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헌법재판소가 24일 쁘라윳 짠오차 총리의 직무 정지를 결정했다.
쁘라윳 총리는 육군참모총장이던 2014년 잉락 친나왓 당시 총리가 반대 세력에 밀려나게 되자 그 틈을 타 쿠데타를 일으켰다. 계엄령을 선포한 뒤 권력을 잡아 총리직에 올랐고, 2019년 총선으로 집권을 연장했다. 그 이태 전인 2017년 군부 쿠데타 정권은 개헌을 했는데 그 헌법에 따르면 총리의 임기는 아무리 길어도 8년을 넘길 수 없다. 야권에서는 2014년 총리가 된 뒤부터 계산하면 올해 8월 24일로 임기가 끝나는 거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여권은 개정된 헌법에 따라 2019년 3월 총선을 거쳐 6월에 총리가 됐으니, 그 때부터 계산해 2027년까지 총리직을 수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야권은 총리의 임기가 언제 끝나는지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이 나올 때까지는 직무를 정지해달라며 헌법재판소에 청원을 냈다.
헌재는 원래 보수적인 기관이고, 군부 편만 든다고 국민들 원성이 높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야권의 주장을 일단 수용해 만장일치로 '총리 임기를 헌재가 결정하기로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직무 정지는 재판관 5명의 찬성과 4명의 반대로 결정됐다. 정부 대변인은 "쁘라윳 총리는 헌재 결정을 존중하며 오늘부터 총리직 수행을 중지할 것"이라면서 "국방부 장관직은 계속 수행한다"고 밝혔다. 쁘라윳 총리는 지지자들에게 헌재에 대한 비판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쁘라윳 총리의 직무가 정지되더라도 국방부장관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각료회의에 들어갈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여권에서 내놓은 것이었다. 당초 여권에서는 권한대행으로 계속 총리직을 수행할 수 있지 않느냐는 얘기까지 나왔다. 그러나 이는 헌재 결정을 사실상 무시하는 것이어서 야권이 거부할 것이 확실했고, 그래서 우선은 받아들이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방콕포스트] PM suspended
애당초 쿠데타로 집권한 게 문제였다. 합법적인 선거로 선출된 탁신 친나왓 정권이 2006년 축출된 이래로 태국 정치권은 탁신계와 반탁신 세력으로 나뉘어 극심한 대립을 벌였다. 성공한 기업가 출신이지만 서민들에게 인기가 많은 탁신 정권은 왕실에도, 군부에도, 기득권 정치엘리트들에게도 눈엣가시였다. 군부는 탁신이 유엔 총회에 참석하고 있는 동안 무혈 쿠데타를 일으켜 몰아낸 뒤 퇴역장군이 이끄는 정부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2008년 새 헌법에 따라 치러진 선거에서 탁신계가 다시 승리했다. 군부와 반탁신계는 탁신을 부패죄로 기소했고, 탁신은 영국으로 망명했다. 하지만 탁신을 지지하는 목소리는 높았다. 2010년 탁신을 지지하는 ‘붉은 셔츠’ 시위로 방콕이 마비되자 군부가 무력 진압에 나서 9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렇게 핍박을 했는데, 2011년 다시 치러진 선거에서 또 탁신계가 승리했고 탁신의 여동생 잉락이 총리가 됐다. 2014년 헌재는 직권남용으로 몰고가 잉럭의 총리 권한을 중지시켰다. 수해에 대응하느라 예산을 가져다 쓴 것이 직권남용이라는 희한한 논리를 들이댔던 것으로 기억한다(이 비슷한 일을 뒤에 브라질 우파들의 호세프 축출 때 다시 보게 됐지만 차이가 있다면 브라질은 '의회 쿠데타'로 끝난 반면 태국에서는 군부 쿠데타가 뒤이어 일어났다는 점이다).
잉락이 힘을 못 쓰는 틈을 타 쁘라윳이 이끄는 군부가 쿠데타로 집권했다. 탁신계를 몰아내고, 선거를 하면 국민들은 다시 탁신계를 지지하고, 군부가 다시 탁신계를 몰아내는 일이 되풀이되자 결국 군부가 장기집권에 나선 것이었다. 잉락을 쫓아낼 때 영원히 정치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하려고, 이미 총리직에서 사퇴했는데도 반탁신 의회 세력이 탄핵안을 통과시키기까지 했다.
국민들의 반발은 당연히 예상됐고, 이 때문에 군부는 극도의 억압통치를 펼쳤다. 2019년까지 5년 동안 태국인들은 계엄령 하에서 살았다. 계엄령이 끝난 뒤인 2020년 쁘라윳 정부는 결국 위기를 맞았다.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자 군사정권은 다시 비상조치를 내려 살벌한 분위기로 몰아갔다. 5인 이상이 모이는 집회는 금지됐고, ‘국가안보를 해칠 수 있는’ 뉴스나 온라인 메시지 전달도 모두 긴급포고령으로 금지했다.
긴급포고령은 해제됐지만 지금은 분위기는 비슷하다. 코로나19를 빌미로 2020년 3월부터 비상사태가 선포돼 있는데, 그 기한이 계속 연장돼 올 9월말에야 끝난다. 시민·인권단체들은 방역을 핑계로 정치활동과 표현자유를 억압한다며 철회를 요구하고 있으나 방콕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관광장관 회의가 열리는 11월까지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왕실과 결탁한 군부는 태국에서 늘 권력의 핵심에 있었다. 1932년부터 지금까지 쿠데타를 시도한 것이 18회, 그 중 성공해서 군부가 집권한 것이 11회였다.
1855년 창설된 태국군은 주변 아시아국가들에 비하면 100년 가까이 거슬러 올라가는 긴 역사를 갖고 있다. 태국 군은 두 차례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베트남전 등 20세기의 주요 전쟁에 모두 참전했다. 국가의 수호자이자 왕실의 수호자를 자처하면서 높은 위상을 누려왔다. 정치권이 혼란스러울 때에 군부가 나서서 혼란을 정리한 뒤 '점잖게 물러나는' 모습을 연출한 적도 많았다.
[구정은의 '수상한 GPS'] 탁신 이후 14년, 다시 위기 맞은 태국 군부-왕실 연합
군과 왕실은 정치적 고비 때마다 손잡고 권력을 지켜왔다. 1992년 쿠데타를 일으킨 수친다 끄라쁘라윤 장군이 푸미폰 아둔야뎃 당시 국왕 앞에 무릎을 꿇은 적 있다. 권위 있는 국왕, 그 권위에 복종하는 충성스런 군부라는 이미지를 굳힌 사건 중 하나였다. 특히 대내외적으로 ‘백성의 사랑을 받는 군주’로 알려졌던 푸미폰 국왕의 교묘한 정치 개입은 극에 달했다. 왕실모독죄는 여론을 통제하고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단골 메뉴였다.
정치권과 국민 여론이 '탁신 갈등'을 빚는 동안에도 군과 왕실은 결탁했다. 탁신에 반대하는 노란 셔츠 시위가 일어나면 군부와 왕실은 ‘중립’을 내세워 방조했고, 친탁신 붉은 셔츠 시위는 유혈진압했다. 쁘라윳이 쿠데타 뒤 새 헌법 만들었을 때에도 푸미폰 국왕이 승인했다. 한마디로 쁘라윳 정부는 강압적 통제와 왕실의 지지를 발판 삼아 버텨왔다.
하지만 푸미폰 국왕은 이미 2016년 타계했다. 그 아들인 와찌랄롱꼰 현 국왕은 즉위 전부터 구설이 잦았고 국민들의 신망을 얻지 못했다. 즉위 이래 대부분의 시간을 외국에서 보내기도 했다. 여전히 왕정을 옹호하는 여론이 적지 않지만 군부 독재에 대한 반발은 점점 커지고 있으며 최근 몇년 사이에는 군부 뒤의 왕실로도 향하고 있다. 푸미폰 전 국왕에 충성심을 보여온 중장년층과 달리 젊은 세대들은 왕실을 돈들여 유지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탁신파냐 아니냐만 놓고 싸워온 기성 정치권에도 반감이 크다. 2019년 총선에서 팟아나콘마이(퓨처포워드) 정당이 3당으로 부상한 것이 이를 보여준다. 퓨처포워드는 기성 정치권에 반대하며 젊은층에 인기를 끌었다. 기업가 출신 타나톤 중룽르앙낏 대표가 이끌던 이 당은 군부의 정치 개입에 반대하고 사회·경제적 평등을 내세웠다가 2020년 2월 헌재 명령으로 해산됐다.
[세계은행] Thailand
코로나19로 태국도 경제상황이 좋지 않다. 1990년대 후반 아시아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까지 태국은 고속성장을 하던 나라였으며 그 뒤에 성장률은 둔화됐지만 빈곤이 꾸준히 줄었다. 하지만 빈곤 인구가 줄어드는 속도도 2015년부터는 느려졌으며 지난해부터는 거의 정체된 것으로 보인다. 쁘라윳 정권의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다. 군부는 쿠데타로 집권한 뒤 ‘코소초(평화질서위원회)’라는 기구를 만들어서 경제까지 주물렀다. 세계은행의 지난해 조사에서 팬데믹의 영향으로 70% 이상의 가구가 소득이 줄었는데 특히 취약계층이 타격을 심하게 받았다. 2020년 태국 경제는 6.2% 위축됐다.
그런 상황에서 쁘라윳 총리는 직무정지 상태에 접어들었다. 야권이 2019년부터 의회에 네 차례나 총리 불신임안을 내놨지만 모두 부결됐다. 2020년에도 야당이 쁘라윳 총리를 헌재에 제소했지만 이 때도 그는 위기를 넘겼다. 이번엔 어떨까. 아직 헌재가 총리 임기를 결정하는 진짜 절차가 남아 있는데 아마 한 달은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전례로 보면 헌재는 늘 군부 편이었지만 이번에도 또 그랬다가는 다시 거센 항의시위가 일어나고 정치적 균열이 커질 수 있다. 쁘라윳 총리가 순순히 권력을 내놓으려고 하진 않겠지만, 독불장군 스타일에 경제 정책 실패로 여론이 좋지 않고 여권에서도 도전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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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총선은 내년 3월로 예정돼 있다. 헌재가 '총리 임기가 끝난 걸로 봐야한다'고 결정을 내리더라도, 당장 선거를 치르기보다는 내년 3월까지 임시 내각 형태로 직무를 수행할 가능성이 크다. 당분간 총리 대행은 쁘라윗 웡수완 부총리가 맡게 된다고 한다. 쁘라윳의 군 선배이고 2014년 쿠데타 동지 중 한 명이다. 하지만 부총리는 이미 77세로, 68세인 쁘라윳보다도 훨씬 나이가 많다. 건강도 안 좋고 부패 스캔들에도 연루돼 있다.
다음 총선도 억압 속에 치러지고 군부가 또다시 집권한다면 시민들 항의가 거셀 것은 분명하다. 헌재의 직무정지 결정이 나온 날에도 방콕 시내에서는 반군부 시위가 벌어졌다. 방콕 도심에 경찰이 깔리고 주요 도로가 봉쇄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시위대가 도심에 자리 잡자 물대포들이 대기하고 있다는 소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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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반군부 투쟁을 이끌어온 ‘랏사돈’은 직무정지 결정에 맞춰 쁘라윳 퇴진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8년 동안 태국 사회는 국민들로부터 권력을 빼앗고 민주적 정당성 없이 권력을 물려받은 독재자의 통치하에서 가장 어둡고 쓰라린 시기를 보냈다.” 이들은 “이제 헌법에 따라 쁘라윳의 시대가 끝나야 한다”고 말한다.
'랏사돈'은 2020년 시위 뒤 만들어진, 기성 정치권 밖에 있는 시민운동 세력이다. 이들의 이름은 1932년의 '카나 랏사돈(Khana Ratsadon, 인민의 당)'에서 나왔다. 역설적이지만 90년 전의 카나 랏사돈은 전제군주에 맞서 장교들이 중심이 돼 만들어진 조직이었다. 태국 군부가 그 후 오랜 세월 동안 '헌정의 수호자'라는 위상을 누릴 수 있었던 것도, 카나 랏사돈 시절부터 내려온 전통과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군부는 새로운 랏사돈, 시민들의 랏사돈으로부터 '나라를 암흑으로 몰아넣은' 독재세력으로 지탄받고 있다. 태국의 민주주의가 복원될 수 있을지, 지금부터가 시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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