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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미르 아민, 유럽중심주의

딸기21 2023. 5. 5.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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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중심주의. Eurocentism.
사미르 아민. 김용규 옮김. 세종출판사. 5/5

“역사는 성공하지 못한 사회들의 죽은 시신들로 가득차 있다.” (140쪽)

안드레 군더 프랑크의 책을 읽은 때부터 아민의 이 책을 사고 싶었지만 품절/절판 상태라 구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새 십여 년이 지나가버렸다.

식민주의-탈식민에 관한 책들 리스트를 올리면서 이 책을 구하지 못하고 있어서 아쉽다고 한 마디 붙였는데, 블로그에 늘 와주시는 companiero 님이 그걸 보셨다. 내 리스트를 보고 중고로 사셨고, 읽으신 뒤 보내주신 덕에 이 책이 드뎌 내 손에 들어왔다!!! 세상에 이렇게 신기하고 반갑고 감사한 일이. ㅠㅠ

아민의 책은 1989년에 나왔고, 소련이 해체되기 직전 시기까지만을 언급하고 있다. 한글판이 2000년에 나왔는데 나는 이제야 읽었으니 책이 처음 나온 때로부터 한 세대의 차이가 있다.
지금에서야 줄 쳐가며 읽은 내용들 중의 상당수는 지나간 옛이야기처럼 들리고, 전체적으로는 도식적으로 느껴진다. 그럼에도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은 늘 유효하며,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사실 내게 재미있었던 것은 다른 구체적인 내용들이었다. 아랍 이슬람까지 포괄하는 ‘동양’이 해온 역할을 상기시켜준다는 것. 저자가 이집트인인 까닭에 이집트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유럽중심주의는 유럽의 도구를 넘어 하나의 ‘태도’임을 지적하는데, 그러다 보니 뒷부분은 아랍 이슬람 세계의 근본주의를 날카롭게 질타하는 쪽으로 향해간다.

그래서 결론은, 재미있었다는 것.



이런 주제를 다루는 두 번째 방법은 - 이는 나의 접근방법이 될 것이다 - 처음부터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부분적인 비판작업을 넘어 서서 그것을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적 구성물 전체 속에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나의 주장처럼 유럽중심주의가 유럽과 세계의 역사에 대한 최근의 신화적 재구성이라면, 이 역사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제공함으로써, 즉 고대 그리스에서 중세 시대에 이르기까지 신화적 유럽과 현실적 유럽이 속해 있던 시기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제공함으로써 서두를 꺼낼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유럽중심주의가 특정한 문제에 대한 대응이자 특정한 현실과의 대립을 통하여 발전해 온 방식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7쪽

이집트인들은 다른 민족에 앞서 영원한 삶(eternal life)과 내재적인 도덕적 정의(immanent moral justice)의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인간주의적 보편주의로 나아가는 길을 열었다.
인간 행위의 동기와 의도를 세심하게 관찰하는 보편적 도덕성에 근거한 "불멸의 영혼"과 "개인의 보상과 처벌"이라는 관념의 창안이 얼마나 깊은 사고의 발전을 나타내는지를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집트인들의 이러한 보편주의에 기초한 도덕적 발전은 향후 인간사고의 근본적 원리가 된다. 하지만 이런 이집트인들의 창안이 누구나 아는 평범한 상식이 되는 데는 몇 세기가 걸렸다.
이집트의 진정한 기여는 흔히 주장하듯, 아크나톤에 의한 일신론의 창안보다는 이러한 보편적 사고의 발전에 있다. 이 지역을 지배하게 될 일신론이라는 개념은 그 어느 공납제 사회보다 선진적이었던 이집트 문명에서 형성된 절대 권력의 산물이었다.
-28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교가 이 지역의 급속하고 긍정적인 발전을 설명해줄 수 있는 상대적인 장점을 제시했느냐에 대한 문제 제기는 적절한 것이다.…유교 사회들은 단지 두 가지 사회현실 - 미시적 차원에서의 가족과 거시적 차원의 국가 -과 두 가지 합법적 충성 - 가족에 대한 헌신(효)과 국가에 대한 봉사(충) - 만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 점은 불균등한 자본주의적 팽창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하여 기층에서 민중민족적인 혁명과 주도를 필요로 하는 세계에서 장점이었을 것이다. 이는 비교삼아 아랍 민족주의와 이슬람 근본주의의 양극단 사이에서 동요하는 아랍 이슬람 혁명의 유동적인 성격과, 종교적 갈등과 종족 문제 때문에 야기된 무기력한 분열을 생각해 보기만 해도 된다.
-80쪽

자본주의의 맹아적 형태들(사기업, 시장교환, 자유로운 임노동)이 지중해에서, 특히 아랍 이슬람 지역과 이탈리아 지역에 오래 동안 존재해 왔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지중해 체제는 자본주의적 세계체제의 전사를 이루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중해 체제는 완성된 자본주의적 형태로의 질적인 도약을 이룩하지 못했다. 잠재적인 세계체제로서의 자본주의는 자신의 정복적인 힘을 의식하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것이 십자군 전쟁 동안 이슬람교도들의 판단이 "이슬람중심적"이지 않았듯이, 기독교인들의 판단이 "유럽중심적"이지 않았던 이유이다. 단테는 모하메드를 연옥의 불길 속으로 보냈다. 하지만 이것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주장과는 달리, 세계에 대한 유럽중심적 개념의 표현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유럽중심주의와는 전혀 다른 진부한 지역주의의 한 예에 불과하다. 그것은 두 대립적인 집단들의 마음 속에 대칭적으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맥시머 로딘슨은 이슬람에 대한 중세의 유럽적 시각과 근대의 유럽중심적 오만을 구분하는 차이를 보여주었다.
-88쪽

시민사회의 자율성은 새로운 근대세계의 첫 번째 특징이다. 이 자율성은 정치적 권위와 경제적 삶 사이의 분리에 기초하며…자율적인 정치적 삶이나 근대적 민주주의라는 개념, 그리고 사회과학이라는 개념은 시민사회의 이같은 자율성에서 연유한다. 사회는 이제 처음으로 인간이나 군주의 의지를 벗어난 법칙들에 의해서 지배되는 것 같다. 이제부터 사회법칙을 발견하려는 시도는 이븐 할둔이나 몽테스키외의 시대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더 이상 사심 없는 호기심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관리”를 위한 긴급한 필요성의 문제가 된다.
-95쪽

베버는 자본주의를 프로테스탄티즘의 산물로 생각했다. 나는 여기서 그 정반대의 의견을 제안하고 있다. 다시 말해 태동하던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 의하여 변형된 사회는 공납제 이데올로기의 구성물인 중세 스콜라주의의 구성물을 문제삼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종교적 믿음을 재조정하게 하면서 르네상스와 근대철학의 개념들의 출현 조건을 창출한 것은 사회변화였지 그 반대가 아니었다.
새로운 지배이데올로기가 형성되는 데는 2 내지 3세기가 걸렸다. 여기서 결정적인 단계는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이 부르주아 권력의 승리와 임노동의 일반화의 기초를 형성한 순간에 이루어진 영국 정치경제학의 발전이었다. 이제 무게의 중심은 형이상학에서 경제학으로 옮겨가게 되었고 경제주의가 지배이데올로기의 내용이 되었다.
-100쪽

그리스 조상(Greek ancestry)이라는 신화는 이 유럽중심적 구성물에서 본질적 기능을 수행한다. 왜 자본주의는 유럽에서 먼저 출현했는가 하는 문제를 회피하기 위하여, 이 문제를, 그리스적 유산 때문에 유럽은 필연적으로 합리성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는 허위적 관념으로 대체함으로써 인위적으로 구성된 감상적인 주장이다. 이 신화에 따르면 그리스는 합리적 철학의 모태가 되는 데 반해, 동양은 형이상학의 차원을 결코 넘어서지 못한다.
소위 서구적 사고나 철학의 역사는 항상 고대 그리스를 그 출발점으로 잡고 있다. 철학의 여러 학파들의 다양성과 갈등, 종교적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운 사상의 발전, 인문주의, 그리고 이성의 승리만 강조되고 헬레니즘 사상에 대한 동양의 기여는 전무한 것으로 간주되거나 심지어는 동양에 대해 언급조차 없다.
-104쪽

마틴 버널은 "고대 그리스의 날조”의 역사를 다시 추적함으로써 이를 입증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이 고대 동양의 문화적 영역에 소속되어 있 었음을 분명하게 의식했다.
버널은 19세기 헬레니즘에 대한 열광(Hellenormania)이 낭만주의 운동의 인종주의에 고무된 것임을 보여주는데, 여기서 낭만주의 운동의 건설자들은 사이드가 오리엔탈리즘의 창시자들로 거론하고 있는 사람들과 동일한 사람들이다. 버널은 고대 그리스를 그 레반트적 맥락에서 분리하고자 하는 충동 때문에 언어학자들이 어떻게 교묘한 재주부리기를 했는지를 설명한다. 사실 그리스 언어의 절반은 이집트와 페니키아 언어로부터 차용된 것이다. 그러나 언어학은 이러한 차용을 인정하지 않기 위하여 신비스러운 “원아리안적"(Proto-Aryan) 언어를 창안했고 유럽중심주의에 긴요한 신화, 곧 그리스의 "아리안적 순수성" 이라는 신화를 보존하려고 했다.
…카르타고는 페니키아의 도시이다. 따라서 그것은 "동양적"인 것으로 분류되었고, 그 결과 로마와 카르타고의 경쟁은 제국주의적 유럽에 의한 "마그레브의 동양" 정복을 미리 예시한다고 이야기되었다.
-105-106쪽

르네상스와 고대 그리스 사이에는 15세기 동안의 긴 중세의 역사가 가로 놓여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유럽문화의 연속성을 주장하는 것이 어떻게 그리고 어떤 근거에서 가능한가? 19세기는 이런 가설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인종주의적 가설을 지어냈다.
…그 당시에 형성된 새로운 학문인 언어학은 언어분류를 위한 영감을 생물학의 방법에서 찾았으며 민족들의 고유한 특징 들을 그 언어의 고유한 특징과 관련지었다.
그 결과로서 생겨난 인도유럽어족과 셈어족(헤브라이와 아랍)의 대립은 도그마의 수준까지 고양되었는데, 이는 유럽중심주의를 구성하기 위한 고육지책 중에서도 최상의 예라 할 수 있다.
-108쪽

인종주의적 테제의 결론들은 또한 종교의 영역으로 옮겨간다. 왜냐 하면 기독교 또한 이슬람이나 다른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절대적인 것에의 추구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기독교는 서양을 지배 하기 이전에 동양인들 사이에서 태어났다. 따라서 기독교와 이슬람의 본질을 말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섬세하지만 근본적인 차이를 제안하는 주장이 필요하게 되었다. 19세기에 셈족 동양인들의 열등성의 근거는 그들의 소위 “넘쳐흐르는 성욕"(그 후에는 흑인민족들에게 전이되었다) 때문이었다. 오늘날 정신분석학의 도움으로 동양인들의 똑같은 결함은 특별히 강력한 “성적 억압"의 탓으로 돌려지고 있다. 하지만 언어학적 차원의 "인도유럽적" 근거는 점차 약화되고 있다.
-109쪽

내가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하는 이유는 그것이 근대세계 내에서 안락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의 삶 외에 그 어떤 것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근대적 문화는 인간주의적 보편주의에 기초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유럽중심주의적 유형의 근대 문화는 그러한 보편주의를 부정한다. 유럽중심주의는 그 확산을 거부하는 민족들과 문명들의 파괴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나치즘은 일탈이기는커녕 항상 잠재되어 있는 가능성으로 존재한다.
-128쪽

지배이데올로기의 유럽중심적 차원은 서구 사회과학의 실질적 패러다임을 구성하고 있다. 토마스 쿤이 언급하듯이, 이 패러다임 역시 대부분 사람들에 의하여 인식되지 않은 채 작동할 정도로 사람의 내부에 내면화되어 있다. 나는 인간의 모든 부분의 발전을 통제하는 일반 법칙이 분명해지지 않는다면, 허위적인 유럽중심적 관념으로 나아갈 길은 항상 열려 있다고 주장하고 싶을 뿐이다.
-129쪽

저항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 중 내가 언급한 바 있는 개념적 속류화(conceptional vulgarizacion)의 방식이 있다. 그러나 현실론에 의존하는 방식 또한 존재한다. 왜냐하면 사회주의적 동양과 저발전 상태의 남부가 사회에 대한 더 나은 모델을 제안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으며 심지어는 그러한 시도를 포기하고 서양적 모델로 달려 가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서양적 모델에 대한 집착은 스탈린주의와 마오주의가 사회주의의 구성 문제에 대한 결정적인 답변을 발견했다는 인상을 제공한 긴 시기를 겪고 난 다음에 도 래했기 때문에 더욱 충격적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외에 다른 길을 찾는 것은 명백히 유토피아적이다. 하지만 ‘고리끊기(delinkin)’는 실천을 위한 유일한 현실주의적 가능성이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수반할 어려움들과 기나긴 이행의 단계 동안 겪게 될 역경들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고리끊기가 세계적 차원의 총체적 재구성의 일부로서 서양의 필연적인 변화에 의존한다는 것이 이해되어야 한다.
-130쪽

부르주아적 절충주의와 달리 마르크스주의는 보편적 사회동학의 문제에 중심적 지위를 부여함과 동시에 사회현실의 다양한 요소들(물적 토대와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을 연결하는 총체적 방법을 제안한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이런 속성은 그것의 발전에 장애가 되기도 한다. 마르크스주의 속에는 타고난 게으름뿐만 아니라 모든 것의 결정적 답변을 찾아내려는 유혹이 강렬하다. 그 결과 이론의 비판과 확장은 교조적인 해석과 텍스트 분석에 자리를 내주고 만다. 마르크스주의는 보편적 모델을 형성하기 위해 유럽적 모범을 끌어들이는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경계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주의는 지배 문화의 영향에 굴복했고 유럽중심주의의 품속에 안주하고 말았다. 마르크스주의의 유럽중심적 해석은 단지 가능태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지배적 해석이기도 하다.
-133쪽

우리 시대의 특징은 문화주의적 회피이다. 이는 서구에서는 지역주의를 찬양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제3세계에서는 근본주의의 물결을 타고 나타난다.
역사철학은 역사과학의 안티테제이다. 역사철학은 예견된 일반적 테제에서 출발하여 현실을 경직된 틀, 곧 정해진 선험 속으로 밀어 넣기 때문이다. 이 틀은 다양하다. 첫째, 자신과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는 진보에 관한 과학적, 유물론적 테제. 둘째, 영원회귀와 문명의 순환이라는 안티테제. 셋째, 한 사회의 도전을 응전과 시련으로 보는 테제. 넷째, 선택받은 민족으로 하여금 그 운명을 실현하도록 개입하는 신의 섭리의 테제가 있다.
-138쪽

공납제적인 형이상학적 구성물을 완성하고 난 뒤 한가롭게 졸고 있던 아랍 이슬람의 세계는 서양의 물질적 우위 - 이후 제국주의와 식민지 건설로 변모하였다 -와 새로운 근대적 사고라는 이중의 도전에 어떻게 반응해 왔는가?
아랍 이슬람 세계는 오늘날 이중의 과제를 안고 있다. 하나는 제국주의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민중적이고 민족적인 발전의 길로 나아가고 전세계적인 사회주의적 변혁에 적극 동참하는 일이다. 또 하나는 이슬람 세계가 중세부터 물려받은 사고 체계를 재검토하는 일이다.
19세기가 시작된 이후, 정확히는 이집트의 모하메드 알리의 통치 이후 근대세계의 도전에 직면하여 생존하기 위해서는 상기된 두 과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대두되었다.
모하메드 알리는 기술적 요소만 차용하는 물질적 근대화와 이데올로기 비판을 구별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이데올로기 비판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새로운 도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보다 훨씬 형식주의적인 "온건보수 이슬람”의 입장을 선택했다. 이후 이집트의 특징이 되어 온 문화적 이중성은 바로 이 선택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142쪽

나드하(Nadha, 재생)는 지배이데올로기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의 가능성을 보여준 운동이었다. 이 운동이 시민생활의 다른 영역의 근대화에 미친 공헌은 언어의 개혁(이것이 없었다면 아랍은 오늘날과 같이 새로운 문화에 적응할 수 없었을 것이다), 관습 비판(특히 여성의 지위 문제에 있어서 1908년 사망한 카짐 아민의 비판은 오늘날까지도 필적할 상대가 없다), 법률 개정, 정치형태에 대한 비판을 비롯하여 결코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진보적 개혁이 모두 종교 해석의 개혁 문제와 충돌했다는 점은 사실이다.
이 문제에 대한 나드하의 담론은 소심하고 애매했다. 그것은 기원으로의 회귀를 통한 정화를 요구했다. 프로테스탄티즘이 이 "정화"에 부여한 내용은 건설 중인 미래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었던 데 반해, 나드하의 담론은 자신이 요구하는 개혁에 그 어떤 적극적인 내용도 부여하지 않았다. 나드하는 형이상학적 사고의 틀을 전복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세속주의(secularism)라는 개념 자체도 이 운동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나드하는 멀리 떨어져서 종교혁명의 필요성을 외쳤을 뿐 그것을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다. 이런 실패로 인하여 필연적으로 무슬림형제단과 오늘날의 근본주의로 이어지는 쇠퇴와 퇴보가 뒤따랐던 것이다.
-143쪽

진정한 해방과 발전이라는 차원에서 자유주의적 부르주아계급의 기획의 실패는 나세르주의(Nasserism)의 기원이 된다. 나세르주의는 민중민족적 부흥운동이 됨으로써 더욱더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사회정치적 기획의 이론적, 실천적 차원에서나 사상적 차원에서 결코 그러하지 못했다. 예컨대 정치적 차원에 있어 나세르는, 부르주아계급의 도움 없이 자본주의를 이룩하려했던 모하메드 알리처럼, "사회주의"를 원하면서도 그 주체적 책임을 민중들에게 맡기지 않으려 했다.
(무엇보다 물질적 실패에서 온) 최근의 위기는 "근본주의적 기획"으로 채워졌다. 이는 위기에 대한 대응이 아니라 바로 위기의 징후이다. 근본주의는 중세 형이상학적 비전에 기생하여 생명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근본주의는 처음부터 인간 이성에 대한 경멸에 기초해 있다.
근본주의자들은 제의에 대한 형식주의적 태도, 경전, 특히 샤리아의 자구해석, 의상과 같은 외형적 "정체성"의 표현에 극도로 집착한다. 여성의 지위 문제에서처럼, 이미 과거부터 발전적인 해석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극도로 진부한 반동적인 편견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
동시에 근본주의자들은 그 조직적 실천에서도 최악의 수피즘에서 말하는 이맘에의 맹종을 주장함으로써 모든 민주적 형태들을, 심지어는 가장 초보적인 민주적 형태조차 거부한다.
-145-146쪽

이런 곤경은 오늘날 이슬람 근본주의만이 겪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인도에서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도처에서 일어나는 모든 징후는 그것이 서로 유사한 문화주의적 반동임을 보여준다.
필자는 이 모든 경우에 나타나는 민족주의적이고 문화주의적인 퇴보가 모두 같은 방식, 즉 유럽중심주의적 방식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이들 이슬람 근본주의는 기독교의 신근본주의의 형태를 띠고 있는 유럽중심적 근본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전자는 후자의 반영이며 부정적 보완일 뿐이다.
-149쪽

진정한 보편주의적 전망이 없이는 유럽중심주의와 전도된 유럽중심주의 간의 무익한 대립은 파멸적인 광신주의의 분위기 속에서 계속될 것이다.
모든 보편주의적 열망은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는 "차이에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하여 거부된다. 유럽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유럽인뿐이고, 중국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중국인뿐이고, 기독교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기독교인뿐이며, 회교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회교도인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결국 어느 한 집단의 유럽중심주의가 다른 집단의 전도된 유럽중심주의에 의해 완성되는 셈이다.
-160-1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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