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중동 방문에 이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튀르키예와 이란을 찾아감. 중동에서 미-러 힘겨루기와 편가르기가 격화되고 있다.
푸틴이 화욜(19일)부터 이란 방문. 이날 테헤란 메흐라바드 국제공항에 도착한 뒤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과 회담하고 이어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를 만남.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터키) 대통령도 만나 양국간 현안을 논의했으며, 두 정상과 3자 정상회담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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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이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밖으로 나간 게 이번이 두 번째. 6월 말 타지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을 방문. 모두 과거 옛 소련의 구성원이었던 나라들. 그리고 이번이 두 번째 외국 방문. 우크라이나 침략 이후 서방의 제재 등으로 동병상련의 처지인 이란과 협력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보임.
푸틴은 튀르키예, 이란 대통령과 내전 이후 시리아에 관한 이슈를 논의. 또 세계 식량 위기를 완화하기 위해 유엔이 우크라이나가 곡물 수출을 재개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는데, 이 제안에 대해서도 논의했다고. 우크라이나 흑해 항구들에 묶여 있는 곡물 등 농산물 2200만 톤을 수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협상이 진행중인데 잠정 합의에 이른 상태.
튀르키예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틈타 지역 강국으로 부상한 듯.
시리아 문제에서라면 러시아와 터키는 입장이 다름. 사실 두 나라는 지중해 연안 여기저기서 부딪치는 관계.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튀르키예는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음으로써 러시아에는 절실한 파트너가 됐고. 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을 틈타 튀르키예는 유라시아의 강자로 부상. 우크라이나 곡물수출 협상에서도 중재자를 자처하고 있고. 그러면서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 문제를 놓고 미국을 압박해 쿠르드족을 더이상 지원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이끌어냈지.
미국에 가장 큰 골칫거리는 이란과 러시아의 밀착.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는 푸틴과 만나 대화하면서 서방이 “독립적이고 강한 러시아”를 막으려 하는 것이라면서 러시아 편을 들어줌. 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지 않았더라면 나토가 러시아를 공격했을 거라며 러시아의 주장을 그대로 되풀이. “만약 길이 열려 있었더라면 나토는 제한도 경계도 없이 팽창했을 것”이라며 나토를 비난함. 이란 언론보도를 보면 하메네이는 “양국 경제 협력은 필수적이며 특히 서방의 제재를 받고 있는 두 나라 모두에 이익이 될 것”이라 말했다.
하메네이는 특히 장기적인 협력을 강조했음. 양국 간에 체결돼 있는 석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 협력협정을 지키고 정상 가동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함. 러시아와 이란을 잇는 라슈트-아스타라(Rasht-Astara) 철도 계획을 예정대로 진행해 철길을 여는 것도 강조. 하메네이는 "달러가 글로벌 거래에서 점차적으로 제거돼야 한다"며 양국 무역관계에서 달러화를 국가통화로 대체하는 정책을 지지.
이란이 러시아에 무기를 공급하려 한다는 얘기도.
세계 최대 드론 제조사인 중국 DJI가 얼마 전 러시아 수출을 중단. 그 빈자리를 이란이 메워주려 한다고 미국은 주장. 얼마 전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러시아 관리들이 이란을 방문해 무기 도입을 검토했다고 말함. 이란 측은 즉시 부인했지만.
이란의 드론 기술은 상당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서방에서는 평가하고 있음. 이란은 소형 전술시스템부터 위성항법장치와 정밀유도탄 등을 갖춘 중고도 장거리용 드론까지 다양한 무인기를 제작해왔음. 그중 일부는 포획한 미국과 이스라엘 무인기를 역설계한 것이다. 국제 제재를 받고 있는 이란은 드론 프로그램에 힘을 많이 기울였고, 지금은 이란 군대의 최대 자원이 되고 있다고 미국과 유럽의 군사전문가들은 평가. 이란이 예멘의 친이란 반군이나 팔레스타인과 레바논 등의 무장정치조직에 드론을 공급하거나 기술을 넘겨준다고 미국과 이스라엘은 계속 주장해 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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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한 것이, 러시아는 과거에 미국과 친한 이스라엘로부터 드론을 구매. 이미 2010년에 이스라엘 항공우주산업과 파트너십을 맺고 중형 정찰용 무인기를 생산. 그런데 이스라엘 정부는 2016년 미국의 압력으로 이 거래를 중단. 그 뒤에 러시아는 드론 국내생산 체제를 만들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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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방문에서 푸틴은 이란 라에시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국제안보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강조함. 하지만 이란이 러시아에 드론을 내줄지, 얼마나 팔지 등등은 확실치 않음. 이란이 드론을 내준다 해도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에 전격적인 변화가 올 것 같지는 않음. 이번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드론이 맞붙고는 있지만 결국 전황은 지상전이 결정하니까.
푸틴 대통령의 테헤란 방문은 이번이 다섯 번째. 푸틴은 2007년에 처음 이란 수도를 방문했고, 이어서 2015년, 2017년, 2018년에 이란을 방문했다. 특히 이번 양국 정상회담은 시기적으로 큰 의미가 있음. 러시아는 국제적으로 고립된 상황이고, 이란도 마찬가지. 작년 대선에서 보수파 대통령이 당선된 뒤 이란 정부는 우라늄 농축을 강화하고, 여론을 통제하고 있음. 하지만 정부의 선전과는 달리 경제 사정이 여의치 않음. 현지 통화 리알의 가치는 급락. 이란과 러시아 양측에 서로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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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두 나라가 전략적 협력을 강조하고는 있다 해도 맹방이라고 볼 수는 없음. 각기 역내 패권을 노리는 나라들, 경쟁과 협력 사이를 오간다고 봐야. AP통신, “이란에게는 러시아와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가 생존의 한 방안”. 하지만 이란과 미국과의 관계, 핵합의의 향방에 따라 언제라도 바뀔 수 있음.
이번 정상회담 맞춰 두 나라는 이란 에너지 개발을 위한 400억 달러 규모의 양해각서(MOU)를 체결. 이란 석유부 관영매체에 따르면 러시아 에너지기업인 가스프롬과 이란 국영석유회사가 양해각서를 체결. 이란의 키쉬 가스전, 노스파르스 가스전, 그리고 6개 유전 개발을 가스프롬이 맡는다는 내용.
그러나 구속력은 없음. 러시아가 지금까지 이란 에너지 분야에 투자한 총액이 4억달러 밖에 안 됨. 가스프롬은 서방 제재를 받고 있어서 향후 이란 투자 여력이 어떻게 될 지도 불확실하고. 말하자면 이번 양해각서는 ‘앞으로 되도록이면 잘 해보자’ 하는 정도의 구두 약속인 것.
국빈 방문에 맞춰 두 나라가 대규모 에너지 협력이라는 풍선을 띄웠지만 실제로 이뤄질 지 전문가들은 좀 회의적. 이란 에너지 부문은 러시아보다 더 강한 제재를 받고 있음. 2016년에도 가스프롬이 이란 에너지 개발에 투자하려고 했다가 안 됐는데, 당시 가스프롬은 미국으로부터 1차 제재만 받고 있었지만 이란 국영석유회사는 거래 기업이나 개인까지 모두 불이익을 받는 2차 제재까지 받던 처지였음.
또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러시아와 이란은 경쟁상대. 이란은 중국에 에너지를 팔려고 안간힘. 그런데 우크라이나 침공 뒤 제재를 받게 된 러시아가, 이를 방해. 무엇보다 러시아는 현실적으로 이란에 경제적인 도움이 되기가 힘든 형편.
이란 핵합의를 살리는 문제에서도 러시아는 이란의 지원자라기보다는 훼방꾼. 바이든 정부 들어와서 핵합의를 되살리기 위한 협상이 진행되고는 있는데… 지난 3월 협상에서 러시아가 이란 핵합의 문제를 지렛대 삼아서, 제재를 피해갈 수 있는 통로로 활용하려고 해서 합의가 어려워졌음. 미국에 맞서서 두 나라가 ‘제재국 클럽’을 만들고 있는 셈이지만, 이란이 러시아를 곱게볼 수만은 없는 이유가 있음.
러시아-이란의 회담에 대해,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푸틴이 이란을 방문한 것 자체가 우크라이나 침공 뒤 러시아의 고립을 증명해주는 것이라고 주장. 윌리엄 번스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콜로라도주 애스펜에서 열린 연례 안보포럼에서 연설하면서 푸틴 이란 방문의 효용성을 평가절하. 러시아와 이란은 에너지 시장에서 경쟁관계이고 두 나라 사이의 역사를 봐도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에 동맹관계가 제한적일 거라고 말함. CNN 등 미국 언론들이나 미국 전문가들도 양국 사이에 신뢰관계가 형성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
하지만 앞서 바이든의 중동 방문도 그렇게 성과가 크지는 않았음. 푸틴 방문 직전에 바이든이 사우디와 이스라엘 방문. 이라크, 이집트, 아랍에미리트(UAE) 정상들과도 회담을 했고. 러시아에 맞서 중동 국가들을 규합하려고 갔던 것. 그동안 인권 문제로 외면해왔던 사우디 실권자인 무하마드 빈 살만 왕세자까지 만났고. 하지만 도덕적으로 오히려 미국 위신은 더 떨어졌고, 이스라엘과 밀착하면서 이란 핵합의를 되살릴 가능성은 더 적어짐.
유가를 떨어뜨리기 위해서 사우디에 석유 증산을 요청하려 했던 것인데 사우디가 그에 응하지 않고 있고. 8월 3일 사우디 등 오펙 회원국들과 러시아 등 비회원국들이 함께 모이는 OPEC+ 회의에서 9월 이후의 생산량이 정해질 텐데, 사우디나 아랍에미리트연합 쿠웨이트 등은 ‘점진적으로’ 공급을 늘려주기는 할 듯. 하지만 중국 경제가 최근 다시 둔화. [포린폴리시] Biden’s Brief Middle East Pivot Won’t Last 이미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 이란 핵합의 때부터 사우디 등 중동의 이른바 친미 산유국들은 미국과 거리를 두고 있다. 미국과의 일방적인 동맹관계에서 벗어나, 중국 러시아와의 외교적 균형을 추구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꿈.
사우디만 해도, 지난 6월까지 자국산 원유를 더 높은 가격에 수출하고 국내용으로는 러시아산 석유 수입량을 두 배로 늘림. 미국이 현재 세계 1위 산유국. 수출량은 미미하지만. 사우디 입장에서는 미국이 석유 시장의 최대 경쟁자인 거야. 사우디 기업은 최근 중국 국영 방산업체와 군용 드론 제작 계약. UAE도 중국으로부터 드론과 항공기 미사일 등 사고 있고. 미국이 중요한 안보 파트너인 것은 맞지만, 러시아나 중국과의 협력을 포기하면서까지 미국과의 관계에 목을 매지는 않겠다는 것이 걸프 국가들의 생각. 바이든 사우디 방문 때 공동성명에서 중국을 비난하거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잔혹행위를 명시적으로 지적하지 않은 것도 그 때문. [CBS] Biden says U.S. "will not walk away" from Middle East 푸틴의 행보, 러시아와 이란의 밀착을 보면서 미국이 속이 편치 않을 듯.
작년 아프간 철군 등으로 미국이 중동에서 손을 떼려 한다는 것이 아랍국들의 생각. 이란을 적대시하는 아랍국들은 그로 인한 안보 불안감 때문에 결국 러시아-중국과의 관계를 맺는 쪽으로 가게 되는 측면. 바이든은 중동 방문 나흘간의 일정을 마무리하는 16일 아랍 정상회의에서 미국은 중동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will not walk away)"이라고 강조.
바이든 방문에 맞춰서 아랍 정상회의가 열렸지만 9명의 중동 국가 정상들이 참여했는데 이슈에 따라 이 나라들의 입장도 제각각. 그뿐 아니라 이 회의에 참석한 국가들 중에 러시아 제재에 나선 나라는 없음. 오히려 UAE는 러시아 억만장자들의 금융 피난처로 지목되고 있지. 결국 바이든은 예전 같지 않은 상황만 확인하고 워싱턴으로 돌아감. 미국 언론들, “냉전식 편가르기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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