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수상한 GPS

[구정은의 '수상한 GPS'] "기한 지난 백신 주다니" 100만 도스 폐기한 나이지리아

딸기21 2021. 12. 23.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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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person stands next to a vehicle and expired AstraZeneca vaccines at the Gosa dumpsite in Abuja [Reuters]

 

나이지리아 정부, 22일 100만도스 이상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폐기처분. 서구의 부유한 나라들이 코로나19 백신을 기부하겠다며 지난달 총 260만도스 분량을 보내줬는데 유통기한이 얼마 안 남은 것들이 많았던 것. 자국에서 접종 못해서 쌓아두고 있던 것들을 유통기한 다 지나가니 생색 내면서 나이지리아에 기부했던 것. 

 

[Vanguard] COVID-19: FG destroys over 1m doses of AstraZeneca vaccines

나이지리아는 면적 92만km2에 아프리카 최대 인구대국, 인구가 2억 명이 넘는다. 접종하는 데에는 물리적인 준비와 시간이 필요하다. 결국 사용기한이 지나버렸고 괜히 받았다가 수송하고 폐기하느라 행정력을 낭비한 꼴이 됐음. 자칫 인체에 위험을 줄 수 있는 의약폐기물이잖아. 현지언론 뱅가드 보도를 보면 보건청이 받은 것을 식품의약청으로 보내 검사한 뒤 돌려받고, 유통기한이 11월로 만료된 것들을 수도 아부자 시내 폐기장소로 옮겨서 환경청 관리 하에 파괴했음.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상자들과 비닐 봉지에 쌓인 백신들을 정부가 쌓아두고, 기자들과 보건 당국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불도저로 뭉개 폐기했다. 오만한 서방을 향한 일종의 시위. 아직 접종 못 받은 사람들도 많은데 이런 일이 벌어지니까 시민들 분노.

 

CIA, THE WORLD FACTBOOK


국가기초보건개발청 파이잘 슈아이브 청장,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 백신이 모자라는 상황에서 나이지리아도 외국의 기부를 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받고 나서야 사용기한이 얼마 안 남은 것들임을 알게 됐다”고 설명. 이날 폐기한 백신 106만6000여 도스. “국민들에게 백신을 투명하게 공급하겠다고 한 정부의 약속은 지킬 것이다. 오늘의 폐기처분은, 나이지리아인들이 스스로의 백신 프로그램을 더욱 신뢰하게 해주는 기회가 될 것”. 오사기 에하니레 보건장관도 “나이지리아는 더 이상 유통기한 남지 않은 백신 기부 안 받을 것” 대통령 위원회 결정이라고. 

나이지리아에서는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23만명 넘고 3000명 가까이 숨졌다. 남아공과 모로코 튀니지 리비아 이집트 등 북아프리카 국가들에 비해 아직 감염자 숫자와 사망자는 적게 나타남. 

 

A truck offloads expired AstraZeneca vaccines at the Gosa dumpsite in Abuja [Reuters]


먼저 코로나19가 퍼진 유럽 등 외국과의 교류가 상대적으로 적은 탓일 수도 있고, 또 인구 구조로 봐도 5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7.4%에 불과. 전체 인구 가운데 딱 가운데 있는 사람의 나이 즉 중위연령이 한국은 지난해 기준 43.7세. 나이지리아는 18.6세다. 14세 이하 어린이가 42%이니 성인 기준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하는 것을 감안하면, 실제 접종대상은 크게 줄어듦. 아프리카 국가들 코로나19 상황이 생각보다 그리 심각하게 나타나지 않은 것은 인구가 젊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많이 나왔다. 하지만 검사가 적어서 확진자 수가 적게 나타난 것일 수도 있음.


하지만 최근 세계 각국이 코로나19 4차, 5차 파도를 맞고 있는데 나이지리아도 역시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다. 현지언론 더가디언에 따르면 22일 하루에만 신규 확진자 2123명, 지난해 2월 첫 확진자가 나온 이래 최대. 항구도시이자 최대 도시인 라고스가 있는 라고스 주의 상황이 특히 심각. 석유수출을 비롯한 경제 활동의 중심지. 오미크론 감염자 많음. 유전지대인 델타 지역 보건당국에 따르면 오미크론 변종 감염여부를 검사해봤더니 약 10%가 오미크론 감염으로 나타났다고. 

 

[더가디언] COVID-19: Nigeria records highest single day infection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12/19일 현재 나이지리아 백신접종 약 1300만도스. 백신 접종 속도는 매우 느리다. 뉴욕타임스가 영국 옥스포드대학의 ‘데이터로 본 세계(Our World in Data)’ 통계를 가지고 글로벌 백신트래커를 만들어 수치를 보여주는데 그에 따르면 나이지리아에서 지금까지 1차례 이상 접종 받은 사람은 전체 인구의 4.4%에 불과. 두 차례 접종을 다 받은 사람은 그 절반도 안 되는 2.1%로 떨어짐. 정부는 내년 말까지 성인 인구에 해당되는 1억1000만명 접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그러려면 매일 10만도스 이상씩 접종해야. 그런데 백신 확보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보건 인프라도 부족하고. 기증받은 백신 폐기하면서 정부가 밝힌 것을 보면 코로나19로 의료예산 확충에 4000만달러 투입. 

 

CIA, THE WORLD FACTBOOK


코로나19와 접종에 대한 인지도가 낮아서 주사 맞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문제. 15세 이상 문자해독률 62%, 아직도 10명 중 4명은 글을 읽지 못하는 것. 백신에 대한 헛소문이 너무 많아서, 정부의 음모라며 거부하는 사람들도. 부국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우리도 부스터샷을 맞고 있지만, 사실 세계보건기구는 부스터샷 때문에 빈국들로 갈 백신 물량이 줄어든다고 걱정하고 있지. 미국은 21일 16세 이하 모든 인구가 부스터샷을 맞도록 하겠다고 발표. 또 이스라엘은 60세 이상에게는 4차 접종까지 하겠다고 했지. 그 이튿날인 22일 테워드로스 WHO 사무총장은 부국들이 부스터샷 많이 맞추면서 빈국들은 백신 확보하기가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고 우려를 표명. 위중증 우려가 적은 사람들에게까지 부스터샷을 맞추는 프로그램들은 팬데믹을 끝내기는커녕 오히려 더 연장시킬 것이라고 말함. 

 

www.worldometers.info


백신 접종 안 받은 사람들, 면역 형성 안 된 사람들이 세계에 편재. 그러다 보니 바이러스 변이가 일어나고 확산될 기회를 더 포착하게 된다고 테워드로스 사무총장은 지적. 백신 전문가들은 특히 오미크론 변이바이러스가 남아공의 HIV 환자에게서 시작됐다는 점에 주목. 남아공은 완전 접종률이 27%밖에 안됨. 테워드로스 사무총장의 설명에 따르면 WHO 회원국 가운데 접종률이 40%를 이상인 나라는 절반뿐이라고.   


올해 코로나19 관련 사망자 330만명. 에이즈, 말라리아, 결핵으로 지난해 숨진 사망자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음. 코로나19로 매주 5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는 꼴. 보건의료 역량이 낮은 나라들에서 사망자가 많이 나오고 있고, 특히 아프리카 최근 급속 확산세여서 WHO는 크게 우려. 

 

Global Alliance for Vaccines and Immunization(GAVI)

저개발국에 백신 공급하기 위한 국제 프로그램이 없지는 않다. 글로벌백신연합, GAVI(Global Alliance for Vaccines and Immunization)가 대표적. 1990년 미국 뉴욕에서 아동정상회의가 열렸는데 그때 부국들이 저개발국 어린이 백신접종 지원하기로 하면서 ‘아동백신이니셔티브(Children's Vaccine Initiative)’가 만들어짐. 그 활동기간이 10년 지나 끝나면서 2000년 뒤를 이어받은 가비가 탄생. 영유아 사망률 높은 질병 중심으로 백신 공급, 성과가 적지 않았음. 예를 들어 2000년 59%였던 디프테리아 백신 접종률을 2019년에는 81%로 끌어올렸고. 20년 동안 세계에서 연인원 7억6000만명의 아이들에게 백신 공급, 1300만명 이상의 목숨을 구한 것으로 평가.

 

GAVI 웹사이트


WHO나 유니세프, 세계은행 등과 연계해 기업이나 구호기구들부터 백신 기부받아 개도국들에 공급. 하지만 가비와 유엔의 접근법은 근본부터 다름. 제약회사들이 협상력 약한 저개발국에 백신 비싸게 파는 가격차별 막고, 백신 대량생산-대량구매로 기업과 저개발국들을 잇는 공급체계를 만들었음. 


보건의료에 대한 유엔의 기본 입장을 천명한 알마아타 선언(Alma Ata Declaration)이 있는데. 1978년 카자흐스탄의 알마티에서 열린 제1회 보건의료 국제회의에서 채택. 모두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정부와 모든 보건개발종사자, 세계 공동체의 긴급 조치가 필요하다는 선언. WHO의 바탕에 깔린 것이 여기서 선언된 "모두를 위한 건강"이라는 목표. 20세기 글로벌 공중보건의 중요한 이정표. 

 

반면 가비는 시장 중심 접근법을 선호. 의료기술 개발과 기업 지향적인 방식으로 공공의료를 늘리는 거지. 그동안 값비싼 백신을 빈국 주민들이 접할 수 없었던 것은 시장의 실패라고 보는데, 그 해법으로 정부 역할을 강화하자는 게 아니라, 먼저 정부들이 사전 구매 약정(Advance Market Commitments, AMCs)을 해서 기업들이 안심하고 백신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주장. 일각에서는 미국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 같은 방식이라 해서 ‘게이츠 접근법(Gates approach)’이라고도 부름. 그래서 저개발국의 공공의료 인프라가 확충되는 것을 오히려 방해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How will vaccines be equitably distributed?  Andrew Brookes/Getty Images


가비는 공여금을 모아 5년 단위로 계획을 짜는데 2020년 6월 영국에서 열린 회의에서 2021~2025년 5년간 88억달러 기금 운용하기로 결정. 당초 예정했던 돈보다 주최국인 영국, 게이츠 재단과 노르웨이 등이 더 돈을 내겠다고 약속해서 늘어남. 그러나 지난해부터 가비가 가동 중인 핵심 프로그램은 코백스(COVAX). ‘코로나19 글로벌 백신접근(COVID-19 Vaccines Global Access)’의 약칭. WHO와 가비, ‘전염병 대응 혁신 연합(CEPI)’ 등이 함께 운영. 작년 4월 WHO와 유럽위원회, 프랑스 정부가 중심이 돼 설립. 가비는 작년 10월에 코백스 통해서 1억5000만달러 공여금을 92개국 코로나19 백신 공급에 투입하겠다고 발표. 


코백스는 하위소득 국가와 중위소득 국가들의 코로나19 검사와 치료, 백신 접종 지원. 30여개 공여국이 지원한 돈으로 백신 구매해 빈국들에 공급하는 유니세프가 현재 코로나19 백신의 최대 구매자. 180여개국 회원으로 가입, 올해 2월부터 백신 공급 시작. 서아프리카 가나에 코백스 통한 첫 백신 물량이 도착했지. 그 후 올 8월까지 140여개국이 코백스를 통해 2억도스 분량 백신을 공급받음.

 

[WHO] COVAX - Working for global equitable access to COVID-19 vaccines


그런데 당초 세웠던 목표에서 조금씩 차질 빚어지고 있음. 가장 큰 문제는 백신 민족주의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 부국들이 백신 쟁여둔 탓+ 또 인도 정부가 세계 최대 백신 제조회사인 인도 세럼인스티튜트(SII)가 라이센스 생산하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4억도스를 자국에서 우선 접종하겠다며 수출 중단한 탓이 컸지.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에서는 경제대국인데 그 나라도 접종률이 저렇게 떨어지는 판. 뉴욕타임스 백신트래커에서 대륙별로 보면 최소 1차례 이상 접종받은 사람들 비율, 23일 현재 북미 74%, 중남미 71%, 아시아태평양 68%. 유럽은 65%로 그보다 조금 떨어지고 중동 49%, 아프리카는 겨우 12%.


아프리카 안에서도 접종률 큰 차이. 예를 들면 서아프리카 대서양 섬나라 카보베르데는 성인 65% 이상 접종 받아서 유럽과 비슷. 남아공 1차례 이상 접종률 32%, 이집트 31%. 반면 중부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은 인구가 9000만명인데 접종률 0.2%에 불과. 

 

[로이터] COVID shots are finally arriving, but Africa can't get them all into arms


백신 구매 예산이 부족한 것도 문제이지만, 화이자 같은 mRNA 백신은 수송하려면 콜드체인이 필요. 아프리카 곳곳이 인프라 부족하고 또 외진 곳에 사는 이들이 많아서 공급 힘들다고. 로이터통신 지난 7일 보도, 북서아프리카의 말리는 아프리카에서도 최빈국 가운데 하나인데 백신 장거리 수송할 수 있는 냉동차량이 단 2대. 게다가 북부 지역 이슬람 반군 때문에 치안 불안정, 백신 싣고 갈 엄두를 못 내는 거지. 남수단과 콩고는 기부받기로 한 백신도 공급할 역량이 없다며 받지 않기로 결정. 그나마 기부받은 백신도 부국들이 사용기한 다 끝나가는 것을 보내고 있으니. 나이지리아뿐 아니라 대륙 남부의 나미비아도 기한 지난 것들 폐기할 방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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