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수상한 GPS

[구정은의 '수상한 GPS']'유라시아 제국' 꿈꾸는 푸틴의 우크라이나 전쟁

딸기21 2022. 3. 4.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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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oy plays on a swing in front of a damaged residential block hit by an early morning missile strike on February 25, 2022 in Kyiv, Ukraine. / Getty Images

 

101년만에 러시아군이 키예프를 에워쌌다. 폭격에 폐허로 변한 건물에선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지하철역에서는 피란민들이 텐트를 치고 쪽잠을 잔다. 난민은 일주일만에 100만명을 넘어섰다.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 제국이 무너지고 18세기 말부터 러시아 땅이었던 우크라이나는 짧은 독립을 맞았다. 전열을 정비한 소련의 붉은 군대가 우크라이나를 다시 점령한 것이 1921년. 그 이후 한 세기가 지나 다시 소련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2014년 우크라이나에서 친러시아 대통령을 몰아낸 ‘마이단 혁명’이 일어나자 그 혼란의 틈을 타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병합했다.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는 친러시아 반군이 정부군과 교전하면서 독립공화국 수립을 선포했다. 이후 내내 우크라이나 동부는 ‘분쟁지역’이 됐고 이 위기를 둘러싼 서방과 러시아의 갈등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땅으로 밀고들어갈 거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라운드업] 2014년 우크라이나 시위와 유혈 사태 진행 과정

[라운드업] 크림반도 위기 진행 과정

 

Emergency personnel amid building debris from a missile strike in the Lobanovsky district on February 26, 2022, in Kiev, Ukraine. / AFP


위기감이 고조된 것은 2021년이었다. 미국 조 바이든 정부 출범 뒤 미-러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바이든은 취임 두 달도 안 된 지난해 3월 TV 인터뷰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살인자”라 불렀고 러시아는 격렬히 반발했다. 2주 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접경지대로 군대를 이동시켰다. 6월 두 정상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만났지만 대립점들을 확인했을 뿐이었다.

 

며칠 뒤 영국 군함이 굳이 크림반도 부근 흑해에 들어서자 러시아는 경고사격을 했다. 미국은 맞받듯 30여개국을 동참시켜 흑해에서 합동훈련을 했다. 7월에 푸틴은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의 역사적 통합에 관하여’라는 장문의 글을 발표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한 민족, 전체가 하나다”이며 우크라이나의 주권은 “러시아와 협력해야만” 지켜질 수 있다고 했다. 임박한 전쟁의 경고였을까. 

 


10월 러시아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의 협력을 모두 중단하고 우크라이나 국경 주변 군사력을 증강했다. 푸틴은 경고발언의 수위를 계속 올렸고, 미국에 ‘안전보장 요구’를 적은 리스트를 보냈다. 핵심은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넣지 않겠다는 확약을 하고 동유럽의 나토군 병력과 무기를 철수시키라는 것이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푸틴은 러시아 전역에 방송되는 연례 회견에서 서방이 “우리 문턱까지” 미사일을 갖다놨다며 강경한 수사들을 쏟아냈다. 


해가 바뀌어 우크라이나 접경지대의 러시아군이 13만명으로 불어났지만 여전히 세계는 위협에 그칠 거라고 여겼다. 군을 들여보내더라도 우크라이나 동부를 떼어내 러시아 세력권으로 확보하려는 목적일 것이라고들 봤다. 하지만 현실로 닥친 것은 전면 침공이었다. 동쪽과 남쪽과 북쪽에서 3면을 포위한 뒤 쳐들어가 우크라이나 전역을 전쟁터로 만들었다. 

나토 가입을 막거나 동부 지역을 떼어내자고 이런 규모의 전쟁을 시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푸틴의 목표는 그보다 훨씬 광범위하다는 쪽으로 전문가들의 분석도 바뀌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친러시아 정부를 세워 서방의 영향력을 지우고, 예전만은 못하다지만 여전히 ‘세계의 중심’인 미국의 패권을 흔들고, 러시아의 옛 세력권을 재확립하려는 것으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People walk as they flee from Ukraine to Hungary, after Russia launched a massive military operation against Ukraine, at a border crossing in Beregsurany, Hungary. / Reuters

 

역설적이지만 ‘레짐 체인지(정권교체)’는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내세웠던 것이었다. 그후 미국이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어떻게 진창에 빠졌는지 푸틴은 모두 지켜봤다. 그런데도 그런 시도를 할까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지만 상황은 며칠 새 180도 바뀌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내가 러시아의 살해대상 1순위”라고 말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탈나치화’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레짐체인지라는 목표를 사실상 공식화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를 파시즘으로 몰면서 마이단 혁명 이후의 우크라이나를 파시스트 정권으로 비난해왔다. 

 

푸틴의 거대담론과 관련해 늘 거론되는 사람이 극우파 이론가 알렉산드르 두긴이다. 동서양을 잇는 거대한 러시아가 세계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온 인물이다. 나치 독일의 ‘레벤스라움(생활권)’ 개념에 민족주의와 포퓰리즘을 합친 듯한 두긴의 구상은 흔히 유라시아주의로 불린다. 그는 푸틴의 측근도 아니고 푸틴 체제에서 공식적인 역할을 맡은 적도 없다. 하지만 부총리를 지낸 드미트리 로고진을 비롯한 푸틴 주변 인사들과 접촉하고 클럽 이즈보르스키 같은 고위층 모임을 만들어 영향력을 미쳤다. 동쪽의 카자흐스탄에서 서쪽의 벨라루스까지 이어지는 광대한 지역을 정치적, 경제적으로 ‘재구성’한다는 두긴의 사상은 푸틴이 주창해온 유라시아경제연합이나 ‘강한 러시아의 부활’과 맞아떨어진다.

 

 

우크라이나 침공은 그 구상이 필연적으로 불러온 군사적 과정의 시작인 걸까. 푸틴이 러시아의 부활을 주장하며 지지기반을 다지고 민족주의 선동을 위험한 수준까지 끌어올린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 전쟁을 마음먹고 준비에 들어간 것이 언제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다. 나토 문제를 가지고 미국의 의지와 대응 수준을 시험해본 뒤 목표치와 도발의 강도를 끌어올린 것일 수도 있다. 

 

유라시아를 묶는 대제국의 부활이라는 구상을 가지고 오래전부터 큰 그림을 그려왔을 수도 있다. 러시아는 2010년 대대적인 국방개혁을 마무리하면서 볼가-우랄·시베리아·극동 등 6개로 나뉘어 있던 군구를 조정해 서부·남부·중부·동부의 4개 군구로 만들었다. 육군 40%가 배치된 서부군구는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포함한 핵심지역이며 핵 전력을 총괄한다. 남부군구에는 러시아 해군의 중심축인 흑해함대와 카스피선단이 있다.

 

푸틴은 총리로 잠시 내려앉아 있던 2008-2011년 사이에 낡고 병든 군을 뜯어고치고 무기체계를 현대화했다. 첫 집권 때 미국에 시비를 거는 냉소적인 ‘안티’였던 푸틴은 2012년 재집권 뒤 부쩍 강경해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흑해함대의 모항이 있는 크림반도를 병합하며 서방과의 대결을 불사했고, 우크라이나를 위해 전쟁에 나서줄 ‘서방’은 없다는 점을 계속 확인했다. 

 

 

결과론적인 해석이지만 그는 진작부터 제국적인 그림을 그려놓고 타이밍을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1년 전 우크라이나 주변의 무기와 병력을 늘리기 시작했을 때부터 전쟁 시계를 돌리기 시작한 것은 분명하다. 무리하게 나토에 들어가려던 우크라이나가 문제라거나 코미디언 출신 대통령의 실책이라는 식으로 피해자를 탓하는 것은 도덕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초점이 빗나간 주장인 것이다.


냉전 시절에도 없었던 전면전에 핵위협까지 버젓이 꺼내놓는 푸틴을 보며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특히 경악한 유럽은 ‘유럽의 9.11’로 받아들이고 있다. 러시아의 군사행동을 예방한다는 전제 아래 짜놨던 서방의 경제제재 패키지는 효과가 없었다. 러시아 제재는 크림반도 병합 때부터 계속됐고, 거기에 수백 쪽의 제재목록을 덧대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부터의 제재는 다를 수 있다. 측근들만 겨누던 제재 대상에 푸틴 본인도 포함시킨 것은 상징적이다. 무엇보다 국제 금융망에서 러시아를 몰아내다시피 했다. 비록 침공을 막지는 못했지만, 세계경제에서 축출하는 수준의 고립으로 몰아가 전쟁의 ‘비용’을 높이겠다는 뜻이다. 우크라이나 침공 뒤 러시아와 거리를 두고 있는 중국 정부가 경제적 타격을 공개적으로 거론한 것도 제재의 강도가 매우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Residents attend an open training organized for civilians by war veterans and volunteers who teach the basic weapons handling and first aid on one of Kyiv's city beaches. / AFP

 

유럽은 반러시아 물결로 덮였다. 중립국들에서도 나토에 들어가자는 여론이 높아졌고, 2차 세계대전에도 끼어들지 않았던 스웨덴 같은 나라들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보냈으며 독일의 재무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미군이 아프간에서 빠져나갈 때 유럽국들은 “며칠만이라도 철군을 늦춰달라고”고 사정했지만 거절당했다. 유럽은 이를 ‘웨이크업 콜(경종)’로 받아들였으며 더이상 미국만 믿고 있을 수는 없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번 사태가 불러일으킨 위기의식은 그것과 비교가 안 될 만큼 크며, 미국의 안보우산 속에 머물러온 유럽의 의식구조를 바꿔놓을 것이다.


이 전쟁의 지정학적 파장을 점치기에는 아직 이른 것이 사실이다. 모든 것은 앞으로의 전쟁 양상에 달려 있다. 미국의 아프간과 이라크 침공은 일방적이었고, 두 나라 정권은 별반 저항도 못 하고 쫓겨났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결사항전으로 맞서고 있다. 탱크 앞에서 화염병으로 저항하는 시민들, 조국을 지키겠다며 귀국하는 사람들. 전국민 총동원령이 내려졌고 할머니들까지 총을 들었다. 남부의 소도시에서는 핵발전소를 장악하지 못하도록 시민들이 도로로 나와 몸으로 바리케이드를 쳤다. 압도적인 화력을 자랑하던 미국도 아프간과 이라크의 수렁에서 빠져나오기가 그토록 힘들었는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쉽게 끝낼 수 있을까. 개전 초반 키예프로 진군한 속도는 빨랐지만 우크라이나의 제공권을 순식간에 무력화할 것이라던 예측은 빗나갔다. 러시아군의 전투능력이 예상보다 떨어진다는 얘기도 나온다. 

 

Demonstrators display a banner in the colours of the Ukrainian flag reading "Stop [Russian President] Putin, Stop war" during a protest at Berlin's Brandenburg Gate on January 30, 2022. / AFP


항공모함과 폭격기도 중요하지만 여전히 전쟁에서는 지상군 투입이 관건이다. 미국과 유럽국들은 우크라이나를 위해 러시아와 전쟁에 들어갈 것인가. 바이든은 우크라이나 ‘주변국’에 지상군을 배치했지만 전쟁에 말려드는 것은 기피한다. 전쟁에서 발을 뺀다는 것은 버락 오바마 정부 때부터 미국의 지향점이기도 했다. 유럽국들도 마찬가지다. 동맹도 아닌 나라에 자국군을 들여보내는 걸 찬성할 국민들은 없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저항이 거세다는 것은 치열한 지상 교전이 벌어질 것이라는 뜻이며 이는 곧 인명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1990년대 옛 유고연방 내전 때 유럽은 무기력하기 짝이 없었다. 결국 미국이 나섰고 나토 공습이 시작됐다. 만일 우크라이나에서 인명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 미국과 유럽국들의 여론도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 해도 군사적 대응이 쉽지는 않다. 키예프 같은 대도시를 폭격하거나 지상군을 투입했다가 자칫 보스니아 내전 때처럼 오히려 더 큰 피해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알자지라] Russia-Ukraine: Mapping anti-war protests around the world

 

잔인하게 들리겠지만, 결국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희생되느냐의 문제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목숨을 가지고 도박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그 도박이 더 큰 반인도범죄로 귀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세계의 시민들이 피켓과 촛불을 들고 있다. 시위로 전쟁을 막지 못한다 해도, 감시와 압박은 때론 무엇보다 강력한 수단이 된다. 하나로 합쳐진 세계 시민들의 목소리는 언제나 우리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 

* <한겨레21> 제1403호(2022-03-04)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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