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수상한 GPS

[구정은의 '수상한 GPS']마르코스 부활시킨 필리핀의 족벌 정치

딸기21 2022. 5. 12.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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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필리핀 대선에서 옛 독재자 마르코스의 아들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가 승리했다. 확정된 결과가 나오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고. 7000여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어서 최종 검표까지 시간이 필요한 탓이다. 각 지역의 개표 결과를 상하원에서 모두 최종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이달 말이나 돼야 확정발표될 것이라고 한다.


어쨌든 마르코스 주니어의 승리는 확실해 보인다. 현지 언론 필리핀스타 등에 따르면 이미 정권인수팀이 꾸려졌다. 필리핀은 부통령을 따로 뽑는데, 마르코스 주니어의 러닝메이트인 사라 두테르테도 승리가 확실해서 두 사람이 집권하는 수순만 남았다. 두 후보는 각기 60% 안팎의 득표율을 기록했으며 헌법에 정해진 대로 6월 30일 취임하게 된다.

 

Philippine president elect Ferdinand Marcos Jr greets his supporters at his headquarters in Metro Manila. /Reuters


마르코스 주니어. 본명은 페르디난드 로무알데스 마르코스 주니어인데, 보통 봉봉 마르코스라고 부른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젊었을 때 정치에 뛰어들었는데, 1986년 시민혁명으로 마르코스가 축출되면서 하와이로 망명했다. 그 때 봉봉도 아버지를 따라 가족들과 하와이로 피신했다. 당시 그 가족은 보석과 현금을 비롯해 부정축재로 모은 재산들을 들고 튄 것으로 유명했고. 아버지 마르코스는 쫓겨나고 3년 뒤인 1989년 하와이에서 사망했다. 그러나 봉봉과 가족들은 1991년 귀국했을 뿐 아니라, 정계에 진출해 승승장구했다. 

아버지가 그렇게 쫓겨났는데 어떻게 승승장구했냐면... 정치적, 경제적으로 전근대적인 족벌 체제가 많이 남아 있는 것이 필리핀의 근본적인 문제다. 여러 지역을 족벌 가문들이 제각각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마닐라가 있는 루손 섬이 필리핀에서 가장 큰 섬인데 거기 일로코스라는 지역이 있다. 그곳이 마르코스 가문의 아성이다.

 

봉봉은 아버지가 쫓겨나기 전 1980년대에 일로코스 노르테 지역에서 부지사와 주지사를 지냈다. 망명했다 돌아와서는 1992년 그곳 선거구에서 하원의원이 됐다. 1998년에는 일로코스 노르테 주지사가 됐다. 그런데 봉봉 직전에 같은 선거구에서 하원의원을 한 사람은 이미 마르코스, 즉 마르코스의 딸이다. 누나가 먼저 의회에 들어가고, 그 다음엔 남동생이 따라간 것이다. 봉봉이 주지사로 옮겨간 다음에 하원의원을 한 사람은 누구냐면, 그 유명한 이멜다다. 사치로 유명했던 독재자 마르코스의 부인, 봉봉 남매의 엄마.

 

이번 대선날의 이멜다.

 

마르코스 일가는 100억달러 이상 챙긴 것으로 추정됐지만 축출 뒤에 회수된 것은 BBC 등에 따르면 40억달러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이 가족들이 챙긴 것이다.

 

특히 미스 필리핀 출신의 이멜다는 대통령궁에서 발견된 '3000켤레의 구두'로 명성(?)을 떨쳤는데, 이멜다와 그 아들딸은 줄줄이 일로코스에서 정치적으로 재기를 했다. 봉봉은 하원의원, 주지사, 다시 하원의원, 2007년부터 또 주지사를 했으며 2010년에는 상원에 진출했다. 누나 이미 마르코스도 주지사를 지내고 지금은 상원의원이다. 이멜다는 남편 집권 시절 퍼스트레이디이면서 동시에 마닐라 주지사를 했고, 망명에서 돌아온 뒤에는 하원의원을 지냈다. 지금 92세인데 2019년까지 하원의원을 했으니. 몇 해 전에는 시끌벅적한 생일잔치를 해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필리핀의 민주화 혁명이라는 세계사적인 사건은 어떻게 그토록 굴절된 것일까. 의문문으로 적었지만 사실 뭐 딱히 의문이 생기지도 않는다. 우리가 이미 보고 겪어온 것들이라서.


잠시 과거로 돌아가 보면. 독재자 마르코스는 계엄통치를 하면서 야당 지도자였던 니노이 아키노에게 1977년 사형선고를 했다. 하지만 국제적인 압력에 부딪쳐서 아키노의 사형을 면해주는 대신 미국으로 망명하게 했다. 한국에서 박정희 독재 때 야당지도자 김대중의 사형선고와 망명을 떠올리면 된다. 다른 게 있다면, 1983년 아키노가 귀국하자마자 암살당했다는 것이다. 당시 아키노의 귀국장에는 세계 언론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는 순간 머리에 총을 맞은 아키노가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모습은 지금도 사진으로 남아 있다.

 

베니뇨 아키노의 '읽지 못한 연설문'

 

이 사건은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들의 열망에 기름을 부었다. 아키노의 장례식에 200만 추모객이 운집했다. 밀리고 밀린 마르코스는 1986년 조기선거를 결정했는데, 남편 대신 민주화 시위를 이끈 코라손이 이 대선에서 승리했다. 노란 옷에 V자 손마크로 상징되는 필리핀의 피플파워 혁명은 한국의 87년 민주항쟁을 비롯한 아시아 민주화 시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총탄에 쓰러진 아키노.


그런 역사는 무위로 돌아가버린 것일까. 물론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필리핀 유권자 다수에게 시민혁명이 머나먼 과거의 일인 것은 사실이다. 봉봉은 경제 성장을 내세우면서 일자리 걱정이 많은 젊은이들과 서민층의 표를 얻었다. 일단 선거 전략을 잘 세웠다는 분석이 많은 듯하다. 전체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50대 이하, 수십년 전 독재의 기억이 없는 사람들이다. 봉봉 측은 소셜미디어를 적극 활용해서 친숙한 정치인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독재정권의 치부는 가리면서 그 시절을 미화하는 식의 전술을 썼는데 그게 먹혔다고 한다. 아버지 시절의 과오는 '나몰라'에다가, 인권 문제는 무시하면서 성장 노선을 강조했는데 그게 먹혀든 거다. 반면에 피플파워를 계승한 진영의 후보로 나온 레니 로브레도는 선거 준비를 제대로 못했고, 설상가상 야권 후보 단일화에도 실패했다니.

 

하지만 봉봉의 승리를 정책의 효과로 보기엔 좀 꺼림직하다. 그보다는 '족벌 기득권 연대'의 파워라고 해야할 것 같다. 무엇보다 부통령 당선자 사라 두테르테가 현 대통령 로드리고 두테르테의 딸이다. 사라 두테르테는 아버지의 정치적 기반인 남부 다바오 시에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시장을 지냈다.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 3월에 사퇴하기 전까지 시장이었는데 부시장이 누구냐면, 자기 오빠 파올로 두테르테다. 필리핀 대통령은 1987년 헌법에 따라 6년 단임제다. 두테르테가 못 나오게 되니까 이번엔 부통령으로 출마하겠다고 했었는데 작전을 바꿔 딸을 밀었다. 사라 두테르테 대선 출마설도 있었는데 정치적 상황을 저울질해서 봉봉의 러닝메이트로 내세웠으니, 아마도 다음 대선에서 사라가 차기를 노리게 될 것 같다.

 

Presumptive Vice President, Davao City Mayor Sara Duterte gestures during their last campaign rally known as "Miting De Avance" with presidential candidate Ferdinand "Bongbong" Marcos Jr. on Saturday, May 7, 2022 in Paranaque city, Philippines. /AP


이건 뭐, 정치판이 온통 집안잔치들인 꼴이다. 필리핀은 워낙 족벌정치로 악명 높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 미국 식민지 시절, 그리고 그 이후 독립과 마르코스 독재를 거치는 동안에 과거의 경제구조를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족벌가문들이 대토지 소유자들이고, 빈부 격차는 매우 심하다. 미군 기지로 오래 쓰였기 때문에 경제구조가 더욱 왜곡되기도 했고. 섬들로 나뉘어 있다 보니 어떤 지역에서는 좌파 반군들이 무장투쟁을 벌여 과거 독재정권의 시민 탄압 구실로 악용되기도 했고, 1990년대 후반부터는 (이것도 다 '아프간 효과'와 이어져 있지만) 이슬람 극단세력의 폭력에 갱들이 설치면서 분란을 일으켰다. 


정치판은 그 와중에 족벌 상속으로 흘러갔다. 마르코스 장기집권 이후의 대통령들 면면을 보면, 코라손 아키노는 앞서 말했듯이 아키노의 부인이다. 민주주의의 영웅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코라손 집안과 아키노 집안 모두 필리핀의 유명 가문들이다. 코라손 다음에 대선에서 승리한 피델 라모스는 군 장성 출신인데 마르코스에 맞선 시민들에 동참, 영웅이 된 사람이었다. 이 때까지는 시민혁명의 영향력이 남아 있었다.

 

그 다음은 1998년 집권한 조셉 에스트라다였는데 배우 출신이고 마닐라 시장을 거쳐 대통령이 됐다. 부패 문제로 쫓겨났는데, 족벌 배경이 없어서 기득권 세력에 축출된 것으로 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아무튼 부통령이던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가 뒤이어 대통령이 됐고 전임자 잔여임기를 포함해 2000년대 8년간 재임했다. 1960년대에 대통령을 지낸 디오스다도 마카파갈의 딸로, 마카파갈 족벌 출신이다. 남편 아로요 집안도 족벌 가문이다. 남편 호세 미겔 아로요는 아내가 대통령일 때 퍼스트젠틀맨 겸 부통령을 지냈다. 아로요 가문은 필리핀 중부 비사야의 일로일로 지역 족벌이며 호세 미겔은 주지사 손자였다.

 

Comelec officials in Pampanga province proclaim former president Gloria Macapagal-Arroyo on Tuesday (May 10) night as the winner in the second district congressional race where she ran unopposed. (Photo courtesy of  Pampanga PIO) /inquirerdotnet

 

마카파갈 집안의 근거지는 마닐라 북쪽 팜팡가인데 거기서 글로리아가 하원의원을 했고, 그 아들 미키 아로요가 하원의원과 주지사 등등을 하고 있다. 아들이 하원의원이 아닌 다른 것을 할 때면 엄마가 다시 하원의원을 한다. 그래서 팜팡가 하원의원은 엄마-아들-엄마-아들-엄마로 순환되고 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 뒤에는 코라손의 아들이 대통령이 됐다. 2010년 집권한 베니뇨 아키노3세(노이노이 아키노) 얘기다. 그 뒤가 2016년 집권한 두테르테 현 대통령이다. 두테르테는 지방도시에서부터 출발한 풀뿌리 정치인이며 족벌 엘리트 출신이 아님을 내세웠지만 치안을 명분 삼아서 전횡을 휘두르고 범죄와의 전쟁을 한다며 범죄자로 지목된 사람들이나 갱조직원들을 최소한의 형식적인 사법 절차도 없이 사살하는 인권 침해를 저지르고 필리핀을 공포정치 분위기로 몰아갔다. 


민주화 이후 가문을 등에 업지 않은 대통령이 에스트라다와 두테르테 둘 밖에 없는 셈인데, 결국 이 둘도 대통령을 지내면서 자기네 세력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결국 마르코스 아들이 대통령이 되는 상황까지 오게 됐다. 봉봉에게 승리를 안겨준 최대 요인은 정책이나 선거 전략이 아니라, 결국 정치기득권 집단들의 동맹이었다. 에스트라다, 마카파갈, 아로요, 두테르테 세력이 모두 마르코스 족벌과 손을 잡은 것이다.

 


그래서 마르코스 주니어 집권 뒤 필리핀에는 어떤 변화가 올까. 민주주의의 성과들을 무력화할 것이다. 역사를 뒤집을 것이다. 이미 두테르테가 마르코스 독재 시절을 미화하면서 역사 뒤집기를 많이 했다.

 

외교 관계로 보면, 두테르테는 시민들을 억압하면서도 일부 서민층에 먹히는 구호들을 내걸었다. 치안 유지도 그런 것이었고, 또한 자국 이익을 우선시하겠다면서 미국과도 마찰을 불사했다. 남중국해 문제로 중국하고도 갈등을 빚었다. 봉봉 집권 뒤에도 미국과 관계가 잘 풀리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개인사 문제가 크다. 1995년 하와이 법원이 마르코스 집안 재산 20억달러를 환수하기로 결정했는데 봉봉 측은 불복했다. 이 문제가 남아 있다.


중국과 필리핀 사이에는 2016년 필리핀이 국제사법재판소에 남중국해 문제로 중국을 제소해 이긴 건이 있었다. 중국은 물론 따르지 않았다. 봉봉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판결을 집행하는 것이 중국의 거부로 실효성이 없음을 인정했다. “미국이 들어오게 하면 중국을 적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쩜쩜쩜) 중국과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 거다”라고 했다. 중국과 현실적인 이익을 중심으로 거래하겠다는 뜻이다. 로이터통신은 대선 이후 필리핀-미국 관계는 어색할 것이고, 반면 중국과의 관계는 좋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예전에 '위키리크스'로 폭로된 미국 국무부 외교문건들에 따르면 봉봉은 2000년대 중반 중국을 자주 오가며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고 한다. 봉봉의 기반인 일로코스 노르테의 주도 라오악에 중국이 영사관도 열어줬다고. 하지만 필리핀 사람들 사이에서 반중 감정이 적지 않으니 아마도 계속 줄타기를 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는 어떻게 될까. 필리핀의 1인당 실질 GDP는 8000달러 수준이니 최빈국은 아니지만, 아시아 역내에서도 그리 잘 사는 편은 아니다. 그러나 코로나19 이전까지 몇 년 동안 매년 6% 이상 성장률을 보였으며, 팬데믹 충격이 컸겠지만 외환보유고나 재정, 금융도 대체로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2000년대부터 계속 외국 투자를 유치했으며 반도체/전자제품 조립가공 같은 산업들을 많이 키웠다. 두테르테는 인프라 확충과 함께 빈곤률을 17%로 낮추겠다는 약속을 했는데, 인구 1억1500만명 중에 16% 정도가 빈곤선 이하에서 사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하니 약속을 지킨 셈이다.


봉봉은 경제를 키우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꼽고 있으며 전문가들로 경제팀을 구성하겠다고 강조했다.  외국 투자 유치, 인프라 확충 등등 두테르테의 정책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 같다.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하겠다는 것도 그런 뜻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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