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개막된다. 오랫동안 준비해온 선수들과 동계스포츠 팬들은 행사를 많이 기다렸겠지만, 이번 올림픽은 전에 없이 조용하게 치러지는 듯한 분위기다. 공식 후원업체들조차 이번 올림픽과 관련된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있다고 외국 언론들은 전한다. 코로나19 탓도 있지만 국제관계가 악화된 까닭도 있다. 올림픽과 관련해서 스포츠 자체보다는 미중 관계, 그리고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 한껏 긴장이 높아진 미러 관계에 관심이 많이 쏠리고 있다.
미국이 동계올림픽 ‘외교 보이콧’을 선언했을 때부터 이미 분위기가 싸해지긴 했다. 하지만 미국의 그런 행보가 국제사회에서 별로 호응을 얻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3일 미국 포린폴리시는 유엔 주재 미국 대사가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에게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참석하지 말아달라고 요구했으나 거부당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측은 “유엔 사무총장이 개막식에 불참하고 공개적으로 중국 신장의 심각한 상황에 대한 우려를 밝혀주기를 바란다”고 했으나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국의 인권 상황에 대해서는 이미 유엔 차원에서 누차 우려를 표한 바 있으며, 올림픽은 "사람들을 하나로 만드는 행사"라는 것이 구테흐스 사무총장 측의 입장이다. 다만 개막식 참석은 '정치적 차원'이 아니라면서, 중국 편에 서는 것도 아님을 강조했다. 미국은 올림픽을 앞두고 유엔에 중국 인권보고서를 발표하라는 압력도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장 지역 위구르족 인권상황을 조사한 유엔의 보고서를 베이징 올림픽 개막에 앞서 공개해달라고 미국이 유엔에 요구했으나, 미첼 바첼렛 유엔 최고인권대표 측은 공개하는 일정을 앞당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호주 캐나다는 중국의 인권 문제를 거론하면서 미국의 외교 보이콧에 동참한다고 이미 발표했고, 뉴질랜드 네덜란드 스웨덴 호주는 코로나19를 핑계로 정상이 참석해달라는 초청을 거절했다. 외교 보이콧이 아니더라도 원래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정상급 참석은 많지 않다. 평창 동계올림픽 때 ‘정상급’ 외빈은 20명 정도였다. 당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왔었고 미국에서는 마이크 펜스 당시 부통령이 참석했다. 그 때 펜스 부통령은 북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을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정치적 제스처를 보이기도 했다.
이번에도 정상급 참석자 수는 비슷하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정상급 참석자가 26명이라고 하는데,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몽골 폴란드 세르비아 등등에서 정상급 인사가 개막식에 모습을 비친다. 카자흐스탄, 파키스탄, UAE 등에서도 참석한다. 그 중 눈길을 끄는 사람은 단연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하마드 빈 살만 왕세자, 이집트의 압델 파타 엘시시 대통령 등도 참석한다. 미국 CNN은 "권위주의 지도자들이 많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우크라이나 긴장이 높아지면서 세계가 시끄러운 상황이니 푸틴 대통령에게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다. 푸틴 대통령은 3일 국영 언론을 통해 공개한 글에서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지역적, 세계적 차원의 어젠다들에 함께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이 압박을 하니 중-러 밀착이 심화되는 것이 올림픽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크렘린 발표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4일 시 주석과의 회담에서 15개 이상의 협정에 서명한다. 러시아와 중국 간 에너지 협력, 금융협력이 눈에 띈다. 러시아 가스를 중국으로 더욱 많이 수송하는 문제, 그리고 공동 금융인프라를 만드는 문제다. 양국은 러시아 동부에서 중국으로 가는 ‘시베리아의 힘’ 가스관의 용량을 늘리는 방안을 논의해왔다. 러시아가 유럽 대신에 동쪽에서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결론이 난 것은 아니지만 양국 공동 금융인프라 논의도 서방이 주시하고 있다. 러시아가 서방의 금융 제재를 피해갈 통로를 중국 쪽에서 뚫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중국이 푸틴 대통령의 생명줄이 돼주고 있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문제에서 중국의 입장이 단호하게 러시아편인 것은 아니다.
2019년까지 우크라이나의 최대 수출상대국은 러시아였고 이어서 중국이었다. 그런데 2020년 중국이 러시아를 제치고 1위가 됐다. 수입 상대국 중에서도 중국이 1위다. 중국은 사료 수요가 많은데 옥수수 수입량의 80%를 우크라이나에서 가져온다. 또 중국 신장에는 군대 조직이면서 개간과 변경 방위를 막는 빙퇀(병단)이라는 생산부대가 있다. 신장 병단이 2013년 우크라이나의 농업용지 10만 헥타르를 50년 장기임대하기로 계약했다. 중국에서 소비될 먹거리를 우크라이나에서 키워서 가져가는 것이다. 더디플로맷에 따르면 중국 국영 농업기업인 COFCO는 2014년 우크라이나 동부에 5000만달러를 투자, 중국으로 수송할 식량 환적량을 크게 늘렸다.
[더디플로맷] Ukraine: China’s Burning Bridge to Europe?
우크라이나는 중국 일대일로 계획과도 연결돼 있다. 이 문제에서도 중국과 러시아의 이해관계가 엇갈린다. 우크라이나는 2017년 러시아의 압박에 맞서기 위해 유럽연합(EU)과 무역협정을 맺었다. 중국은 우크라이나를 허브로 삼아 유럽과의 교역을 늘리려 하고 있으며, 2018년 키예프에 일대일로(BRI) 무역투자센터를 개설했다. 또 중국 기업들은 우크라이나 항만 설비에도 투자했다.
2021년 6월 말 중국은 우크라이나와 인프라 투자협정을 체결했다. 당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유럽으로 향하는 '중국의 다리'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는 중국 위구르 문제에 대해 유엔 인권이사회가 독립적으로 조사를 해주길 촉구하는 성명서에서 서명을 철회했다. 지금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압박에 맞서서 국제사회에 도움을 호소하고 있지만, 위구르 인권 문제에서는 중국 정부 편에 섰던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정이 급하기는 했다.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50억 달러를 빌렸어야 했는데 운용 투명성 문제로 거부당했고, 발등의 불의 떨어지니 중국에 10억달러를 빌려야 했던 상황이었다.
[LOWY INSTITUTE] Ukraine: Balancing China and the rest
러시아 가스에 의존해온 우크라이나는 양쪽 사이가 나빠지면 에너지 걱정이 커진다. 그래서 대안을 찾으려고 애쓰고 있는데, 우크라이나 에너지부문에 투자하고 있는 것이 중국개발은행이다. 우크라이나가 우라늄 생산을 늘리고, 발전소에서 러시아산 가스 발전 대신에 석탄 발전을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바꾸는 작업을 중국이 지원하고 있다.
중국과 우크라이나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랴오닝함이다. 중국이 보유한 최초의 항공모함인 이 배는 1998년 우크라이나에서 '바랴그'라는 이름으로 고철 취급받던 것을 2000만 달러라는 헐값에 사들여 개조한 거였다. 그 뒤로도 우크라이나는 중국에 항공기 엔진, 탱크용 디젤 엔진, 미사일용 가스터빈 등을 수출했다. 아예 우크라이나의 엔진 생산업체를 중국 기업이 매입하려는 시도도 했는데,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압박으로 무산됐다.
이런 역사가 있지만, 그럼에도 중국 입장에서 보자면 우크라이나가 중요한 정치적 경제적 협력 상대는 아니다. 중국은 전략적 차원에서 러시아 편에 서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긴장이 높아지는 것은 원치 않는다.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은 지난달 말 앤터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통화하면서 "모든 당사국들이 침착함을 유지하고 긴장을 높이는 것을 피하라"고 촉구했다. 이렇게 원론적인 입장을 강조하면서도, 미국 측에 “러시아의 타당한 우려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시 올림픽으로 돌아가서, 코로나19 방역은 어떨까.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 당국은 방역 통제를 엄청나게 강화했다. 지나친 통제와 봉쇄 뒤에는 '제로 코비드'라는 정부 방침이 깔려 있고, 이에 대해서는 비판도 적지 않다. 어쨌든 이번 대회의 성패를 가르는 요인 중 하나가 코로나19임은 분명하다. 대회 참가자들은 입국 전 두 차례 PCR 검사를 받고, 음성 반응이 나와야 베이징에 들어갈 수 있다. 들어가서도 매일 한번씩 PCR 검사를 해야 한다. 만일 확진을 받으면 회복할 때까지 경기에 참가할 수 없으며 무증상이어도 당연히 격리된다.
참가자들 이동도 철저하게 통제한다. 올림픽 ‘버블’을 만들어서, 그 안에서만 움직일 수 있게 한다. 일각에서는 중국 정부가 방역을 빌미로 인권운동가들의 대회장 앞 시위나 참가자들의 인권 관련 발언을 차단할 수 있게 됐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퓨리서치센터] Fast facts about views of China ahead of the 2022 Beijing Olympics
올림픽은 국가의 위신을 높여주는 행사다. 중국이 이번 올림픽으로 세계의 반중 정서를 좀 누그러뜨릴 수 있을까? 미국 퓨리서치센터는 지난해 실시한 17개국 여론조사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여론조사들에서는 각국의 반중국 정서가 높다는 것이 그대로 드러났다. 가장 높은 나라는 일본이었다. 무려 88%, 10명 중 9명이 중국에 대해 비우호적인 감정을 표출했다. 중국에 대해 악감정을 보이지 않은 나라에서도 중국의 인권상황에는 비판적인 반응이 나왔다. 이를 테면 싱가포르에서는 64%가 중국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보여줬지만 동시에 60%가 '중국이 자국민들의 자유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어느 나라든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는 중요하며, 그 때문에 중국 인권문제에 대해 각국 정부가 단호한 태도를 보이지 못할 때가 많다. 경제적 이해관계와 중국의 인권 신장 가운데 어느 쪽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에 대해서 호주와 뉴질랜드 사람들은 '인권문제를 우선시해야 한다'고 답했다. 반면 한국과 싱가포르 등은 경제적 관계를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과 대만에서는 반반으로 견해가 나뉘었다. 위구르 문제, 홍콩 문제, 내부의 민주주의 문제 등을 풀지 않는다면 올림픽을 치른다 해서 중국에 대한 세계의 시각이 크게 바뀌지는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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