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수상한 GPS

[구정은의 '수상한 GPS']아베 ‘문고리’ 내보낸 스가

딸기21 2020. 9. 17.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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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 요시히데 신임 일본 총리(가운데)가 16일 내각 각료들을 이끌고 도쿄의 총리관저에서 기념촬영을 하러 가고 있다.  도쿄 AP연합뉴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는 취임 전부터 줄곧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의 계승’을 내세워왔고, 16일 발표된 내각도 아베 정부 시절과 별다른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재무상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가지야마 히로시(梶山弘志) 경제산업상, 니시무라 야스토시(西村康稔) 경제재생상, 아카바 가즈요시(赤羽一嘉) 국토교통상 등 경제분야 각료들은 한 명도 바뀌지 않았다. 스가 총리는 경제에서도 ‘아베노믹스’를 이어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스가 총리가 관저에 입성하기 전, 전임자의 측근들 중에서 조용히 내보낸 사람이 있다. 아베 전 총리 옆에서 정부 정책 전반을 조율하던 이마이 다카야(今井尙哉) 정무비서관이다. 잇단 스캔들에서 이름이 거론된 이즈미 히로토(和泉洋人) 특별보좌관이 아베 전 총리에 이어 스가 총리 밑에서도 특별보좌관 자리를 유지한 것과 대비된다. 경제관련 장관들은 그대로이지만,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마이가 나간 것에 주목하며 “스가 정부에서 정책결정의 역학에 변화가 올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마이는 아베 정부의 정책결정에 큰 입김을 행사하며 경제산업성에 힘을 몰아준 인물로 알려져 있다. 경산성 관료들과 결탁된 그의 영향 때문에 아베 내각은 ‘경산성 내각’이라 불리기도 했다. 당시 경산성은 아소 부총리가 이끄는 재무성은 물론이고 외무성까지 제치며 온갖 이슈에 관여한다는 비판이 많았다. 일본 언론들은 2016년 러시아와의 북방영토 협상이 실패로 돌아간 것도, 외무성을 배제하고 경산성이 끼어든 탓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반도체 원자재 수출규제를 비롯해, 한국에 대한 강경론을 주도한 것도 이마이라고 니혼게이자이는 전했다.

 

스가 총리는 16일 총리관저 인사를 하면서 경산성 출신 이마이를 내보낸 대신에 정무비서관으로 관료 출신이 아닌 자신의 비서를 기용했다. 이마이가 해온 정책 종합조정은 이즈미 보좌관에게 맡겼다. 국토교통성 출신인 이즈미는 아베 2차 내각 출범 직후인 2013년 1월부터 총리 보좌관으로 일했다. 원래는 재난대책 담당이었으나 스가 당시 관방장관과 가까워지면서 역할이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후생노동성 여성 관료와의 여행 스캔들이 불거졌지만 스가는 이즈미를 연임시킴으로써 신뢰를 확인시켰다.

 

16일 총리 관저를 나서는 스가 신임 총리. 일본 총리 관저 페이스북

 

니혼게이자이는 “경산성의 권한이 줄어들 것”이라면서 최저임금 인상이나 중소기업 재편 등 경산성이 신중론을 펴왔던 정책들을 스가 정부가 주로 파고들 것으로 내다봤다. 아베 정부 시절에는 미래투자회의 등 정책회의 운영을 경산성이 주도했고, 경산성이 관련된 분야에서는 변화나 개혁이 진행되기 어려웠다고 신문은 평가했다. 특히 경산성 산하 중소기업청의 ‘중소기업 보호’ 논리에 밀려, 지난해 최저임금 5% 인상안이 무산된 것을 들었다.

 

아베 정부는 2015년부터 전국 평균 최저임금을 1000엔으로 올리겠다면서 연 3%씩 인상을 해왔다. 지난해 관방장관이던 스가 총리는 “최저임금 인상은 몹시 중요하다”며 목표를 앞당기기 위해 5%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당시 경산상이 “중소기업들에게 부담을 준다”며 막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한 뒤 스가 총리는 니혼게이자이 인터뷰에서 종업원수나 자본금 규모를 바탕으로 한 중소기업 분류 기준을 “필요하다면 재편하고 싶다”고 말했다. 경산성의 발목잡기에서 벗어나는 것이 ‘스가식 아베노믹스’의 첫단추가 될 것임을 시사하는 발언으로도 들린다. 현재 일본 기업의 99.7%가 중소기업으로 분류돼 있고, 중소기업들의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이 일본 경제의 걸림돌로 지적돼왔다.

 

또한 스가 총리는 앞서 총재 선거 토론회에서 외교 사안에 대한 ‘범 정부적인’ 접근을 강조하면서, 경산성이 아닌 외무성이 다시 외교정책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외무성이 주도권을 찾으면 한일 경제갈등도 풀어나갈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국이 일본의 반도체 원자재 수출규제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 것에 일본은 계속 반발해왔다. 하지만 수출규제 등 강경책을 이끌었던 세코 경제산업상은 지난해 교체됐고 한일 양국은 지난해 12월 국장급 정책대화를 재개했다. 가지야마 경제산업상은 지난 7월 “작년까지 3년 반 동안 정책대화가 없었으나 각 레벨에서 정보교환과 정책대화를 여러번 하면서 개선되고 있다고 평가한다”고 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