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여성 연구자, 선을 넘다

딸기21 2020. 2. 5.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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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연구자, 선을 넘다

엄은희, 구기연 등 12인. 눌민

 

내가 몰랐던 이야기, 복잡다단한 세계, 그것의 여러 층위를 12명의 연구자들 눈으로 본다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특히 기자로서 여러 지역에 대한 기사를 쓰지만 여기 나온 이야기들은 말 그대로 현장의 이야기다. 현장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어서 도움이 됐고, 정보뿐 아니라 그곳에서 지내본 연구자들 제각각의 시선이 들어있다는 것이 특히 재미있었다.

 

임안나/이스라엘 도시 슬럼에서의 필리핀 이주노동자 연구

이스라엘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참 많이 했는데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임안나 선생님 글은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여줬다.

오래 전, 이스라엘에서 테러가 난 적 있다. 현장 외신사진이 들어왔는데 사망자들 다수가 중국인 이주노동자들이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평화공존을 하려고 노력했던 적이 있었다. 어느 날부터 이스라엘의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여러가지 경제적 이유가 있었지만 그 중의 하나는, 저임금 노동자로서 팔레스타인인들의 필요성이 줄어든 것이었다. 그 중 한 요인은 물론 이주노동자들의 존재다. 그런가 하면, 돌봄노동을 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전 세계적인 이동은 오래된 화두다. 그 두 가지가 겹쳐진 텔아비브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1. 낯익지만 낯선 단면들

 

최영래/중국의 바다에서 만난 사람들, 그들이 만드는 사회적 연안

잘 모르는 정치생태학이라는 분야와,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던 중국의 바다라는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인류학적 연구의 주제가 된다는 사실 자체가 새로웠다.

 

김희경/ 얼음을 깨뜨리며

지은숙/나의 일본여성 연구 분투기

일본에서 1년씩 두 차례, 2년을 살았다. 그런데 두 글을 읽으니 또 거기엔 내가 모르는 일본의 얼굴들이 있었다. “정신대 문제가 있잖아요. 그런데도 부모님하고 남편이 보내주던가요?”라는 질문을 받았다는 김희경 선생님. 그 구절을 읽으면서 좀 충격을 받았다. , 이럴 수가 있구나.

지은숙 선생님이 전한 자이니치 이야기. 내가 일본에 있었던 2004년에 겨울연가때문에 일본에 욘사마 열풍이 불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 때 자이니치들이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나는 생각을 못 해봤다. 사실 그 때 내가 살던 허름한 빌라의 옆집 아주머니가 계셨는데, 떠나올 무렵에야 말을 섞었다. 나는 그 동네의 내 또래 일본 엄마들과 재미나게 놀고 수다떨며 지내왔다. 말하자면 나는 일본인에 대한 어떤 콤플렉스도 없는 종류의 한국인이었다. 그런 나를 보면서 옆집 자이니치 아주머니는 내가 정말 낯선 존재로 느껴졌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두 분 선생님들의 일본 글을 읽으며 그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정이나/민중의 목소리를 찾아서

베네수엘라는 기사를 쓸 때마다 혼란스럽다. 차비스모, 21세기 사회주의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특히 차베스가 세상을 떠나고 뒤를 이은 니콜라스 마두로 정부가 지금 미국 등 국제사회의 압박과 자국 내 야당의 반격에 직면해 있는 지금, 베네수엘라의 지난 10여년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성과도 있었을 것이고, 부작용도 있었을 것이다.

정이나 선생님의 경험은 평가 이전에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하게 됐던 과정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볼리바리안 스쿨 활동에 참가한 경험, 동시에 그에 대한 중산층의 거부감을 생생히 지켜본 목격담, ‘이 도시는 어느 정도나 위험한가에 대한 생활인으로서의 감각, 여성들의 지도력이 돋보였던 주민평의회 선거 참관기. 모두 재미있었다.

 

홍문숙/전환기 미얀마의 교육과 개발협력

미얀마의 군부독재, 미얀마의 민주화, 미얀마의 아웅산 수지, 미얀마의 로힝야 학살. 거대한 이야기 속에서 미얀마 사람들의 존재를 보지 않고 전달하지도 못해왔는데, 그곳의 젊은이들이라는 당연하고도 낯선 존재들을 만날 수 있었다. 민주화 이후에 자라난 청소년들, 특히 빈곤층 출신 청소년들의 학교에 대한 저항, 그것이 노동자 계층 남성이라는 정체성을 강화하는 모습을 전해준다. 미얀마의 양곤 대학에는 꼭 한번 가보고 싶다.

 

2. 맞아맞아! 기자가 공감한 인류학 연구 얘기

 

채현정/태국 북부 국경교역 동행관찰기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할까 고민하는 것, 기자로서 고개를 끄덕끄덕. 간혹 외국 취재를 가면 시장/대학/종교시설/상점가들을 훑는다. 맨땅에 헤딩으로 얻어 걸리는사람들도 있고, 못 만날 때도 있고, 현장에 가서 보니 생각과 다를 때도 있고, 내가 만난 사람이 그 사회의 적절한 표본이 맞나 의심스러울 때도 있다. 그런 경험들을 인류학자들도 똑같이 하는구나.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교통수단 고민에도 마구 공감. 국내선 항공을 타고 이동시간을 절약해야 하나, 드라이버 딸린 차를 빌려야 하나, 아냐 그래도 대중교통을 타고 사람들 구경이라도 하는 게 낫지... 내 출장 경험들과 그 많았던 실수들을 떠올리며 혼자 웃었다.

 

육수현/내겐 늘 낯선 베트남

야마하 오토바이 타고 다니면서 오히려 대화를 더 많이 하게 됐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사회문화적 차이 때문에 화가 나고 짜증나는 일이 많은데, 베트남 사람의 민족성으로 여기거나 저개발국가라서 그래, 라고 생각하고 싶어도 그동안 갈고닦은 문화상대주의가 나의 그런 생각조차 가로막고 있다는 부분. ㅎㅎㅎ 공감

출장을 떠날 때에는 '남들이 가지 않는 곳에 가니 생각을 좀 많이 해보리라' 마음먹는다. 그런데 하루를 돌아보면 그날 나의 고민은 이 골목에 들어가도 될까, 어디서 뭘 먹어야 하나, 저 교통수단 타도 되나, 화장실이 있을까, 물을 마시면 될까 안 될까, 너무 원초적인 것들뿐이다.

육수현 선생님 글처럼 낯선 곳,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나 자신의 민낯을 마주하게 된다. “끊임없이 나를 시험하는 날씨, 사람, 오토바이, 그리고 그로 인해 드러나는 나 자신의 민낯을 이겨내는 방법은 더 많이 부딪치고 경험을 쌓는 것 밖에는 없었다.이것도 공감.

 

노고운/중국 옌볜에서의 2년과 그 이후

엄청 웃었다. 로맨틱 코미디의 문화인류학적 버전. “평범하지만 매력 넘치는 연구자인 내가 현지에 들어가 처음에는 티격태격하면서 문화충격도 받고 현지민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어려움도 경험하지만 결국에는 그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는 연구자로 거듭나면서 끝나는 해피엔딩을 상상했으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에게 그런 꿈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라크전 발발 전, 퇴근길에 혼자 마구마구 상상. ‘혹시 내가 갑자기 이라크에 가게 됐고 갑자기 사담 후세인을 만나 인터뷰할 기회가 생겼는데 내가 순발력이 없어서 질문도 못하고 쩔쩔매면 어쩌지.’ 한 후배는 볼리비아에 출장을 보냈더니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을 만나게 되면 어떡하죠.”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상상만으로도 어쩐지 떨렸던 기억들.

“‘날 오라는 곳은 없어도 내가 갈 곳은 많다네라고 중얼거리며 일단 집을 나섰다. 에상치 못했지만 이루어질지 모르는 인터뷰 등에 대비해 가방에 노트, 설문지 문항, 인터뷰 동의서 등등을 가지고 다녔다는 구절을 보니 노고운 선생님은 나보다는 훨씬 준비성 많았던 듯. 현지 상점 점원도 하셨다는데.

 

장정아/홍콩 현장에서 바뀌어간 질문들

민족주의는 늘 고민거리다. 항상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것이 있다. '나'라는 존재는 글로벌 시대의 세계시민이거나 혹은 일개인일 뿐이라는 것이다. 집단의 논리, 집단의 정체성에 매몰되지 말자는 의미다. 하지만 현실의 우리는 여러 정체성이 중첩된 채 존재할 수밖에 없다. 어느 국민이거나 민족의 일원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거기에다가 계급 계층까지 겹쳐지기 때문에 사람은 복잡한 존재이고 세상 또한 복잡하게 굴러간다.

장정아 선생님의 글은 거기에다가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한 겹 덧댄다. 홍콩과 중국 본토라는 지역, 홍콩의 중국인과 홍콩의 한국인, 여성 연구자와 남성 연구자의 엇갈리는 시선들 속에서 질문을 바꿔가는 과정은 아마 이 짧은 기록에 다 담아낼 수 없는 길고 고민스러운 과정이었을 것 같다.

훨씬 구체적인 질문, 그들의 감정적 애착과 슬픔을 최대한 포착할 수 있는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했다는 부분에 참 많이 공감했다. 기자로 일하면서 상투적이고 어찌 보면 답정너인 질문들을 던지면서 과연 이것이 최선인가 반문할 때가 많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순간부터 나의 질문들도 그렇게 바뀌어가고 있고, 그렇게 바뀌어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요즘 유행하는 말을 빌자면 기사가 스토리텔링으로 향해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기자들 속어로 야마가 뚜렷하지 않을 수가 있다. 항상 그 딜레마 속에서 왔다갔다 하는데, 인류학자의 글에서 동종의 고민을 보니 반가웠다.

 

3. 사실 이 책에 대해 날카로운 품평을 하고 싶지만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으면서 감정이입을 많이 하는 편이 전혀 아닌데, 이 책은 구기연 박사로부터 책 소개를 들었을 때부터 막 감정이입이 예상됐다. 나는 인류학에 대해서는 모른다. 그러나 일하는 여성으로서, 이른바 워킹맘으로서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내용들일 게 분명했다.

 

구기연/이란 사회의 정동 읽기

구 박사님과 알고 지낸지 몇 년이 됐는데, 그동안 이란 얘기를 하면서도 현지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자료를 몰래 한국으로 보낸 모험담들은 통 들려주지 않았다. 글 읽으면서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싶었다. 사실은 회사에서 구 박사님 글을 읽다가 갑자기 왈칵 눈물이 났다.

아주 오래전에 아이를 지방의 시댁에 맡겨 놓고 주말마다 가서 만났다. 그러다가 출장을 가게 됐다. 3주 동안 출장지에서 보내고 4주만에 아이를 보러 갔더니, 돌이 갓 지난 아이가 엄마를 못 알아보더라. 그 때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 무슨 대단한 일을 한다고 이러고 있나... “독한 구기연이라는 격려도 들었다고 했는데, 일하는 여성들은 늘 그런 말을 듣고 산다. 혹은 안 들리는 곳에서 누군가는 그런 말들을 하고 있을 것이다.

 

엄은희/필리핀에서의 불의 세례 현지조사

현지조사라는 것을 상상했을 때 가졌던 꿈과 희망. 그것이 상상된다. 또한, 이 글을 쓰면서 지난 기억을 돌아볼 때 엄마이자 아내이자 어느 집 며느리이자 가난한 대학원생의 간난신고의 순간들이 불쑥불쑥 끼어들어 있었다는 점을 발견했다는 구절. 연구하다가 시아버님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느낌이 어땠을까.

현지 시민단체에 소속돼 일하기도 하셨다는데, 연구자와 활동가 사이에서 경험하는 정체성 갈등에 대한 고민이 인상 깊었다. 비슷한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한국 언론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겨온 기계적 중립과 기계적 객관성이 과연 옳은가. 슬픈 일은 슬프다고 엉엉 울면서 쓰고, 비참한 일은 너무 비참하다고 쓰는 것이 현실을 더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 아닌가 하는 물음들. 잊고 있던 고민들을 되새겼다.

 


1월 마지막날,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에서 열린 북토크에 갔다. 재미있었다!
아래 링크는 이문웅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님께서 직접 찍고 편집해서 올리신 동영상 중 내 출연분(?).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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