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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선(미썬) 참파 유적

딸기21 2022. 8. 16.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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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에 일어났다!


예약 과정에서 착오가 있어서, 호이안의 가이드가 다낭까지 우리를 데리러 옴. 덕분에 다낭 바닷가의 새벽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이른 새벽부터 수영하는 사람들, 집단체조를 하는 사람들도 보고.
영어 잘 되는 똑똑한 가이드 랍과 만나 호이안으로 가서, 다른 여행객들에 합류.


오늘의 여행지는 미선 Thánh địa Mỹ Sơn (실제 발음은 미싼에 가까운 듯). 9-12세기 참파 왕국의 사원 건물들이다.
‘미선’은 ‘아름다운 산’이라는 뜻이라고 하는 걸로 보아 美山에서 나온 듯하다. 미선 계곡에 위치한 유적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돼 있다.


참파 혹은 참 왕국이 베트남 중부의 주인공이었지만 북쪽에서 내려온 베트남인들에게 땅을 빼앗겼고, 이들의 힌두 문화와 산스크리트어를 차용한 문자 문화도 사라짐.
버려진 사원을 ‘발견’한 것은 19세기의 프랑스인들이었다. 오늘의 가이드 랍은 이런 역사를 많이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 참 문자들이 아직 완전히 해독되지 않았고, 사원 건축 방식이라든가 미스터리들이 풀리지 않은 게 많다고 했다.


미선에는 70여개의 건축물이 남아 있고 그것들이 몇개씩 그룹을 이루고 있다. 대체로 고해소, 신성한 문, 주 사원, 공물준비실(키친룸)으로 구성돼 있다고.


고해를 하고 신성한 문을 지나며 스스로를 정화한 뒤 사원으로 가는 것인데, 건물들은 너무나 작다. 아가들도 아니고… 왕과 힌구 사제들과 고관대작만 사원에 들어갔던 것으로 보인다고.


요니와 링감이 원래 같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같이 있는 게 없음. 후대의 베트남인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분리해버렸기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랍은 설명했다.


벽돌로 된 건물들이 많지만 돌로 지어진 것들도 있음. 돌을 어디에서 어떻게 갖고 와서 지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라고.
베트남인들이 참 문화를 보전하지 않았다는 것을 랍은 계속 강조했다. 마치 이스라엘 밖의 유대인들처럼, 베트남에 사는 참족보다 캄보디아 라오스를 비롯해 외국에 흩어져 있는 참족 숫자가 더 많다는 설명이다. 참족 커뮤니티가 있기는 하지만 이 지역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한다.


유적지에서는 간다라스러운 유럽 스타일의 기둥과 중국의 영향으로 보이는 연꽃 기단을 함께 볼 수 있음.

굉장히 화려해 보이는 키친룸


사원 건물 중 하나의 내부에 전시된 힌두교 조각상. ‘어머, 시바인가봐’ 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미선 유적지는 시바를 숭배하던 곳이 맞다고 한다.


앙코르왓 같은 거대 유적지에 비하면 미선은 조그맣고 소박하고 보존 상태도 몹시 나쁘다. 하지만 벽돌 외벽의 조각상이라든가, 수풀 사이의 유적이 자아내는 분위기는 꽤나 괜찮다.


유적들은 결국 폐허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 흘러서 지금은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공간. 일상을 벗어난 공간인 것이다. 그래서 폐허에 가면 늘 기분이 좋아진다. 경건함이 결합된, 시공간을 이동해와 스스로 이물질이 된 것 같은 즐거움이랄까. 시간적 격리와, 일상이 사라져버린 공간의 특별한 느낌이 경외감을 주고 때로는 우리를 압도해버린다.


조금 후대인 12 세기 무렵 지어진 사원. 이전의 사원들은 일방 출입만 할 수 있었는데, 이 때는 중국의 영향이 커져서 중앙과 양 옆으로 문을 냈다고. 세 개의 문 중에 가운데 문으로는 유력인사들이 드나들었고 오른쪽 문은 여성들, 왼쪽 문은 남성들이 다 썼다. “Woman is always right.” 랍의 설명에, 함께 둘러보던 네덜란드에서 온 여성 관광객이 맞장구를 치며 격하게 동의함. ㅎㅎ


또한 이 때는 중국에 풍수의 영향도 나타난다고.


또한 이 건물에서는 이전에는 쓰지 않았던 건축 재료인 화산암을 볼 수 있다. 벽돌 하단과 상단 사이에 화산암을 집어넣어서 일종의 접착제로 썼는데, 정작 이 지역엔 당시 화산암을 캘만한 곳이 없었다. 어디서 어떻게 가져왔는지는 아직 의문이라고 랍은 설명.


위의 사진에 보이는 벽돌들 색깔이 다양하다. 사장 밝은 것은 아주 최근에 복원해 넣은 것들이다. 몇년만 지나면 하단 벽돌처럼 이끼가 끼고 검게 변한다. 그런데 원래 참족이 만든 중앙의 적갈색 벽돌들은 검게 변색하거나 이끼가 끼거나 틈새에서 잡초가 자라지 않는다.

“우리는 문자 문화만 놓고 베트남인들이 더 발전된 문화를 갖고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반드시 그랬다고 볼 수 있을까요.” 랍은 연도나 역사지식보다는 자기 생각이나 의견을 설명에 많이 집어넣었는데, 그게 오히려 더 재미있었다.


그의 설명에서는 베트남 전쟁도 빠지지 않았다. 아래 사진에서 베트남 전쟁 당시 생긴 총탄 자국을 볼 수 있다.


당시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은 중부 베트남 지역에서 치열한 지상전을 벌였다. 폭격도 집중됐다. 그만큼 많이 파괴됐고, 하노이가 있는 북부와 호치민(사이공)이 있는 남부에 비해 경제 발전도 늦어졌다고 랍은 말했다. 베트남의 북부, 중부, 남부는 각기 다른 나라였다가 명목상 통일됐지만 여전히 문화적으로는 차이가 많다고.


베트남전쟁 중 포탄에 녹아내린 사원. 벽돌 건물이 부서지고 녹아내려서 복원이 불가능하다고. “1000년 전의 건축물들이 단 30분만에 부숴졌습니다.”


왼쪽에 보이는 풀숲은 폭탄 구덩이. 당시에는 미국 뿐 아니라 남북 베트남이 모두 격전 중이었기 때문에 정확히 누구의 폭탄인지는 알 수 없음. 우기가 되면 이런 폭탄 구덩이들에 물이 차서 연못이 되어버린다고 한다.


보여준다고 했던 전통춤 구경은 이 핑계 저 핑계로 생략하고, 그 대신 근처의 투어 매니저 집에 우리를 데려가서 아점을 먹여줬다.


호이안이 있는 꽝남 지역의 전통 쌀국수인 미꽝. 땅콩소를 얹은 넙적한 국수인데 매우 맛있었음. 춤 공연 안 보여준 것은 용서해주기로.


다낭으로 돌아와, 오후에는 미케 My Khe 해변에서 놀았다.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의 6대 아름다운 해변’ 중 하나라고.

포브스가 그런 걸 왜 뽑으며, 왜 3대도 5대도 7대도 10대도 아닌 6대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지금껏 내가 가본 해변 가운데 최고였다! 아주 따뜻하고 넘나 맑은 물, 고운 모래, 꽤 걸어나가도 얕게 깔린 바다. 백사장에 쓰레기도 없고. 선베드 빌려놓고 파도타기하며 놀다가 쉬다가.

미선 유적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보니 호이안에서 다낭까지 미케 해안을 따라 거대한 리조트들이 줄지어 들어서고 있었다. 메레디안도 보이고, 포시즌스고 보이고, 두바이 오션 머시기도 보이고… 10년 쯤 지나면 다낭은 얼마나 변해 있을까. 발전을 축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