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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푸틴의 인정만을 원했다" 워터게이트 기자가 폭로한 트럼프와 정상들 통화

딸기21 2020. 7. 2. 10:06

 

“그는 푸틴의 인정을 받는 것에만 관심을 쏟았다.”

 

미국 CNN방송이 백악관 안팎의 여러 관리들을 인터뷰해, 3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세계 정상들의 통화에 대해 보도했다. 이 방송 취재에 응한 관리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특히 밀착관계였으며 이들에게 휘둘리곤 했다. 이들과 전화하면서 전임 미국대통령들을 욕하는 일도 예사였다.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는 찬사를 보낸 반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비롯한 여성 지도자들에게는 “어리석다”는 둥 노골적인 비난과 공격을 서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주요 이슈에서 ‘준비되지 않은 모습’을 보이며 미숙함을 드러낸 트럼프 대통령의 통화들 때문에 국가안보보좌관이던 H.R. 맥매스터와 존 볼턴,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백악관 비서실장이던 존 켈리 등 주요 관리들은 ‘대통령 자체가 국익에 큰 위험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으며 마찰 끝에 결국 줄줄이 옷을 벗었다고 관리들은 전했다.

 

특히 주변에서 우려한 것은 트럼프의 지나친 ‘푸틴 편들기’였다고 했다. 러시아가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을 공격하라며 극단조직 탈레반을 부추겼고, 이를 트럼프 대통령도 보고받았으나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최근 미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백악관은 부인했으나 보고가 올라간 정황을 보여주는 보도가 연일 나오고 있다. CNN이 접촉한 소식통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평소 푸틴 대통령을 지나치게 옹호해 외교·안보 관리들과 정보기관들이 크게 우려했다고 말했다. 두 정상의 통화에서 탈레반의 미군 공격에 관한 얘기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아프간 주둔 미군을 철수시키고 싶다는 얘기를 직접 했다는 것이다.

 

크렘린과의 핫라인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많이 언급한 주제는 자기 자신이었다. 미국 경제가 “전례없는” 성공을 거두고 있으며, “얼간이같고” “나약한” 전임자들에 비해 자신이 얼마나 강하고 똑똑한지를 강조했다고 관리들은 말했다. 모스크바에서 미스유니버스 대회를 열었을 때 이야기 등을 늘어놓으며 푸틴 대통령의 칭찬과 인정을 받으려 애썼다고 했다.

 

소식통들은 푸틴 대통령이 이런 트럼프 대통령을 업신여기며 지방 관리 다루듯 했다면서 체스 대가와 얼뜨기에 비유했다. 관리들은 “푸틴이 서방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동안 트럼프는 푸틴이 존경할만한 터프가이이자 사업가로 자신을 부각시킬 방법만 생각했다”고 했다. 인권 문제나 군축 같은 양국 외교 어젠다들은 제쳐놓았으며 “긴 냉전을 거치면서 미국이 형성해온 우위까지 무너뜨렸다”고 비판했다. 한 관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에 구명줄을 던져줬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로이터

 

전언에 따르면 백악관에 가장 많이 전화한 외국 정상은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으로, 어떤 때에는 일주일에 두번씩 통화하기도 했다. 맥매스터, 볼턴, 켈리 모두 트럼프 대통령과 에르도안 대통령의 밀착관계를 걱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터키 정보기관은 백악관 스케줄을 알아내 본국에 전달했고, 에르도안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곧바로 통화할 수 있는 시간을 골라 전화를 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전화가 와서 트럼프 대통령이 골프를 치다 멈춘 적도 있었다. 중동 상황을 잘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가 암시하는 방향으로 끌려가기 일쑤였다. 전화를 받고 나면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안보위원회를 제끼고 마음대로 결정을 내렸다. 한 관리는 “에르도안은 트럼프를 청소원(해결사)으로 썼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터키의 친구를 위해 미 검찰 수사에 개입한 정황도 드러났다. 할크방크라는 터키 은행은 이란과 거래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에르도안 대통령 일가와 관련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은행이었다. 볼턴 전 보좌관은 최근 발간한 회고록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 은행에 대한 뉴욕 검찰의 수사에 개입했다”고 폭로했다. 관리들은 CNN에 “두 정상이 통화하면서 그 은행 문제를 얘기했다”고 증언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수사를 무마해달라고 요청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전 대통령) 사람’인 뉴욕 검사를 자기 사람으로 교체하겠다고 약속했다는 것이다. 뉴욕 검사는 지난해 10월 할크방크를 기소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일 그 검사를 해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자신의 전임자인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멍청함”을 비난하고 막말을 써가며 욕을 하면서 즐거워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통화에서는 “대단하다(great)”며 칭찬을 했다고 관리들은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6월 판문점에서 김 위원장과 ‘깜짝 회동’을 한 뒤 “트위터에 (김위원장을 향해) 만나고 싶으면 연락하라는 글을 올렸더니 10분만에 전화가 오더라”고 말한 바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와 트럼프 대통령. 로이터

 

자신과 스타일이 비슷한 ‘스트롱맨’들에게는 찬사를 보냈지만 미국의 핵심 동맹국 정상들, 특히 여성 지도자들에게는 공격적이었다. 메르켈 독일 총리와 테리사 메이 전 영국 총리에게 트럼프 대통령이 쏟아낸 말들은 “사디스트에 가까웠다”고 관리들은 말했다. 메르켈 총리에게 “어리석다(stupid)”며 대놓고 욕하고, “러시아 주머니 속에서 논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는 이런 공격을 “오리가 물을 튀기는 것” 정도로 보면서 동요하지 않았다. 2년 전 메르켈 총리가 백악관을 방문했을 때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무례한 태도로 일관했지만, 메르켈 총리는 “통화 때나 마찬가지로 침착했다”고 백악관 관리들은 말했다.

 

지난해 물러난 메이 전 영국 총리에게도 트럼프 대통령은 “굴욕을 주고 괴롭히는” 말들을 했다. 브렉시트 문제나 나토·이민자 문제에 대한 관점을 비난하면서 “바보(a fool)”, “나약하고 용기가 모자란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와의 통화에서도 적대감을 드러냈다. 마크롱 대통령은 에르도안 대통령 다음으로 백악관과 많이 통화를 하면서 기후변화 문제의 중요성을 설득하고, 이란 핵협정에서 탈퇴하면 안 된다는 점을 납득시키려고 애썼다. 트럼프 대통령은 번번이 짜증을 내며 국방비 지출이나 이민자들에 대한 ‘리버럴한’ 정책 등을 들먹이며 비난으로 몰고가기 일쑤였다.

 

백악관의 몇몇 관리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일일 브리핑’과 정상들과의 통화를 비교했다. 형식도 팩트도 없고, 자신의 상상이나 추측을 뒤섞고, 폭스뉴스 진행자들의 개인 의견이나 소셜미디어의 잘못된 정보들을 내세운다는 점이 똑같다는 것이다.

 

CNN의 이 보도는 워터게이트 특종으로 유명한 저널리스트 칼 번스타인이 맡았다. 번스타인은 4개월간 취재원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으나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직급 등을 일체 공개하지 않으며 발언내용도 직접 인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새라 매튜스 백악관 부공보관은 “트럼프 대통령은 국제 무대에서 미국의 이익을 일관되게 심화시켜온 세계적인(world class) 협상가”라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