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중순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아랍에미리트(UAE)의 아부다비와 두바이.
아랍에미리트는 나라 구조가 특이하다. 군주, 우두머리를 가리키는 emir에 접미사가 붙은 ‘에미리트’들, 즉 7개의 왕국들이 합쳐진 일종의 연방국가다. 그래서 각각이 어느 정도 독립적이고, 국가 이름 대신에 국제뉴스에서 그 중 큰 아부다비나 두바이가 주어가 될 때가 많다.
이 지역에 따로따로 존재했던 이 ‘아랍 토후국’들은 1853년 영국과 ‘영구 해상 휴전협정(PMT)'을 맺고 위임 통치를 받게 됐으며 1892년에는 영국의 보호령으로 들어갔다. 식민통치와는 다른, 영국의 군사력에 기댄 보호령이었다. 그 이후로 부족국가들은 ‘휴전국 회의’라는 것을 만들어 내부 협력을 유지했다.
그러다 1968년 힘 떨어지고 이미 제국이 다 해체된 영국이 이 지역에서도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에미리트들은 발등의 불이 떨어진 꼴이 됐다. 주변에 사우디아라비아나 이란 같은 큰 나라들이 호시탐탐 노릴 지 모르는데 영국이 갑자기 떠난다고 하니까 이 작은 왕국들은 불안해진 거다. 그래서 아부다비와 두바이 지도자가 사막 중간 지점에서 만났다. 카타르와 바레인을 포함해서, 아라비아반도 9개 작은 왕국들이 합치자… 이것이 두 지도자의 구상이었으나 카타르와 바레인은 떨어져나가 각기 독립된 왕국들이 됐고 1971년 12월 아부다비, 아지만, 두바이, 알푸자이라, 샤르자, 움알쿠와인의 6개 에미리트가 모여 UAE를 만들었다. 이듬해 라스알카이마가 들어와서 7개 에미리트로 구성된 나라가 됐다.
여러 왕국들이 있는데 통치는 어떻게 하느냐. 7개 에미리트를 6개 가문이 지배한다.
아부다비- 나흐얀(알 팔라시 가문의 분파)
두바이- 막툼(알 팔라시 가문의 분파)
샤르자/라스알카이마- 알 카시미
아즈만 -알 누아이미
알쿠와인- 알 무알라
푸자이라 -알 샤르키
7개 에미리트의 지도자들로 구성된 연방 최고위원회가 일종의 최고권력기구다.
연방 정부업무 아닌 것들은 개별 에미리트가 알아서 한다. 그리고 각 에미리트 수입의 일정 비율을 중앙 예산에 할당한다. 군주가 전권을 갖지만 연방 차원에는 다른 나라처럼 대통령과 총리가 있다. 그래서 반(半)입헌군주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선거가 없는 나라에서, 아부다비를 지배하는 나흐얀 가문의 수장이 대통령을 맡고 두바이 지도자인 막툼 가문의 수장이 총리를 맡는다. 아부다비가 가장 힘이 세니까… 라고 말하기엔, 사실 에미리트 땅(83,600 km2)의 87%가 아부다비(67,340km2)이고 다른 나라들은 도시 국가 수준이다. 석유 천연가스 등 에너지 자원도 거의 아부다비가 가지고 있다.
아부다비 지도자는 누구일까.
사우디 실권자는 무하마드 빈 살만, 살만 국왕의 아들.이다. 아부다비 지배자도 무하마드, 두바이 지배자도 무하마드.
중학생 때였나, <아이잭 애시모프의 거짓말 같은 진짜 이야기>라는 게 소년OO일보에 연재됐다. 거기서 본 내용 중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름은 무하마드다"라는 게 있었다. 너무 오래 전 얘기이고 정말인지 알 수도 없지만 무하마드가 많기는 많은 듯하다.
그래서 누구네집 아들인지, 누구네 무하마드인지 뒤에 붙인다.
사우디 왕세자는 무하마드 빈살만 MBS
아부다비 지배자는 자이드 아들, MBZ
두바이 지배자는 라시드네 아들, MBR
(이쯤에서 질문이 나올 법하다. 만수르는 대체 누구인가? 만수르 빈 자이드 빈 술탄 알 나흐얀, 아랍에미리트의 현 부통령 겸 부총리다. 아부다비 통치자 MBZ의 동생이다. 동시에 두바이 통치자의 사위다. 두바이 통치자인 MBR 딸하고 결혼했다. 한국에선 맨체스터시티 소유주로 유명하지만 UAE 국부펀드도 2개 운영 중인 바쁜 분이다;;)
아부다비 지배자 MBZ는 중동에서 현재 사우디 MBS와 함께 막강한 지도자로 꼽힌다. MBZ는 초대 지도자 자예드의 셋째 아들로 아부다비에서 공부하고 영국 샌드허스트 사관학교를 졸업했다. UAE 공군에서 조종사도 했다. 아버지 자이드가 아부다비의 기틀을 닦았고 이어서 형 칼리파가 물려받았고, 2022년 형이 사망하면서 MBZ가 3대째 지도자가 됐다. 사실 형 칼리파가 건강이 안 좋았기 때문에 2014년부터 MBZ가 실질적인 통치자였다.
MBZ 하의 UAE를 ‘권위주의적 자본주의 국가’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다. 일단 경제 자유화가 눈에 띈다. 규제 풀고 외국 투자 유치하고. 아주 공격적인 경제성장 정책을 펼쳤다. 그 전까지 세금제도나 경제 관련 법규들이 정교하지 못했던 것도 다듬었다. 이를테면 부가가치세를 도입하거나 법인세를 낮추고 파산법을 정비했다. 자국 기업에 대한 외국인 소유권 제한을 뒀는데 그것도 없앴다. 형법에서 체벌이나 샤리아법, 즉 전통 이슬람법 요인들을 제거했다. 물론 개인 사생활 영역엔 남아 있지만, 한마디로 사회경제 전반에서 '현대화'를 한 거다. 개인 생활 영역에도 어느 정도 자유를 줬고. 물론 민주주의와는 전~혀 거리가 멀지만 말이다.
암튼 아부다비, 두바이를 쌍두마차로 UAE 경제는 엄청나게 커졌다. MBZ가 사실상 지배자가 된 다음에 국제무대에서 UAE의 위상도 많이 높아졌다. 2019년 뉴욕 타임즈는 그를 “가장 강력한 아랍 통치자”로 꼽았고, 이제는 주간 잡지도 못 내 '올해의 인물' 뽑는 거에만 매진하고 있는 듯한 시사잡지 타임도 같은 해 그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명으로 뽑았다.
2020년에는 이스라엘하고 전격적으로 손을 잡았다. 그해 9월에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주도한 이스라엘과 아랍의 화해 협정, 이른바 ‘아브라함 협정’에 서명한 것이다. UAE는 이슬람 국가이긴 하지만 MBZ는 이슬람 민중 조직인 무슬림 형제단(원래 이집트에서 출발했는데 아랍권 전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을 극도로 싫어한다고 한다. 호르무즈 해협 건너 코앞에 있는 이란도 격하게 싫어한다. 이제 중동에서 이데올로기적인 문제(즉 팔레스타인 형제들에 대한 대의)가 중요하던 시절은 갔다, 경제가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거기까지만 하면 좋은데, 나쁜 짓도 많이 했다. 예를 들어 2015년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이 예멘을 침공한 게 대표적이다. 그동안 무기를 그렇게 사들였는데 작전은 형편없었고 명분도 없는 침공이었다. 사우디가 하자 해서 했는데 예멘 사람들만 희생시키고(그 여파로 한국에도 예멘 난민들이 왔고) 잘 안 되니까 에미리트가 그냥 발을 빼버렸다. 그 뒤로 걸프 맏형 사우디하고도 좀 껄끄러워졌다고.
또 MBZ는 리비아 내전이 아직 다 끝나지 않았는데 그중 한쪽 밀어주면서 개입하는 등 온갖 일에 팔을 뻗쳤다. 어느 순간부터 '석유 부국' 정도로만 인식되던 이 나라가 중동 여러 이슈에서 주된 뒷배로 거론되는 일이 많아졌다.
UAE의 미래를 내다보고, 탈석유 이후, 녹색 경제 첨단경제 투자를 엄청 많이 하는 것도 사실이다. 걸프 산유국과 첨단산업, 사실 우리가 갖고 있는 이미지랑은 좀 다르다. 아부다비가 밀고 있는 친환경 첨단 도시, '마스다르 시티'라는 곳이 있다. 인공지능, 로봇기술 등 6개 첨단산업 분야를 여기서 키우겠다고 한다. 심지어 첨단농업도 연구한다. 식량문제, 물 문제가 중요한 나라니까. 마스다르의 지멘스 본사 건물은 미국 녹색건물위원회(USGBC)라는 민간기구가 지속가능성을 기준으로 인증해주는 '에너지-환경 설계 리더십(LEED)'을 받은 건물이다. 대학들도 있다. 칼리파 대학은 원래 마스다르 과학기술대였다가 이름이 바뀌었는데 학생 35%가 여성이라고 한다. 모하메드 빈 자이드 인공지능 대학(MBZUAI)은 '세계 최초의 대학원 수준의 연구 기반 AI 대학'임을 내세운다.
아부다비에 마스다르가 있다면, 두바이에는 지배자 가문의 이름을 딴 라시드 알 막툼 태양광 기지가 있다. 어마어마한 규모라고 한다. 이렇게 UAE는 석유를 판 돈으로 탈석유 시대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에 아랍에미리트가 화성 탐사선도 쐈다. 초대 지도자 자예드 국왕이 1970년대에 아폴로 우주선 달 착륙을 담당한 미 항공우주국(나사) 팀을 만났고 그 때부터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러나 그땐 건국 초창기였고... 2006년 두바이에서 첨단 과학기술연구소가 출범했고 이듬해아부다비가 Yahsat 위성통신 회사를 세웠다. 2014년 연방법으로 우주부문 발전 목표를 세우고. 국가우주국을 설립했다. 그리고 2020년 화성탐사선 ‘아말’을 발사했다. 당시 한국 언론들은 “우리 기술도 들어갔다”며 위안(?)을 했지만, UAE의 이런 투자와 리더십은 참 인상적이다. 올 8월에는 UAE 최초의 SAR 위성을 발사했다.
지금껏 아부다비 중심으로 얘기했으니, 이번엔 두바이로 가보자. 사실 한국에선 아부다비보다 두바이가 훨씬 더 유명하다. 일단 거기서 비행기를 많이 갈아탄다. 그냥 허브공항만 있는 게 아니라 글로벌 물류 중심지 중 하나다. 중고물품 유통도, 심지어 밀수도, 몽땅 거기가 허브라는 얘기를 들은지 벌써 꽤 오래됐다.
인구 360만. 2200제곱km. '두바이' 하면 마천루들이 연상되는데, 이번에 가서 보니까 진짜 어마어마했다. 고층건물 많은 도시는 여럿 있지만 어마무시한 건물들이 그렇게 무더기로!!! 모여있는 것은 신비로울 지경이었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건물, '부르즈 칼리파'는 올라가보지 못하고 멀리서 보기만 했다. 왜냐? 전망대 올라가는 티켓이 넘 비싸서...높이가 무려 829.8m인데 윗부분은 안테나여서 맨 위층 높이는 해발 585m이고 전망대는 556m에 있다고. 시카고 출신 에이드리언 스미스가 설계했고, 한국에서는 삼성물산(삼성C&T)이 지은 걸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원래 지어질 때 이름은 '부르즈 두바이'였다. '부르즈'는 탑을 가리킨다고. 그런데 2009년 완공 무렵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당시 아부다비가 두바이를 도와줬기 때문에 아부다비 지도자였던 칼리파의 이름으로 바꿔 감사를 표시했다고 한다.
돛단배 모양으로 된 '부르즈 알 아랍', '세계 최초(인지 유일인지) 7성급 호텔'로 유명한 건물도 멀~리서 구경했다. 사진에 많이 나오는, 위에서 찍으면 야자수 모양으로 해안에 인공지대를 만든 '팜 주메이라'는 숙소에서 바라다봄 ㅎㅎ
옛날에 두바이는 ‘두바이마을’ ‘주메이라마을’ 두 마을로 이뤄져 있었다고 한다. 야자나무 아래 오두막 있던 곳이 이렇게 커진 것이다. 그런데 두바이의 경우 GDP에서 석유 비중은 1~2%밖에 안 된다. '석유 펑펑 운 좋은 자들'이라고 한국인들이 폄하??하는 것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물류, 교통, 금융 등등이 중심이다. 외국 기업들이 중동에 진출하면 다 두바이를 거점으로 삼는다.
교역 허브로서 두바이의 역사는 오래됐다. 관세 없는 항구가 된 것이 1901년, 120여년 전의 일이다. 경제 규모가 큰 이란과 가깝기 때문에 중요한 무역항이 됐다. 이란 상인들의 기항지였고 이란인들의 정착도 많았다. 특히 진주 수출로 유명했는데 대공황이 밀려오고 양식 진주(일본의 미키모토 진주 이야기는 다큐에서도 봤는데;;)가 생겨나면서 쇠퇴의 길을 걸었다. 1937년에 석유 탐사 계약이 체결됐으나 2차 대전으로 무산됐다. 1966년부터 석유를 생산하기 시작했으나 매장량이 그리 많지 않았기에 이미 1980년대부터 석유시대 이후를 준비했다고 한다.
지도자의 그런 안목은 참 뛰어났다는 생각이 든다. 두바이 지도자는 라시드⇒ 막툼(1990-2006) ⇒ 무하마드 빈 라시드로 이어지고 있는데 아부다비처럼 여기도 2대 3대 모두 초대 지도자 라시드의 아들이다. 그 라시드가 참 대단한 사람이었던 것이, 1958년부터 무역 수입으로 인프라 구축을 시작했다. 1959년에 활주로를 짓고 공항을 짓고... 라시드가 그 시기 영국 건축 회사에 두바이 마스터플랜 수립을 의뢰해서 도시 건설에 들어갔다. 딸이 카타르 국왕과 결혼했는데 사위 돈을 빌려서 두바이크릭이라 불리는 시내 개울(?)들에 다리도 짓고. 1960년대에는 인도에서 영국으로 가는 금 무역을 중개해 돈을 벌었고,석유를 파내기 시작한 뒤로는 인프라 개발 계획을 가속화했다. 석유는 곧 고갈됐고1990년대부터 실제로 석유수입이 급감했지만 라시드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석유경제 기간에 심해 자유항인 포트 라시드 등 인프라를 지어 지금껏 먹고살 기반을 만든 것이다.
걸프전 덕도 좀 봤다.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고, 그에 대한 '응징'이라며 1991년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한 것이 이른바 걸프전이다. 그 여파로 쿠웨이트와 바레인 등에 있던 기업들이 두바이로 대거 옮겨갔다고 한다. 두바이는 걸프전과 2003년 이라크전 때 미군 급유기지 역할을 해주기도 했다.
참, 지금 지도자 무하마드 부인은 요르단 공주. 인척관계 재미나죠? 2003년부터 현 지도자 무하마드 아들인 왕세자 함단이 '두바이 집행위원회'를 만들어서 국가 개혁과 성장을 이어가려 하고 있다. 시민과 통치자 대표가 만나는 전통적인 majlis(협의회)가 있지만 의회는 아니고. 특정 이슈에 대해 설명하고 의견 듣는 자리 정도다. 아무튼 중동 지정학에서 점점 비중이 커지고 있는 UAE, 앞날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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