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소식은 우주여행.
세계 최고 부자인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우주를 향해 날아 올랐다.
베이조스가 세운 우주여행 회사 블루오리진(Blue Origin)의 준궤도 로켓 ‘뉴셰퍼드(New Shepard)’가 7월 20일 텍사스 사막에서 이륙했다. 1969년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달에 발을 디딘지 52년이 되는 날이었다. 우주선에는 동생인 마크 베이조스, 82세 여성 월리 펑크와 18세의 네덜란드 물리학도 올리버 대먼 등 총 4명이 탔다.
상공 80km 지점에서 로켓과 분리된 캡슐은 고도 106km까지 상승했다. 베이조스를 비롯한 탑승객 4명은 성층권에서 안전벨트를 풀고 약 3분 동안 무중력 상태를 경험했다. 그 뒤에 캡슐은 낙하산을 이용해 다시 지상으로 내려왔고, 로켓도 서부 텍사스 사막에 안전하게 착륙했다. 비행시간 총 11분. 베이조스는 이 비행에서 돌아온 뒤 “믿기 힘들 정도로 기분이 좋다. 최고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베이조스보다 며칠 앞서 또 다른 억만장자가 우주 여행을 했다. 리처드 브랜슨이 7월 11일 미국 뉴멕시코주에서 버진갤럭틱(Virgin Galactic)의 우주선 '유니티(VSS Unity)'를 타고 지구에서부터 85km에 이르는 곳까지 올라갔다가 귀환한 것이다. 유니티에는 브랜슨을 포함해 총 6명이 탑승했다.
버진항공 창립자인 영국 사업가 브랜슨은 모험가이자 자선가로 유명하다. 2004년 버진갤럭틱을 창립한 이래로 민간 우주여행 시대를 열기 위해 앞장서 왔다. 당시만 해도 2007년에 민간 우주선이 사람을 태울 수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낙관적인 예측에 비하면 시간이 오래 걸렸다. 2014년에는 시험비행 중 조종사가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이날 비행에 성공함으로써 브랜슨은 '민간 우주선으로 지구를 벗어난 최초의 우주 여행자'가 됐다. 그 영예를 노리던 대표적인 라이벌이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와 베이조스 같은 이들이었다. 모두 브랜슨과는 친구 사이다. 머스크는 비행을 앞둔 브랜슨을 응원하기 위해 뉴멕시코까지 직접 갔고, 베이조스도 브랜슨이 먼저 우주여행에 성공한 뒤 축하 인사를 전했다.
버진갤럭틱의 비행선은 80km 이상 올라갔고, 베이조스가 탄 뉴셰퍼드는 100km 고도를 넘겼다. 통상 지구 대기권의 높이를 지상에서부터 100km 정도로 보고, 지상 100km를 ‘카르마 라인(Karman Line)’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베이조스의 블루오리진 측에서는 경쟁자인 유니티의 성공적인 비행을 축하한다면서도 제대로 된 우주비행은 아니라며 살짝 시샘 섞인 반응을 내놨다.
그러나 브랜슨이든 베이조스든, 저들의 비행을 우주여행이라 부르는 것이 좀 과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저 높이 올라갔다가 아무 곳에도 들르지 않고 내려온 것일 뿐인데 말이다.
달이나 우주정거장에 간 우주인들을 제외하고도 지상에서 높이 치솟는 것으로 치자면, 이미 1960년대에 미국 전투기들이 100km 이상 상승하는 데에 성공했다. 노스아메리칸(North American) X-15 초음속 비행기가 1963년 고도 107.8km까지 올라가는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무엇을 타고 올라갔든 간에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는 우주의 경계를 고도 50마일(약 80km)로 보고 있고, 그 이상 올라가면 ‘우주비행사’ 타이틀을 붙여준다.
브랜슨 이전에 세계에서 우주 비행을 한 것으로 기록된 사람은 580명인데 대부분 각국 항공우주 기관에 소속된 사람들이었고 민간인은 10명 뿐이었다. 그중 7명은 러시아 소유스 우주왕복선을 이용해 국제우주정거장(ISS)을 찾아간 '관광객'이었다.
나머지는 100~112km 상공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온 사람들인데 모두 일반인 탑승객이 아닌 조종사들이었다. 예를 들어 2004년 6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마이클 멜빌이 스케일드 컴포지트(Scaled Composites)가 제작한 스페이스쉽원(SpaceShipOne)을 타고 미국 모하비 사막에서 100km 상공까지 올라가 첫 '민간 우주 파일럿'이 됐다. 같은 해 미 해군 출신 조종사 브라이언 비니가 역시 스페이스쉽원을 몰고 112km까지 올라가서 X-15의 기록을 깼다.
브랜슨은 첫 민간인 우주여행자가 아니라 민간기업 우주선을 이용한 첫 여행자다. 세계 최초의 민간인 우주여행자는 미국 갑부 데니스 티토였다. 티토는 2001년 4월 소유스를 타고 당시 갓 출범한 국제우주정거장(ISS)을 방문, 7일 22시간 4분 동안 우주에 머물며 지구를 128바퀴 돈 뒤 귀환했다. 항공우주공학 엔지니어였던 티토는 NASA의 제트추진연구소(Jet Propulsion Laboratory, JPL)에서 일하다가 1972년 독립해 투자회사를 창업해 돈을 벌었다. 우주를 방문하고 돌아온 티토는 “천국에 다녀온 기분이었다”는 소감을 남겼다.
이미 인류는 1960년대에 지구 밖으로 나갔다. 미국과 소련이 돈과 에너지를 쏟아부어가며 이뤄낸 성과였고, 냉전 경쟁이 낳은 개가였다. 하지만 우주개발 경쟁이 아닌 민간인의 '여행'이 이뤄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이러니하게도, 민간 우주여행이 성사되는 데에는 냉전의 종식이 한 몫을 했다.
우주여행을 어릴적부터 꿈꿔온 티토가 그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에 상무부에서 일했던 제프리 맨버라는 사람을 만난 덕분이었다. 맨버 역시 우주에 관심이 많아서, 상무부를 설득해 ‘우주상업과’를 만들게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진짜 능력은 러시아에 구축해둔 인맥에 있었다.
티토의 꿈과 맨버의 비즈니스가 시대적인 상황, 소련의 붕괴라는 상황과 맞아떨어졌다. 소련이 무너진뒤 출범한 러시아는 1990년대에 우주과학 분야 등 국가가 독점했던 여러 분야를 민영화했다. 소유스 우주선을 만들던 국영 항공우주개발회사도 NPO에네르기아(NPO Energia)라는 이름의 민간기업으로 바뀌었다. 상무부를 나와 상업 우주개발 회사 미르코프(MirCorp)를 경영하던 맨버는 러시아 고위층과의 오랜 친분을 이용해 미국과 러시아 등 7개국이 공동제작한 국제우주정거장의 상업적 이용권을 따냈으며 소유스를 상업적 우주여행에 이용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 그 첫 고객이 티토였다.
티토를 시작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 사업가 마크 셔틀워스(2002년), 미국 사업가 그레고리 올슨(2005년), 이란계 미국 기업가 아누셰 안사리(2006년), 헝가리계 미국 기업가 찰스 시모니(2007년, 2009년), 미국-영국 국적의 사업가 리처드 개리엇(2008년), 캐나다 사업가 기 랄리베르테(2009년) 등 모두 7명이 우주로 나갔다.
모두 억만장자 사업가들이다. 왜 갑부들만 갔냐고?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티토가 ISS 관광에 들인 돈이 2000만 달러에 이르렀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확한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다. 2008년 리처드 개리엇은 3000만 달러를, 이듬해 캐나다 사업가 랄리베르테는 3500만달러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
찰스 시모니는 ISS를 두 번이나 방문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에서 일했던 시모니는 미국 소프트웨어업계에서는 MS 워드, 액셀 같은 프로그램을 기획한 것으로 유명하다. 첫 ISS 방문 때인 2007년 4월에는 ‘살림의 여왕’으로 유명한 여성 사업가 마사 스튜어트와 사귀고 있었으며, 스튜어트가 모스크바 근교의 러시아 우주관제센터에까지 가서 시모니의 ISS 방문을 지켜보고 화상 대화를 나눠 더욱 화제를 모았다. 당시 시모니는 우주를 향해 첫 발을 내딛은 소련 비행사 유리 가가린을 기념하기 위해 유명 셰프가 만든 '우주의 만찬'을 준비해갔다. 가져간 음식들로 ISS에 머물던 러시아, 미국 우주인들과 저녁 식사를 했는데, 그 방문에 들인 돈이 2500만달러였으니 무려 250억원짜리 만찬이었던 셈이다.
어쨌든 러시아 연방우주국 로스코스모스(Roscosmos)는 재정 때문에 일부 사업을 민영화하고 소유스로 돈 많은 서방 부자들을 우주정거장에 실어날라야 하는 처지였다. 반면 티토가 우주여행을 떠나려 할 때에 NASA는 반대하면서 미국 내 우주센터에서 훈련을 하게 해달라는 요청도 거절했다고 한다. 그래서 티토는 러시아의 로스코스모스 시설에서 훈련을 받고 소유스를 타야 했다. 막상 세계 최초의 우주여행이 이뤄지고 나니 놀란 것은 미국 쪽이었던 모양이다. 미국 의회가 티토를 불러 우주여행에 관해 듣는 청문회를 열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갑부들에게 손을 벌리진 않았어도, 2000년대에 NASA의 형편 역시 아주 좋지는 않았다. 1960~70년대의 기술적 성과들을 발판 삼아 1982년 컬럼비아호가 우주로 날아오르면서 우주왕복선 시대가 열렸다. 미국과 러시아의 우주왕복선들은 양국이 합작해 만든 첫 우주정거장인 '미르(Mir)'와 그 후신인 ISS를 오가는 데에 쓰였다. 하지만 1986년 챌린저호의 폭발, 그리고 2003년 컬럼비아호의 폭발이라는 큰 사고가 났으며 '비용에 비해 실익이 없다'는 비판이 늘 있었다.
이번 세기에 들어와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 돈을 퍼붓느라 재정이 모자라게 되자 NASA 예산을 줄였다. '테러와의 전쟁' 뒤치닥거리에 여념이 없었던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낙후된 우주왕복선들을 대체할 후속 프로그램들을 추진하지 않기로 결정해버렸다. 2010년 디스커버리, 엔데버, 애틀랜티스호가 모두 퇴역함으로써 미국에 더 이상 '스페이스셔틀'은 남지 않았고, 그 후로는 러시아 소유스만이 외롭게 우주정거장을 오갔다.
2011년부터 나사는 예산 문제로 우주왕복선 등 하드웨어 개발을 민간에 많이 넘겼다. 2003년에 중국이 '선저우(神舟)'를 띄운 것을 빼면, 최근의 우주왕복선들은 모두 민간 기업이 만든 것이다. 버진갤럭틱의 '스페이스쉽투(SpaceShipTwo)'와 머스크가 창립한 스페이스X의 '크루드래건(Crew Dragon)', 앞서 언급한 블루오리진의 '뉴셰퍼드'가 민간 우주왕복선의 선두 주자다. NASA와 계약해서 시그너스(Cygnus) 우주선을 만든 오비탈사이언스(Orbital Sciences Corporation)라는 회사는 뒤에 미국 군수회사 노스럽그루먼에 팔렸다. 2020년 11월에는 스페이스X의 팰컨(Falcon)9 로켓에 실린 유인 우주선 '리질리언스(Resilience)'가 우주인 4명을 ISS로 실어날랐다. ISS 왕복 교통편이 외주로 바뀐 셈이다.
민간 우주 여행에 대한 들뜬 기대감도 2010년대에는 한풀 꺾였으나 버진갤럭틱과 블루오리진, 스페이스X 같은 회사들이 기술적으로 성과를 거두기 시작하면서 다시 기대가 높아지는 추세다.
브랜슨은 첫 시험비행 뒤 "이번 여행에 노트를 가지고 가서 우주에 갈 다음 사람이 더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30~40가지를 메모해 뒀다"고 했다. 버진갤럭틱은 이미 우주관광 상품을 판매 중인데, 2022년 이뤄질 우주선 티켓의 판매가격은 최고 25만 달러에 이른다. 회사 측에 따르면 3억원 가까이 내고 5분간 무중력 상태를 경험하겠다며 이 상품을 예매한 사람은 브랜슨이 시험비행에 성공하기도 전에 이미 600명에 이르렀다. 러시아도 10년 간 중단했던 소유스의 ISS 상업비행을 재개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사설 우주 정거장을 발사하려는 계획도 나오고 있다. 프랑스 보험회사 AXA가 우주여행 보험상품을 만들기 위해 검토에 나섰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하지만 머스크나 베이조스 같은 야심찬 기업가들이 꿈꾸는 것은 단순한 우주관광 사업이 아니다. 베이조스는 2000년 블루오리진을 창업할 때부터 ‘우주로 가는 길을 열겠다’는 야심을 밝혀왔다. 블루오리진의 비전 성명에는 “지구를 보존하기 위해 인류가 우주로 나아가 새로운 에너지와 자원을 찾고, 산업을 우주로 옮겨야 한다고 믿는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베이조스는 프린스턴대 물리학자 제라드 오닐(Gerard O'Neill)에게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오닐은 1970년대에 "앞으로 한 세기 안에 지구의 취약한 생물권에서 거의 모든 산업활동이 사라질 수 있을 것"이라며 우주 식민지를 대안으로 제시한 인물이다. 제라드는 학생 시절부터 오닐의 저서에 영향을 받았고, 2018년에는 미국우주학회에서 주는 제라드오닐 기념상을 받기도 했다.
블루오리진은 뉴셰퍼드 외에도 베이조스의 비전을 앞당기기 위해 우주선과 로켓 엔진, 장비들을 개발하고 있다. 지구 궤도 너머로 사람들을 실어나를 수 있는 '뉴글렌(New Glenn)' 로켓이나, 달 표면에서 운행할 수 있는 차량 등이 그런 예다. 베이조스와 머스크는 지구의 자원과 환경에는 한계가 있으니 달을 중간기지 삼아 화성 같은 곳에 식민지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머스크의 스페이스X는 2019년 9월에 화성까지 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유인 우주선 ‘스타쉽(Starship)’ 시제품을 공개했다.
비슷한 꿈을 꾸는 사람들은 적지 않다. 미국 엔지니어 로버트 주브린은 1998년 비영리단체 마스 소사이어티(Mars Society)를 설립했다. 네덜란드에는 화성행 편도 우주선 발사를 목표로 한 마스원(Mars One)이라는 단체가 있다. 민간인 최초의 우주여행가 티토도 '인스피레이션 마스 재단(Inspiration Mars Foundation)'이라는 비영리 재단을 만들어서 유인 우주선을 화성에 보내는 방안을 연구해왔다.
그러나 우주식민지는 아직은 꿈같은 얘기다. 화성은 지구와 가장 근접했을 때에도 거리가 5470만km에 이른다. 우리가 걱정할 것은 우주가 아니라 지구다.
1995년 태양계 밖 외계행성을 처음 발견해서 2019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스위스 천체물리학자 미셸 마요르는 AFP인터뷰에서 ‘인류가 외계행성으로 이주할 수도 있느냐’는 질문에 “아주 힘들다는 점을 분명히 말하겠다”고 답했다. “외계행성은 너무 멀다. 하지만 이 행성은 아주 아름답고, 아직은 살 만하다. 우리 행성부터 보존하라.” 노과학자의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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