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구정은의 '현실지구'

[구정은의 ‘현실지구‘] 시리아 난민들은 ‘활기찬 나비‘가 될 수 있을까

딸기21 2024. 11. 2.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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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E51이라는 온라인 쇼핑몰 사이트에 들어가면 예쁜 공예품들이 올라와 있다. 곧 다가올 연말을 앞두고 내놓은 ‘홀리데이 컬렉션’ 가운데 ‘시리아 트리오’라는 상품을 골랐다. 5만4000원짜리 장식물 세트에는 세 가지 물건이 들어 있다. ‘활기찬 나비’라는 이름의 자수 제품, 실을 엮어 만든 ‘용감한 따오기’와 ‘기발한 고양이’. ‘하모니 트리오’는 금속으로 된 별에 매듭을 단 ‘별똥별’이라는 작품과 직물 공예품인 ‘노래하는 예쁜 새’, ‘빛나는 고리들’이라는 고리 모양의 장신구로 구성돼 있다.
 

https://made51.org

 
크리스마스나 연말연시 장식용, 혹은 선물용으로 딱 좋을 것 같은 이 물건들 말고도 쇼핑몰에선 온갖 종류의 수공예품을 판다. MADE51이 여느 쇼핑몰과 다른 점이 있다면 유엔 웹사이트와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파는 물건들은 모두 난민이 제작했다. ‘활기찬 나비’는 레바논에 사는 시리아 난민이 만들었다. 자수로 된 나비는 ‘변화와 재탄생’을 뜻한다. ‘용감한 따오기’는 터키에 체류하는 시리아 난민 여성들이 만들었다. 따오기는 고대 이집트에서 지식의 신으로 숭배했던 토트 신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모티브이며, 시리아를 상징하는 새이기도 하다. ‘기발한 고양이’는 아르메니아에 있는 시리아 난민의 솜씨다.
 
하모니 트리오의 별똥별은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지대의 부르키나파소에 사는 말리 난민이 제작했다. ‘푸른 옷의 사람들’로 서구에 알려진 이 지역 소수민족 투아레그 장인들의 금속 가공기술을 보여주는 공예품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노래하는 예쁜 새’는 태국에 있는 미얀마 카렌족 난민이, ‘빛나는 고리들’은 인도로 쫓겨간 미얀마 로힝야족 여성들이 만들었다. “투아레그 장인의 고급 세공품부터 시리아인들의 섬세한 자수까지, 기회만 주어진다면 난민들은 장인 정신을 발휘해 경제적 독립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사이트에 적힌 글이다. MADE51은 ‘난민에 관한 글로벌 콤팩트(Global Compact on Refugees)’라는 협약을 바탕으로 출범했고 “세계 최초로 난민들의 생산품을 위한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히고 있다. MADE51이란 명칭은 ‘시장 접근, 디자인, 권한 부여 (Market Access, Design and Empowerment)’라는 단어들의 머릿글자와 유엔난민협약이 채택된 1951년의 숫자의 조합에서 나왔다.
 

 
난민들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일까? 아니면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 남의 나라로 왔지만 스스로 일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일까? 도움도 받아야 하고, 일을 해서 살 길을 찾기도 해야 한다. 난민들 중에는 유엔난민기구에 등록해 ‘캠프’로 불리는 단체 수용소에서 머물며 세계의 인도적 지원에 의존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도시 주민들과 섞여 살면서 허드렛일을 하거나 비공식 경제에서 돈을 버는 사람들도 있다. 실은 후자가 훨씬 많다. 그것이 현실이지만, 난민이 일을 하는 것을 꺼리는 나라들도 많다. 저임금 일자리를 놓고 자기네 국민들과 경쟁하는 상황이 돼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제적으로 고향을 떠나야 했던 세계 사람들 중에 ‘장기 난민 상태(PRS)’에 있는 이들이 1600만명에 이른다. 유엔난민기구는 2만5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한 국가 안에 5년 이상 머물러야 하는 상황을 장기 난민 상태로 분류한다. 시리아 난민들만 해도 내전이 발생한지 10년이 되도록 아직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이들이 많다. 인도적 지원은 줄어들고, 집으로 돌아갈 날은 멀어 보이고. 그들이 자립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 글로벌 콤팩트다.
 
[세계은행]The Economic Impacts of the Syrian Refugee Migration on Jordan: a Trade Perspective

 
출발점은 요르단의 난민촌이었다. 시리아 난민들이 가장 많이 간 나라 중의 하나가 인접한 요르단이었고, 요르단 북부 사막지대에 자타리 난민촌 등 거대한 천막촌들이 생겨났다. 2024년 현재까지도 요르단에는 약 130만 명의 시리아인이 거주하고 있고 그 가운데 약 67만 명이 난민으로 등록돼 있다. 일부는 자타리나 아즈라크 같은 캠프에 거주하지만 80% 이상이 암만, 이르비드, 마프락 등의 도시에 살고 있다. 흔히들 이들을 ‘캠프 난민’ ‘도시 난민’ 등으로 구분해 부르기도 한다.
 

유엔난민기구 Jordan: Zaatari Camp Factsheet (2024)

 
요르단 정부의 방침은 처음엔 ‘격리’였다. 혹여 시리아 난민들이 분란을 일으킬까,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판칠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난민들의 노동도 금지했고 요르단인들과 섞여 일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난민 체류는 점점 길어졌고 국제사회의 지원도 모자랐다. 
 
2015년 이른바 ‘유럽 난민 사태’가 일어났다. 시리아 난민들이 유럽으로 이동해 간 것이다. 지구 상의 난민들은 대부분 분쟁 지역의 이웃나라, 대체로 개발도상국에 체류한다. 유럽 난민 사태의 특징은 말 그대로 난민들이 유럽으로 향했다는 것이었다. 유럽은 깜짝 놀랐고, 독일이 나서서 난민을 받자고 했다가 거센 역풍에 부딪쳤고, 부랴부랴 난민 대책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유럽의 빗장을 걸어 잠그려면 난민들이 시리아 주변에 머물다가 시리아로 다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영국 총리가 2015년 9월 요르단과 레바논을 찾아가 난민들이 요르단에서 먹고살게 해줄 방안을 논의했다. 이듬해 1월 기업인들과 국가 지도자들의 모임인 세계경제포럼(WEF, 다보스포럼)에서 요르단의 라니아 왕비가 “수익 몇푼을 담요를 사서 보내는 데에 쓰는 게 아니라 난민을 글로벌 공급망에 통합해 활용하는 것이 난민에 대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내용으로 연설을 했다. 그래서 요르단 컴팩트라는 협약이 탄생했다. 잘 사는 나라들, 유럽국가들이 20억 달러를 요르단에 지원하고 투자하는 대신에 요르단은 시리아 난민들에게 취업허가를 내준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5개의 경제특구를 요르단에 만들어 취업을 시켜주자고 했다.
 

 
영국은 요르단 정부와 협약의 세부사항을 다듬었고, 시범사업을 추진할 파트너십을 맺었다. 세계은행은 대출 형태로 금융지원을 해줬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유럽연합이 난민들을 고용한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의 세금을 낮추거나 없애주는 양허관세를 약속한 것이었다. 시리아인들이 생산하는 의류 부문이 우선적인 양허 대상이 됐다. 캠프 밖에서 난민들이 일하게 하자는 것을 핵심으로 국가들과 국제기구와 기업들이 손을 잡는 민-관 협력 모델이 만들어졌다.
 
요르단과 유럽 양쪽의 필요가 맞아 떨어진 것이기도 했다. 요르단은 중동의 안정된 왕국이지만 북쪽의 시리아, 동쪽의 이라크, 서쪽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등 시끄러운 이웃들을 두고 있다. 위치가 이렇다 보니 늘 고래 싸움에 등 터질까 조심하며 줄타기 외교를 하고 난민들을 껴안으며 살아가야 한다. 경제적으로는 지난해 1인당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1만3000달러 정도인 중위 소득국이다. 유럽 시장을 상대로 제조업을 키우고 싶어하는 요르단에는 난민들이 저임금 노동력 풀이 될 수 있고, 거기에다 유럽연합의 특전까지 받으면 더 유리해진다.
 
유엔난민기구 Jordan: Zaatari Camp Factsheet (2024)
 
유럽은 난민들이 시리아 주변에서 살 길을 찾을 수 있게 되니 좋다. 내전이 끝난 뒤 시리아의 재건을 생각해도, 난민들이 이웃나라에 머물면서 경제적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있는 편이 낫다. 난민들이 자립을 하면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 부담도 줄어든다. 난민들의 자립을 도울 때 오히려 귀환도 빨라지고 자기네 나라로 돌아간 뒤의 복구 또한 빨라진다는 연구 사례들도 있다. 요르단 협약을 만드는 데에 관여한 영국의 난민 전문가 알렉산더 베츠와 개발경제학자 폴 콜리어는 “인도주의적인 측면만 강조한 접근방식에서 일자리와 교육을 핵심으로 하는 ‘개발’ 접근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들은 남한 자본을 활용해 북한 노동자를 고용한 개성공단, 경제특구가 된 필리핀 바탄의 난민센터 등을 비슷한 사례로 언급하기도 했다.
 

한때 18만명이 살았고 지금도 7만8000명이 머물고 있는 요르단 북부의 자타리 난민캠프. AP

 
요르단 협약은 유엔 차원의 난민 협약으로 확대됐다. 2016년 9월 유엔 총회 때 난민 정상회의가 열렸고 ‘난민과 이주민을 위한 뉴욕 선언’이 나왔다. 정상회의 이후 2년 동안 각국과 이해당사자들 간의 협의와 협상을 거쳐 2018년 12월 글로벌 컴팩트 협약이 성사됐다. 요르단을 비롯한 몇몇 나라들은 난민 정책을 바꿔 일정한 숫자의 노동허가증을 발급했다. 요르단의 경우 시리아 난민에게 18개 경제특구에서 일할 수 있는 권리를 줬고, 요르단에서 난민들이 생산한 상품은 유럽연합이 특혜 무역접근권을 부여하기로 했다. 특혜를 받으려면 참여하는 기업이 직원 중 15% 이상을 시리아 난민으로 고용해야 한다는 조항을 뒀다.
 
계획은 원대했는데, 실제 성과는 어땠을까. 요르단 정부와 유럽연합과 세계은행 모두 약속을 이행했지만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취업허가를 받은 난민은 9만명에 이르렀지만 그들 앞에 놓인 일자리 선택지는 주로 의류공장이었다. 여성 노동자 수요가 대부분이었으나 난민 여성들이 경제특구에 일하러 가는 게 현실적으로 힘든 경우가 많았다. 의류공장에 가기보다는 차라리 도시에서 난민 남성이 건설 일을 하거나 여성들이 서비스업종에 종사하는 편이 벌이도 더 나았다. 어떤 이들은 협약을 통해 일자리를 얻었고, 시장과 연결해 난민들의 자립을 돕는 모델이 퍼지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었다. 난민들을 ‘희생자’나 수동적인 존재, 혹은 ‘위험 요인’으로만 보는 시각을 넘어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동반자로 볼 수 있게 해준 것도 큰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뿌리 뽑힌 이들이 다시 삶의 경로를 찾는 과정은 협약으로만 정해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는 점 또한 확인시켜줬다. ‘지속 가능한 난민 솔루션’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 것인가를 세계는 다시 배웠다.
 

Syrian President Bashar al-Assad holds talks with Jordanian Foreign Minister Ayman al-Safadi in Damascus on 6th October 2024. (SANA)

 
이달 7일 아이만 사파디 요르단 외교장관은 현지언론에 따르면 ‘예고 없이’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를 찾아가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에게 압둘라2세 요르단 국왕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요지는 빨리 난민들을 돌려보낼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사파디 장관은 2주 뒤 다시 다마스쿠스를 방문했고, 알아사드 대통령으로부터 “난민들을 귀환시킬 법적 환경을 만드는 데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는 답변을 받았다. 내전 기간 자국민들을 학살한 아사드 대통령은 “난민의 안전한 귀환이 시리아 정부의 최우선 과제”라고 했지만, 요르단과 시리아 간 ‘난민 귀환’ 협상이 본격화하자 요르단에 있는 시리아 난민들은 불안감에 떨고 있다고 한다.
 
‘난민 사태’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 세계에는 고통받는 난민들이 더 많이 늘어났다. 우크라이나인들이 대거 피란을 떠나야 했고, 이미 난민이었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공격 앞에서 “광범위한 황폐화와 궁핍”을 겪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말이다. 조이스 음수야 유엔 인도주의 담당 사무차장은 가자 북부 주민 전체가 “죽음의 위험에 처해 있다”고까지 표현했다. 전쟁이 전쟁을 덮고, 참상이 참상을 덮는다. 새로운 고통은 오래된 고통에서 세상이 눈을 돌리게 만든다. 하지만 점점 잊혀져가는 시리아 난민들은 지금도 분투 중이다. 그들이 활기찬 나비처럼, 용감한 따오기처럼, 기발한 고양이처럼 세상에 다시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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