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수상한 GPS

[구정은의 '수상한 GPS']34살 의사 리원량의 죽음과 시진핑의 위기

딸기21 2020. 2. 9. 16:40

지난 7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 허우후의 우한중앙병원 앞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위험성을 폭로했다가 당국의 탄압을 받고 결국 이 질병으로 숨진 의사 리원량을 애도하는 꽃다발들과 초상화가 놓여 있다.  우한 AFP연합뉴스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이 퍼질 무렵이었다. 중국 당국이 우왕좌왕하며 은폐에 급급했을 때,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오던 미국인 환자가 경유지인 베트남 하노이 병원에서 숨졌다. 이 환자의 죽음을 세상에 알린 것은 세계보건기구(WHO) 소속으로 일하며 하노이 병원 현장을 조사한 이탈리아 의사 카를로 우르바니였다. 우르바니는 그 자신 사스에 걸려 결국 숨졌고, 의료진 감염 문제가 대두됐다.

 

그후 17년, 중국은 후베이성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 사태를 만났다. 이번엔 의료진 감염을 막겠다고 했지만 미국의사협회보(JAMA) 지난 7일 자료에 따르면 병원 내 감염이 41%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한 시내 병원의 확진자 138명을 조사해보니 의료진 40명과 다른 병으로 이미 입원중이던 환자 17명이 병원 내에서 감염된 것이다.

 

지식인들 잇단 공개서한

 

특히 신종 코로나의 위험을 알렸다가 당국의 탄압을 받고 ‘누설하지 않겠다’는 서약서까지 써야 했던 의사 리원량(李文亮)의 죽음이 중국 당국의 여전한 폐쇄주의와 강압에 대한 분노에 기름을 붓고 있다.

 

9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우한에 있는 화중사범대학 탕이밍(唐翼明) 국학원 원장과 동료 교수들은 “리원량의 경고가 유언비어로 치부되지 않았다면, 모든 시민이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다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 이 국가적 재앙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공개서한을 내놓았다.

 

이들은 언론자유 등 ‘중국 헌법 가치’를 강조하면서 리원량 등 의사들에게 침묵을 강요한 경위를 조사하고 당국이 사과·배상할 것을 요구했다. 이어 34살로 숨진 리원량을 추모하는 글, 리원량의 아내 푸쉐제가 “어떤 위로금도 받지 않겠다”며 올린 글들이 소셜미디어를 돌면서 파장이 커졌다.

 

8일 중국 쓰촨성 청두의 한 병원에서 방호복을 입은 직원이 의료폐기물을 정리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경우 40% 이상이 의료기관 내 2차 감염이라는 미국 조사결과가 나왔다.  로이터연합뉴스

 

앞서 6일에는 칭화대 법대 교수를 지낸 쉬장룬(許章潤)과 인권운동가 쉬즈융(許志永) 등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퇴진을 공개 요구한 바 있다. 서울시립대 중국어문화학과 하남석 교수는 “1989년 톈안먼 시위 때를 비롯해 중국의 민주운동 진영은 ‘사회주의 민주’와 ‘헌법 수호’를 가치로 내건 적이 많았다”며 공개서한을 그 연장선상으로 분석했다.

 

사라진 시 주석

 

지난해 홍콩 시위가 무력진압된 뒤 세계 곳곳에서 반중국 시위가 벌어졌다. 중국이 ‘도광양회(韜光養晦·은밀히 실력을 키움)’의 태도를 벗어던지고 세계 양강(G2)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이래 지구적인 반중 시위는 처음이었다. 신종 코로나 사태까지 일어나면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체제는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당국은 리원량 애도 열기가 번지자 그를 ‘영웅’으로 미화하려 하고 있으나, 당국의 바람과 달리 중국인들은 ‘내부고발자의 비통한 죽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8일 중국 장쑤성 우시의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전염병 감염을 막는 데에 쓰이는 방호복을 만들고 있다. 이 공장은 스포츠의류를 만들던 곳이었으나 당국이 ‘총력전’에 나서면서 방호복 생산을 시작했다.  우시 AFP연합뉴스

 

신종 코로나 사망자가 800명 넘어선 현재, 중국 정부의 대응은 두 갈래다. 하나는 전염병을 막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내부의 비판 여론을 막는 것이다. 인민해방군을 투입해 방역 총력전에 나선 동시에 시 주석은 정부 조치를 따르지 않는 이들을 처벌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마오쩌둥이 말한 “인민의 전쟁”이란 표현까지 인용했다. 하지만 사스 때와 달리 이번에도 인민을 윽박질러 입을 막을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세계의 관심사는 이런 상황에서 시 주석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시 주석은 지난달 20일 “단호히 대처하라”며 앞장 서서 지휘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이후 행보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를 보냈을 뿐, 시 주석이 우한을 직접 방문한 적도 없다. 지난달 23일 인민대회당에서 춘제(설)를 앞두고 국민들에게 축하메시지를 보내면서 시 주석은 “모든 중국인은 중국의 구성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라”고 했지만 신종 코로나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이달 초 훈센 캄보디아 총리를 면담한 것 외에, 일주일 가까이 국영TV등에 시 주석의 모습은 비치지 않았고 대중들의 혼란과 분노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한다. 심지어 시 주석이 신종 코로나에 감염됐다, 150만명이 수용된 위구르족 구금시설에 감염증이 돌고 있다는 소문들까지 돌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5일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훈센 캄보디아 총리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시 주석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시작된 후베이성 우한을 직접 방문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최근 며칠 동안은 국영TV에서도 모습을 감췄다.  베이징 신화연합뉴스

 

보건 위기에서 ‘정치적 위기’로

 

표면적으론 리원량의 죽음이 분노를 촉발한 것이지만 시 주석 집권 7년간의 억압적이고 권위적인 행태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하남석 교수는 “당장 체제가 흔들리지는 않겠지만 중국 공산당이 어떻게 정책을 전환하고 컨센서스를 만들어갈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중국 인터넷 소통을 연구해온 미국 내 중국 유학생 샤오창은 월스트리트저널에 “단순한 공중보건의 위기가 아니라 시 주석의 국내 정치적 위기”라고 말했다. 신문은 미·중 무역갈등으로 타격을 입은 중국 내 경제엘리트들의 불만이 쌓여왔고, 여기에 홍콩 시위와 무력진압으로 여론이 들쑤셔진 상황이라면서 “시 주석에게는 내부 결속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상황인데 신종 코로나 위기를 맞았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7년간 시 주석 자신이 구축해온 권위주의 체제가 시험대에 올랐다”며 “보건 위기가 정치적 위기가 되고 있다”고 썼다. 중국 정치학자 룽젠(榮劍)은 뉴욕타임스에 “톈안먼 사태 이후 최대 위기”라면서 “시 주석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자신의 평판과 정통성이 (이번 사태로) 훼손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위기를 넘기지 못하면, 임기 제한 규정을 없애고 2022년 집권을 연장하려 해온 시 주석의 계획이 흔들릴 수도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