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천막 안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비좁다. 천막마다 여성과 아이들, 노인과 환자들 380명이 뒤섞여 산다. 잠은 14명씩 무리지어진 구획 안에서 잔다. 독신 남성은 담요나 문조차 없이 지내곤 한다. 사생활은 고사하고 개인 소지품을 둘 곳조차 마땅치 않다. 이층 침대 사이의 복도는 너무 좁아서 두 사람이 동시에 지나가기도 힘들다. 기침하는 사람, 우는 아이, 여기저기서 울려대는 전화. 잠을 푹 잔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 텐트 안에는 쥐와 해충들이 많아 수시로 감염이 일어나고 수두와 홍역이 창궐하고 있다.
아프리카나 아시아 저개발국의 슬럼가나 난민촌 풍경이 아니다. 지난달 말 독일 슈피겔이 전한 베를린의 테겔 난민캠프 풍경이다. QR코드를 목에 건 ‘승객’들이 융페른하이데(Jungfernheide) 역에서 특별 버스를 타고와 테겔의 ‘우크라이나 도착 센터’에 내리면 여러 나라 말로 쓰여진 환영 메시지가 그들을 맞는다. 우크라이나를 떠난 난민의 90%가 여성과 아이들이다. 머물 곳과 일자리, 아이들을 보낼 학교를 찾으려는 그들을 맨 먼저 맞는 곳이 테겔의 도착센터다.
원래 이 시설의 이름은 ‘테겔 오토 릴리엔탈 공항’이었다. 세계 최초의 비행기 제작사를 만든 ‘항공의 아버지’ 오토 릴리엔탈의 이름을 딴 이 공항은 베를린 도심에서 북서쪽으로 8킬로미터 떨어진 라이니켄도르프의 테겔에 위치하고 있다. 열린 광장 주변에 육각형 모양의 메인 터미널 건물이 있는데 1948년에 지어졌다. 냉전 초기 소련의 서베를린 봉쇄에 맞선 서방의 ‘베를린 공수작전’이 이곳에서 벌어졌다. 동서 갈등의 시대에 테겔은 서베를린과 서독을 연결하는 통로였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에도 30년 동안 ‘통일 수도’의 관문 역할을 했다. 그러나 브란덴부르크 신공항의 개장과 함께 2020년 11월 공항으로서 테겔의 수명은 끝났다.
당초 베를린 주 정부는 문 닫은 공항을 랜드마크로 유지하면서 첨단과학 연구기지로 재개발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 번지면서 낡은 터미널 건물은 백신 접종센터로 쓰이게 됐다. 그러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났다. 테겔은 난민들의 피난처가 됐고 45개의 대형 천막이 터미널을 에워쌌다.
우크라이나에서 외국으로 탈출한 사람들은 줄잡아 800만명에 이르렀다. 그 중 상당수는 자기네 나라로 돌아갔거나, 여러 나라로 흩어져 살 곳을 찾았다. 베를린 당국은 난민들이 몸을 씻고 잠을 자고 다음 행로를 준비하면서 잠시 거쳐가는 곳으로 테겔의 시설을 마련했다. 하지만 2년 반이 지나면서 이제는 독일의 난민 대응을 상징하는 곳이 돼버렸다. 여전히 러시아에 우호적인 좌파로부터는 ‘우익 극단주의자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대한 지원을 상징하는 곳’이라는 비난을 받고, 난민에 반대하는 우익들로부터는 ‘극단주의자들이 판치는 곳’이라는 소리를 듣는 곳이 된 것이다.
난민들은 행정절차가 끝나면 도착센터를 떠나 독일 곳곳으로 흩어지게 돼 있지만 테겔 캠프에 있는 이들의 평균 체류기간은 200일이고 어떤 이들은 1년이 넘는다. 우크라이나인들 뿐 아니라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에서 온 난민들도 중간 기착지로 생각한 이곳을 떠나지 못한 채 끊임없는 감시 속에 살아가고 있다. 출입을 하려면 QR 코드를 목에 걸고 다녀야 하고, 천막에 들어가고 나갈 때마다 ‘스캔’을 당한다. 무작위 가방 검사, 출석 확인, 침대 뒤지기는 기본이다.
캠프 곳곳에는 ‘여가 활동’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다. 요가, 아침 운동, 피아노 레슨, 축구와 농구, 수학과 물리학, 라틴댄스, 힙합…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스포츠용 천막은 비어 있다. 또 다른 스포츠홀은 잠겨 있다. ‘도서관’이라 적힌 컨테이너 안에는 안내원과 난민 세 명이 있지만 비치된 책은 독일어로 된 것 뿐이고 책을 읽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재봉틀은 닫혀 있고 아무도 수공예품을 만들지 않으며, 스포츠 코스도 운영되지 않는다. 힙합도, 서커스도 없다. 사실 이곳 사람들은 힙합이나 서커스 수업에 관심이 없을지도 모른다.”(슈피겔)
가끔은 손님이 오기도 한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물론이고 영국의 찰스3세 국왕, 일바 요한손 유럽연합(EU) 내무담당 집행위원 등이 이곳을 찾았다. 위탁운영을 하는 베를린 적십자사는 “빠른 기간 안에 테겔은 모범 시설이 됐다”고 자찬했지만 예약을 받고 주 난민사무국(LAF)의 안내 하에 돌아봐야 하는 이곳은 난민 관리의 ‘포촘킨 마을’에 가깝다. 러시아 예카테리나 여제 시절 포촘킨 장군이 ‘마치 모든 게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려고 만들었다는 가짜 마을처럼 말이다.
난민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기약 없는 기다림이다. 이민국이나 직업센터와의 면담까지 몇 달이 걸린다. 거주허가나 취업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관리들은 전쟁통에 가지고 나올 수 없었던 수많은 서류를 요구한다. 올 3월에 천막 하나에서 불이 났다. 공개된 내부 영상에는 겁에질려 뛰어다니는 사람들, 침대 칸막이에서 타오르는 불길, 소화기를 들고 선 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경비원 등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그대로 담겼다. 거기 머물렀던 난민들은 출생증명서와 여권, 그리고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잃었다. 반년이 넘도록 화재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더러운 샤워실, 배설물로 막힌 화장실, 직접 요리를 할 수도 없고 뭔가를 데울 수도 없어서 배급을 받아야만 하는 음식들. 이런 캠프를 운영하는 데에 매년 거의 5억 유로, 현재 수용 중인 5000명의 난민 한 명당 하루에 약 250유로가 나간다. 이유는 하청, 재하청 구조에 있다. 베를린 주 난민사무국은 2022년 독일적십자사와 계약을 맺고 캠프 운영을 맡겼다. 입찰 없이 계약을 따낸 적십자사에 당국이 올해 내준 돈만 2억1600만유로다. 부지 임대료, 보안 비용, 대형 텐트 45개의 임대와 운영비용 등이 합쳐진 액수다. 제곱미터당 200유로의 운영비를 주는데 물과 전기와 난방은 포함시키지도 않았다.
적십자사는 소규모 구호단체들에 일부 임무를 맡기고, 보안과 운영은 메세베를린(Messe Berlin)에 넘겼다. 메세베를린은 무역박람회를 운영하는 회사다. 코로나19 기간에 베를린의 이벤트 업체나 공연업체에서 일하던 이들이 대거 일자리를 잃었는데 메세베를린은 그들을 난민 캠프에고용했다. 직업을 찾은 이들에겐 다행스런 일이었겠지만 그 결과 난민 캠프 직원들 중에 난민과 관련된 일을 해본 사람들은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메세베를린은 텐트 임대와 보안업무로 난민 캠프에서 돈을 번다. 2019년 50만 유로 적자를 봤던 회사가 작년에는 750만 유로의 이익을 거뒀다. 정작 업무의 질은 형편없다. 난민들의 가장 큰 불만 중의 하나가 보안직원들의 인종주의적인 태도였다. 심지어 보안직원들 중에는 이슬람주의자들도 있다. 지난해 시리아에서 온 쿠르드족 난민을 보안직원이 공격한 사건이 보고됐다. 몇몇 보안직원들이 극단조직 ‘이슬람국가(IS)’의 구호를 외쳤다는 증언이 나왔다.
관리가 안 되는 이유도 하청 구조에 있다. 보안 예산은 2022년 4300만 유로에서 올해 8500만 유로로 늘었다. 수용인원을 더 늘릴 계획이어서 추가로 4600만 유로가 할당됐으니 올해 보안 예산은 1억3100만 유로에 이른다. 메세베를린은 이 돈을 받고 팀플렉스라는 회사에 경비업무를 아웃소싱했다. 팀플렉스는 수익이 10배 이상으로 늘었지만 이 회사가 파견한 보안직원들은 저임금 이주노동자이거나 취업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고 상당수는 독일어조차 못한다. 하청에서 재하청으로 이어지는 고리마다 지역 보안업체나 메세베를린과 연결된 전직 공무원들의 네트워크가 있다. 독일인들은 ‘우리 세금을 난민들에게 쓴다’고 반발하지만 실상은 그 중 많은 액수가 지방정부와 결탁한 기업들에게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 자료를 보면 2023년 12월 말 기준으로 독일에서 100만 명이 넘는 우크라이나 난민이 임시 보호 등록을 했다. 망명신청 건수는 연간 35만2000명이었고 난민이나 보호대상자로 결정된 비율은 68.6%였다. 다른 나라를 거쳐온 이들의 ‘재정착’도 지난해 6500명에 이르렀고 비슷한 수가 올해에도 독일에 터를 잡게 된다. 그뿐 아니라 독일은 작년에 4억3600만달러를 유엔난민기구에 기부한 주요 기부국이다. 2010년대 중반 이른바 '시리아 난민 사태'가 벌어졌을 때 독일은 유럽연합의 난민정책을 주도하며 수용 시스템을 정비했다. 아프간에서 탈레반이 2021년 재집권하고 이듬해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면서 난민이 또 한 차례 급증했다. 2022년 독일의 대도시에 테겔 캠프 같은 긴급보호소들이 다시 세워졌다.
[Asylum Information Database] TYPES OF ACCOMMODATION Germany
난민이나 망명신청자를 위한 재정은 일차적으로 지방정부의 책임이지만 연방정부도 돈을 낸다. 지난해 연방정부가 난민을 위해 쓴 돈은 28억 유로였다. 500명도 안 되는 예멘 난민 앞에서 우왕좌왕했던 한국에 비하면, 난민을 받아들인 역사가 긴 독일은 정교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난민들이 독일에 들어가면 먼저 초기접수센터에서 보호 신청을 한 뒤 최대 2년 동안 머물며 절차가 끝나기를 기다린다. 16개 연방 주마다 최소 1개 이상, 전국에 58개의 센터가 있다. 올초 초기접수센터 중 일부는 전국 12개 도착센터와 3개 앙커(AnkER)센터에 합쳐졌다. 도착센터에서는 난민들에게 ‘패스트트랙’ 절차를 적용해주기로 했지만 센터의 운영이나 절차가 법규로 정해져 있지는 않다. 앙커센터는 난민 수용 절차를 통합하기 위해서 2021년부터 만들어졌고 현재 바이에른, 작센, 자를란트 등 9개 주에서 운영되고 있다.
[독일 연방 이민-난민국(BAMF)] Arrival centres and AnkER facilities
망명을 신청한 이들은 정해진 지역에 일정 기간 머물러야 한다. 초기접수센터에서의 적응 기간이 끝난 난민은 접수센터가 있는 주의 공동수용센터(Gemeinschaftsunterkünfte)에 보내진다. 공동 숙소 중에 어떤 곳은 30명, 어떤 곳은 수백 명을 수용한다. 시설의 질도 천차만별이다. 마당이 딸린 신축건물일 수도 있지만, 낡은 건물에서 너댓명이 한 방에 자야 하는 경우도 있다. 숙소를 운영하는 기관이 시민단체일 수도 있고 시설관리업체일 수도 있다. 바이에른이나 함부르크 등에서는 임시 보호를 받는 난민이나 망명신청자들이 공동 숙소에 살지만 라인란트팔츠나 니더작센에서는 주로 개인 아파트들 같은 ‘분산형 숙소’에 머문다.
[UNHCR] Germany Fact Sheet February 2024
난민들의 삶은 늘 ‘임시’ 취급을 받지만 그들을 받아들이고 돌보고 사회에 적응하게 하는 것은 장기적인 과제다. 테겔에서 보이듯이 난민 캠프에 머무는 것부터 ‘장기화’되기 일쑤다. 당장의 이슈가 그들이 살 곳, 집 문제다. 언제까지 천막촌에 머물게 할 수 없으니 베를린 주 정부는 샤를로텐부르크-빌머스도르프(Charlottenburg-Wilmersdorf) 지구의 사무실 단지를 난민용으로 개조할 계획을 세웠다. 2만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이곳은 고급 빌라와 대사관 블록들이 있는 부촌이다. 거기에 난민 1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숙박시설을 만든다. 지난달 도이체벨레 보도를 보면 주민들의 반응은 갈린다. “그렇게 많은 난민들을 한 곳에 살게 하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흩어져 살게 하는 것이 맞다”는 사람도 있고 “난민 시설의 운영계약을 맺은 업자들을 믿을 수 없다, 1500명을 들여놓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공항이든 사무실 단지든 어차피 일시적인 거주지일 뿐이다. 그곳들을 떠나도 삶은 쉽지 않다. 독일 연방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베를린의 주민은 378만명이다. 작년에 망명신청자 약 1만7000명, 우크라이나 난민 약 1만5000명이 더 들어왔다. 난민들 중에는 임대료가 싼 집을 찾지 못해 공동시설에 머무는 사람들이 꽤 된다. 아이가 있는 난민들은 집을 찾기가 더 힘들다. 베를린은 가뜩이나 주택난이 심각한 곳이다. 주 주택국은 저소득층과 중산층 주택 수요를 생각하면 현재 10만 채가 더 필요하다고 추정한다. 2040년까지 베를린으로 들어올 사람들을 계산하면 거기에 20만명이 살 집을 더해야 한다.
주 의회는 주 난민국이 직접 관리하는 시설을 만들기로 결정하면서, 일단 테겔 캠프의 수용인원을 늘리고 내년 말까지 운영을 연장하기로 했다. 2022년 7월 900명이 사는 텐트로 시작된 테겔 캠프는 석달 만에 수용 인원이 1900명으로 늘었다. 현재 5000명인 테겔의 주민은 내년에는 8000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 해가 지나면 상황이 달라질까? 최근 작센, 튀링겐, 브란덴부르크 3개 주 선거에서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득세하는 등 반이민, 반난민 정서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테겔의 난민들은 나갈 곳을 찾을 수 있을까.
'딸기가 보는 세상 > 구정은의 '현실지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정은의 ‘현실지구‘] 시리아 난민들은 ‘활기찬 나비‘가 될 수 있을까 (4) | 2024.11.02 |
---|---|
[구정은의 ‘현실지구‘] 리비아의 무덤들, '정의가 없는 평화는 없다' (0) | 2024.09.07 |
[구정은의 ‘현실지구‘] 올림픽 난민팀의 태권도 선수들 (0) | 2024.08.10 |
[구정은의 ‘현실지구‘] 고릴라와 피그미 (15) | 2024.07.13 |
[구정은의 ‘현실지구‘]이스라엘에 맞장뜬 섬나라…몰디브로 본 인도양의 세계사 (0) | 2024.0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