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수상한 GPS

[구정은의 '수상한 GPS']10만명 소도시 살린 부티지지, 민주당도 살릴까

딸기21 2020. 2. 5. 15:44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한 피트 부티지지가 4일(현지시간) 뉴햄프셔주 라코니아에서 유세를 하며 전날 아이오와 코커스 결과에 대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라코니아 AFP연합뉴스

 

미국 인디애나주 북부에 있는 사우스벤드는 1865년 상인들이 모피를 거래하러 모이면서 생겨난 인구 10만명의 소도시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5대호에 인접한 입지와 세인트조지 강 덕분에 내륙 수상교통의 요지였지만 1960년대부터 쇠락하기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 때만 해도 4만3000명을 고용했던 자동차회사 스튜드베이커가 1963년 문을 닫고 농기계공장들도 줄자 주민들도 떠났다. 몰락한 산업지대 ‘러스트벨트’ 소도시의 전형이었다. 하지만 사우스벤드는 요즘 되살아나고 있다. 수십년 만에 처음으로 인구가 늘기 시작했으며 도시의 경제구조도 의료와 교육, 테크놀로지와 관광 중심으로 변하고 있다.

 

사우스벤드가 미국 뉴스에 등장하게 만든 1등 공신은 2012년 초부터 올 1월 1일까지 재임한 피트 부티지지 전 시장(38)이다. 2011년 시장 선거에서 지지율 74%로 당선된 부티지지는 이듬해 1월 취임했을 때 겨우 29세였다. 도시를 살리는 프로젝트들과 투자 유치로 입소문을 타더니, 지난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서겠다고 선언하면서 사우스벤드로 관심을 집중시켰다.

 

부티지지 전 시장은 재임 기간 동안 인근 노터데임대학과 협력해 연구시설과 테크기업들을 유치했다. 인접한 카운티의 종합병원과 함께 보건의료회사를 만들어 직원 7000명을 둔 최대 고용주로 키웠다. 버려진 생산시설 주변은 ‘르네상스 지구’로 지정해 개발에 들어갔다. 스튜드베이커의 옛 공장 일대를 ‘이그니션 파크’로 만들어 첨단기술 소기업들이 들어서게 하고, 메트로넷이라는 광통신망을 깔아 도시 전체를 무료 와이파이 지대로 만들었다. 시카고와 디트로이트, 신시내티까지 연결되는 허브를 목표로 데이터센터를 지었다.

 

미국 인디애나주의 소도시 사우스벤드. 위키피디아

 

2013년 조사해보니 도시 곳곳에 버려진 집들이 1300채가 넘었다. 시는 ‘빈집 이니셔티브’라는 이름으로 재개발에 착수했다. ‘1000일 동안 1000채 재개발’을 구호로 삼고 빈집을 고치거나 없앴다. 시가 떠안고 있던 호텔과 골프장 따위 부동산들을 팔았고, 자전거 친화 도시로 만드는 20년짜리 장기 계획도 세웠다. 그가 임기 동안 끌어들인 투자가 3억7400만달러에 이른다. 2015년 도시 인구가 286명 늘었다. 작은 숫자이지만, 수십년 만에 처음으로 인구 증가를 기록한 것이었다. 주민 수로 비교하면 서울 사당동 정도인 소도시로서는 기념할만한 일이었다.

 

여전히 사우스벤드는 잘 사는 동네는 아니다.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주민들의 연간 중간소득은 부티지지 재임 8년만에 3만4000달러에서 3만7000달러로 늘었다. 그러나 비슷한 인구규모를 가진 다른 도시들의 평균 중간소득 6만달러와 비교하면 가난한 편이다. 부티지지의 시도들이 성과를 거두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러스트벨트의 소도시가 부흥을 맞을 것이라 장담할 수도 없다. 하지만 의미는 있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지난해 인구 10만~12만명인 미국 내 80여개 도시들의 경제지표를 조사해 사우스벤드와 비교한 뒤 “부티지지의 시도들은 다른 도시들도 벤치마킹을 할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정치 성향으로 보면 사우스벤드는 민주당의 아성이다. 1972년 이래 민주당에서 시장이 나왔고 시의원들도 압도적 다수가 민주당 소속이다. 2012년 시의회는 고용·주거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인종, 종교, 피부색, 성별, 장애 여부와 민족적 기원, 성적 지향과 젠더 정체성, 결혼 여부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인권조례를 의결했다. 시 인권위원회가 조례 시행을 감시하고 차별행위를 조사하게 했다. 2015년 부티지지는 지역신문인 사우스벤드트리뷴을 통해 자신이 게이임을 공개했다.

 

피트 부티지지(오른쪽)는 민주당 당내 경선 중 가장 먼저 치러진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예상 밖으로 선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티지지가 다음번 프라이머리가 열리는 뉴햄프셔주의 햄튼으로 이동해 4일(현지시간) 지지자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 햄튼 AP연합뉴스

 

몰타 출신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부티지지는 고등학교 시절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에 대해서 쓴 논문으로 케네디가문이 주는 상을 받기도 했다. 하버드대학에서 역사와 문학을 전공했으며, 로즈장학금을 받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유학했다. 그러나 게이 시장이라는 것 외에도 부티지지의 행보는 엘리트 행정관료와는 거리가 먼 것들이 많았다. 시장 재임 도중에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했던 게 그런 예다. 해군에 소속돼 2014년 7개월 동안 아프간에서 복무했다. 당시 워싱턴포스트는 부티지지를 “지금껏 들어본 적 없는 재미난 시장”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2015년 선거에서 부티지지는 첫 선거때보다 더 올라간 80% 득표율로 재선됐다. 2016년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은 뉴요커 인터뷰에서 부티지지를 민주당의 미래를 이끌 젊은 정치인 중 하나로 언급했다.

 

부티지지는 2017년 민주당전국위원회(DNC) 의장 후보로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당내 기반이 약해 중도에 포기하긴 했으나 지명도는 올라갔다. 지난해 그는 전격적으로 대선 예비후보 출마를 선언했다. 선거전 초반 ‘젊은 게이 시장’으로 인기몰이를 했지만 부티지지는 이내 유력 경쟁자들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다. 첫 예비선거인 아이오와 코커스를 앞두고 사우스벤드 주민들은 아이오와로 달려가 부티지지 캠페인을 도왔다. 아이오와에서 부티지지가 예상을 뒤엎고 선두를 달리자 사우스벤드트리뷴은 “초반 승부에 큰 판돈을 걸었던 부티지지의 전략이 성공한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