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수상한 GPS

[구정은의 '수상한 GPS']암매장된 캐나다 원주민 아이들

딸기21 2021. 6. 4.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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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캐나다 서부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서 땅 속에 묻힌 아이들 215명의 유해가 발견됐다. 현지 원주민 (Tk'emlúps te Secwépemc) 공동체는 "캄루프 인디언 주거학교 학생들의 유해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전에도 실종된 원주민 아이들 문제가 불거졌고 정부가 조사를 했는데, 이번에 유해로 발견된 아이들은 실종자로 기록되지도 않은 사망자들이라고 했다. 유해 가운데에는 3살 아이의 것도 있었다. 아이들이 언제, 어떻게 숨졌는지는 조사 중이다. 유해를 검시하고 조사를 계속한 뒤 이달 중순 결과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Prime Minister Justin Trudeau visits the memorial at the Centennial Flame on Tuesday.   (Sean Kilpatrick/Canadian Press)

 

캐나다 식민지를 만든 백인들은 원주민을 학살하고 핍박했다. 인종적 문화적 사회적으로 열등하다고 규정했다.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 주거학교였다. 20세기 인종주의 우생학이 판칠 때 원주민 아이들을 부모에게서 떼어내 정부와 교회가 운영하는 기숙학교에 가두고 거기서 살게 한 것이다. 원주민의 언어와 문화와 전통을 말살하고 영어를 쓰게 하고 기독교로 개종하게 하는 등 ‘백인 교육’을 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 학교들을 '인디언 주거학교(Indian residential school)'라고 불렀다.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인디언은 틀린 말이고, 지금은 공식적으로는 ‘퍼스트 네이션(First Nations)’ 즉 그 땅에 먼저 정착해 살아온 민족이라 부른다. 인디언 주거학교라는 말 자체가 극도의 인종주의적 편견과 학대의 상징인 셈이다.

 

Indigenous children at a residential school in 1950  GETTY IMAGES

 

그런 학교들이 1874년부터 캐나다 전역에 130여개가 운영됐다. 원주민 아이들 총 15만명이 그곳으로 끌려갔다. 1970년대 이후에는 강제 격리는 아니었지만 아무튼 완전히 사라진 것은 1996년이었다.

 

주거학교들 안에서는 엄청난 신체적 정신적 성적 학대가 벌어졌다. 질병과 학대로 숨진 아이들이 많았다. 1945년 주거학교 아이들의 사망률은 캐나다 전체 아동사망률의 5배였다. 1960년대엔 다소 줄었다지만 그래도 2배였다. 아이들이 사망해도, 주검조차 부모에게 돌려주지 않고 매장해버렸다.

 

이번에 유해가 발견된 캄루프는 주거학교들 중에 가장 규모가 컸던 곳이다. 1890년부터 1969년까지 원주민 격리교육시설로 쓰였으며 많을 때에는 한번에 500명의 원주민 아이들을 수용했다고 한다. 가톨릭 교회에서 운영하다가 1969년 연방정부로 넘어갔고, 1978년까지 지역 학교의 기숙사로 쓰이다가 문을 닫았다. 지금은 박물관과 추모관 등 원주민 커뮤니티 시설로 쓰이고 있다.

 

Orange ribbons flank a monument remembering the children from Kitigan Zibi who were forced to attend residential schools. The ribbons hang in remembrance of the 215 children whose remains were discovered in an unmarked burial site on the grounds of the former Kamloops Indian Residential School in B.C.   (Christian Milette/Radio-Canada)

 

캐나다 국민들은 유해가 무더기로 발견되자 분노와 애도를 표하고 있다. 전국 곳곳의 광장과 학교들에 추모의 꽃들이 놓이고 숨진 아이들을 위로하기 위한 인형들이 걸렸다. 시민들은 오타와의 의사당 앞에 어린이용 신발을 올려놓고 헌화했다. “모든 아이들은 소중하다”라는 글귀가 적혔다. 5월 31일 오타와 시청은 조기를 게양했다.

 

저스틴 트뤼도 총리는 트위터에 "우리 역사의 어둡고 부끄러운 부분을 상기시켜 준다”는 글을 올렸으며 의사당 앞 추모장소를 방문했다. 캐럴린 베넷 왕립원주민관계 장관도 미국 CNN 등과의 인터뷰에서 “캐나다인들에게 매우 고통스러운 진실, 역사의 끔찍한 한 장을 폭로해준 사건”이라고 말했다.

 

[CBC] Communities mourn after remains of 215 children found in B.C.

 

원주민 박해의 역사는 300년이 넘는다. 주거학교 시스템이 수십년 전에 중단됐다고는 하지만 오랫동안 저질러진 만행이었다. 처음 드러난 일이 아니다. 주거학교에 대한 문제제기와 조사는 오래됐다. 캄루프의 경우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주변에서 암매장된 곳들을 찾는 작업이 진행됐다. 

 

사진 캐나다 진실화해위원회

 

[캐나다 진실화해위원회] 215 Innocent Children

 

2015년 캐나다 진실화해위원회는 1900~1971년의 주거학교 실태를 조사하고 4000쪽 짜리 보고서를 발표했다. 수십 년 동안 주거학교에서 숨진 아이들 4100명이 확인됐고, 전체적으로 600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보이지만 정확한 숫자를 파악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가족과 떨어져 학대를 받은 피해자들의 상처가 수십년 동안 계속돼왔다면서 ‘문화적 제노사이드(인종말살)’로 규정했다. 2019년에는 주거학교 사망자들 가운데 신원이 확인된 2800명의 명단이 공개됐다. 당시 트뤼도 총리는 정부가 원주민에게 가한 해악이 '집단학살'에 해당한다고 인정하면서 "비극을 종식시키기 위해 나아갈 것”이라고 했다.

 

(호주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호주의 사례들이 주로 세계에 많이 알려져 있었고 캐나다의 사례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었을뿐. 이렇게 백인 정부가 부모에게서 빼앗아간 아이들을 ‘도둑맞은 아이들’이라고 부른다. 이번 사건 뒤 캐나다 언론에 실린 주거학교 피해자들의 증언은 호주 정부가 1997년 조사 뒤 내놓은 공식 보고서에 담긴 증언들과 너무 똑같아서 어느 나라 일인지 헷갈릴 정도다.)

 

[호주의 1997년 보고서] Bringing them home: The 'Stolen Children' report

[캐나다의 2015년 보고서] The National Centre for Truth and Reconciliation Reports

 

Fur traders in Canada, trading with First Nations, 1777 William Faden Library and Archives Canada 

 

캐나다 주거학교생존자단체에 따르면 주거학교의 70%를 가톨릭 교회가 운영했다고 한다. 나머지는 영국 성공회와 개신교회 등이 운영했다. 1980년대와 90년대에 성공회와 장로회 교회들은 공식 사과를 했다. 6년 전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는 가톨릭 교회의 사과를 요구했다. 2017년 트뤼도 총리도 프란치스코 교황의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이번 유해 발견 뒤 캐나다 정부는 다시 프란치스코 교황이 나서서 공식 사죄할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가혹한 인권침해가 정부 방침에 따라 이뤄졌다는 것이다. 무더기로 유해가 발견되자, 원주민 단체들은 전면적인 암매장 조사를 하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휴먼라이츠워치 등 국제인권단체들과 유엔도 전면적인 조사가 필요하다는 성명을 냈다.

 

[CTV] UN seeks full probe into deaths of Indigenous students at residential schools

 

WIKIPEDIA

 

캐나다 원주민은 법적으로 세 그룹으로 구성된다. 흔히 캐나다 인디언이라고 불렸던 퍼스트네이션, 토착민과 유럽계 초기 이주민들 사이에서 태어난 메티스, 북극권 이누이트의 세 집단이다. 2016년 센서스에서 퍼스트네이션은 약 98만명으로 조사됐다. 메티스는 59만명, 이누이트 6만5000명이다. 다 합하면 원주민은 170만명 조금 못 된다.

 

캐나다는 '인디언법(The Indian Act)'이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차별을 법제화했다. 1969년 현 총리의 아버지인 피에르 트뤼도 총리 시절에 정부 백서를 만들면서, 동화와 통합이 필요하다는 공식 입장을 정리했다. 하지만 원주민이라는 분류를 인정하지 않고 여러 소수민족 중의 하나로 규정하려 했다. 백인들이 빼앗은 땅을 돌려주는 것을 거부하기 위한 목적이 강했다. 백서는 거센 논란에 휩싸였으며 이를 계기로 원주민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원주민 권리운동이 일어났고, 역사적으로 원주민들에게서 빼앗은 것을 합법화하는 것이라는 비판 속에 백서는 철회됐다.

 

[캐나다 정부 웹사이트] First Nations in Canada

 

1982년 개정된 헌법 35조는 원주민들의 권리를 인정했다. 1960년대부터 자치를 하는 공동체들이 있었는데 1983년 정부가 보고서를 내고 원주민 커뮤니티들의 자치를 공식적으로 받아들였다. 이후 정부와 퍼스트네이션 공동체의 협상에 따라 자치협정들이 잇달아 체결됐다. 원주민들이 미흡하나마 토지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고 '땅'을 실제로 점유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1991년에는 왕립원주민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저스틴 트뤼도 정부가 들어선 뒤에는 위원회의 수장을 왕립원주민관계 장관(Minister of Crown–Indigenous Relations)으로 격상시켰다. 

 

캐나다 정부 웹사이트. (https://www.rcaanc-cirnac.gc.ca/eng/1573225148041/1573225175098)

 

중요한 것은 실제 차별이 사라지고 있느냐다. 1876년 만들어진 인디언법은 거듭된 개정을 통해 원주민의 권리를 인정해주는 쪽으로 변화해왔다. 가장 최근 개정된 것은 2020년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원주민 공동체의 상황은 열악하다. 실업률이 높고, 자치지역의 보건의료와 교육여건도 나쁘다. 미국도 마찬가지이지만 캐나다의 원주민 자치지역에서도 역시 알콜중독, 마약중독, 범죄, 자살이 큰 문제로 부각돼왔다. 2016년에는 온타리오주의 2000명 규모 원주민 공동체에서 100명 넘는 이들이 자살을 했거나 시도해, 비상사태가 선포되기도 했다.

 

2015년 진실화해위원회는 원주민 공동체 아이들의 보건과 교육 상황이 캐나다 전체보다 열악하다면서 94건의 개선 조치를 권고했으며 트뤼도 총리는 모두 이행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CBC 보도에 따르면 그 가운데 이행된 것은 10건뿐이다. 64건은 진행 중이며, 20건은 시작도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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