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전방욱, '크리스퍼 베이비'

딸기21 2020. 2. 23. 20:09

크리스퍼 베이비- 유전자 변형 인간의 탄생

전방욱. 이상북스

 

강릉원주대 전방욱 교수의 책은 <수상한 과학>을 포함해 두 번째로 읽는다. 이번 책을 읽기 전에 <DNA 혁명 크리스퍼 유전자가위>(2017)를 먼저 읽을 걸 그랬다.

 

책은 "메리 셸리가 소설 <프랑켄ㅅ타인을 발표한 지 200주년이 되는" 2018년 11월 26일 "중국의 연구자 허 젠쿠이 박사가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사용해 세계 최초로 유전자가 편집된 인간(크리스퍼 베이비)을 탄생시켰다는" "믿지 못할 뉴스"에 대해 분석한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허 젠쿠이는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로 HIV에 저항력을 갖도록 CCR5라는 유전자를 편집한 배아를 만들었고, 이 배아를 착상시켰고, 그 결과 중국의 어느 부부가 딸 쌍둥이를 낳았다. 쌍둥이의 아빠는 HIV 양성, 엄마는 음성이었다. 에이즈에 걸릴 가능성이 있는 아이를 낳지 않을 수 있도록 인도적 차원에서 유전자편집 배아를 만들었다는 것인데, 의도와 절차와 결과 모두가 격렬한 논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허 젠쿠이는 또 1억명 가까운 북유럽인들의 경우 이 유전자의 자연적인 돌연변이로 HIV에 저항력을 갖고 태어난다는 점을 들며 자신의 '실험'을 옹호한다. 유전자 변형과 관련해 늘 나오는 얘기와 비슷하다. '자연도 유전자 실험을 한다' '돌연변이는 원래 존재한다'는.

 

허 젠쿠이는 이 '실험'을 철저하게 숨겼다가 '제2차 인간 유전체 편집 국제 정상회담'에서 발표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과학전문지가 회의 전날 이 사실을 특종 보도했고, 회의 주최측은 고민을 하다가 허 젠쿠이에게 예정대로 발표할 기회를 줬다. 허 젠쿠이는 국제회의장에서 멋지게 발표할 계획이었겠지만, 찬사보다는 거센 비판을 불렀다. 

 

책은 허 젠쿠이의 발표가 나온 과정, 발표를 통해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들과 확인되지 못한 사실들, 그 발표를 둘러싼 과학계의 반응을 소개하고 전 교수가 논평을 적는 방식으로 돼 있다. 챕터마다 국제회의에서 나온 질문과 허 젠쿠이의 발언이 먼저 소개되고, 이어 배경과 의미를 전 교수가 설명한다. 

 

책 자체는 특정 사건과 그에 대한 국제회의장에서의 반응이라는 단순한 구조로 돼 있지만 사안이 사안인지라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다. 유전자 편집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나 같은 독자들을 위해 페이지마다 주석을 붙였지만 사실 그것들을 읽어도 딱히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독자들이 읽는 데에 큰 무리는 없다. 과학자들이 지적한 것들, 혹은 지적하지 않은 것들과 외면한 것들의 의미를 꼼꼼하게 평가해주기 때문이다.

 

허 젠쿠이는 유전자를 바꿈으로써 아기들의 지능을 높이는 한편 다른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사망 위험을 높였으며, 표적이탈효과와 모자이크현상으로 인해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한 것으로 알려졌다. 태어난 쌍둥이는 이제까지 인류의 유전자 풀에 나타난 적이 없는 돌연변이를 지닌 인체실험의 희생자가 되었다. 자신의 과학 행위에 대해 충분히 성찰하지 않고 실행에 옮기면 결과는 비극으로 끝날 수 있다.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해서 모두 윤리적으로 바람직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9쪽)

 

책은 온갖 의문과 걱정거리들을 던진다. 유전체의 어떤 부분은 편집되고 어떤 부분은 편집되지 않는 '모자이크현상'이나 의도하지 않은 편집이 이뤄지는 '표적이탈효과'처럼,  유전자를 편집한다는 것이 '현 단계에서' 갖는 위험성은 큰 문제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지능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에서 CCR5 유전자를 변형시키는 것은 '증강' 즉 특정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전반적으로 '아직까지는' 유전자에 손을 대 '증강'을 일으키는 것에 반대한다. 지능과의 연관성을 빼더라도, 아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아기를 위해 유전자를 편집한다는 것은 결국 치료가 아닌 증강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돈 있는 사람은 증강된 유전자를 자식에게 물려줌으로써 사회적 지위를 대물림하게 되지 않을까? 변형된 유전자는 인류의 유전자풀에 들어오게 돼 후세대에 두고두고 영향을 미치게 될 텐데 누가 그 책임을 질 것인가? 부모 뜻대로 유전자를 변형시킨 이른바 '디자이너 베이비'가 일반화된다면, 어쩌면 우리는 아이들을 '증강' 즉 특정 기능을 강화하는 것자녀가 아닌 '제품'으로 보게 되지 않을까?

 

허 젠쿠이가 변형시킨 유전자는 HIV만이 아니라 지능이나 다른 바이러스 감염과도 관련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만듦으로써 동물의 지능이 높아졌다는 연구결과가 있으며, 인플루엔자나 웨스트나일 바이러스에 취약하게 만든다는 부정적인 연구결과도 있었다. 유전자를 편집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어떤 변화 혹은 '기능'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 우리는 인간의 어떤 특성을 없애거나 강화하려 할 것인가? 그 시대 그 사회 그 집단의 가치관으로 미래 세대의 특성을 만들어내려 하는 것이 정당한가?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만일 그 변화를 원치 않았다면?

 

저자는 과학적 사실을 둘러싼 문제뿐 아니라, 그것이 토론되고 사회에 적용되는 과정 자체를 돌아봐야 한다고 말한다. 과학자들은 허 젠쿠이가 행한 일의 절차를 문제삼았지만, 과학자 사회가 만들어놓은 기준을 지켰느냐를 지적하는 데에 그쳤다. 과학의 규칙들을 과학자들끼리 만들어도 될 일인가. 더군다나 과학은 명성과 돈과 관련돼 있다. 국가주의, 애국주의와 결합되기도 한다. 

 

중국을 지배하는 능력주의로 인해 장애와 질병으로 낙인찍힌 집단은 허 젠쿠이와 같이 명성에 굶주린 포식자들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기 마련이었다. 중국의 과학계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공민권이 박탈된 이 집단의 사람들을 착취하려는 이들이 더 많을 것 같다.

중국인들은 생의학을 아주 긍정적으로 본다. 생의학을 발전시킨 사람은 중국에서 거의 영웅적인 지위를 가질 수 있다. 그의 무모한 실험은 도박을 통해서라도 성공을 추구하겠다는 태도의 결과인 것 같다. 그의 유전자 편집은 중국 정부가 약탈적인 개인과 기업들로부터 취약한 시민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85~86쪽)

 

미국에 유학하고, 귀국해서는 스타 과학자로 환영 받고, 정부의 지원을 받아 연구를 하면서 바이오기업을 창업하거나 투자해 돈 벌 길을 열어놓고, 과학계의 룰에 맞지 않는 '한 방'을 터뜨려 명성을 얻으려고 한 과학자. 참여자들(부모들)에게 더 안전한 다른 대안이 있다는 걸 숨기고, 이미 존재하는 당국과 연구기관의 규칙과 감시를 피해 모험을 감행한 도박꾼. 허 젠쿠이는 이런 모든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허 젠쿠이뿐일까. 상업화된 과학을 이야기할 때 중국을 첫 손으로 꼽을 수 있을까. 인간 유전체 편집과 관련해서는 일시적으로 실험을 중단시키는 모라토리엄을 요구하는 학자들이 있었지만 과학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국 과학계가 앞장서서 크리스퍼 기술 편에 섰다. 미국만의 문제도 아니다. 전 세계 과학계의 일이다. 게다가 중국은 대부분 국가들과 비슷한 수준의,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생명공학 관련 규칙들을 정비해놓고 있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 관리감독은 무력화됐다. 아직 어떤 나라도 명확한 처벌규정은 없다. 황금알을 낳을 것이 분명해 보이는 이 분야에서 머뭇거리기보다는 앞장서서 나가야 한다, 윤리적 논란보다는 돈벌이와 국가의 위신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어느 한 나라에만 있을 리 없다.

 

생명공학 회사와 제약회사들은 이미 크리스퍼에 기반한 기술의 잠재적 이익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크리스퍼에 기반한 유전자 편집기술이 발전하며 공적 지원을 받아 집단으로 개발한 결과를 상업화할 권리를 갖기 위해 치열한 특허권 경쟁이 촉발되었다. 마침내 MIT 그룹이 크리스퍼 특허를 독점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했지만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현재 크리스퍼 기반 유전자 시장은 유전체 편집, 유전공학, 가이드RNA 데이터베이스, 유전자 라이브러리, 크리스퍼 플라스미드, 인간 줄기세포, 유전자 변형 생물체, 세포주 공학 등으로 사업분야를 넓혀 가고 있다. 

...그들은 실리콘밸리의 기술자들과 마찬가지로 상업적 이익과 과학의 발전, 그리고 인간의 진보를 구별하지 않는다. 과학적 발견을 공유하기보다는 특허가 되어야 하는 소중한 상업적 실체로 간주하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이런 태도는 기업의 이익으로 무장한 과학 엘리트들의 자만심을 반영한다. 그러나 이 세계관은 매우 왜곡돼 있다. (166~167쪽)

 

2015년 4월 초, 광저우 중산대학의 황 준쥬 교수팀은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최초로 인간 배아에 적용해 지중해성빈혈증 유전자를 돌연변이시켰다. 논쟁이 벌어졌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생식에 직접 사용하는 경우만을 제한하는 한시적 모라토리엄을 선호했다. 이 기간 동안 임상 목적 이외의 의미와 목적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들을 다뤄야 한다는 입장이 2015년 12월에 열린 제1차 이간 유전자 편집 국제 정상회담의 결론이 되었다. 회담에서는 공동성명을 통해 과학과 사회의 필요조건이 충족될 때까지는 인간 생식세포의 유전체 편집을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반면 2017년 2월에 발간된 미국 과학공학·의학아카데미 보고서는 "합리적 대안이 없고 심각한 질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하는 경우를 포함해 10가지 기준이 충족될 경우, 임상 목적의 생식세포 개입이 허용될 수 있다"며 금지에서 허용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187쪽)

 

그러므로 "인간 생명을 편집하는 윤리를 과학자들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허 젠쿠이의 실험을 '불량한' 개인이 수행한 것으로 규정하고 비윤리적이라 비난한 사람들은 다름아닌 과학자들이다. 불량한 과학자와 선량한 과학자인 자신들을 구분하고 '윤리' 담론을 통해 과학자에 의한 거버넌스를 보호하려 했다."(247쪽) 

 

공적 자금으로 운영되는 과학 연구결과를 민간기업의 소유로 전용함으로써, 우리는 결과적으로 생의학 치료 비용을 상승시키고, 과학자 집단이 발견하고 시민이 공적으로 지원한 과학적 발견에 대한 통제권을 포기한다. 그러나 민주적으로 통제하고 공익을 유일한 목적으로 하는 과학의 공유화라는 분명한 대안이 있다. (168쪽)

 

근본적인 의문을 감춰둔 채 절차와 규제와 연구자 개인의 윤리 문제로 끌고 가려는 과학자들에 맞서, 대중들이 논쟁의 주도권을 찾아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세금을 내는, 아프면 치료를 해야 하는, 미래 세대를 낳아 키우는 시민들이 룰을 만들어야 하고, 당장 논쟁을 시작해야 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