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해외문화 산책

코로나 ‘집콕’ 아이들 달래주는 ‘해리 포터’

딸기21 2020. 4. 4. 15:45

<해리 포터> 시리즈를 쓴 영국 작가 J.K.롤링이 이달 초 웹사이트를 새로 열었다. 사이트의 이름은 ‘해리 포터 앳 홈’, 코로나19 때문에 집에 머물러야 하는 아이들을 위한 해리포터 ‘집콕’ 버전이다. 롤링은 1일(현지시간) 트위터에 “꼼짝할 수 없는 부모님과 선생님들에겐 아이들을 재미있게 만들어줄 마법이 조금 필요하다”고 적었다.

사이트에 들어가면 마법학교 호그와트가 아이들을 맞는다. ‘내게 맞는 기숙사 찾아보기’를 비롯해 해리 포터에 대한 언론 기사, 퀴즈, 게임, 영상들이 준비돼 있다. 시리즈 1편인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오디오북으로 감상할 수도 있다. 아마존 오디오북 ‘오더블’과 제휴, 무료로 풀었기 때문이다.


롤링은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작가 가운데 한 명이지만, <해리 포터> 시리즈가 성공하기 전에는 정부의 생활보조금을 받는 ‘싱글맘’이었다는 얘기를 많이 해왔다. 영국 정부가 복지예산을 줄이려 하면 누구보다 앞장서 반대했고, 인권이나 환경 등 여러 이슈에서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선생님들이 <해리 포터> 책들을 교육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교사들이 직접 읽어 동영상으로 올리는 것에 대해선 저작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밝힌 적도 있다.
 
세계 인구의 3분의 1 이상은 코로나19가 퍼진 뒤 정부의 이동금지령에 발이 묶였다. 싱가포르나 스웨덴처럼 학교 수업은 예정대로 진행하는 나라들도 일부 있지만, 한국을 비롯해 학교들이 ‘코로나 휴업’에 들어간 나라들이 많다. 아이들, 학생들뿐 아니라 재택근무로 일하는 형태가 바뀌었거나, 노동시간이 줄고 소비가 위축돼 어쩔 수 없이 집에 머물러야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감염증 사태가 길어지자, 집에 갇힌 이들을 위해 롤링처럼 콘텐츠를 공급해주는 회사들과 서비스들이 늘고 있다. 

‘아서(Arthur)’는 엘우드라는 가상의 마을에 사는 8살 소년이다. 아프리카가 원산지인 땅돼지를 의인화한 ‘아서’ 시리즈는 미국과 캐나다 회사가 합작해 만든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으로, 한국에서도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 영어 오디오북으로 많이 팔린다. 이 시리즈도 코로나19 때문에 공짜로 웹에서 볼 수 있게 됐다. 아마존이 ‘아서’를 비롯한 40여개의 어린이용 TV 프로그램들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아마존 계열인 IMDb TV는 ‘슈렉(Shrek Forever After)’을 비롯해 가족들이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들도 일부 무료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스트리밍서비스인 플렉스는 미국에서 석 달 동안 돈을 받지 않기로 했다. 애플 북스는 인기 콘텐츠인 <처음 읽는 OOO> 시리즈 몇 개를 무료화했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월마트 산하의 부두(Vudu) 서비스도 <토마스와 친구들>을 비롯한 아동용 TV프로그램과 영화들의 이용료를 일시적으로 없앴다.
 
온라인 강의를 집에서 들을 수는 있지만, 도서관들이 휴관을 하고 이동금지까지 내리면 교재를 구하는 게 문제다. 1996년 창립된 미국의 인터넷아카이브는 ‘모두가 지식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모토로 온라인 도서관을 운영해왔다. 공립도서관들과 협정을 맺고 전자책을 올리기도 하고, 사용자들이 스스로 자료를 업로드하기도 하고, 재단이 지원해 저작권법이 적용되지 않는 오래된 책들을 디지털화해 공개하기도 한다. 
 
책뿐 아니라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이나 브루클린박물관 소장품의 이미지들, 미 항공우주국(NASA)의 위성사진들도 볼 수 있다. ‘마치니마 아카이브’라는 동영상 모음, 이란 수학자 하미드 나데리 예가네가 제공하는 수학 이미지 같은 것들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이용하려면 그 동안에는 ‘대기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 신청을 해야 했다. 인터넷아카이브 측은 코로나19로 집 안에서 보내야 하는 이들을 위해 ‘국립 응급도서관’을 열기로 했다면서 6월까지 석 달 동안은 대기 리스트를 없앤다고 발표했다.
 
공짜로 즐길 수 있는 온라인 프로그램들이 많으면 좋긴 하지만, 그래도 역시 책은 종이를 넘기며 봐야 제맛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아직은 더 많다. 감염을 피해 집에 박혀 있어야 하는 처지라면 이 참에 쟁여둔 책들을 펼쳐보는 것도 방법이다. 실제로 영국에선 코로나19 이동제한령이 내리자 시민들이 책을 사들이기 시작했다는 보도가 있다.
 
지난달 23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전국에 이동제한령을 내렸다. 필수품을 사러 가거나 병원에 가거나 운동을 하는 게 아니라면 집에 머물라고 했다. 함께 사는 식구 외에는 둘 이상이 공공장소에 모이지 말라고 했다. 꼭 필요할 때에만 혼자 나가라는 얘기다. 식당과 카페와 펍들도 문을 닫았다. 펍에 모여 맥주를 마시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중계를 보던 영국인들에겐 ‘숨만 쉬고 살라’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미국 메인주의 브런즈윅에 있는 한 서점 앞으로 2일(현지시간) 주민이 지나가고 있다. AP

 
BBC방송에 따르면 그 후 며칠 사이에 책 판매량이 크게 늘었다. 격리에 대비해 읽을거리를 장만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소설 판매량은 일주일만에 3분의1이 늘었다. 아이들 공부와 관련된 책은 2.3배로 판매량이 뛰었다. 퍼즐책, 어른용 색칠하기책, 수공예 관련 책들도 많이 팔렸다. 
 
가디언도 비슷한 보도를 했다. 영국 내 최대 서점체인인 워터스톤스는 3월 중순부터 오프라인 매장들 문을 닫았다. 하지만 온라인 책 판매는 그 후 일주일 새 4배로 뛰었다. 눈길을 끄는 것은 고전소설, 특히 ‘긴 소설’들이 많이 팔렸다는 점이다. 이름은 한번씩 들어봤지만 읽어보지는 않은 유명한 책들, 이를 테면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100년의 고독>과 <콜레라 시대의 사랑>,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같은 것들이다. 
 
부커상을 두 번이나 받은 힐러리 맨틀의 <거울과 빛>은 무려 900쪽에 달하는데 현대소설 분야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 됐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조지 오웰의 <1984>년처럼 디스토피아와 암울한 미래를 그린 책들을 찾는 이들도 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