 약물에 중독됐을 때 태아에게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천적 신체 결함을 가진 래퍼는 생후 6주 만에 거리에 버려졌고, 보호시설에서 자라났다.

22살 때 결혼한 래퍼는 가정폭력에 시달리다가 아홉 달 만에 남편과 헤어졌다. 이후 장애인 구호기관의 지원을 받아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다. 해덜리 미술학교와 브라이튼 대학에서 어릴 적부터 관심을 갖고 있던 미술공부를 하고 예술가로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그의 대표작들은 자신의 벗은 몸을 모노톤 화면에 사진으로 담은 것들로, 신체적 이상을 적극적으로 예술의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영국 언론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특히 빛과 그림자를 이용해 조각 같은 영상을 만들어냄으로써 인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는 점, 장애인의 몸도 비장애인의 몸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울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의 작품들은 2000년 런던에서 열린 밀레니엄 전시회에 영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로 전시되기도 했다. 영국 가디언지 등은 "신체 결함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화시켰다"고 래퍼의 작품세계를 평가했다. 래퍼는 2년 전 임신해 아들 패리스를 낳았으며, 현재 서섹스에 거주하면서 아들을 키우고 있다. 당시 의료진은 "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날 수 있다"며 만류했지만 그는 출산을 고집했다. 작년 9월 조각가 마크 퀸이 만삭의 래퍼를 모델로 삼아 만든 `임신한 앨리슨 래퍼'라는 5m 높이의 조각 작품이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설치됐다. 이 작품으로 래퍼는 `모델'로도 유명해졌다.

젊은 나이에 장애와 폭력, 이혼, 출산이라는 과정을 겪은 래퍼는 자서전 `내 손 안의 인생(My Life in My Hands)'과 홈페이지 등을 통해 장애인 문제를 부각시켰고, 가정폭력을 막기 위한 캠페인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지난해 11월에는 노벨평화상 수상자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러시아대통령 등이 설립한 월드어워드 여성성취상을 받아 세계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