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수상한 GPS

[구정은의 '수상한 GPS']코로나19와 콜롬비아 유혈사태

딸기21 2021. 5. 7.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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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에서 격렬한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면서 사망자가 늘고 있다. 지난달 말부터 이반 두케 대통령의 세제개혁안에 반대는 시위가 벌어지더니, 당국의 유혈진압으로 학생들과 진압경찰 1명 등 25명이 사망했다. 지난 5일 수도 보고타를 비롯해 전국에서 이어진 시위를 당국이 강경진압하면서 유혈사태로 간 것이다.

 

몇몇 외신들은 사망자가 30명이 넘고 수십명이 행방불명 상태라고 보도했다.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는 경찰이 소총과 반자동소총까지 들고 시위대를 겨냥했다고 했다. 현장에서 촬영된 영상들에도 경찰의 폭력적 진압 상황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A riot police officer shoots toward protesters at Bolivar Square during a national strike Wednesday in Bogotá, Colombia. Guillermo Legaria / Getty Images


유혈 진압은 시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일부 시위대는 버스를 불태우고 상점들을 약탈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케 대통령은 무장한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동료 시민들을 쏘고 경찰을 공격했다면서 "아무것도 폭력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시위대를 탓했다. 시위가 거세게 일어난 보고타 남서쪽 칼리에서는 시위대가 고속도로를 봉쇄해 식료품 공급에 차질이 생겼고 보고타에서는 5일 시위대가 담장을 넘어 의사당에 들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시위대를 '테러리스트'로 몰아가는 두케 정부의 진압방침은 더 큰 반발을 부르고 있다. 3년 전 우파 두케 대통령이 집권한 이래 원주민 지도자와 좌파 활동가들이 살해되는 일이 반복됐고 그때마다 정부는 손을 놨다. 시민들이 반발하면 강경 대응했다. 이런 상황에 대한 분노가 이번 시위 저변에 깔려 있다.

도화선이 된 두케 정부 세제개혁안(Reforma Tributaria)의 골자는 한마디로 세금을 올리는 것이었다. 이번 시위에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콜롬비아 한 나라의 문제라기보다는 코로나19 팬데믹이 불러온 취약한 국가들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태이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유럽국, 한국 같은 나라들은 재정 여력이 있기 때문에 코로나19 대응에 자원을 쏟아붓고 경기부양에 돈을 투입할 수 있다. 하지만 세계에는 그렇지 못한 나라들이 많다. 정부 재정이 취약한 나라들, 대부분의 저개발국은 전염병 대응에 나랏돈을 많이 써서 부채가 급증할 것이라는 우려가 계속 나왔다.


콜롬비아도 그런 나라들 중 하나다. 중남미 국가들의 코로나19 감염 상황이 대체로 매우 심각하며, 콜롬비아 역시 지금까지 누적감염자가 300만명에 육박하고 사망자는 7만6000명이 넘는다. 감염자가 세계에서 12번째로 많다. 팬데믹 대응으로 재정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OECD] Colombia Economic Snapshot

콜롬비아의 면적은 113만제곱km에 이르지만 인구는 5000만 명으로 한국과 비슷하다. 남미에서 4번째로 경제규모가 큰 나라이고, 세계 22위(남미에서는 4위) 산유국이고, 세계 4위 석탄 생산국이고, 세계 3위 커피 수출국이다. 에너지, 광물자원과 커피 수출에 의존하는 나라여서 국제 시장변동에 매우 취약하다. 2000년대 후반부터 한 10년은 기름을 팔아 5% 가까운 경제성장률을 매년 유지했으나 2017년부터 저유가로 직접적인 경제 타격이 시작돼 성장률이 내려앉았다. 2019년 무역수지는 1370억 적자로 세계 최악 수준이었다.

 

Barricades set up by protesters have led to food shortages in Cali. A supermarket in the city on Tuesday. PHOTO: GABRIEL APONTE/GETTY IMAGES

 

그런데 2020년 코로나19가 들이닥쳤다. 파이낸스콜롬비아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이 6.8%나 줄어들었다. 지난해 정부 재정결손은 전년대비 5배로 늘어나 GDP의 7%에 이르렀다. 작년 정부지출은 전년보다 20% 이상 증가했는데 수입은 13% 줄었다. 올해 정부 재정적자는 GDP의 7.6%로 예상됐다.

 

[Finance Colombia] Colombian Fiscal Reform Proposal Defeated By Protests, President Ivan Duque Admits Defeat

 

그래서 두케 정부가 내놓은 것이 세제개혁안이다. 그러나 결국 무산됐다. 두케 대통령은 시위가 거세게 일어나자 지난 2일 개혁안을 철회했다. 재무장관도 해임했다. 그럼에도 시위는 가라앉지 않았다. 세금만이 문제가 아니라 고질적인 불평등과 실업, 빈곤에 대한 반발이 터져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자료 OECD

 

콜롬비아는 기초 인프라 부족, 빈곤과 마약거래, 치안 불안 등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불평등이다. 불평등한 정도를 보여주는 지니계수가 세계 15위다. 구매력 기준 1인당 연간 GDP는 약 1만4000달러이니 최빈국은 아님에도, 인구 35%가 빈곤선 이하에서 살아간다. 공식 실업률은 10% 안팎이지만 실제로는 더 높을 것으로 보인다. 작년에 코로나19로 6개월 동안 항공기 운항을 중단시켰고 관광·숙박업은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은 것으로 추산된다. 팬데믹 이후에 빈곤선 이하로 내몰린 사람이 360만명 더 늘었고, 하루 세 끼니 못 먹는 사람이 3배가 됐다.


시민들은 그런 상황에 분노하고 있다. 그런데 두케 정부의 세제개편안은 소득세 기준을 낮춰서 이전에 세금이 거의 없던 저소득층에게서도 세금을 거둔다는 내용을 담았다. 부가가치세도 올린다고 했다. 팬데믹 상황에서 부자 증세가 아니라 서민들 증세를 이야기하니 반발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다. 세금 인상에 대한 항의로 시작된 시위대의 분노는 코로나19로 더 나빠진 경제사정과 인권탄압, 빈부 격차 문제 전반으로 향해가고 있다.

 

Colombia's President Ivan Duque speaks during an interview with Reuters in Bogota, Colombia, March 12, 2021. REUTERS


게다가 내년 5월에는 대선을 치르며 여론조사에서는 좌파 성향 구스타보 페트로 전 보고타 시장이 선두를 달리고 있다.  임기가 1년 남은 두케 대통령은 이미 레임덕을 겪고 있어, 사태를 수습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시위 진압 뒤 두케 대통령의 통제력은 더 떨어졌다. 지난 4일 두케 대통령이 야당, 국민과의 대화를 제안했지만 야당들은 협력하려 하지 않고 있다. 클라우디아 로페스 보고타 시장은 군대를 배치하라는 두케 대통령의 명령을 거부하며 철회를 요청했다. 

 

[글로벌아메리칸스] Duque is a lame duck


코로나19로 재정이 흔들리고, 더 가난해지고 불안정해진 시민들은 분노하는 상황. 콜롬비아만의 문제는 아니다. 팬데믹 때문에 정부 빚이 늘어나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작년부터 예측과 제안들이 많이 나왔다. 미국의 공공부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이고 영국도 기록적 적자를 보이고 있으며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재정 걱정에 공공부문 임금을 동결했다. 부국들도 차입을 늘리고 있다.

 

 

전문가들이나 국제기구의 의견은 이런 위기상황에서는 재정수지, 균형재정에 매달리지 말고 돈을 풀라는 것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은 글로벌 부채위기가 문제가 아니라면서 한국이 보수파들의 반발 때문에 공공부채를 제한하기로 한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평가한 바 있다. 차입을 대폭 늘리더라도 전염병 대응에 자원을 쏟아붓고 경제 살리기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재정균형 주문을 외워온 IMF조차 돈을 풀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는 실정이다. 

 

[세계경제포럼] Countries are piling on record amounts of debt amid COVID-19. Here's what that means


그러지 못했을 때에 정치적 불안정이 가중된다. 팬데믹을 계기로 해묵은 문제들이 다 터져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콜롬비아를 비롯한 남미 국가들이 맞닥뜨린 상황이다. 일례로 2020년 11월, 코로나19가 대유행하고 허리케인 피해까지 입은 터에 과테말라 의회가 보건비와 교육비 지출을 줄이고 국회의원 급식비는 늘린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거센 반대시위가 일어났으며 시위대가 의사당에 불을 질렀다.

 

자료 닛케이아시아


CNN은 특히 경찰폭력이 심각하고 그에 대한 반발이 계속돼온 칠레, 페루 같은 나라들을 불안정한 곳으로 거론했다. 2019년부터 정부의 무능과 빈곤, 불평등에 반대하는 시민 저항과 대규모 시위가 이들 남미 국가에서 산발적으로 이어져왔다. 뉴욕타임스는 콜롬비아만이 아니라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도 가혹한 팬데믹 속에서 빈곤이 심해지고 정부의 지원예산은 줄어드는 상황을 맞고 있다고 지적했다. 콜롬비아인들의 좌절과 분노는 다른 나라들에서 일어날 비슷한 사태의 전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닛케이아시아] Thai protests build as pandemic fuels unrest across Southeast Asia


라틴아메리카만의 문제도 아니다. 관광산업 의존도가 높고 저임금 노동, 비공식 경제로 지탱해온 아시아 국가들의 불안요인도 적지 않다. 팬데믹으로 세계 관광산업이 위축되면서 서비스부문 실업률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태국에서 일어난 시위는 권위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왕정과 쿠데타 정권에 반발한 젊은이들이 주도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부각된 빈곤과 불평등 문제도 작용했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등 모두 경제 타격이 시민들의 불만으로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가 최근 폭증한 인도는 나라가 휘청일 지경이다. 올해 복지예산을 지난해의 2.3배로 늘렸으나 의료 인력, 시설, 장비 등이 모두 부족해 대재앙을 맞고 있다. 이 와중에 대규모 농민시위가 몇 달 째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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