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수상한 GPS

[구정은의 '수상한 GPS']3000년 만에 돌아온 태즈메이니아의 악마

딸기21 2021. 5. 28.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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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Tasmanian devil stands in a wooded area in an undated photo. Getty Images

 

"호주에 악마가 돌아왔다!"

호주에 3000년만에 태즈메이니아 데빌(Tasmanian devil)이 살게 됐다는 뉴스가 떴다. 멸종된 것은 아니지만 이미 호주 본토에서는 사라졌던 유대류다. 그런데 지난 24일 악마 11마리가 뉴사우스웨일스 주의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 옮겨왔다. 동물보호단체 ‘오시 아크(Aussie Ark 호주의 방주)’가 10년 동안 노력해서 이 동물들을 번식시켰고 호주 본토로 보낸 것이다.   

 

[오시 아크] #DevilComeback

 

태즈메이니아악마, 학명은 Sarcophilus harrisii. 유대목 유대류이고 작은 개 크기라고 한다. 타일라신(Thylacine)이라는 또 다른 유대류가 있었는데, '태즈메이니아 호랑이'라고도 하고 '태즈메이니아 늑대'라고도 한다. 1936년 이 종은 멸종됐다. 그 뒤로 남아 있는 육식성 유대류 가운데 가장 큰 것이 태즈메이니아악마다. 근육질에 검은 털, 사냥하거나 공격을 당할 때 내는 시끄러운 소리, 포악하고 톡 쏘는 냄새…그래서 악마라는 이름이 붙었나 보다.

 

사진 
사진 www.aussieark.org.au


암컷은 일생에 평균 4번 출산하며, 새끼들은 100일 뒤에 주머니에서 나온다. 어미의 주머니에서 세상으로 나올 때 무게가 200g 밖에 안 된다고 한다. 9개월 지나면 독립하지만 신생아들의 생존율이 워낙 낮다고. 보통 혼자 다니지만 공동 장소에서 먹고 배변하기도 한다. 달리는 속도가 매우 빠르고 지구력이 강하며 나무에 올라가고, 수영도 할 수 있다.

그렇게 '무서운' 악마가 왜 본토에서는 멸종됐을까. 오스트레일리아 지오그래픽에 따르면, 호주 본토에서 4만년 전부터 살았으나 3000년 전에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유에 대해서는 추측이 분분하다. 가장 유력한 것은 원주민 인구가 늘어나고 야생 개 딩고가 많아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딩고와의 경쟁에서 밀린 데빌이 사라졌다는 얘기다. 

 

[사이언스] Tasmanian devils claw their way back from extinction


하지만 다른 주장도 있다. 유럽인들이 19세기에 들어오면서 사냥감으로 여우를 풀여놓고 고양이를 들여온 것이 악마의 위기를 불렀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호주에 오랫동안 살아온 원주민들과 딩고 때문이냐, 유럽인들과 여우 고양이 때문이냐 하는 문제다. 후자를 원인으로 지목하는 사람들은 무리지어 사냥하면서 필요한 먹이만 잡는 딩고와 달리 유럽인들이 들여온 여우와 고양이는 배가 고프지 않아도 보이는 것을 죽이는 습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여우와 고양이 때문에 악마의 먹잇감인 작은 동물들이 없어졌고 결국 데빌도 본토에서 사라졌다는 뜻이다.

 

Tasmanian devils being released into the wild last year in southeastern Australia. In Tasmania, devils are being ravaged by a contagious facial cancer that has slashed the population by more than 90 percent. WildArk, via AP


태즈메이니아 섬에는 20년 전만 해도 악마들이 많았다. 30만 마리 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1990년대 후반부터 이 동물을 공격하는 일종의 암인 안면종양질환(DFTD)이 번졌다. 걸리면 거의 100% 죽는 무서운 질병이다. 그래서 남아 있던 악마의 90% 이상이 죽었고 지금은 2만5000마리 정도 남아 있다고 한다. 지역에서 야생으로 살아가는 악마들이 로드킬로 죽는 경우도 많다. (사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꺼림칙한 것은, 악마 때문이 아니라 악마 같은 인간들 때문. 호주를 차지한 영국인들은 태즈메이니아의 동물들만이 아니라 원주민들도 절멸시키다시피 했다. 호주 원주민 애버리지니와 태즈메이니아 원주민, 토레스섬해협 원주민 등등)

본토에 보낼 정도로 번식시키기 위해 인간들이 뒤늦게나마 노력을 많이 했다. 1941년 호주 정부가 공식적으로 보호동물로 지정했다. 2008년에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레드리스트에 멸종위기종으로 등재됐다. 태즈메이니아 주정부는 지역의 상징 동물이자 관광상품인 악마들을 위협하는 종양을 없애려고 보호프로그램을 가동했다. 학자들은 백신 개발에 나섰다. 2013년부터 호주 정부는 ‘세이브 더 태즈매니아 데블’ 프로그램을 통해 번식을 시켜서 세계의 동물원에 보내고 있다.

 

붉은 선으로 표시된 곳이 태즈메이니아다. Google map


야생에서 멸종되더라도, 보호구역이나 시설에서나마 유전자 풀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오시 아크 같은 단체들도 노력해왔다. 종양에 감염되지 않은 건강한 악마 집단을 만든 것이다. 390마리 이상의 악마가 오시 아크에서 태어나 자랐다. 2011년 '악마의 방주(Devil Ark)'라는 이름으로 설립돼 악마 보호운동에 주력했던 오시 아크는 지금은 IUCN처럼 자체적으로 호주의 위기종들 목록을 만들고 보호활동을 하고 있다.


2019~2020년 대형 산불이 휩쓸면서 호주에서는 10억 마리 이상의 동물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호주 언론과 전문가들은 산불로 세계 최악의 포유류 멸종이 일어난 터에 악마가 돌아왔다는 뉴스가 전해지자 모처럼의 기쁜 소식을 환영했다. 오시 아크는 이번에 유대류인 파르마왈라비, 긴코포토루(Long-nosed Potoroo), 남부갈색반디쿠트(Southern brown bandicoot) 등 다른 소형 포유류도 태즈메이니아 섬에서 본토로 함께 데려와 풀어놨다. 이들 모두 악마들과 함께 보호구역에서 자연상태 그대로 살아가게 된다.

 

긴코포토루.  australian.museum
남부갈색반디쿠트. 얘나 쟤나 머가 다르지;; www.aussieark.org.au

 

포토루와 반디쿠트는 쥐처럼 생긴 작은 유대류다. 이 동물들은 흙을 뒤집어 파기 때문에 환경에도 도움이 된다. 이런 동물들이 사라지면서 낙엽이 바닥에 쌓이고, 기후변화로 가뭄이 잦아져 산불이 일어나자 마치 연료처럼 초대형 화재로 번지게 만들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동물들을 재도입하는 것이 산불을 막는 데에도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호주 abc방송 등은 보도했다.

인간들이 동물을 살려보겠다고 애쓰지만, 사실 멸종을 부르는 가장 큰 위협 요인이 인간이다. 기후변화, 서식지 파괴, 밀렵이 동식물을 위기로 몰아간다. 뒤늦게라도 노력하기 위해 만든 것 중의 하나가 레드리스트다. IUCN는 영국에 본부를 둔 국제환경단체로, 2006년부터 종합적인 위기종 목록을 만들어 세계에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다. 레드리스트는 '이미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종(EX)', '야생에서는 사라진 종(EW)', '심각한 위협을 받는 종(CR)' '위협받는 종(EN)' '취약한 종(VU)' '위협에 근접해 있는 종(NT)' '우려되는 종(LC)'의 7개 카테고리로 위기종을 분류한다.

 

아무르표범.  www.wwf.org.uk

 

이 목록을 보면 사라질 위기에 처한 생물종이 너무나 많다. 무려 3만7400종에 이른다. 예를 들면 필리핀유황앵무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따른 거래금지 동물이다. 밀렵에 많이 희생돼 세계에 180마리 밖에 남지 않았다. 갠지스상어는 갠지스강과 브라마푸트라강 등 인도와 방글라데시에 살았지만 지금은 숫자를 세는 것이 무의미하다. 인도 언론을 검색해보니 2006년 한 마리가 목격됐고, 그 후 본 사람이 없다가 2016년 지역 어시장에서 한 마리가 발견됐다고 한다. 또 다른 예인 아무르표범은 러시아 극동지방, 중국 북동부, 한반도 북서부 일대에 살았다. 2019년 조사에서 90마리 정도만 남은 것으로 추산됐다.

 

The rare shark of the Ganga


그런데 우리는 주로 북극곰이나 표범이나 상어처럼 눈에 보이는 대형 동물들의 멸종을 걱정하지만 양서류의 위기야말로 심각하다. 레드리스트에 따르면 양서류 종의 41%가 위협을 당하고 있다. 개구리들은 돌에 맞아 죽는 게 아니라 기후변화 때문에 죽는다. 포유류의 26%, 침엽수의 34%, 조류의 14%, 상어와 가오리의 36%, 붉은산호의 33%, 갑각류의 28%가 레드리스트에 등재됐다. 이 기구에서 조사, 분류한 생물종 가운데 28%가 멸종 위기다. 아직 인류가 알지 못하는 생물종 가운데에서도 위협받고 있는 것들이 많을 것이다. 

 

늑대냐 호랑이냐. 1902년 미국 워싱턴 동물원에 살던 타일라신의 사진.   WIKIPEDIA


멸종된 종을 과학기술의 힘으로 되살려낼 수는 없을 것인가. 시도는 이뤄지고 있다. 2001년 미국 생명공학자들이 들소의 일종인 가우르(gaur)를 복제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복제로 태어난 가우르 새끼는 이틀만에 죽었다. 2003년에는 동남아시아 들소인 반텅(banteng)이 복제됐다. 부카르도(bucardo)라고도 불리는 피레네영양(Pyrenean ibex)의 조직을 액화질소에 냉동보관해놨다가 복제하는 데에 성공한 스페인 연구자들도 있다. 러시아와 일본의 연구팀은 동토에 얼어붙어 있던 매머드의 사체에서 DNA를 추출해 복제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멸종된 동물을 나중에라도 되살릴 수 있다면 반가울 것이다.

 

그러나 쉽지 않다. 2002년 호주 연구자들은 20세기 중반에 멸종된 타일라신의 DNA를 복제했다. 하지만 3년 뒤, DNA가 너무 손상돼 사라진 이 동물이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결론내렸다. 

 

북부흰코뿔소 '수단'이 우리에게 건네는 이야기

 

북부흰코뿔소 '수단'이 우리에게 건네는 이야기

얼마 전 가디언에 흰코뿔소 기사가 실렸지요. 세상에 단 하나, 이 생물종(種)으로서는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수컷 북부흰코뿔소. 이 코뿔소의 이름은 ‘수단(Sudan)’이라고 합니다. 케냐의 사바

ttalgi21.khan.kr

 

카운트다운 하듯이 세계가 멸종을 지켜본 동물이 있었다. 2018년 케냐의 보호구역에 살던 북부흰코뿔소 ‘수단’이 사망했다. 이 종은 세계에 이제 딱 2마리만 남았다. 수단은 마지막 수컷이었다. 아직 암컷 두 마리가 살아있지만 사실상 멸종한 것이다. 케냐 측이 인공임신을 시키려고 애써왔는데 계속 실패했다. 케냐와 체코, 독일 연구팀이 수단의 유전자가 담긴 수정란을 남겨뒀고 나중에라도 유전자 복제로 복원하는 법을 연구 중이다. 하지만 결국, 사라지지 않게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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